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250화 (2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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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김훈의 에이전트의 분석실이나 지원조가 호들갑을 떨었지만, 세르게이는 비교적 태평해 보였다.

상대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인,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오른팔 오규동 비서실장.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달랐다.

‘왜 이리 난린지 몰라?’

그에게 있어 오규동은 그가 제거해 왔던, 여러 타깃들 중 한 명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가 제거해 온 타깃들 중에서도, 제거하기 쉬운 축에 속하는 자였다.

왜냐하면 그 타깃이 꽁꽁 숨지 않고, 밖으로 기어 나왔으니까.

김훈에게 듣기로 그렇게 만든 자가,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이라고 했다.

왜 동양 속담인가? 하여튼 그런 말이 있지 않는 가?

토사구팽?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고.

‘그걸 두고 한국에서는 팽 당한다고 하더니....’

바로 오규동이 그런 처지인 거 같았다.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에게 실컷 이용당하다가, 팽 당하는 뭐 그런 처지 말이다.

물론 그 사냥개가 그 동안 사냥한 사냥감들에게야, 오규동도 쳐 죽일 놈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고.

‘사냥개를 죽이는 일이야....’

세르게이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한국에서와 비슷하게 스페인에서는, 사냥이 끝나면 그레이하운드, 작은 머리와 긴 다리,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개를 교수형에 처한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움직이는 차량에 묶여서 훈련받은 그레이하운드들은, 매년 10월 사냥시즌이 시작되면 사냥개로 쓰이고, 사냥시즌이 끝나는 2월이면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이유는 스페인의 사냥꾼이, 이 사냥개들을 단순히 일회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냥에 쓰이지 않을 개를 위해, 1년간의 비용을 지불하는 게 아까운 거다.

그들은 아무리 사냥을 잘하는 개도, 3살을 넘기면 죽인다.

우물이나 벼랑에 산 채로 떨어뜨리거나 굶게 죽이거나.

하지만 그 중에서도 스페인 사냥꾼들이 제일 즐기는 사냥개의 처형방식은 피아노 처형법이다.

스페인 사냥꾼들은 뒷발이 간신히 닿을 정도의 높이에, 그레이하운드의 목을 매달아 묶어놓는다.

목이 졸린 그레이하운드들이 괴로워하며, 뒷발로 서기위해 바닥을 긁으며 버둥거리는 것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고, 이때 그레이하운드들의 뒷발이 바닥을 치는 소리가,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소리 같다고 해서, 사냥꾼들은 이것을 피아노연주, 혹은 피아니스트라고 불렀다.

세르게이가 지금 이 생각을 하는 건, 오규동을 어떻게 제거할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바로....

‘피아노 처형을 응용해서....’

이를 위해서 세르게이는 한 가지 약물과 피아노 줄을 챙겼다.

그리고 만약을 위해서, 방탄조끼를 입고 권총 한 자루를 소지했다.

“....가서 이걸 거기에 타라. 그리고 조용히 놈을 쫓는다.”

세르게이의 말을 그의 통역인 철수가, 세르게이의 조력자들인 김훈 에이전시의 처리자들에게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렇게 세르게이의 지시를 들은 처리자들이 그의 말대로 움직였고, 세르게이는 그런 그들을 무표정하게 지켜보다가, 러시아 말로 철수에게 말했다.

“철수. 우리도 움직이자.”

“알았어.”

두 사람은 조용히 김훈 에이전시의 비밀 아지트를 나섰다.

그때 한쪽에 사지가 묶이고, 입까지 틀어 막힌 채 꿈틀거리고 있는 자들이 철수 눈에 띠었다. 그들을 스쳐지나가며, 철수가 세르게이에게 불쑥 물었다.

“저 사람들이야? 널 감시하고 있었던 자들이?”

“어어. 그렇다더군.”

“저들도 이렇게 되는 거야?”

철수가 치기어린 얼굴로, 엄지를 세운 손으로 자기 목을 그어 보이며 세르게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세르게이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철수. 세치 혀 몰라?”

“세치 혀?”

“세 치밖에 안 되는 짧은 혀라도 잘못 놀리면, 사람이 죽게 되는 수가 있다는 뜻이잖아?”

“....”

세르게이의 말에 철수가 얼굴을 굳히며 입을 ‘꾸욱’ 다물었다. 자기 주제 파악을 그 사이 한 것이다.

그렇게 비밀 아지트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대기 중에 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세르게이의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 되었다.

* * *

사람 목숨을 질기다. 근데 손쓰기에 따라, 참 쉽게 죽는 게 또 사람이다.

그렇게 사람을 참 쉽게 잘 죽이는 존재. 그들이 바로 킬러들이다.

세르게이는 그런 인간백정 킬러들 중에서도 최고로 불리는 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삼명그룹의 2인자인 오규동을 제거할지를 두고, 그를 돕고 있는 김훈 에이전시의 처리자들의 관심은 장난 아니었다.

“이 설사 약만 오규동이 먹을 음료나 음식에 넣으면 끝이란 거네?”

“그러게. 설사 약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원.”

처리자들은 그저 세르게이가 시킨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기 온다.”

그들은 지금 평소 오규동이 자주 들르는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잠시 후 검은 색 승용차 3대가, 그 가게 앞 도로변에 나란히 정차 한 상태에서, 그 차들 중 가운데 차에서 내린, 젊고 훤칠하게 생긴 귀에 이어폰을 꽂은 검은 정장 남이, 곧장 커피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스 모카라떼 한잔 주세요.”

오늘 오규동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아이스 모카 라떼를 시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아마 에스프레소를 시켰을 거다.

그런 오규동의 커피 취향까지, 처리자들은 분석실을 통해 알고 있었다.

커피 광인 오규동은 매일 3잔 이상의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그러니까 적어도 하루에 세 번 이상 기분 나쁜 일이 생긴다는 얘기겠지.

갓 내린 커피를 미리 채워 둔, 코코아 분말와 설탕의 혼합물에 붓고 거기에 우유, 얼음을 넣고 잘 저어서 만든 아이스 모카라떼.

똑!

거기에 세르게이가 준 설사 약을 한 방울 떨어트린 뒤, 다시 한 번 휘휘 저은 아이스 모카라떼를, 테이크 아웃 봉지에 넣어서 검은 정장 남에게 건넸다.

계산은 주문 할 때 이미 한 터라, 검은 정장 남은 봉지를 들고 그대로 매장을 나갔다.

그리곤 자기가 탈 차로 갔고, 그때 그 차 뒷문 창이 열렸다.

‘오규동이다.’

매장 안의 처리자들은 세대의 검은 승용차 중 가운데 승용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오규동을 확인했다.

오규동은 경호원으로 보이는 검은 정장 남이, 봉지 안에서 꺼낸 테이크 아웃 아이스 모카라떼를 한 손으로 받았다.

그리곤 차창이 다시 올라갔는데, 그때 오규동이 빨대에 입을 대는 걸 처리자들도 다 봤다.

“성공했네.”

“이걸로 우리 할 일은 다 끝난 건가?”

“그런 셈이지.”

그때 정차 중이던 3대의 검은 승용차들이 출발했고, 잠시 후 매장 안 직원 휴게실에 있던, 원래 커피 매장 직원들이 연락을 받고 나왔다.

그런 그들에게 처리자들은 주기로 한 돈을 꺼내며 말했다.

“우리는 본적도 만난 적도 없습니다. 맞죠?”

“네네.”

이미 눈앞의 돈에 다들 눈이 돌아간 매장 직원들이었다.

그들 대답을 듣고 나서 돈을 지급한 후, 처리자들은 조용히 매장을 나갔고, 그들을 픽업 하러 온 차가 도로변에 대기하고 있다가, 그들을 싣고 어디 론가로 사라졌다.

당연히 매장 안 CCTV카메라도 꺼져 있었기에, 처리자들이 여기 있었다는 걸 증명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경남 창원에 있던 백승렬 회장이 오규동 비서실장에서 시킨 일은, 사실 별게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몇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백승렬 회장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들락거릴 수 있는 곳.

그곳은 바로 은행이었다. 은행에서도 지금 오규동이 갈 곳은, 그곳에 있는 대여금고가 되시겠다.

은행의 금고 실은 총 3단계를 거쳐서 들어갈 수 있는데, 장정맥(손바닥 정맥)이나 안면 생체정보인증을 통해 1차 출입문으로 들어간 뒤, 2차 금고 실은 금고번호와 비밀번호, 그리고 생체정보인증이 또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지문인증이나 전자식 키로 3차 금고를 열게 되는 데, 오늘 오규동이 들어갈 금고 실에는 비밀장부가 들어 있었다.

오규동이 할 일은 바로 그 비밀장부가 잘 있는지 보고, 거기 적힌 내용 중 몇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을 확인하고, 백승렬 회장에게 그걸 알려주면 됐다.

늘 해 오던 일이라 거기에 가면서, 오규동은 어떤 감흥도 들지 않았다.

그에게 은행 금고 실은 그가 하루에 3-4번 들르는 화장실이나 다름없었다.

꼬로로록! 꼬로록!

“응?”

은행 앞에 다다라서 차가 멈춰 설 때 쯤, 갑자기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다. 오규동은 갑자기 활발해진 그의 장 활동에 의아해 하며, 일단 차에서 내렸다.

“아이고. 실장님. 어서 오십시오.”

그가 온다는 얘기를 미리 들은, 이곳 은행 지점장이 직접 나와서 그를 맞았다.

그런 그를 보고 오규동이 웃으며 말했다.

“지점장님. 또 이러신다. 나오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럴 수야 있나요? 제가 여기 없다면 몰라도. 자자. 이쪽으로....”

지점장은 오규동을 바로 지점장 실로 안내했다. 지점장실에서 차 한 잔 마시는 사이, 그가 금고 실에 들어갈 절차가 착착 진행 됐다.

똑똑!

“네?”

“지점장님. 준비 다 됐습니다.”

“그래? 알았어. 실장님. 이제 가시죠.”

“그럴까요?”

느긋하게 은행에서 대여금고문을 여는 데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지점장실에 있던 오규동이 막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꾸루루룩! 꾸루룩!

배에서 제대로 신호를 보내왔다. 오규동은 똥고에 잔뜩 힘을 줬다. 자칫 바지에 싸버릴지 몰라서 말이다.

“화장실 좀 갔다가 갑시다.”

그 말 후 지점장실을 나선 오규동. 그는 후다닥 은행 내 화장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10여분여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 멀었나?”

“혹시 변비?”

“그런가 보네.”

그렇게 또 10여분의 시간이 더 흘렀다. 그런데도 오규동은 화장실에서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오규동의 경호원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똑! 똑! 똑!

“실장님!”

화장실 안 칸막이 중, 안에서 문이 잠긴 곳은 한 곳. 그곳에 오규동이 있는 게 확실한 상황에서, 경호원이 큐비클로 제작 된 문에 노크를 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는 오규동.

“부셔!”

쾅! 쾅!

그렇게 건장한 경호원의 몸통 박치기 두 번에 칸막이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의 참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변기 위에 앉은 채 혀를 길게 빼물고, 흡사 악귀 같은 얼굴로 죽어 있는, 오규동의 처참한 모습이 말이다.

“으아아악!”“아아악!”

경호원 뒤로 나타난 은행 사람들이 그걸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경호원은 황급히 그 문을 닫고, 일단 이 사실을 본사 경호실장에게 보고했다.

* * *

워낙 급했던 터라 오규동은 주위를 살피고 자실 여유도 없이, 일단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았다.

츄아아아악!

앉자마자 잔뜩 힘주고 있던 그의 똥꼬가 풀리면서, 그 안의 배설물이 폭포수 같이 쏟아져 나왔다.

“아아....”

그 배설의 희열에 오규동이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였다.

뭔가 그의 목에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손을 목으로 가져 갈 때였다.

휙!

“켁!”

뭔가가 그의 목을 옭아매서 조르기 시작했다. 놀란 오규동은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의 목을 조르는 힘이 위에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턱!

하지만 오규동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누군가 그의 어깨에 올라타면서 아래로 짓누르고 더욱 강하게 목을 조여 댔기 때문에.

그런 가운데 그자는 한손으로 오규동의 입까지 틀어막았다.

오규동은 발악했지만 소용없었다. 상대의 힘이 너무 강해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몸부림뿐이었다.

그러다 얼마 후 잠잠해진 오규동.

그런 그의 어깨에서 내려 온 남자는, 바로 금발머리의 외국인, 세르게이였다.

그는 꼼꼼하게 오규동의 맥이 완전히 끊긴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의 목에 감겨 있던 피아노 줄을 풀었다.

그 뒤 화장실 안을 깨끗이 정리한 후, 화장실 천장의 환풍구를 통해 화장실 밖으로 빠져 나갔고, 잠시 뒤 은행 뒷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간 그는 대기 중인 차에 탔다.

“어떻게 됐어?”

“....”

운전석의 철수가 물었고 세르게이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철수가 오른 손을 들었고, 그걸 보고 피식 웃으며 세르게이가 그 손에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뒤, 차가 출발했고 얼마 안 가서 철수가 가지고 있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철수는 운전 중이지만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잘 처리 했답니다. 네. 네.”

그렇게 철수는 간단히 통화를 끝낸 후, 옆에 세르게이를 보고 말했다.

“아지트로 바로 와서 보고를 하라네?”

그 말에 세르게이가 짜증 섞인 얼굴로 말했다.

“....귀찮게.”

하지만 그들 차는 곧장 김훈 에이전시의 아지트로 향했고, 그런 그들 뒤로 여태 세르게이를 도왔던 김훈의 에이전트 처리자들도 줄줄이 같이 따라 움직였다.

* * *

창원 출장에 이어서 장인인 서재국 전 대통령의 문상까지 다녀온 백승렬 회장.

그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래서 삼명가 본가로 가는 동안 잠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때 그의 수행비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네. 네에?”

수행비서가 많이 놀란 듯 목청을 높이자, 백승렬 회장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뭔데?”

백승렬 회장의 물음에 수행비서가 바로 대답했다.

“회, 회장님. 오 실장님이....조금 전 피살 되셨답니다.”

“피살?”

수행비서의 보고에 백승렬 회장이 이번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네.”

“누가 그래? 피살이라고?”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수행 비서를 보고, 백승렬 회장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노 실장이야?”

백승렬 회장이 자신에게 전화한 사람이 노성식 경호실장임을 바로 알아맞히자, 토끼 눈에 놀란 게 역력한 얼굴의 수행비서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네, 네.”

“이리 줘.”

백승렬 회장은 수행비서에게서 핸드폰을 받아서, 귀에 갖다 대면서 바로 말했다.

“성식아. 나다. 오 실장이 죽었다고? 어. 근데 말이야. 이게 사실대로 알려져서 좋을 게 뭐가 있지?”

백승렬 회장이 그 말을 하는 데, 순간 수행비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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