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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249화 (24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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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오규동 비서실장은 아무래도 최근 백승렬 회장이, 내게 보이는 지대한 관심에 대해 주목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니까 헷갈리는 거겠지. 지금 그가 잡고 있는 백준경이란 줄이, 사실은 썩은 동아줄 일지 모른다는....’

그래서 만약을 대비해서 나에게 한 다리 걸쳐 두려고, 요즘 나에게 잘 보이려는 걸 테고 말이다.

“오 실장님. 저 헬기 좀 씁시다.”

=네? 뭐, 뭘 써요?

“본사 헬기요. 그거 쓰지도 않고 만날 처박아만 두고 있잖아요?”

긴급사태에 대비해서 장만해 놓은 회사 전용 헬기. 하지만 헬기 한 번 뜰 때 드는 돈이 어마무시하다 보니, 백승렬 회장도 헬기 이용을 잘 하지 않았다.

‘그건 백 회장이 둘러대려고 한 말이고....’

사실 백준열과 달리 백승렬 회장은 그냥 선천적으로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그래서 해외 출장도 거의 가지 못했고.

가더라도 잠을 자는 동안에 이동이 가능했기에, 실제 하루 이상 비행기를 타지 못했는데, 그래서 경유지에서 꼭 하루를 쉬고 나서야,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런 불편함 때문에 백승렬 회장이 해외 나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고, 몇 년 전부터는 아예 해외로 나가지 않았다.

백승렬 회장이 해외에 꼭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대신 보낸 게 바로 백준열이었다.

그러니까 백준열이 유학 갔다가 오고 나서부터, 백 회장은 거의 해외에 나가지 않고 국내에만 머물고 있는 셈이었다. 사실상 대외적 업무를 백준열에게 위임한 거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봤을 때, 백승렬 회장이 나름 백준열을 회장 자리에 앉히려고, 큰 그림을 그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지 그 자신의 건강을 너무 자신 한 것이 미스라면 미스였을 뿐.

=헬기를 쓰려면 회장님의 허락이 있어야....

내 예상대로 오 실장은 백승렬 회장 핑계를 댔다. 하지만 삼명그룹 2인자인 그가 헬기 하나 못 띄운다는 게 말이 되나?

“에이. 무슨 회장님 허락씩이나. 실장님 능력으로 가능하잖아요?”

=크음. 뭐 그렇기는 하지만....

“저 좀 급해서 그래요. 헬기 잘 쓰고 내일까지 반납할 테니까 좀 씁시다.”

내가 오 실장에게 처음 하는 부탁이다. 이걸 거부한다는 건 사실상 나와 척을 져야 한다는 소리.

나는 오 실장이 내 부탁을 수락할 것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뭐 도련님께서 부탁하시니, 이번만 특별히 헬기를 쓰실 수 있게 조치해 두겠습니다.

‘C발. 누가 들으면 지가 삼명그룹 회장인 줄 알겠네?’

오 실장이 같잖았지만 어쩌랴?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걸 말이다.

“고마워요. 이 신세 잊지 않을게요.”

나는 속으로 오 실장을 욕했지만, 입으로는 달리 그에게 진짜 고마운 척 말했다.

그때 전화 벨 소리가 오 실장의 핸드폰에서 들려왔다. 보아하니 그가 가지고 다니는 3개의 핸드폰 중 하나가 울린 거 같았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오 실장은 평소에 핸드폰 3개를 소지하고 다녔다.

그 중 하나는 당연히 업무 폰일 테고, 다른 두 개는 어떤 용도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대충 유추는 가능했다. 그 두 개의 핸드폰이 업무 외의 용도로 쓰일 거라는 거 말이다.

그 용도란 것은 아마도 삼명그룹 차원에서도 최소 대외비급 일을 처리할 때 쓰는 걸 테고 말이다.

=본사 옥상으로 가시면 헬기와 조종사가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그가 꼭 받아야 할 전화인 듯 했다. 그래서 오 실장은 자기 할 말만 후딱 하고 나와의 통화를 끝냈다.

* * *

최현일이 현장에서 처리 능력이 비록 김훈에 뒤질지 몰라도 눈치는 되게 빨랐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처리자들 에이전시에서도, 최고 자리를 지켜 올 수 있었던 것이고.

비록 지금은 그의 가문이 쇠락의 길에 접어들면서, 그 역시 위축 된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처리자들 에이전시의 대표였다.

그런 그의 정보망은 국내에서 단연 최고라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이번에 김훈에게 당하면서 김훈 쪽 처리자들 에이전시에 감시망을 강화시켰다.

그랬더니 기묘한 움직임 하나가 포착 되었다.

“뭐 외국인?”

“네. 틀림없습니다. 외국인이 그곳에 들락거리는 걸 확실히 포착했습니다.”

“김훈의 회사에 외국인이라....혹시 무기 상 같은 바이어(Buyer) 아니야?”

“바이어면 뭐라도 손에 들고 다녀야죠. 그 외국인은 시종 맨손으로 그쪽 아지트를 들락거렸습니다. 뭐하는 놈인지 확인 해 봐야 합니다.”

최현일이 대표지만 통제실의 의견을 마냥 무시할 순 없었다.

“으음....”

잠깐 고심하던 최현일. 그가 결심한 듯 말했다.

“일단 그 외국인은 감시만 해. 주말이잖아. 우리가 기계도 아니고. 너희들도 좀 쉬어야지. 안 그래?”

최현일은 하동훈을 잡는 문제로, 다들 고생한 자신의 직원들에게 주말 동안 쉬게 해 주고 싶었다.

그건 통제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고. 그걸 알기에 통제실에서도 더는 최현일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신 월요일에도 그 외국인이 김훈 쪽에 기웃거린다면, 그때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래. 알았어. 그때는 쥐도 새도 모르게, 그 외국인 잡아다가 취조해 보자고.”

월요일에는 남해에 내려가 있는, 현장조 처리자들이 다들 회사로 복귀했을 때다.

외국인 하나 잡아 오는 건 그들에겐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날 이 결정이, 후일 최현일의 에이전시에게 부메랑이 되어, 결국 자기들 뒤통수를 치는 철퇴가 될 것이란 걸 아무도 몰랐다.

그 결정 이후 최현일은 퇴근을 했고 남은 통제실 직원들도, 자신들이 맡은 각 현장에 연락해서, 주말 사이 어떻게 해야 할지 지시들을 내린 뒤 다들 집으로 향했다.

이때 김훈의 에이전시에 수상한 외국인을 캐 봐야 한다고 주장했던 직원도, 현장에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어? 지원조 보내 준데?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닌 건 너도 잘 알잖아?”

=하아. 하필 이럴 때 다들 남해에 내려가서는....그래서 뭐래?

“주말까지 지켜보자 신다. 대신 월요일에도 그러고 있으면, 잡아서 족치시겠데.”

=젠장. 말이야 누가 못해.

“남해에서 사람들 돌아오면, 내 선에서도 사람 두세 명은 빼줄 수 있어. 그러니 너도 느긋하게 쉬면서 감시만 해.”

=쳇! 알았어. 대신 업무추진비 좀 쓴다.

“영수증만 잘 챙겨 와. 그럼 얼마를 쓰든 상관없으니까.”

=그놈에 영수증. 아주 귀찮아 죽겠어. 영수증 챙기다가 들킬 뻔한 거, 한 두 번이 아니라고.

“어쩔 수 없어. 경리 팀에서 영수증 안 가지고 오면, 다음 달 업무추진비 절반으로 확 깎아버린다니까. 절반 업무추진비로 살 수 있으면 그래도 되고.”

=언제부터 우리 회사가 경리 팀을 무서워하게 된 건지....

“너 커피 전문점 아메리카노 포기하고, 자판기 커피 마셔도 되면 경리 팀 무서워 할 필요도 없겠지.

=아니. 난 그냥 계속 경리 팀 무서워할래.

“크크크크. 그래. 그럼 조심해라.”

=조심은 개뿔. 멀리서 감시만 하는데 뭔....가만, 시간이....너 퇴근 하려고?

“어. 이번 주말은 푹 들 쉬라신다. 물론 현장조는 제외고.”

=빌어먹을. 하필 오늘 현장조에 나와서는....나도 남해에 갔으면 지금쯤 거기서 회 배터지게 먹고 있을 텐데.

“그쪽은 사실 나도 부러워.”

=아무튼 다들 부럽다. 너도 지금 퇴근하면 주말 동안 쉬는 거잖아? 확 통제실이나 들어갈까?

“사무실에 앉아서 12시간 이상 일할 수 있으면 여기 오고.”

=그건 좀 아니다. 난 역시 현장이 맞아. 현장체질. 그냥 여기 있을래. 내 걱정 말고 주말 동안 잘 쉬어라. 마누라랑 데이트도 하고.

“그래. 내 생각해줘서 고맙다. 근데 너도 조심해.”

=걱정 마. 백 미터도 넘게 떨어져서 감시하는데....들킬 일 없어.

그렇게 자기 통제하의 현장조 직원과 통화를 끝낸 후, 그 통제실 직원도 서둘러 퇴근길에 올랐다.

주말 동안 캠핑카 빌려서 놀러 가려면, 캠핑카 대여소가 문을 닫기 전에 서둘러 거기로 가야 했다.

* * *

최현일의 처리자들 에이전시의 전 직원은 200명이 넘었다.

그렇다면 그 전 직원이 다 처리자들이냐? 그건 아니었다.

진짜 처리자들은 그 중 50여명 정도고, 나머지는 처리자들을 보조하는 자들이거나 지원하는 자들이었다.

변성재 역시 처리자들을 보조하는 자들 중 한 명이었다.

처리자들은 대부분 특수부대원들로, 다들 사람을 죽여 본 자들이었다.

그에 비해 보조하는 자들, 즉 보조원들은 사람을 죽여 본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러지 않고 처리자들을 도와 뒤치다꺼리를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들 활용도가 떨어지다 보니, 회사에서는 딴 일을 그들에게 맡겼다.

경호, 의전부터 회사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정적들의 감시가 바로 그 일이었다.

변성재는 그 중 김훈 에이전시의 감시를 맡았다.

그 말고 두 명의 감시자가 더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김훈 에이전시를 감시하는지는 변성재도 몰랐다.

감시조는 통제실에 지시만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즉 통제실에서 알려 주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변성재가 알 필요도, 알 이유도 없었다.

“자아. 그럼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고 다시 일해 볼까?”

감시하고 있어야 할 변성재가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수 있는 건, 그의 감시 대상 즉, 김훈 에이전시의 직원들이, 전부 그들 아지트를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의 역할은 일정 수의 김훈 에이전트 직원들이, 하루에 얼마나 그들 아지트를 들락날락거리는 지 그 수를 세는 것. 나간 직원들이 언제 또 아지트로 돌아올지 알 수 없기에, 오줌도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하는 변성재였다.

그런 그가 커피 전문점에 커피까지 한 잔 마시러 갈 정도로 여유가 생긴 것은, 그가 감시해야 할 직원들이 10분 전에 한꺼번에 우르르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의 감시는 추적조가 맡을 것이고, 그 추적조에서 그 직원들이 아지트로 돌아오면, 온다고 그에게 연락을 해 줄 테니 변성재로서는 그 시간만큼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뭐 그렇다고 그 시간이 길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해서 변성재는 빠른 걸음으로 근처 커피 전문점으로 향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지(Large)로 한잔이요.”

다행히 주문하고 채 5분도 안 돼 커피가 나왔다.

변성재는 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으며 커피 전문점을 나왔다.

그리고 그가 은신하고 있던 장소로 향하며 변성재는 빨대로 커피를 빨고선, 오늘 따라 유난히 애프터 테이스트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프터 테이스트(후미)는 커피를 마시고 난 후, 입안과 코의 연결된 부분을 통해 계속 느껴지는 향의 여운을 말했다.

“바디감도 묵직하지도 가볍지도 않고....”

또 유난히 커피 밸런스가 좋았다. 그래서 더 기분 좋게 웃으며 은신 장소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실로 들어섰을 때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커피를 든 채 변성재가 쓰러졌다.

털썩!

그런데 쓰러지면서도 여전히 웃고 있는 변성재.

철퍽!

하지만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커피는 바닥에 쏟아졌고, 더는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치워!”

그때 누가 지시를 내렸고 아래쪽 계단에 숨어 있던 자들이 나타나서, 커다란 짐 가방에 변성재를 짐짝처럼 욱여넣었다.

그리곤 변성재가 중간에 깨는 일이 없게 수면제가 든 주사를, 그의 목에 찔러 약액을 주입했다.

그 뒤 가방의 지퍼를 채운 뒤, 그 짐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간 자들이 대기 중이 승합차에, 그 짐 가방을 싣고는 어디 론가로 휑하니 사라졌다.

* * *

세르게이는 어젯밤부터 누군가 자신을 눈여겨보고 있단 걸 눈치 차렸다.

그 상대는 은밀해서 만약 세르게이가 아니었다면 절대 들키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그 만큼 상대는 먼 거리에서 숨어 감시 중이었는데, 세르게이가 오늘 통역인 철수가 그에게 배치되자마자, 김훈 처리자들 에이전시의 분석실에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럴 리가? 우리 회사 근처 반경 80미터 주변에 설치 된 CCTV에는 그런 수상한 자가 발견 되지 않았어.”

하지만 분석실에서는 세르게이의 말을 과잉 반응으로 여겼다.

그때 세르게이가 김훈 대표에게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보내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분석실에서 CCTV가 아닌 처리자들 셋을 동원해서, 좀 더 폭 넓게 주위를 살핀 결과 무려 8명이나 되는 자들이, 김훈 에이전시의 아지트를 감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얘기를 분석실을 통해 보고 받은 김훈이 지시를 내렸다.

=딴 쪽은 신경 쓸 것 없어. 세르게이 쪽만 조용히 처리해서, 세르게이의 움직임만 저쪽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어. 딱 하루면 돼.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대표님.”

최현일의 처리자들 에이전시들과 달리 김훈 에이전시에는, 원래 보유중인 처리자들의 절반이 남아 있었다. 그들을 분석실에서 잘 활용한다면, 딱 하루쯤, 저들 이목에서 세르게이를 숨기는 건 가능했다.

물론 거기에 세르게이가 김훈 대표에게 받은 임무까지, 분석실에서 서포터 하려면 좀 정신이 없겠지만.

그 즉시 작전이 수립 되었고 실행되었다. 먼저 세르게이와 그를 서포터 할 처리자들부터 아지트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세르게이를 감시 중으로 보이는 자를 잡을 사냥꾼 처리자들이 움직였고.

=작전 완료.

그때 희소식이 분석실에 전해졌다.

“좋았어. 세르게이 쪽에 꼬리는 잘라 냈으니, 마음대로 날뛰어도 좋다고 전해.”

“네.”

분석실에서 세르게이에게 연락이 가고, 뒤이어 김훈 대표에게도 보고가 됐다.

=세르게이의 존재를 저들이 모르는 한, 이번 의뢰는 반드시 성공한다.

세르게이의 뭘 믿고 그런지 몰라도 김훈 대표는 그렇게 말한 후, 낚시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버렸다. 핸드폰도 잘 안 터지는 곳으로 말이다.

그로 인해 분석실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쪽에서 먼저 세르게이 쪽으로 연락을 할 수는 없었다.

이미 세르게이가 움직였고 그런 그에게 연락을 취하는 건, 상대에게 자칫 세르게이의 존재나 위치를 노출 시킬 수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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