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251화 (25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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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수행비서는 문득 학창 시절 선생님 중 한 분이 한 말이 생각났다. 왜 그런지 자기도 모르겠지만....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고, 하늘을 나는 새가 떨어지면 활을 부러뜨리고, 적국이 망하고 나면 장수들을 내친다더니....’

자신의 오른팔이라 불렸던 사람이었다. 그런 부하 직원이 피살 됐다는데, 지금 백승렬 회장은 그의 피살 사실을 숨기려 하고 있었다. 삼명그룹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면서....

“....그래....아무래도 자살이 좋겠지. 그렇지. 유족하고 합의보고, 문제 되기 전에 시신 빨리 정리 해 버려. 어어.”

노성식 경호실장과 얘기를 끝낸 백승렬 회장. 그가 수행비서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오규동 비서실장 빈소에, 화환 큰 걸로 하나 보내. 내 이름 박아서.”

“네. 회장님.”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고, 정작 정승이 죽으면 텅텅 빈다는 옛말이 있었다.

오규동 비서실장은 삼명그룹 2인자였다. 하지만 그가 죽은 마당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하지만 왕인 백승렬 회장이, 오규동 비서실장의 장례식장에 자기 이름으로 화환이라도 하나 보내 놓으면, 그 소식을 접한 본사 임원들이 회장 눈치 보느라, 다들 문상을 갈 거 같았다.

그 말 후 다시 지그시 눈을 감는 백승렬 회장을 보면서 수행비서는, 백 회장이 그것까지 다 생각하고, 자신에게 화환을 보내라고 말한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대기업 회장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수행비서는 다시 한 번 대한민국 부와 권력의 최고 정점에 올라 있는, 한 거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러면서 그의 수행비서로 있는 게 정말 영광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부하 직원의 죽음에, 바로 손절하는 모습에서 비록 인간미는 크게 떨어졌지만.

* * *

삼명家 본가 저택에 도착한 백승렬 회장. 그는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서재로 향했다.

눈치 빠른 최 집사가 즉시 다과를 내어왔다. 근데 평소의 그와는 달리 다과를 두고 바로 나가지 않고 뭉그적댔다.

“뭔가?”

백 회장이 그런 최 집사를 보고 묻자, 그제야 최 집사가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 심기가 불편해 보이시는데, 주치의와 안마사를 부를까요?”

“아니. 됐네. 잠깐 생각 좀 하게 나가 주겠나?”

“네. 회장님.”

백 회장은 그의 말에 바로 나가는 최 집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중얼거렸다.

“최 집사도 세월은 비껴가지 못하는군. 사람이 초조해져 보이는 게....”

최 집사를 보고 의미심장한 말을 내 뱉던 백 회장.

그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던 핸드폰을 자기 눈앞에 가져와, 뭔가 한참을 찾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나야. 잘 지내나? 그렇지. 시간이 참 빨리 흘러. 어어. 후계? 정했네. 그래서 자네에게 이렇게 전화를 한 거고. 이제 그만 본사로 오게나. 그래. 누구냐고? 그건 와서 차차 얘기하도록 하지. 그래. 한 달? 너무 길어. 보름! 하아....좋아 그럼 딱 3주 주도록 하지. 그때 보세.”

누구에게 전화하는지 모르지만, 전화 후 상기 된 백승렬 회장의 얼굴만 봐도 범상치 않은 사람과 통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무리에서 떠났던 수컷 사자가 되돌아오면....본사가 시끄럽겠군.”

그 말 후 백승렬 회장은 밖에 사람을 불렀다.

“네. 회장님.”

“최 집사한테 가서, 주치의와 안마사를 들이라고 해.”

“네.”

백 회장은 오늘 무리한 탓인지 몸이 무거웠다. 몸 상태도 확인하고 안마도 좀 받아야겠다 싶었다.

잠시 더 서재에 앉아 있던 백 회장은 안방으로 향했는데, 그때 그에게 다가 온 삼명家 본가에 상주하며, 본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백 회장에게 보고하는, 비서실에서 파견 나온 이 과장이 말했다.

“조금 전 본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막내 도련님께서 본사 헬기를 타고 남해로 가셨답니다.”

“뭐? 헬기? 누구 허락 받고 헬기를 타?”

“오 실장님 재가가 있었다고....”

“으음....”

“어떻게 할까요? 헬기 다시 돌릴까요?”

“아냐. 내버려 둬. 쓸데가 있으니까 쓰는 거겠지.”

“네?”

자신이 헬기를 못 타선지 몰라도, 백 회장은 누가 회사 헬기 타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탄다니 그냥 두란다. 이게 무슨 소리이겠나?

이게 다 백 회장의 백준열에 대한 총애가 커졌다는 걸 방증하는 거 아니겠는가?

비서는 어서 이 사실을 자신의 상사인, 오 실장에게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그럼 전 이만....”

“잠깐!”

오 실장에게 보고 하려 몸을 돌리던 이 과장을 백 회장이 붙잡았다.

“네? 더 하실 말씀이라도....”

“그럴 거 없어.”

“네?”

“오 실장에게 보고 할 거 없다고.”

“....”

“오 실장 죽었으니까.”

“네에?”

깜짝 놀라는 이 과장. 그런 그에게 굳이 더 상세한 말은 전하지 않고, 백 회장은 그냥 그의 옆을 스쳐 지나서 안방으로 향했다.

“말, 말도 안 돼! 실장님이 죽다니!”

이 과장은 황급히 본사 비서실로 연락을 했고, 이 과장처럼 여태 오규동 비서실장을 따랐던, 외부 파견 나가 있던 비서실 직원들은, 비보를 접하자 그 사실이 믿기지 않은 듯, 본사 비서실에 전화해서 확인하기 급급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고 오규동 비서실장을 잃은 그들은, 한 순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다들 오 실장 믿고 파견 나갔는데, 이제 누가 그들을 챙겨 준단 말인가?

* * *

오규동 비서실장과 통화 후, 나는 송명철 부 팀장에게 말했다.

“차를 삼명그룹 본사 쪽으로 돌려요.”

“네?”

“우리는 남해 갈 때 헬기타고 갑니다.”

“....”

헬기라는 말에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송 부 팀장. 그런 그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좀 전에 삼명그룹 본사 헬기 섭외했어요. 근데 헬기타고 남해까지 얼마나 걸려요?”

“한 시간이면 갑니다.”

내 물음에 송 부 팀장이 즉각 대답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군대에 있을 때 헬기 조종도 했었다고 밝혔다.

“우리 송 부 팀장. 다재다능하네요.”

“아, 아닙니다.”

“근데 액션 연기 하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아주 대 놓고 송 부 팀장에게 물었다.

“액션 연기요?”

연기라는 말이 들어가선지, 송 부 팀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냥 연기와 액션 연기는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데요?”

“으음....액션으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액션 쪽은 자신 있을 거 아닙니까?”

“그, 그렇기는 한데....”

“한 번 해봅시다. 해보고 아니면 다시 경호팀으로 복귀해도 되니까.”

“....”

나의 제의에 대해 송 부 팀장은 뭔가 생각이 많은 거 같았다. 그의 성격상 한 번 해보자고 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내가 뭐가 문제냐고 물어 본다고, 거기에 대해 대답할 사람도 아니고....’

송 부 팀장은 팀장인 문대식에 비해서 몇 배는 더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로서는 갑갑할 밖에.

‘도저히 답답해서 안 되겠다. 능력 뒀다가 어따 쓰게. 그냥 지금 쓰자.’

나는 송 부 팀장에게 「개목걸이」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개목걸이」아이템이 그의 목에 채워졌다.

“으음....”

순간 그의 두 눈의 동공이 갑자기 멈췄고, 동시에 살짝 벌어진 그의 입술에서 낮게 근심에 잠긴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경호팀 부 팀장 송명철이 당신이 묻는 말에 무엇이든 사실대로 대답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견신 시스템의 말이 들려오고 나는 바로 송명철에게 물었다.

“연기 하는 게 왜 싫은 건데요?”

“그, 그건....제가 연기를 하면 말을 더듬어서....”

들어 보니 별것도 아닌 이유로, 송명철은 연기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고쳐 주려면 아무래도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해 보였다.

‘역시 차은석 부문장에게 부탁을 해야겠군.’

그쪽은 나보다 차은석 부문장이 더 전문가니까, 그녀에게 송명철을 보내면 그녀가 잘 알아서, 송명철을 액션 스타로 키워 내 줄 것이다.

나는 송명철의 목에 걸린 「개목걸이」아이템을 도로 회수했다.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우희였다.

JYB엔터의 대표 걸그룹 MP4의 멤버이자, 내 여자이기도 한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희는 콘서트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제 그녀 집에도 못 갔고.

“어라?”

그녀는 백준열을 진짜 싫어했다. 그러니 그녀가 백준열에게 먼저 전화 거는 일 따윈 여태 한 번도 없었고.

한데 그녀가 지금 내게 전화를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왜 내게 전화 했는지가 궁금해서라도, 나는 그녀의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대표님. 저예요. 우희.

“어어. 그래. 어쩐 일이야?”

=대표님. 여기 청주인데요. 저희 콘서트 감독님이 지금 서울에 발이 묶여 계세요. 그분을 청주로 데려와 주시면 안 될까요?

그게 뭐 어렵겠나? 사람 시켜서 청주로 보내면 되지. 근데....사람은 끝까지 말을 들어 봐야 했다.

=저희 콘서트 1시간 밖에 안 남았거든요. 그 안에 좀 어떻게....

“뭐? 한 시간 안에 거길 어떻게 가?”

=역시 어렵겠죠?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한....

‘가만....’

나는 옆에 송 부 팀장에게 물었다.

“송 부 팀장. 여기서 청주까지 헬기로 몇 분이면 갑니까?”

“빠르면 20분이면 갑니다.”

“오케이. 그렇다면 가능하겠군.”

나는 우희의 전화를 다시 받아서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어떡하든 공연 시간 안에 콘서트 감독 데리고 거기로 갈게.”

=정말이요?

“그럼. 우희 널 위해서라면 내가 뭘 못할까.”

=....

내 그 말에 갑자기 말이 없어진 우희. 그런 그녀에게 나는 콘서트 감독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리곤 그녀와 통화를 끝내고, 서울에 발이 묶였다는 콘서트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사람이 송명철 부 팀장처럼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고지식하면서 정의감 넘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이번 MP4의 콘서트 감독이 바로 그런 유형의 인물이었다.

그가 서울에서 발이 묶인 이유는, 그의 앞쪽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정작 사고를 낸 사람이 큰소리치고, 오히려 사고 당한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그걸 못 참고 거기 끼어든 것이다.

그로인해서 억울하게 당할 뻔한 사람은 구했지만, 그 시간에 청주로 가야 할 그가 서울에 발이 묶이고 만 것이고.

자세한 사정을 그 당사자와 통화로 직접 들은 나는, 본인과 통화 중에 그런 소린 못하고 끊고 나서,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이 말을 내뱉었다.

“아이고. 두야!”

그런 그를 나는 일단 경호팀 오토바이를 보내서 본사로 바로 싣고 오게 했다.

다행히 그가 있는 곳이 본사와 가까워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제 시간에 맞춰 가지 못했을 것이다.

“빨리 타세요.”

나는 본사 헬기에 그 콘서트 감독을 싣고, 나도 같이 헬기에 탔다.

삼명그룹의 보유한 민간 헬기 최대 정원은 10명.

해서 나는 송 부 팀장과 경호팀원 4명을 더 태웠다.

두타타타타타!

“출발합니다.”

그렇게 삼명그룹 본사 옥상에서 떠 오른 헬기는, MP4가 공연 예정인 청주문화센터로 바로 날아갔다.

그런데 그곳에 헬기 내릴 곳이 없어서 헬기는, 청주시청 건물 옥상에서 내렸고, 연락 받고 미리 시청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공연 관계자들.

그들 차에 타기 전 콘서트 감독이 내게 말했다.

“대표님. 진짜 고맙습니다. 이렇게까지 열정적인 분이신 줄 몰랐습니다.”

“네. 뭐....”

“MP4 공연.....멋지게 연출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 후 차에 오른 콘서트 감독이 공연장으로 휑하니 떠나고, 남은 우리는 청주시청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남해로 가기로 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지금은 저녁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그런 우리 코에 고기 굽는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대표님. 여기 나오네요. XX석쇠구이. 저 집이 청주에서 알아주는 맛집이랍니다.”

그 새 경호원 중 한 명이 맛집 검색을 한 모양이었다.

맛집이라는 데 당연히 가야지. 우리는 XX석쇠구이에 들어갔는데, 시간이 저녁 식사 시간을 좀 넘긴 터라, 가게 안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았다. 그걸 보자니 나도 한잔 강하게 당겼다.

다행인 점은 헬기 조종사가 헬기에 남아 있단 점이었다.

그는 일찍 저녁 식사를 한 탓에 우리를 따라 나서지 않았다.

대신 커피 한 잔 챙겨서, 다시 헬기가 있는 시청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덕분에 우리는 눈치 보지 않고 한 잔 할 수 있었다.

뭐 물론 송 부 팀장이 경호원이 경호 중 입에 술을 대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고지식한 말을 내뱉었는데, 내가 반주로 딱 한 잔씩만 하자니 그냥 어물쩍 넘어갔다.

우리는 석쇠구이를 10인분 시켰는데, 메뉴판을 보자니 간장게장이 있었다.

그래서 간장게장도 2인분을 시켰고, 김치 찜도 맛있어 보여서 5인분을 시켰다.

송 부 팀장을 비롯해서 장정이 5명이니, 이 정도는 시켜야 하지 않나 해서 시켰는데, 모자라서 석쇠구이를 5인분 더 시켜야했다.

그 추가로 시킨 석쇠구이 5인분이 나오는 동안, 김치 찜 5인분을 순삭해 버린 내 경호팀원들.

그 뒤 나온 석쇠구이 5인분도 금새 먹어치우고, 그제야 흡족해 하는 그들에게 나는 소주 한 잔씩을 더 따라줬다.

그러자 송 부 팀장이 눈치를 줬지만 무시했다.

반주로 소주 한 잔 마시나 두 잔 마시나, 어차피 거기서 거기니까.

식사 후 시청 옥상으로 올라가니 헬기 조종사가 헬기 안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 그를 깨워서 청주 시청에서 다시 하늘로 날아 오른 우리는 대략 30분 쯤 뒤, 야간 비행 끝에 우리 최종 목적지인 경남 남해에 위치한, 베네치아 리조트 옥상에 정확히 안착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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