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238화 (23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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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이게 혼마루망할제스틴가 뭔가 하는 채인가?’

나도 처음에는 몰랐다. 내가 치고 있는 이 골프채들이 ‘억’ 소리 나는 거란 걸 말이다.

이럴 때 백준열이 재벌 3세란 게 현실로도 느껴진 달까?

드라이브 채 하나가 거의 천만 원이나 한다니....

뭐 어째든 비싼 드라이브 채가 제 값을 한 걸까? 내가 친 골프공이 제법 멀리 날아갔다.

하지만 골프란 게 공을 멀리 친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어디로 잘 날아가서 떨어지냐가 중요하다. 헤저드나 OB, 벙커로 가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다행인지 공은 페어웨이에 떨어졌고, 내 뒤에 사람들이 다들 ‘굿샷!’을 외쳤다.

이곳 골프장의 첫 홀은 파4홀로, 4명이 번갈아가며 치니까 파로 마무리 될 수 있다면, 이 홀에서 내가 다시 채를 잡을 일은 없었다.

물론 생 아마추어들인 이들 사이에서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 다음으로 상대측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인 김순철이 티잉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그도 꽤나 비싸 보이는 골프채를 휘둘러댔다. 폼은 제법이었는데 티샷 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너무 세다.’

내가 잘 쳐서일까? 나보다 잘 쳐야겠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몸에 힘이 들어갔고, 공은 우측 OB로 들어 가버렸다.

“젠장....”

페널티로 1타가 부여 되고, 다음 최재훈 정무수석이 티샷을 해야 했다.

다행히 최 수석이 친 공은 페어웨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러프 쪽으로는 들어갔다.

그때 전동 골프 카트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자연스럽게 첫 홀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 카트에 집중 되었는데....

“오오....”

“여자....그것도 엄청난 미인인데?”

내 양쪽에 원래부터 경찰 쪽 인사들이 한 소리씩 했다. 아까 보니 둘 다 머리가 심각하게 벗겨지고 있던데....대머리가 여자 꽤나 밝힌다더니 그 짝들인가?

당연히 그들을 지나쳐 갈 거라 여겼던, 그 전동 카트가 정확히 그들 홀 옆길에서 멈췄다.

그리고 카트 안에서 늘씬한 미녀가 내렸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우리 홀의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하면서, 누구하나 그 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때 그 미녀가 우리 쪽을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걸 보고 다들 어리둥절해 할 때, 내가 손을 들어서 그 미녀를 향해 마주 손을 흔드는 걸 보고 다들 경악하며 말했다.

“백 대표가 아는 여자였어?”

“이, 이게 무슨....”

“하하하하. 김 실장님. 제가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가, 가만....그럼 자네가 말한 그분이 바로....”

“네. 맞습니다. 민 프로. 이리로.”

그 사이 내게로 다가 온 민혜주를 내 옆으로 모신 뒤, 내가 이 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골프 치시는 분들이면 다들 아실 겁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녀 프로 골퍼, 민혜주씨입니다.”

내가 박수로 환영을 표하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박수를 치며 헤벌레 웃었다.

‘입에 침 좀 닦아라.’

그들 중 경찰 쪽 대머리가 될 게 유력한 작자들은, 아예 입가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프로골퍼 민혜주입니다.”

“와아아아....”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미녀 프로골퍼의 등장에 다들 신이 나도 너무 났다.

특히 내가 여자 프로골퍼를 부를 줄 예상도 못한, 청와대 쪽 사람들은 다들 입이 귀에 걸렸다. 무엇보다 그녀가 자기편이지 않은가?

“백 대표. 오늘 이 은혜는 내 잊지 않음세.”

그걸 또 은혜라고까지 표현하는 김 실장. 요즘 골프에 미쳐 있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민혜주는 저쪽 팀에 합류하자마자 바로 제 값을 했다. 러프의 공을 단숨에 그린에 올려놓은 것.

반면 우리 쪽은 좀 헤맸고. 그 결과 보기Bogey로 첫 홀을 마친 우리는 다음 두 번째 홀로 카트를 타고 출발했다.

* * *

민혜주와 나는 같은 팀이 아니다 보니 같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왜 ‘여우같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하는 짓이 깜찍하고 영약하거나, 교활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여우같다'고 하는데, 방언인 ‘여시’를 써서 매우 교활한 여자를 ‘불여시’라고 하지 않은가?

지금 민혜주가 그 불여시 짓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청와대 사람들과 같은 전통 카트에 타서 말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인 김순철과 정무수석인 최재훈은, 민혜주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골프보다 민혜주에게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역시 백 대표야. 골프 여신을 다 섭외하다니.”

그때 내 옆에 박 청장이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어느새 골프 미녀에서 골프 여신으로 승격해 있는 민혜주였다.

그러자 그 뒤에 경찰 쪽 인사 두 사람도 나를 칭찬했다. 참고로 카트는 내가 운전 중이었다.

그런데 잘 달리던 앞 쪽 카트가 갑자기 멈췄다. 그리곤 김 비서실장에 카트에서 내려서는 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하더니, 이내 통화를 끝내가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해서 나도 카트에서 내렸다. 그러자 내 앞까지 다가 온 김 비서실장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이거 어쩌나? 나 지금 청와대로 가 봐야 할 거 같아.”

“왜요? 무슨 일인데요?”

“코드 원, 대통령이 오전 중에 자네 외조부 문상 가실 거라네. 나와 최수석도 참석하란 지시가 내려왔어.”

“하아. 뭐 어쩌겠습니까? 그분이 그러시겠다는 데.”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왕이다. 왕이 가겠다면 가야지 밑에 것들이 어쩌겠나?

“정말 미안하네. 언제 다시 시간 내서, 지금처럼 좋은 시간 가지세.”

그러니까 나보고 또 이런 이벤트를 만들란 소리다.

뭐 사람일이란 게 모르는 거지만 내가 다시 이런 짓을 할 일이 과연 있을까?

느낌상 대통령이 이들을 계속 끌고 가지는 않을 거 같았다. 곧 청와대 쇄신을 할 거 같은데 말이다.

“네. 그러죠.”

하지만 싫은 티를 낼 내가 아니지. 나는 웃으며 대답했고 내 그 대답이 마음에 든 듯, 김 비서실장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여기 온 소정의 목적만큼은, 확실히 챙길 필요가 있었다.

“실장님. 그럼 이번 경찰청장 인사는....저희 박 청장님이 되시는 거죠?”

나는 아예 대 놓고 김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당연히 내 뒤에 박대순 서울경찰청장의 귀에도, 그 말이 들리고 있을 터였다.

“뭐 90%이상 확실하다고 보면 되네. 인사청문회에서 문제만 없다면 말일세.”

그러니까 박대순 서울경찰청장이 대한민국 경찰의 수장이 될 거란 얘기다.

인사청문회야 야당 의원들 욕 좀 먹으면 그만이고.

또 삼명그룹에서 야당 쪽에 적당히 하라는 사인만 보내면 될 일이었다.

그 정도는 내 선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렇게 김 비서실장으로부터 확답에 가까운 얘기를 듣고 나서, 청와대 사람들이 골프가방 챙겨서 골프장을 나섰다.

이로써 4대 4, 팀 골프는 파토가 났고, 대신 두 번째 홀부터는 2대 2대 2의 골프가 새로 시작되었다.

다들 민혜주와 공을 치고 싶어 하는 눈치라, 우리는 나름 공정하게 제비뽑기로 파트너를 정하기로 했다.

“자아. 그럼 각자 이름들 쓰셔서, 여기 모자에 넣어 주십시오.”

그 일도 여기서 민혜주 빼고 제일 어린 내가 주도했다.

청와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남은 경찰 쪽 사람들은, 눈치를 보면서 자기 이름을 적은, 같은 색에 같은 크기의 포스트잇을 접어서, 내 골프 모자 속에 넣었다.

나도 내 이름을 적어서 그 모자에 넣고 나서, 누가 먼저 뽑을 지를 두고 얘기 끝에 결국 가위 바위 보로 정하기로 했다.

“가위, 바위, 보!”

“앗싸! 이겼다.”

눈치 없이 나와 같이 가위를 내면서 이긴 정재욱.

그가 부러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다른 경찰 쪽 동료들의 눈길을 뒤로하고, 도전적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새끼가....’

그런 그를 보고 내가 가소롭게 웃었다. 물론 보는 사람들 눈에는 평소 내가 웃는 얼굴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가위 바위 보는 누구랑 해도 내가 이긴다. 왜냐고? 그야 내게는 견신 시스템의 개 특성이 있으니까.

우선 *소리가 잘 들립니다.*를 이용해서 상대가 가위 바위 보를 낼 때, 그 소리를 잘 감지해서 기억한다.

그 다음 *행동이 빠릅니다.*를 사용해서 손을 내기 직전, 상대가 뭘 낼지를 파악하고 가위 바위 보 중, 상대에게 이길 걸 내면 된다.

왜 ‘타자’라는 영화를 보면 손이 눈보다 빠르다고 하지 않던가?

고로 내가 그런 식으로 가위 바위 보를 하게 되면, 그때 그건 인간의 눈으로는 간파가 어려웠다.

“가위, 바위, 보!”

“아아....”

의욕적으로 내게 덤벼 든 정재욱. 하지만 그가 주먹을 내는 걸 보고 나는 여유 있게 보자기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보고 낸 것은, 전혀 간파가 되지 않았다.

“제가 이겼네요. 그럼 제가 먼저 뽑겠습니다.”

그 말 후 나는 진짜 모자 안은 보지도 않고, 그 안에 쑥 손을 넣은 다음 아무거나 쪽지 하나를 꺼냈다. 그러면서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저는 아무나 좋은데....”

그러면서 나는 민혜주와 짝이 되고 싶지 않은 티를 팍팍 냈다. 하지만....

“어어?”

내가 뽑은 쪽지에는 민혜주가 자기 손으로 직접 적은 자기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아....”

“하아....”

경찰 쪽 사람들이 다들 허탈해 하며 나와 민혜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특히 경찰청장 내정자나 마찬가지인 박대순 서울경찰청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들어보니 박 청장이 민 프로의 열렬한 팬이라나 뭐라나?

하지만 룰은 룰이다.

나는 민혜주와 짝이 되었다.

* * *

민혜주와 내가 짝이 되는 건 쉬웠다.

역시나 내 견신 시스템의 개 특성인 *냄새를 잘 맡습니다.*를 사용하면 말이다.

오늘 아침에 나와 한 빠구리 한 민혜주. 그녀가 쓰는 향수와 화장품 냄새를 내가 모르겠나?

포스트잇에 자기 이름을 쓸 때, 그녀 손에 묻은 화장품 향이 쪽지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니 그 냄새가 나는 쪽지를, 모자 속에서 꺼내면 그게 민혜주의 쪽지인 거지.

“으음....”

그 뒤 나머지 경찰 둘이 쪽지를 뽑았고, 그들끼리 파트너가 정해졌다. 그때 눈치 빠른 수사차장이 나보고 말했다.

“백 대표님. 파트너는 매 홀 마다 바꾸는 게 어떨까요?”

그러니까 나 혼자 민혜주를 독점하는 꼴은 못 보겠다는 거다.

그 말에 박 청장을 비롯한 경찰 쪽 사람들이 다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골프 라운딩 할 때 매 홀 마다 파트너 바꿔 치는 경우는 없었다.

왜냐하면 시간 때문에 말이다.

“매 홀마다 파트너 바꾸다가 골프는 언제 칩니까? 그러지 마시고 3홀마다 바꾸는 건 어떨까요? 지금처럼 제비뽑기로요?”

지금 경찰 쪽에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내가 내 놓는 이 제안을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좋네. 그렇게 하세.”

경찰 쪽의 우두머리인 박 청장이 그러자고하니, 다른 경찰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두 번째 홀에서 티샷을 시작으로 라운딩이 재개가 됐다.

‘잘 됐네.’

내가 따로 손을 쓰지 않아도 박 청장이 이번 홀 파트너로 정재욱을 뽑았다.

나는 그런 정재욱에게 「개 끗발」과 「개호구」아이템을 동시에 사용했다.

‘어디 좆 돼 바라.’

그 뒤 4홀까지 골프가 진행 되는 과정에서, 정재욱은 파트너인 박 청장의 눈 밖에 제대로 나버렸다.

“아니. 그걸 못 넣나?”

“죄, 죄송합니다.”

“하아.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정 과장 당신....진짜 실망이야.”

골프 하나로 진짜 좆 돼 버린 정재욱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얘기 한 3홀이 끝나면서 다섯 번째 홀에서 파트너 체인지를 위한 제비뽑기가 다시 시작됐다.

“가위, 바위, 보!”

“아아....”

당연히 내가 이겼다. 하지만 내가 또 제비뽑기에서 민혜주를 뽑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경찰 쪽 사람들은 다들 기대어린 눈으로. 내가 모자 속에서 쪽지를 꺼내는 걸 지켜봤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민혜주를 뽑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으아아아! 어, 어떻게 또....”

“말, 말도 안 돼!”

“허얼....”

“에이 씨....”

경찰 쪽 사람들 중 박대순 청장은 아예 들고 있던 골프채를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 그리곤 말했다.

“이러다 18홀까지 못 돌아. 그러니 9홀로 줄이자고.”

“그, 그래요. 18홀까지 가다간, 날 다 저물 겁니다.”

누가 박 청장 따까리 아니랄까? 민 차장이 바로 동의하자 나머지 수사차장과 정재욱도 그러자고 했다. 해서 골프 라운딩 시간이 확 줄어 버렸다. 한데....

“오오!”

“와아. 그게 들어가네.”

다섯 번째 파3홀에서 민혜주의 티샷 후, 내가 친 공이 홀 안에 들어가 버렸다.

근데 거기서 정재욱이 벙커에 공을 넣었고, 박 청장이 벙커 샷이 좀체로 페어웨이로 빠져 나오지 못했다.

결국 다섯 번째 파3홀을 양파(더블 파,Double Par-기준 타수보다 두 배 이상을 치고 홀 아웃 한 경우)로 끝내고 말았다.

이번 파트너 역시 내가 민혜주와 파트너가 되면서 앞서와 똑같아졌다.

이번에는 정재욱이 뽑았는데 박대순 청장을 고른 것.

정재욱은 앞서 실망 시킨 것을 만회하려고 노력했지만 개 끗발, 개호구 효과가 계속 발휘 되면서 박 청장 성질만 돋웠다.

타앙!

데구르르....

“어어....”

그러다가 여섯 번째 파2홀에서 내가 친 샷이 홀인원이 되어버렸다.

박 청장은 또 파트너인 정재욱이 헤저드로 공을 치는 걸 보고 씩씩 거리다가, 결국 골프 회동을 파토내고 가버렸고, 그의 따까리들도 허겁지겁 그를 쫓아갔다.

그런 경찰 쪽 사람들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던 정재욱. 그런 그에게 내가 말했다.

“안 따라 가세요?”

“네?”

“이대로 박 청장님 가시면 정 과장님 곤란해지실 거 같은데?”

“아아....”

내 말이 무슨 소린지 그제야 알아들은 정재욱. 그는 카트도 타지 않고 땀 뻘뻘 흘려가며, 골프장 옥내시설 쪽으로 죽어라 달렸다. 그걸 보고 실실 웃는 날 보고 민혜주가 말했다.

“오빠. 저 사람이 그렇게 싫어?”

아무래도 내가 정재욱 싫은 티를 너무 드러내 놓고 낸 모양이었다.

“티나?”

“지금 나. 아까까진 나도 몰랐어.”

“다행이네.”

“어떻게 할 거야? 우리끼리 칠까?”

민혜주의 물음에 나는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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