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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247화 (24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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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한때는 잘 나가던 재벌가의 3세. 하지만 재벌도 무너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서 아예 공중분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처럼, 진짜 딱 3년 동안은 태석규도 먹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았다.

한데 3년이 지나자 얘기가 달라졌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태석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취직자리를 구걸했다.

하지만 말이 쉬워 일자리지. 태석규를 막상 쓰려는 곳은 어디도 없었다.

그건 그의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 이래서였을까? 결국 그의 작은 어머니와 사촌 여동생이 사기죄로 올해 감방에 들어갔다.

둘 다 부자인 삶을 살았다보니, 부자인척 행세해서 보통 사람들 사기 치는 게 그 둘에게 쉬웠던 모양이었다.

사실 태석규도 그렇게 해볼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만큼 세상에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확실하게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벌면 결국 사기꾼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허름한 옷을 입고 새벽같이 인력 시장에 나간 태석규. 오늘은 운 좋게 딸기 하우스로 팔려가서 그제처럼 벽돌 나르다 허리 아작 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하루 종일 숙이고 일해야 하다 보니, 역시 허리와 다리가 끓어지듯 아팠다. 그래도 인력사무실에서 소개비 우수리 떼고 13만원을 손에 쥔 태석규는 기분이 좋았다.

“이 돈이면 쌀하고 라면을 사고....돼지고기 한 근도 살 수 있겠다.”

불과 3년 전만해도 재벌3세 태석규의 입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사실 돈이 없다는 건 너무 불편했다.

작년에 사촌 형과 누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도 이해가 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살아야지. 그깟 돈 좀 없다고 죽어 버리는 건, 저 하늘 위에 계시는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재벌 3세가 아니더라도 뭔가 쓸데가 있으니, 조물주가 그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게 태석규의 생각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인력시장의 차에 실려 이동 중에 태석규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태석규?

“그런데요?”

그가 망한 이후에도 이런 식의 전화는 꽤 왔다. 보통은 세 가지 부륜데, 하나는 그가 망한 거 확인한답시고 걸려 온 전화고, 다른 하나는 그가 망한 걸 고소하다고 비웃기 위한 전화, 그리고 마지막은 그가 망한 걸 아직 모르고 건 전화다. 태석규가 봤을 때 이 전화는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전화일 공산이 커보였다.

=나다. 정재욱.

“정재욱?”

=서울경찰청 수사과장 정재욱!

“아아. 재욱이. 니가 웬일이냐?”

그런데 다 아니었다. 태석규가 기억하는 정재욱은, 누구보다 그의 사정을 잘 아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워낙 바쁜 놈이다 보니, 그를 붙잡고 장난 칠 녀석도 아니었고.

=뭐 좀 물어보려고 전화했어.

“뭔데?”

=얘기가 좀 길어질 거 같아서 그런데. 우리 좀 만나자. 너 지금 어디니?

“지금 차 안. 신당역 막 지났다. 신설동역에 그린 하우스 인력시장이라고 있거든. 거기가 목적지긴 해.”

=신설동역 오거리에서 가깝냐?

“어어. 맞아. 거기서 가까워.”

=신설동역 오거리에 버커킹 있지?

“어어. 거기 알아.”

=거기서 보자. 나도 보문역 막 지났으니까, 거기까지 가는데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야.

“알았어.”

다른 놈들은 몰라도 정재욱은 무조건 만나야 했다. 왜냐? 녀석은 경찰이니까. 그것도 상당히 지위가 높은.

일반 사람들에게 그런 아는 사람 하나 있고 없고가 차이가 크다는 걸, 태석규는 자기가 없이 살다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건 아파 병원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 그 병원에 아는 사람 있고 없고 차이는, 병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거다.

태석규는 정재욱이 왜 자신을 찾는지 궁금해 하며, 제발 자신이 놈에게 필요한 놈이기를 바랐다. 그래야 그와 관계를 어떡하든 이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 * *

신설동역 오거리에 버커킹은 주말에 사람이 꽤 많았다. 하지만 한쪽 구석에 용케도 자리를 잡은 태석규.

“석규야!”

“어어. 재욱아.”

사실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한 명은 재벌 3세, 한 명은 아버지가 서울경찰청에서 소위 말해 잘 나가는 고위 간부다 보니, 끼리끼리 논다고 둘도 같이 어울려 다녔었다. 그러면서 친해졌고.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둘의 사이도 갈렸다. 태석규가 재벌 3세의 화려한 삶을 살아간 반면, 아버지 뒤를 이어 경찰대에 진학한 정재욱은, 경찰대의 규율에 얽매여 4년을 보내야 했다.

그러는 사이 둘의 노는 물이 다르다 보니, 둘 사이도 자연히 멀어졌고.

“오랜만이다.”

“그러네. 너 경찰대 간다는 얘기 듣고, 이렇게 너 보는 게 3번짼가?”

“3년 전에 강남서에서 널 본 게 마지막이었지.”

당시 마약 사건에 태석규가 연루 되었었는데, 그때 태석규를 조용히 빼내 준 게 바로 눈앞의 정재욱이었다.

“그때는 고마웠다.”

“됐어. 새끼야.”

뭐 그때 정재욱도 그냥 태석규를 내 보내 준 건 아니었다. 우주그룹에서 10억을 찔러 주기에 그가 힘 좀 써 준 거지. 물론 그 사실을 굳이 지금 태석규 앞에서 할 필요는 없었다.

“뭐 좀 먹자.”

정재욱은 태석규의 처지를 아는지라 알아서 카운터로 가서, 거기서 제일 비싼 버거로 주문을 하고 계산을 했다. 자기는 집에 가서 저녁을 먹어야 했기에 커피 한잔만 시키고. 태석규는 오랜만에 먹는 비싼 햄버거를 정재욱 눈치 보지 않고 허겁지겁 먹었다.

“우걱우걱....쩝쩝쩝....”

“천천히 먹어. 음료도 마셔 가며.”

안쓰러운 얼굴로 태석규를 챙기며, 자신의 커피를 마시던 정재욱.

그가 태석규가 버거 하나를 금방해치우고 손가락을 빨고 있을 때 슬쩍 물었다.

“너 삼명그룹 쪽으로 좀 아는 거 있냐?”

“삼명? 이거 만든 삼명을 말하는 거라면 좀 알지.”

태석규가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정재욱 눈앞에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의 핸드폰이 바로 삼명전자에서 만든 구형폰이었으니까.

“그럼 혹시 거기 3세들과도 친해?”

“삼명家 3세들? 직계들 말하는 거지?”

“어. 특히 막내아들. 백준열.”

“준열이? 잘 알지.”

태석규의 그 말에 정재욱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태석규가 만약 백준열과 어떤 식으로 인연이 있다면, 정재욱이 그 틈을 비집어 들어갈 기회가 생기는 셈이니까.

“어떻게 알아?”

“준열이 그 녀석 유학파잖아? 나도 한 2년 뉴욕에 있었고. 그때 몇 번 만나서 즐겼지.”

태석규의 즐겼다는 말에 좀 전까지 웃고 있던 정재욱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그걸 보고 태석규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아니. 약을 했다는 게 아니라 ,여자 파티를 말하는 거야. 준열이 그 새끼. 여자를 보통 밝혀야지 말이야. 근데 또 신기한 게 술과 여자는 즐겨도 약은 절대로 안하더라고.”

태석규의 그 말에 정재욱은 자칫 속에 말을 내 뱉어 버릴 뻔했다.

‘그러니까 약 하던 넌 이 모양이고, 백준열은 지금도 승승장구 잘 나가는 사업가인 거지.’

백준열에 대해 뭐라도 하나 더 건저야 하는 정재욱의 입장에서, 그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간 태석규가 삐져서 여길 나가 버릴지 몰랐다.

녀석이 한창 잘나가던 재벌 3세 때 태석규의 별명이 ‘삐돌이’였다는 걸 정재욱은 여태 기억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백준열. 어떤 애야?”

“뉴욕에 있을 때 백준열은 공부 아니면, 운동만 주구장창 했지. 그러다 시간 남으면 여자 만나고. 그게 다야. 나도 궁금해서 녀석에게 슬쩍 말을 걸어 봤는데, 그냥 생 까 버리더라고. 그래서 그 뒤로는 녀석에게 말도 못 붙였지.”

“한국에 와서는?”

“한국에서? 재벌가 자제들 모임인 ‘테리우스’라고 너도 알지?”

“어. 알아.”

“거기 누구랑 같이 온 적이 있었는데, 한 5분 있다가 그냥 가버리더라고. 그 뒤로는 나도 못 봤어.”

“그, 그래?”

태석규의 말에 정재욱의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잘 안다고 하더니 이게 과연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정재욱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때 태석규가 말했다.

“그래도 나는 녀석과 안면이라도 있지. 백준열하고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재벌 3세들이 대부분이야. 그나마 내가 전화하면 백준열이가 내 전화는 받아 줄 걸. 만나도 아는 척은 해 줄 거고. 왜? 백준열이가 필요한 일이라도 있어?”

“어어. 뭐....”

그래도 재벌 3세였다고 태석규가 제법 눈치가 있었다.

“뭐 내가 이 모양이라도 아직 인맥은 살아 있거든. 네가 원한다면 도움을 줄 수도 있어.”

“도움?”

“백준열이하고 너하고 만나게 해주면 되는 거 아냐?”

“그, 그렇지.”

“근데 보시다시피 내 꼴이 이 모양이라서....”

“필요한 게 뭐야?”

“뭐겠어? 돈이지. 거지꼴하고 백준열이 만나러 갈 순 없잖아. 그리고 차도 필요하고.”

“차야 뭐 내 차 쓰면 되고. 돈은....어디보자. 이거면 돼?”

정재욱이 지갑에서 수표와 현금을 싹 다 꺼내서 태석규에게 내밀었다. 요즘 돈독이 오른 태석규. 그는 한 눈에 그 돈이 천만 원을 넘어간다는 걸 알아봤다.

“뭐 이 정도면 활동비는 되겠네.”

태석규는 정재욱이 내 민 그 수표와 현금을 바로 챙겼다. 그러면서 정재욱의 지갑에 꽂혀 있는 카드들에게도 시선이 갔다. 하지만 태석규는 과유불급을 이제 알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이럴 때 더 욕심을 내다보면 자칫 정재욱이라는 인맥을 놓칠 수 있었다.

그의 재벌 친척들이 사기죄로 감방에 들어간 것은,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정재욱 같은 고위 경찰은 자신이 속아도 절대 그걸 세상에 밝힐 수 없었다.

그랬다간 그의 명망에 스크래치가 갈 것이고, 그로인해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없게 될 테니까.

따라서 태석규에게 정재욱은 딱 이용해 먹기 좋은 호구였다. 그는 이런 호구를 자신에게 보내 준 백준열에게 속으로 거듭 고마워했다.

‘그래. 백준열.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너도 나 좀 도와주라.’

태석규는 정재욱의 도움을 받아서 진짜 백준열을 만날 생각이었다.

혹시 아는가? 백준열도 정재욱처럼 그의 호구로 잡혀 줄지 말이다.

“그래서 언제 백준열이 만나게 해 줄 건데?”

정재욱이 태석규가 자기 돈을 챙기는 걸 보고 물었다.

“급해?”

“어. 급해.”

“그래도 주말에 만나자고 하면 만나 주지도 않을 건데. 월요일 어때? 내가 아예 백준열 회사에 찾아갈게. 그럼 지가 안 만나주고 배겨? 점심 같이 하자.”

“점심을?”

태석규는 막 질러댔다. 어차피 그가 백준열 회사에 간다고 만나 줄 백준열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그렇다고 정재욱에게 사실대로 얘기하고 태석규는 며칠 잠수 타 버릴 생각이었다.

‘천만 원이면 어디 짱 박혀서 다섯 달은 버틸 수 있어.’

다섯 달이면 바쁜 몸인 정재욱이 자기 따윈 까맣게 잊을 시간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버거운 태석규였다. 다섯 달을 오늘처럼 개고생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거 자체만으로도 태석규는 행복했다.

* * *

경호원들 우르르 달고 병문안 가는 건 좀 그랬다. 해서 나는 강지영이 있는 병실에서 경호원들을 엘리베이터 앞에 두고, 송명철 부 팀장만 대동하고 병실로 향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노크 소리에 안에 있던 강지영이 바로 반응을 했다. 지금 강지영은 서진병원 1인실을 이용하고 있었다. 원래는 문대식에게 특실을 쓰게 하라고 했는데 강지영이 거부했단다. 자기 주제에 특실은 너무 오버라나?

그러고 보면 강지영은 자기 주제를 너무 잘 알아서 문제였다.

그러니까 그녀 눈이 너무 낮았다. 그렇다보니 자신을 너무 낮춰 봤고, 그게 오히려 그녀에게 독이 됐달 까?

충분히 주역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주제를 안다며 그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 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걸 두고도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뭐 어째든 나는 지금 여기 강지영을 픽업하기 위해서 왔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JYB엔터에서의 강지영은 조연 배우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주연 배우로 키워 줄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그녀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 올려 줄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당장 그녀의 마음가짐부터가 바뀌어야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뀌겠나? 나는 그녀 병실로 향하면서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쭉 고심했다. 그런데 그녀를 막상 딱 맞닥트렸더니....

-디링! 견신이 말하길, 곧 죽을 운명의 여자가 당신 때문에 살 길이 열렸답니다. 보통 이럴 경우 그 여자의 운명의 실타래가 당신과 엉키게 되니, 당신의 역할이 그 만큼 중요해졌는데....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강지영을 당신의 일족으로 받아드려야 한다는 얘깁니다. 어떻게 강지영을 당신의 충견으로 삼으시겠습니까?[Y/N]

그러면서 견신 시스템이 이에 대한 정보를 내 머릿속에 주입해 주었는데, 여기서 강지영을 내 충견으로 삼는 다는 것은, 알고 보니 내가 죽어야 할 강지영을 살리게 된 것에 대한 페널티를, 내 스스로가 짊어져야 한다는 소리였다.

더불어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내가 죽어야 할 사람을 살리게 되면 그 책임도 내가 다 져야 한다는 걸, 견신이 일깨워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강지영은 내 충견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거네.’

그게 운명이었다. 그렇다면 어쩌겠나? 받아드려야지.

‘예스! 강지영을 내 충견으로 삼도록 할게.’

강지영이 내 충견이 된다면, 더 이상 그녀에 대해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녀가 내 충견인 이상 그녀는, 내 말을 무조건 잘 들을 수밖에 없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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