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241화 (24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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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러니까 윤지승이 고지영을 데리고, 동양가 본가에 둘의 결혼을 허락 받으러 갔을 때였다.

동양그룹의 윤대평 회장의 냉담한 반응에, 결국 결혼 허락을 받지 못한 두 사람.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네?”

=지승이 엄만데. 잠깐 봐요. 그리고 지승이에게는 우리 만난다는 거, 절대 얘기하지 말고.

윤지승의 모친이 따로 보자고 해서 약속 장소에 나간 고지영.

그녀는 그 자리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윤지승의 모친 뿐 아니라 변호사가 다섯 명이나 와 있었던 것.

“우리 지승이하고 결혼 하고 싶으면, 여기에 사인해야 해.”

단호한 윤지승 모친의 반응. 해서 고지영은 그게 뭔지 살폈다.

“혼, 혼전계약서?”

혼전이란, 결혼하기 전을 의미한다는 걸 모를 고지영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윤지승의 모친은 지금 그녀에게 결혼을 하기 전, 결혼 생활 시 서로가 지켜야 하는 규칙, 이혼 시 재산분할 문제 등에 관한 것을, 규정한 계약을 체결하길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변호사 중 한 명이 그녀에게 확실히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혼 시 재산분할 문제에 관하여, 규정한 혼전 계약만 법적 효력이 있어요. 따라서 혼전 계약서는 부부 재산 약정을 근거로 작성하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지나 내용의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그 말을 듣고 황당해 하고 있던 고지영. 그런 그녀에게 윤지승의 모친이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 동의하던지, 아니면 지승이와 헤어지거라.”

당시 윤지승을 정말 사랑했던 고지영. 그녀는 모든 불이익을 불사하고서라도, 윤지승과 반드시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그 혼전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

“하아....”

그 얘기를 고지영으로부터 듣고서 윤지승은 기가 찬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자신과 결혼을 해 준 고지영이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선지 몰라도 그녀와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고지영의 다음 말을 듣고서 변했다.

“해진 아빠. 나 더는 못하겠어요. 당신 하나보고 지금껏 버텨 왔는데 이제 당신도 나를 불편해 하고 있고. 우리는 여기서 헤어지는 게 맞아요. 서로를 위해서. 당신도 나 말고 있는 집 여자 만나서, 기 펴고 살아요. 나도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갈 테니까. 그러니....우리 이혼해요. 부탁이에요.”

그가 한 때 사랑했었던 여자. 그의 반쪽이었던 그 여자가, 자기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싶으니 그만 놔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그 부탁을 윤지승은 차마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 하자. 이혼.”

“고, 고마워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 볼 건 있었다.

“혼전계약서에 이혼 시 위자료는?”

“하나도 없어요.”

“뭐?”

“....”

어처구니 없어하는 윤지승을 보고 고지영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가 동양家에 들어 올 때처럼 나갈 때 역시, 그녀는 빈손으로 나가야 만 했던 것이다.

“내가 좀 챙겨 줄게.”

그런 몰염치한 부모를 둔 윤지승이 오히려 부끄러워서 그렇게 말했고, 정말 맨손으로 나가서 앞으로 살기 막막했던 고지영은, 그런 윤지승의 호의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 * *

전날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백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백지연.

벨레레레, 벨레레레....

호텔 방 전화가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고지영을 택시 태워 보낸 뒤, 백지연은 아침도 건너뛰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화벨이 울려 대니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전화선을 뽑아버리려다가, 그걸 로는 화가 안 풀릴 거 같아서, 전화 건 사람에게 그 화풀이를 할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하지만 막상 그녀는 전화 건 상대에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삼명그룹 오규동 비서실장이었으니까.

=아가씨. 혹시 소식 접하셨습니까?

“소식이요?”

=네. 외조부님께서 간밤에 돌아가셨습니다.

“네에?”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지연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세상에서 자기 빼고 그녀를 제일 사랑해 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다면, 백지연은 일고의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라고 말이다.

그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백지연이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오규동 비서실장이 냉정하게 말했다.

=사모님께서 아가씨 찾으라고 난립니다. 빨리 서진병원 장례식장으로 가십시오.

그러니까 오규동 비서실장이 백지연에게 직접 전화한 이유가, 바로 모친인 서지현 때문이었던 것.

그게 아니었다면 사실 오 실장이 직접 그녀에게 전화 할 이유가 이제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더 이상,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여식이 아니었으니까.

뚜뚜뚜뚜뚜뚜....

그 현실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자기 할 말이 끝나자 오규동 비서실장이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하아....”

그런 오 실장의 행태에 어처구니 없어하던 백지연. 하지만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백제 호텔 측에 상복 대여를 부탁했고, 그 서비스가 오기 전에 씻고 외출 할 만반의 준비를 끝내 놨다.

“말씀하신 옷과 양말, 구두 가지고 왔습니다.”

이런 서비스는 VIP고객에게만 제공 되는 데, 아마도 호텔 측에서 백지연이 자신들의 VVIP고객인 백준열의 누나란 점에서, 이런 편의를 봐주는 듯 보였다.

백지연은 검은 색 상복에 검은 양말, 그리고 검은 구두를 신고 나서 백제 호텔을 나섰다.

원래는 호텔 지하주차장에 주차 해 둔 자신의 차를 몰고 갈까 하다가, 생각해 보니 지금 경황중이라 운전이 어려웠다.

실제로 백지연은 아직 외조부 죽음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듯,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래서 호텔측에서 제공하는 차량 서비스를 이용해서 서진병원 장례식장까지 갔다.

“지연아!”

백지연이 장례식장에 나타나자 얼마나 울었던지 두 눈이 퉁퉁 부은 모친, 서지현이 뛰어나와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엉엉엉엉엉....”

그리고 그녀를 안은 채 또 울었다. 그런 그녀를 겨우 진정 시킨 백지연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영정 앞에 섰다.

막상 환하게 웃고 계시는 외할아버지 서재국의 영정 사진을 보자, 그때부터 백지연의 눈물주머니도 터지고 말았다.

“할아버지. 흑흑흑흑....”

그 뒤 백지연도 상주 사이에 끼어서 문상 오는 손님들을 맞았다. 그러면서 틈틈이 모친을 챙겼다.

* * *

장례식장에서의 시간은 제법 빨리 흘렀다. 아무래도 돌아가신 분이 전 대통령이다 보니, 문상객의 발걸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그런 가운데 겨우 틈을 내서 점심을 먹은 상주들. 그 중 돌아가신 서재국 대통령이 가장 아꼈던, 그 딸과 그 딸의 딸이 잠깐 장례식장을 빠져 나와서 인근 병동으로 들어갔다.

거기 병동 1층에 커피 전문점으로 딸인 백지연을 끌고 간 서지현.

“너 아버지랑 무슨 일 있었지?”

백지연은 다 알면서 묻는 모친 서지현을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엄마, 이제 끝났어요.”

“끝나기 뭐가 끝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러니까 그 시작도 할 필요 없다고.”

“뭐? 너....”

“그래. 어제 아버, 아니 백승렬 회장님과 얘기 끝냈어. 한국 떠나기로.”

“뭐, 뭐라고? 누구 마음대로 한국을 떠나? 절대로 안 돼. 넌 내 곁에 있어. 그럼 돼.”

“안 그래도 엄마 곁에 있을 거야. 단지 거기가 한국이 아니겠지만.”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백승렬 회장님이 엄마 데리고 나가래.”

“미, 미쳤군. 그 인간이 노망이 들었나?”

딸 앞이라 큰소리치긴 했지만 서지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아는 한 지금의 대한민국은 삼명그룹의 나라였다.

그러니까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이 그러라고 하면 그래야 했다. 아니면....

지이잉!

그때 서지현의 손에 쥐어져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바로 확인한 서지현.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기 핸드폰에 몇 번의 터치를 했다.

“헉!

그리곤 경악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고 백지연이 물었다.

“엄마. 왜 그래?”

“아, 아냐. 아무것도.”

서지현은 황급히 핸드폰을 꺼버리더니, 이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하지만 정신을 어디다 놓고 왔는지, 허둥지둥 거리는 서지현은 근처에 있는 화장실을 못 찾아서 헤맸고, 결국 백지연이 나서서 화장실 앞까지 그녀를 데려다 주었다.

화장실 안으로 겨우 들어간 서지현. 그녀는 비어 있는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고, 힘없이 변기에 앉았다.

옷도 그대로 입은 채 말이다. 그런 그녀가 좀 전에 봤던 핸드폰을 꺼내서, 받은 메시지 중 하나를 클릭했다. 그러자 핸드폰 화면에 뜬 것은 한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 남자는, 뒤돌아 엎드린 상태로 사진이 찍혔는데, 그 남자가 누군지는 얼굴이 나오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다.

“동, 동훈 오빠....”

하지만 한 사람, 남자가 뒤돌아 있어도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서지현. 그녀는 바로 발가벗겨진 채 엎드려 있는 남자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와 수없이 살을 비볐고 그를 끌어안고 만졌고, 그의 몸 구석구석을 애무했었던 그녀였다.

“흑흑흑흑....”

그의 그런 처지를 보고서 서지현은 울었다. 그가 그 꼴이란 건, 지금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백승렬....이렇게 까지....”

서지현은 치를 떨었다. 그리고 절망했다.

이제 그녀에게 있어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그것의 여파는 컸다.

좀 전까지 절대 한국을 떠날 수 없다던 그녀. 하지만 지금 그녀는 차라니 딸인 백지연과 함께 외국에 나가서 편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점심 때 창원 삼명전자 제 3공장을 방문한 백승렬 회장.

그는 그곳의 임직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널찍한 강당에서 현장 직원들과 같이 다과타임을 가졌다.

커피를 원하는 직원은 커피를, 전통차를 원하는 직원에게는 그 차가 지급 되었다. 거기에 전통 과자가 더해지자 그 곳의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

그 자리에서 백승렬 회장은 그곳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경청하고, 당장 수정이 가능한 건 그 자리에서 고치게 지시하고, 차차 고쳐 나가야 할 것은 본사에 가서 직원들의 요구를 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히 그런 백승렬 회장은 삼명전자 현장 직원들로부터 인기가 급상승했다.

“수고들 해.”

“조심해서 올라가십시오.”

백승렬 회장은 창원 공장의 임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서울로 향했는데, 그때 차에서 서울 본사에 있는 오규동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게 했다.

=네. 회장님.

“시킨 건 어떻게 됐어?”

=다 처리 됐습니다.

“그 여자에게 그 새끼 뒷모습도 보냈나?”

=네. 경호실장이 가져 온 사진을 핸드폰 카메라도 찍어서 사모님께 보냈습니다.

“사모님은 무슨....으음. 역시 그걸 잘라 보낼 걸 그랬나?”

원래 백승렬은 하동훈의 자지를 잘라서, 그걸 찍어 서지현에게 보내려 했었다.

=그, 그건 좀....

“하긴. 그래 놓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지.”

=네. 말씀하신대롭니다. 그 정도로도 사모, 아니 서지현씨에게 충분한 경고가 됐을 겁니다.

“애들은 뭐래?”

=4시까지 서진병원 장례식장에 집합하기로 했습니다.

“딴소리는 없었고?”

=네.

백승렬 회장이 알기로 장남인 백준경이, 그의 말을 무시하고 먼저 장례식장에 가려 한 걸, 오규동 비서실장이 숨기고 있었다.

거짓말을 제일 싫어한다는 백승렬 회장. 평소의 그라면 호통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백 회장은 그러지 않았다. 그가 그런 이유는....

‘곧 갈아치울 녀석한테 뭐 하러 심력을 낭비 해.’

그 사실을 모르는 오규동 비서실장. 그는 자신이 모시기로 한 첫째 백준경을, 백승렬 회장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게 포장해서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데 그래도 준경 도련님께서 장남이시라고 의젓하시게....

하지만 지금 그 소리는, 오히려 백승렬 회장에게 백준경을 대 놓고 욕해 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알았어. 그럼 서울에서 보지.”

그렇게 오규동 비서실장과 통화를 끝낸 백승렬 회장. 그가 자신과 같은 차를 타고 있는 수행비서에게 물었다.

“준열이가 영입한 처리자들 에이전시 대표가 누구라고 했었지?”

“김훈 대표입니다.”

“그 놈 한데 전화 걸어.”

“네. 회장님.”

잠시 후 수행비서가 먼저 김훈 대표와 통화를 했다. 그리곤 백승렬 회장을 보고 물었다.

“지금 통화 가능하다는 데 어떡할까요.”

“이리 줘.”

수행비서로부터 핸드폰을 건네받은 백승렬 회장. 그가 무슨 의도에서 이제 백준열의 사람이 된 김준 대표에게 전화를 했는지, 그 능구렁이 같은 백 회장의 속내를 누구도 간파 할 수 없었다.

“하동훈이 잡는 과정에서 장난 질 좀 쳤다지?”

=회장님께서 고용하신 처리자들 에이전시와 쌓인 게 좀 있어서 그랬습니다.

“운이 좋았어. 준열이 아니었으면 넌 죽었다.”

“....”

확실히 김훈 대표의 처리자들 에이전시가 백승렬 회장의 눈 밖에 이미 났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백승렬 회장이 그 말 하려고 김준 대표에게 이렇게 연락 한 걸 아닐 터.

그걸 눈치 챈 김훈이 말없이 기다렸다. 백승렬 회장이 먼저 그 얘기를 하도록 말이다.

그러자 백승렬 회장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 하나 해라.”

앞서 삼명그룹에서 이용한 최현일의 처리자들 에이전시를 다시 이용해도 될 텐데. 퍽이나 의외인 백승렬 회장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김훈에게 있어서는 돈 되는 최고의 고객의 의뢰였다.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맡겨만 주십시오.

“내 오른팔이 요즘 영 시원찮아. 마음에 들었다 안 들었다 하고. 그래서 잘라냈으면 해. 가능하겠어?”

한데 역시나 백승렬 회장다운 골치 아픈 의뢰였다.

=오, 오른팔이라 함은, 오규동 비서실장을 말함입니까?

“그래.”

=....

좀 전까지 백승렬 회장이 시키는 일은 뭐든 다 할 거 같았던 김훈 대표.

하지만 그 제거 대상이 현 삼명그룹의 2인자라고 봐도 무방한 오규동 비서실장이라니....

쉽게 대답을 못하자 오히려 백승렬 회장이 그런 김훈 대표의 반응에, 음흉하게 웃으며 입매를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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