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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안 그래도 나를 보고 반쯤 넋이 나가 있었던 강지영.
그녀의 동공이 확 풀리며 동시에 입을 벌리더니, 주르르 입가로 침을 흘렸다.
그녀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는 오직 나만 안다.
-개잡년 안지은에 이어 두 번째로 여자 사람을 「충견」으로 삼았습니다. 견신이 개지수 10포인트를 선사합니다.
최초가 아니어서 그런지 보상은 시원찮았다. 하지만 10포인트가 어딘가?
‘고맙습니다. 견신님!’
나는 속으로 나를 위해 아낌없는 성원을 해주는 견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견신이 흐뭇해합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은혜를 알아야 한다. 또한 의리가 있어야 하고.
견신은 저번 삶의 부모님을 제외하고,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유일한 존재다.
그러니까 여기서, 내게 있어 견신은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존재라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더욱 공경하고 말도 잘 들어야지. 그런 내 생각을 견신이 읽은 모양이었다.
-견신이....바득....당신이 예뻐 죽겠다면서 선물을 합니다. 그 선물을 지금 받으시겠습니까?[Y/N]
견신이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알아주시는데. 어찌 그분을 따르지 않을 수 있으랴!
‘아멘!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인샬라! 견신님 만쉐이!’
내가 속으로 견신을 찬양하는 말을 더 늘어놓자,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했던 견신 시스템이 한 소리 했다.
-작작 좀 해라.
“크음....”
뭐 어째든 견신의 호의는 감사히 받아드리고, 나는 점차 풀린 동공에 초점이 잡히기 시작하는 강지영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아아....”
그런 그녀가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 온 듯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
그게 감탄산지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지영씨. 입에 침 좀....”
“앗!”
그제야 자신이 아직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그녀가, 환자복 소매로 잽싸게 입가를 닦았다.
그리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혼잣말로 말했다.
“아잉....난 몰라....이런 모습 보일 생각은 없었는데....”
뭐 다른 사람이라면 워낙 작게 말해 못 알아들었을 테지만, 나에게는 그 말이 바로 옆에서 얘기한 듯 잘만 들렸다.
그래도 그녀가 더 무안해지게, 내가 자신의 말을 들었다는 걸 티 낼 필요는 없었다.
“....”
나는 잠시 말없이 그녀가 수줍음과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러자 1-2분쯤 지났을까? 그녀가 가리고 있던 두 손을 얼굴에서 떼어내며 내게 말했다.
“뭐라도 좀 드실래요?”
나름 국면전환을 시도한 거랄까?
그런 강지영의 임기응변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그걸 잘 받아 주는 것도, 유능한 연예기획사 대표가 지닐 덕목이 아니겠는가?
“네. 안 그래도 목이 말랐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뒤, 나는 알아서 병실 냉장고를 열었다.
그래도 1인실답게 냉장고 안에는 생수와 음료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중 생수를 꺼내서 마셨고 그걸 본 강지영의, 웃고는 있지만 굳어 있는 안면 근육이 스르르 풀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 * *
강지영과 내가 딱히 나눌 말이 뭐가 있겠나?
그렇다고 현재 진행 중인 사건 수사에 대해서, 그녀와 얘기 나눌 것도 아니고.
해서 간단한 안부 인사 뒤, 나는 내가 여기 찾아 온 진짜 이유를 그녀에게 밝혔다.
“....라서 강지영씨를 저희 JYB엔터로 모시고 싶습니다.”
“진, 진짜 저를 영입하시겠다고요?”
믿기지 않는 듯 날 빤히 쳐다보는 강지영.
그런 그녀 눈에는 의구심도 한 가닥 깃들어져 있었다. 왜 자기 같은 인기도 없는 조연 배우를 대한민국 빅 4에 해당하는, 대형 연예기획사인 JYB엔터에서 영입하려 하는지 말이다.
혹시 동정심이라면....
“저는 지영씨가 좀 더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꼭 빅 스타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소금처럼, 강지영씨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꼭 필요한 존재가 되리라 보고, 또 그렇게 되게끔 서포터 해 드리겠습니다.”
내 충견이 된 강지영이라, 굳이 이런 식의 거창한 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병실로 훅 들어 온 간호사 하나 때문에, 이런 수고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아아....”
“어머. 멋있어.”
그러니까 나의 그 말에 감동한 사람은, 강지영 하나가 아니란 소리다.
강지영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며 병실에 들어 온 간호사는, 괜히 강지영의 베드 시트를 정돈하고, 링거의 약액을 늘였다가 줄였다 하면서 안 나가고 버티고 있다가, 내 말을 듣고 갑자기 나를 보고 하트를 뿅뿅 날렸다.
‘이봐요. 당신 영입하러 여기 온 거 아니거든요.’
어째 강지영보다 여기 간호사가 내게 더 뿅 간 거 같았다.
그런데 말 좀 그럴싸하게 했다고 난생 처음 보는 여자가, 내게 이렇게나 뿅 갈 수 있나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백준열이 스마트 하게 잘 생긴 건 맞았다. 그래도 이건 좀 과하다 싶었는데....
‘이런 썩을....’
나는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입에서 쌍욕이 나올 뻔했다.
그 대상은 바로 견신 시스템이고.
그러고 보니 내가 개지수를 10포인트 획득했는데, 견신 시스템이 상태창을 띄우지 않은 것부터가 어째 이상하긴 했었다.
나는 그것을 내가 견신이 준 선물을 확인하고 나서, 내 눈앞에 띄울 건가 싶었다.
근데 내가 견신에게 아부하는 게, 꼴불견이라 여긴 견신 시스템이 장난질을 친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내가 견신의 선물을 받은 걸로 처리해 버린 것.
그러니까 지금 나는 견신이 선사한 선물, 즉 「개멋져」스킬을 시험 테스트 중이었던 것이다.
견신 시스템에 따르면 스킬의 경우 획득하게 되면, 유저가 별 말 없을 시 자동으로 시험 테스트가 진행 된다나?
당연히 견신 시스템은 그걸 알면서 내게 말해 주지 않은 거고.
그걸 다 파악한 내가 화를 내자, 견신 시스템은 그럼 보란 듯 바뀐 상태창을 내 눈앞에 띄웠다.
[이름: 백준열(Lv6)]
[나이: 27]
[보유 아이템: 「개눈깔」(2Up), 「개좆」(Up)], 「개목걸이」(1Up), 「개코」(Up), 「개방울」(Up)
[보유 스킬: 「말하는 개」(일,Up), 「충견」(일,2Up), 「개 끗발」(역,Up), 「개호구」(역,1Up), 「만능 오프너」(일,Up-방문, 차문 한정), 「개멋져」(일,Up)
[인벤토리: 개톤백(In)
[특성: 개(3차UP완료)]
*냄새를 잘 맡습니다.*
*소리가 잘 들립니다.*
*멀리 봅니다.*
*행동이 빠릅니다.*
*잘 짖습니다.*
*교미 합니다.*
*친화력이 뛰어납니다.*
[개지수: 50]
짜증이 나서 눈에 상태창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확인은 해야 하니 보유 스킬 항목에서, 「개멋져」라는 스킬이 생긴 것과 개지수가 +10, 더해져서 50포인트가 되어 있는 걸 확인한 나는 바로 눈앞에 상태창을 지웠다.
그러자 견신 시스템에서 「개멋져」 스킬에 대한 정보를 내 머릿속에 주입시켜 주었다.
이런 식으로 내 화를 누그러트리려는 녀석의 꼼수였는데, 그게 먹혔다.
왜냐하면 「개멋져」 스킬이 진짜 개 멋진 스킬이었기 때문에.
「개멋져」 스킬은 순수하게 상대로 하여금, 내가 멋지게 보이게 만드는 스킬이었다.
이것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꼭 이성이 아니어도 효과가 있다는 점. 그러니까 여자도 나를 좋아하게 만들지만, 남자도 나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거다.
‘이 기회에 보이즈 러브(Boy's Love), 즉 BL의 주인공이라도 돼 봐?’
하지만 BL의 주인공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의 지표냐?
‘그건 아니지.’
그것 말고도 내가 하고 싶은 건 아직 너무 많았다. 거기다 이성간의 사랑도 제대로 못해 봤는데 무슨....
그리고 그걸 다 해보고 죽을 수 있을 거란 장담도 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은 어째든 유한하니까.
어째든 내가 잠깐 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간호사가 나갔다.
알고 보니 강지영이 내 보냈단다. 하긴 자기보다 나를 더 좋아해 보이는 간호사가, 강지영 눈에도 꼴불견이었겠지.
“좋아요. JYB엔터와 계약 할게요.”
강지영이 어차피 예상했던 대답을 내놨다. 하지만 오늘은 구두계약까지만 하고 정식 계약은 강지영이 퇴원하고 나서 하기로 했다. 그렇게 목적을 달성한 나는 강지영에게 몸조리 잘하라고 하고 그녀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막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려는데....
“저기....이거....”
좀 전 강지영의 병실에서 쫓겨났었던 그 간호사가,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쪽지를 내게 쥐어주고, 후다닥 간호사실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뭐지?”
쪽지를 펴 보니 커다란 하트와 그 밑에 ‘김민지’란 이름과 함께 그녀의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허얼! 나 지금 여자한테 쪽지 받은 거냐?”
백준열의 삶과 나의 이전 삶을 통 틀어서, 여자한테 이런 식으로 구애 쪽지를 받아 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만큼 「개멋져」 스킬은 여자 꼬시는데 있어서 개사기 스킬이었다.
단, 부작용도 있다는 점.
“크음....”
내 옆을 지나가는 젊잖게 생기신 중년 아저씨. 그가 얼굴을 붉히면서 힐긋힐긋 날 쳐다보며 내 옆을 지나갔다.
‘이거 아무래도....’
나는 서둘러 지금도 발휘되고 있는 「개멋져」 스킬을 멈추게 만들었다.
참고로 「개멋져」 스킬은 내 일족들, 즉 내 충견들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강지영이 그 정도였지 「개멋져」 스킬의 영향까지 받았으면....자칫 나를 덮쳤을 지도....
* * *
엘리베이터 앞에서 경호팀원들과 합류한 나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병동에 오래 있을 게 아니었기에 차들은 병동 입구 앞에 정차 시켜 두게 했었다.
그래서 나오자마자 바로 차를 탈 수 있었는데....
다다다다다다....
막 차에 타려던 내 귀에 저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그쪽을 쳐다봤더니 헬리콥터가 한 대 보였다.
“응?”
그걸 보고 있자니 백준열의 기억에, 내가 헬리콥터를 탄 생각이 났다.
놀랍게도 백준열이 처음 헬기를 탄 것은 그의 나이 10살 때였다.
당시 골프를 좋아했던 삼명그룹 전 회장이자, 백준열의 할아버지였던 백선엽, 그가 백준열을 데리고 골프 치러 갔다가, 정부의 한 고위 공무원과 같이 육군 헬기장으로 가서, 헬기를 타고 땅을 보러 다닌 것.
그때 그 고위 공무원이 백선엽 회장과 나눈 대화 중 지금도 기억나는 건, 바로 잠실운동장 옆을 흐르는 탄천을 언급하며 ‘탄천을 경계로 그 서부 지역 일대가 가장 유망한 것 같다’고 한 거다.
탄천 서쪽인 지금의 서울 강남구 일대를 그 고위 공무원이 딱 집어 낸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국가권력이, 대한민국 부동산 투기의 주범 중 하나였다.
권력자들은 재벌 대기업도 못지않게 투기를 했다.
복부인들도 상당 부분이 차지했지만, 누구보다 국가권력이 은밀하게 앞장을 섰고, 이 과정에서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나, 공기업 임직원들도 떡고물을 챙겼다는 건,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 아니던가.
“대표님?”
내가 타야 할 차에는 안 타고 갑자기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자, 송명철 부 팀장이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어?”
“타시죠?”
“아아. 그래요.”
그렇게 내가 차에 타고나자, 그 차 뒤를 돌아 움직여서 막, 내 옆 자리에 타려던 송명철.
이번에는 그가 내가 쳐다보던 하늘을 쳐다봤다.
아마도 이제야 그의 눈에도 헬기가 보인 모양이었다.
그게 헬기인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송명철이 그제야 차에 탑승했다.
그리곤 날 쳐다보며 뭐라고 하려다 말았다.
나는 송명철이 내게 뭘 물으려 했는지 알았지만 그냥 모른 척 했다.
하긴 그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던 헬기를, 내가 먼저 봤다는 게 그로서는 믿기지 않았겠지.
“가자!”
송명철의 지시가 떨어지자 차가 출발했다.
목적지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로 경남 남해.
그런데 헬기를 보고 나서 내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우리 회사에도 헬기가 한 대 있었으면 좋겠군.”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삼명그룹 본사에 헬기가 있었다.
그 헬기를 쓰는 거야 내게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어째 전화 한통이면 가능할 거 같거든. 나는 삼명그룹의 2인자인 오규동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도련님.
오규동 비서실장이 재깍 내 전화를 받았다. 내 예상대로 말이다.
‘아무래도 맞는 거 같아.’
그런 그의 반응에 나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오규동 비서실장이 벌써 백승렬 회장의 의중을 간파한 것을 말이다.
* * *
어릴 적, 조부와 같이 헬기를 타고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쭉 둘러 본, 그 경험 탓일까?
백준열이 부동산을 보는 눈은 정확했다.
대한민국은 알다시피, 정권 핵심부가 앞장서서 부동산 투기를 벌이는 나라다.
부동산 잡겠다고 정권 내내 난리를 친, 그 정권 역시 마찬가지였고.
하긴 투기를 근절해야 할 쪽이 그런 ‘모범적인 사례’를 보였으니, 투기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위력도 무뎌질 수밖에.
당시 ‘LH 투기’를 비롯한 대한민국 부동산 투기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정권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뭐 지금은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이때는 아직까지 부동산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기 전이었다.
물론 이때도 서울의 집값은 고공행진 중에 있었지만.
돈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이해한 사람들이라면, 이때부터 부동산을 사재기 시작했고, 당연히 그들은 돈방석 위에 또 돈방석을 올리게 된다. 그냥 부자가 더 부자가 된다는 얘기다.
어째든 당시 헬기에 탔었던 어린 백준열은 상당히 겁을 먹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계신 앞에서 겁먹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었고, 그건 어른이 되어서 트라우마가 되었다.
즉 백준열은 후천적 영향으로 인해, 고소공포증이 생긴 것이다.
그 공포증은 단지 높은 데서 아래만 내려다보지 않으면 됐다.
그래서 백준열은 비행기에 탑승하면 비행기 창문 가리개를 꼭 내렸다.
그러니까 백준열은 헬기를 못 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헬기를 탈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탈 헬기를 내 놓으라고 오규동 비서실장에게 말하는 중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