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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젊은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당해야만 했던 비운의 여배우 강지영.
그녀로부터 내게 전화가 걸려 온 건, 서울CC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골프를 치러 그곳 옥내 시설을 나설 때였다.
자신을 살려줘서 고맙다는 강지영의 말에, 나는 뿌듯한 마음과 함께 그녀를 내가 거둬야겠다는 생각을 같이했다.
여기서 거둔다는 건 내 여자로서 거두겠다는 게 아니라 여배우로서, 그녀를 내 회사 JYB엔터로 영입하겠다는 얘기다.
아직 뜨지 못한 강지영으로서는, 빅4에 해당하는 대형 연예기획사로의 스카우트 제의를, 흔쾌히 받아드릴 것이라고 나는 봤다.
그리고 그녀와 통화 중 알게 되었다. 그녀가 외조부이신 서재국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이 마련 된, 이곳 서진병원에 강지영이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좀 더 일찍 왔다면 강지영을 먼저 보고 장례식장에 들어갔을 테지만, 약속 시간이 빠듯해서 그대로 장례식장에 들어갔고, 거기서 백준호와 백준경를 먼저 만났다.
당연히 그들과 나 사이에 좋은 말이 오고 갔을 리 없었다.
백준호의 경우는 내게 손찌검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승렬 회장은, 백준호가 아닌 내편을 들어주었다.
그것도 거의 일방적으로. 백준호의 편을 들어 주려던, 장남 백준경까지 입 닥치게 만들면서 말이다.
“준호는 술 좀 깨면 문상하라고 하고, 우리끼리 먼저 들어가자.”
그렇게 백승렬 회장은 원래는 3명의 아들과 같이 왔지만, 서재국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는 두 아들과 같이 섰다.
근데 영정에 절하고 있을 때 싸늘한 눈길 하나가, 계속 거슬렸는데 알고 보니 서지현 사모님이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게 상주들과 맞절을 한 후 백승렬 회장이 한 말이었다.
그 말 후 백승렬 회장은 정말 사위가 맞나 싶게 매정히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그런 백승렬 회장의 뒤를 아들들이 바로 뒤따랐고.
그 아들들 중 하나가 바로 나다.
나로서는 서지현 사모님을 비롯해서 외가 쪽 사람들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건 장남인 백준경도 마찬가지였던 듯. 그도 장례식장 안에서 좌고우면 하지 않고, 그대로 그곳을 빠져 나왔다.
“다들 수고했다. 들어가서 쉬어라.”
그래도 아들이라고 백승렬 회장이 백준경과 나에게 그 말을 하고는, 대기 중인 차에 탔고 그대로 서진병원을 떠났다.
그걸 백준경과 내가 허탈하게 지켜볼 때, 백준경이 돌연 나를 돌아보고 물었다.
“넌 어쩔 거냐?”
“뭘 어째요?”
“이 새끼가 뭔 말만하면 맞서려드네. 바로 갈 거냐고?”
“아뇨. 저 여기 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좀 만나고 갈 겁니다.”
“그래? 그럼 나 먼저 간다.”
그 말 후 백준경이 근처 비서에게 턱짓을 보내자, 이내 그 앞에도 차가 왔고 백준경도 그 차를 타고 훌쩍 떠났다.
나도 일단 차를 불러서 그 차를 탔다. 하지만 서진병원을 바로 빠져 나가지 않고 병동입구에 차를 대게 했다.
그 뒤, 차에서 내린 나는 경호원들에 둘러 싸여 병동 안으로 들어갔다.
강지영과 약속한 대로 그녀를 문병하기 위해서 말이다.
* * *
잡아야 할 홍대복은 못 잡고 자신을 잡은 형사를 보고 혀를 차던 김민식.
“놔 줘.”
그는 안면 있는 강 형사가 풀어줘서 홍대복과 만난 건물을 빠져 나와서, 수하들이 기다리고 있는 호프집, 앤크라운으로 향했다.
“허어....”
그런데 거기서 기가 찰 장면을 목격했다. 자신의 수하들이 딱 봐도 조폭스러워 보이는 자들과 어울려서 술을 퍼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차라리 자기 수하들이 저들과 같이 싸우고 있었다면 이해가 됐다. 하지만 같이 어울려서 술을 먹고 있는 건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었다.
“형님!”
그때 수하 중 하나가 김민식을 알아보고 외쳤다. 그러자 술집 안 모든 조폭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민식에 집중 됐다. 그런 가운데 딱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당신이 저 애들 이건가?”
그가 엄지를 세워 보이며 물었다. 김민식은 그렇다며 고개만 까딱거렸다.
수하들과 달리 김민식은 10년 넘게 조폭 생활을 해 왔다. 그래서 눈앞의 조폭이 보통이 아니란 건 이미 간파했다.
“우리 형님이 저기 계신데 잠깐 가지.”
근데 의외로 눈앞의 남자가 두목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김민식은 여기 있는 조폭들의 규모가 생각보다 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식으로서는 어차피 여기 있는 자기 수하들 때문이라도 갈 수밖에 없었다.
“형님. 데려 왔습니다.”
“수고했어. 가서 너도 마셔.”
“네.”
“앉아요.”
김민식이 간 곳에 딱 봐도 조폭두목 포스가 물씬 풍기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단지 그가 앉은 자리에는, 그 이외 다른 조폭들은 보이지 않았다.
두목답게 따로 독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가 권하는 자리에 김민식이 앉자, 그가 양주 반잔에 호프 반을 섞어서, 즉석 폭탄주 한 잔을 말아 김민식에게 건네며 말했다.
“마셔요.”
김민식은 그 잔을 받아 단숨에 비웠다. 그걸 보고 그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시원시원하네. 성격도 그래요?”
“네. 뭐....”
“내가 왜 불렀을 거 같아요?”
남자는 최대한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그게 더 부자연스럽고 우스웠다.
하지만 바짝 긴장하고 있던 김민식은, 남자의 그 어색한 말에 최대한 집중을 하고 있었던 터라, 다른 생각할 여력 따윈 전혀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김민식은 상대의 의도를 진짜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럴 것이 일면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살면서 처음 보는 남자에 그 수하들이었다.
10년을 넘게 서울을 돌아다니면서, 별에 별 조직의 조폭들을 다 만났지만, 지금 여기서 김민식의 눈에 아는 얼굴은 진짜 한 명도 없었다.
“그래요? 으음....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강원도에서 왔어요.”
“네?”
강원도 조폭이 서울에 왜 온단 말인가? 뒈지고 싶어서?
서울은 지방 조폭들이 오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해서 지방에서 온 조폭들은 철저히 배제 당하고 억압받아, 결국 다시 지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서울 조폭에 발 좀 담근 거 같은데....지금 무슨 생각하는 지 다 알아요. 그런데 걱정 할 거 없어요. 내 뒤에 대단하신 분이 계시거든.”
남자의 말에 김민식은 꼴깍 마른 침을 삼켰다. 지방 조직이 서울에 와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자금줄을 탄탄한 뒷배를 뒀을 때였다.
서울에서 살아남으려면 필연적으로 필요한 게 돈인데, 그 돈에 조폭조직이 구애 받지 않는다면, 서울 조폭이든 지방 조폭이든 같은 조폭인데, 살아남지 못할 게 또 뭔가?
서울 조폭들의 견제와 갈굼도 돈으로 싹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강원도에서 오신 여기 있는 조폭들은, 그런 대단한 물주를 뒷배로 삼고 상경한 오리지널 지방 조폭들이었다.
“어떻게 내 밑에 들어 올 생각 없어요?”
“....”
잠시 생각에 잠긴 김민식. 그런 그가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자신들의 수하들을 쭉 훑어보았다. 그때 그 남자가 말했다.
“여태 애들한테 월백만 원씩 줬다면서? 그걸로 어떻게 사나? 아무튼 서울 것들이 더해요. 애들은 월 이백, 그 짝은 월 사백 어때?”
자연스럽게 말을 놓는 남자. 하지만 김민식은 그 반말이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월 사백이요?”
왜냐하면 한 달에 사백만원이나 준다고 하지 않은가?
한 달에 삼백만 줘도 김민식은 눈앞의 남자를 형님으로 모실 수 있었다.
김민식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남자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어어. 그려. 앉아.”
“네.”
남자는 김민식이 다시 앉자, 그에게 폭탄주를 한잔 더 말아서 권하며 말했다.
“나는 박칠석이여. 그 짝은?”
“네. 저는 김민식이라고 합니다. 형님.”
“어어. 민식이 동상. 우리 잘 해 보드라고.”
“네. 형님.”
김민식은 박칠석이 말아 준 폭탄주를 이번에도 단숨에 원샷 했다. 그리곤 그 잔을 소매로 닦은 뒤, 박칠석에게 폭탄주를 한잔 말아서 올렸다.
“형님. 한잔 받으십시오.”
“어어. 그려.”
흔쾌히 김민식이 말아 준 폭탄주를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난 박칠석이 호프집 안의 조폭들에게 외쳤다.
“다들 새로운 식구들하고 친하고 지내라. 알겄냐?”
“네. 형님!”
쩌렁쩌렁한 조폭들의 외침이 호프집 안을 가득 울렸다. 그런데 어째 호프집 사장의 얼굴은 죽상이었다.
그럴 것이 조폭들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다들 나가 버려서. 새로 들어오려던 손님들도 조폭들이 가득한 가게 안을 보고 다들 뒷걸음치기 일쑤였고.
“하아....망했다.”
하지만 박칠석의 다음 외침에, 굳었던 호프집 사장의 얼굴로 바로 펴졌다.
“오늘 여기 매상은 우리가 확실하게 올려주고 나간다. 알겠나?”
“네. 형님!”
“여기 테이블 마다 양주 싹 돌리고, 안주도 새로 싹 내어 오쇼.”
“아이고. 알겠습니다. 애들아. 뭐하니? 어서 양주 내어드리고, 주방에 안주 계속 만들라고 해.”
신이 난 호프집 사장의 목소리에 그제야 기죽어 있었던 호프집 알바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 * *
백준열의 말을 듣고 허겁지겁 서울CC 옥내 시설로 달려 간 정재욱.
그런 그가 박대순 서울경찰청장에게 가려하자, 그의 앞을 민 차장이 막아섰다. 그리곤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정 과장. 왜 그랬어?”
“네?”
“청장님이 자네 꼴도 보기 싫으니, 자기 근처에 오지 못하게 하래셨네.”
“네에?”
정재욱은 자신이 진짜 좆 됐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물론 골프 칠 때마다 박 청장에게 욕을 먹긴 했다. 하지만 게임은 게임일 뿐이지 않는가?
그걸로 박 청장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 몰랐다. 그때 박 청장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거처럼 굴던, 박 청장의 따까리 민 차장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정재욱에게 말했다.
“박 청장. 진짜 속 좁은 인간이거든. 근데 네가 그 인간에게 찍힌 거야. 오늘. 한마디로 넌 좆 됐단 소리지. 집에 가거든 집 사람한테 말 잘 해놔. 멀리 가게 될 테니까.”
정재욱은 그 말을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싹 돋았다.
그렇게 석상처럼 굳어 버린 정재욱을 두고, 민 차장은 쪼르르 박 청장에게 달려가서 열심히 두 손을 비비며 아부를 했다.
그렇게 박 청장 무리가 서울CC의 옥내 시설을 빠져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정재욱이 축 처진 어깨로 자기 짐을 챙겨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아버지였다.
“무슨 일이시지?”
평소 주말에 이런 식으로 전화 같은 걸 하실 분이 아니었다.
특히 경찰청장이 되시고는, 아들이지만 한 번도 사적으로 전화를 한 적이 없는 분에게서 갑자기 걸려 온 전화.
정재욱은 문득 불길함을 느끼면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지.”
=재, 재욱아. 너 지금 어디니?
“저요? 골프장이요.”
=골프? 하아. 지금 한가하게 골프 칠 때가 아니다.
“네?”
=집안이 풍비박산 나게 생겼단 말이다.
이게 무슨 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아버지. 제가 좀 알아듣게 말씀해 주세요.”
=이 아비가 비리 경찰이 되게 생겼다.
“네에?”
정재욱도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고위직 경찰로 있으면서, 이런저런 이권에 개입한 걸 말이다. 그 결과 꾸준히 돈이 들어왔고, 그 돈으로 그의 가족들은 호이호식하며, 그 동안 잘 먹고 잘 살아왔다.
한데 그게 뭐 잘못 됐단 말인가? 남들 다하는 거 아버지도 했을 뿐인데.
=날 쳐내려는데 명분이 필요한 거겠지. C발! 저희들은 안 해 쳐 먹었나?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떻게 하긴. 자진 사퇴할 테니 감방에나 보내지 말라고 빌어야지.
“그게 먹히겠습니까?”
=그냥은 안 먹히지. 사과 박스 3개는 들고 가야 약발이 좀 받겠지.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러니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도 권력자들은 돈을 챙기는 거고.
정재욱은 아버지가 누굴 만나서 사과 박스를 건넬지에 대해 굳이 묻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 일이었으니까. 그는 당장 자기 앞가림부터 하기 급급했으니까.
=....니까. 너도 행실 조심하라고 전화 한 거다. 내가 이 모양인데 너까지 잘못 되면 우리 집안은 진짜 끝장난다.
“네. 조심할게요.”
=그래. 끊는다.
일종의 집안 단속인 셈이었다. 하지만 오늘 골프장에서 곧 경찰청장이 될 박대순 서울경찰청장의 눈 밖에 나 버린 정재욱.
이대로라면 경찰이란 거대한 조직에서, 그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민 차장 말대로 짐 싸서 저 지방 경찰청으로 가서 거기 짱 박히게 된다면, 경찰청장이 박힐 때까지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설혹 경찰청장이 바뀐다고 해도, 그때 그가 다시 서울로 복귀할 수 있을 거란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어쩌지?”
자신의 짐을 차에 다 싣고 나서도 그 고민 때문에, 정작 차에 시동을 걸지 못하고 있던 정재욱.
“가만....백준열이라면....”
그때 왜 백준열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있어서, 당장 돌파구는 그 백준열 뿐이었다.
“그래. 그놈을 잡자.”
결심을 굳힌 정재욱은 그제야 차에 시동을 걸었다.
부우우웅!
그렇게 서울CC의 주차장을 빠져 나온 정재욱은 자신의 인맥들 중, 특히 재벌가에 바싹한 자가 누군지 생각했다.
그러자 한 명 생각이 났다. 실제 재벌가의 일원이기도 했었고, 파락호로 유명했던 자 말이다.
지금은 그 재벌가가 망해 버리는 바람에, 정재욱도 자연스럽게 그와 인연을 끊었지만, 그래도 3년 전까지는 재벌 3세였던 녀석이니, 같은 재벌 3세인 백준열에 대해서 뭐라도 알고 있을 거란 게 정재욱의 생각이었다.
“찾았다.”
정재욱은 한손으로 운전을 하면서 다른 손에 쥔 핸드폰의 전화번호부를 검색해서, 드디어 그 녀석을 찾아냈다.
“우주그룹 태석규. 넌 지금 뭐하고 사니?”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린 정재욱이 태석규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