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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차은석이 묻지 않아도, 김효석은 자신의 얘기를 알아서 풀어 놨다.
이 자리를 마련한 것도 어쩌면 자신의 울분을 풀기 위해서 일지 몰랐다.
“....잖아. 그런데 그걸 이해 못해. 그러고도 대표라고 할 수 있어? 에이....”
차은석은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는 김효석을 멀뚱히 쳐다만 봤다.
차은석 인들 이 사회의 불합리함을 왜 모르겠나?
특히 직장은 그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요하고, 해야 할 것은 제지당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받는 스트레스를 돈으로 환산해서, 월급을 지급하는 곳이 바로 회사였다.
“과장님. 그만 드세요.”
하지만 내리 세잔 째 연속으로 소주잔을 비운, 김효석이 다시 소주잔을 채우고 그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걸 보고 차은석이 말렸다.
“괜찮아. 내일 출근할 것도 아닌데 뭐.”
그 말 후 기어코 잔을 입에 대는 김효석. 그런 그를 보고 차은석이 말했다.
“사모님은요?”
사모님이란 말에 움찔하는 김효석. 그리곤 입에 대고 있던 술잔을, 도로 포장마차 플라스틱 빨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네. 내일 출근 안하면 마누라가 눈치 채겠네.”
그가 회사를 관둔 걸 말이다. 당연히 김효석인들 회사 관두고 싶어서 관뒀겠는가?
그러니 자기 아내와 사전에 회사 관두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눴을 리 없었다.
아니 자기가 아파도 폐가 될까 봐, 다른 사람에게 티 내지 않는 김효석의 성정으로 미뤄서, 퇴사 얘기를 미리 아내에게 했을 리 없었다.
차은석이 봐도 눈앞에 술을 당장 마시고 싶은 김효석.
하지만 오늘 이대로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가서, 혹시 말실수라도 한다면....
책임감 강한 김효석이라면, 여기서 더 술을 마실 리 없었다.
“하아....”
긴 한숨과 함께 역시나 잡고 있던 소주잔에서 손을 떼는 김효석. 그런 그를 보고 차은석이 웃으며 말했다.
“과장님. 소주 말고 우리 콜라나 마셔요.”
그러면서 포장마차 아줌마에게 콜라를 시키려는 차은석. 그런 그녀를 김효석이 말렸다.
“콜라는 안 돼. 사이다로 시켜.”
“네?”
“폼이 안 나잖아.”
김효석이 자신의 소주잔을 옆에 빈 물 컵에 부어 버리고는, 그 소주잔을 차은석 눈앞에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소주잔에 사이다를 따라서 마시자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소주잔에 콜라를 따라 마시면 티가 났다. 하지만 사이다는 탄산 방울은 좀 생기겠지만, 그래도 소주잔에 따르면 소주 같아 보이잖나.
“그러네요. 아줌마. 여기 사이다 한 병이요.”
그 뒤 김효석과 차은석은 소주잔에 사이다를 따라서, 건배를 하고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빠르게 술에 취해가다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 온 김효석.
그는 이제 자기 얘기 말고 차은석의 얘기를 들어 주었다.
“허어....그, 그러니까 너희 대표가 정말 그랬다고?”
“네. 저도 많이 놀랐어요. 사실 저도 이직을 생각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임원이라니....”
지금 차은석의 나이에 임원을 다는 건 빨라도 한참 빨랐다.
하지만 차은석의 능력을 잘 아는 김효석으로서는, 그녀가 자기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기뻤다.
“근데 과장님이 다녔던 회사가 어디라고 하셨죠?”
“QH엔터테인먼트.”
“네에?”
거긴 백준열 대표가 조폭두목이 대표로 있는, 질 나쁜 회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과장님. 혹시 그 회사 대표....조폭두목 아니에요?”
“하아. 너도 알고 있구나. 맞아. 정확히는 전직 조폭두목이지.”
그런데 김효석이 QH엔터 대표에 대해 아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그는 홍대복이 성상납 장소를 따로 만들고, 자기 회사 뿐 아니라 다른 쪽 여 배우들까지 끌어 들여서, 높으신 분들에게 성상납을 해 온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 *
당연히 차은석은 TVM의 대표인 백준기의 수행비서에게서 전해들은, 성상납에 대한 얘기를 김효석에게 했다.
“그, 그런 짓을....”
김효석은 차은석의 말을 듣고 분개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실소했다.
“하하....은석아. 사실 나 낌새는 챘어. 우리 회사 여배우들이 성상납에 동원 되고 있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대표가 사사로이 그녀들을 불러내서 은밀히 스폰서를 찾아주고 있는 건 알았어. 하지만 그건 그녀들의 결정이잖아. 나는 그녀들이 데뷔할 때부터 쭉 얘기해 왔어. 스폰서의 유혹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떨지도. 그걸 알면서도 그녀들이 스폰서를 선택했다면....나는 그 결정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정말 비겁한 짓이지? 찌질 하고?”
“아니에요. 저도 과장님 같은 상황이었다면....못 본척했을 거예요.”
차은석이 김효석을 위로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였다면 그런 꼴은 못 봤다. 그건 차은석을 아는 김효석도 알았다.
“행여나 그랬겠다. 그나저나 너는 괜찮은 대표를 만난 거 같아서 다행이다.”
“그러게요. 저를 너무 믿고 전폭적으로 밀어주니까, 지금은 오히려 제가 부담스러울 지경이에요.”
“부럽다.”
“에이. 과장님도 이 바닥에서는 꽤, 아니 많이 유명하시잖아요? 과장님이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가 돌면, 4대 메이저 엔터테인먼트에서 바로 영입 제의가....가만, 그러고 보니 우리 회사도 그 메이저 엔터테인먼트 중 하나네요. 혹시 저희 회사에 들어오실 생각 없으세요?”
“뭐?”
차은석의 갑작스런 영입 제안에 어이없어 하며 웃는 김효석. 그런 그에게 차은석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말씀 드렸다시피 저 JYB엔터 부문장이거든요. 직급은 상무고요. 임원이면 얼마든지 영입 제안 할 수 있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 네 밑으로 들어오라고?”
“그럴 리가요. 저희 대표님 밑으로 들어오시란 거죠.”
그러면서 차은석이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저예요. 네. 아뇨. 오늘은 일찍 퇴근했어요. 네. 제가 이렇게 전화 드린 건 절 이 연예계 바닥에서 키워주셨던, 제 사수가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나오셨다네요. 네. 대표님도 아실 거예요. QH엔터라고. 네. 아아. 월요일요? 네. 알겠습니다.”
차은석이 통화하는 동안 김효석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도 귀가 있으니 차은석이 지금 누구랑 통화 중이란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임원이라도 대표와 이렇게 쉽게 통화가 가능하다니?
아니. 그녀 전화를 이렇게 바로 받아주는 대표라니?
김효석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갈 때, 어느 새 통화를 끝낸 차은석이 말했다.
“저희 대표님이 월요일에 면접 보러 오시라네요.”
“면접?”
“그건 형식적인 거고 아마 바로 채용하실 거예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야 그분이 인재 알아보시는 눈이 정말 귀신같으시거든요. 그런 분이 과장님 같은 분을 몰라보실 리 없잖아요.”
“허어. 너, 너희 대표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구나?”
“그럼요. 전 그분 광팬이에요. 그리고 그분 밑에서 오래오래 일하고 싶고....”
차은석은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다. 거기에 지금은 김효석과 같이 소주잔에 사이다 따라 마시고 있으면서, 취한 듯 얼굴이 시뻘게졌다. 김효석도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세월이 그를 자연스럽게 사람 보는 눈을 키워주었고, 지금 그가 보는 차은석은 그녀 회사 대표에게 푹 빠져 있었다.
“은석아. 너 결혼 했니?”
“아뇨. 결혼 하면 당연히 과장님 불렀죠.”
“그래?”
아무래도 차은석도 이제 결혼할 때가 된 모양이었다. 김효석은 다른 건 몰라도 그 까다로운 차은석의 마음을 이렇게 쏘옥 빼앗은, JYB엔터의 대표는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졌다.
“좋아. 월요일 몇 시에 갈까?”
“월요일은 대표님이 오전 늦게 출근하시니까. 점심 먹고 오세요. 아니다. 저와 같이 점심 먹게 12시까지 저희 회사로 오세요. 저희 회사 어디 있는지는 아시죠?”
“이거 왜 이래? 나도 오늘까지 엔터사 직원이었어. 국내 4대 메이저 엔터테인먼트가 어디 있는지 당연히 알고 있다고. 근데 말이야. 너희 회사 대표....”
그렇게 두 사람 사이의 화제가 갑자기 JYB엔터 대표 얘기로 넘어가면서, 이번에는 차은석의 말이 많아졌다.
그 뒤 한 시간을 더 같이 수다를 떤 두 사람은, 멀쩡한 상태로 포장마차를 나와서, 곧장 지하철로 가서는 마지막 3호선을 타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 * *
TVM의 대표 백준기. 그는 전날 술이 꽐라가 된 상태로,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C발. 저, 저거....토한 걸로 얼굴을 문지른 거 같은데.”
“생긴 건 멀쩡한데....”
“이야. 저 시계 명품 아냐?”
“가짜야.”
“그래?”
“어. 진품이면 1억도 넘는 시곈데 너 같으면 술자리에 저걸 차고 나가겠니?”
“가짜 맞네.”
아침에 운 나쁘게 경찰의 불심검문에 잡혀 들어온, 전과 7범과 8범인 J씨와 K씨.
그들은 감방에서 나온 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기죄로 쫓기는 신세였다.
그런데 전날 술을 많이 마신 탓에 해장을 하러 차를 몰고 나왔다가, 음주 측정 중인 경찰을 피해 도망을 치다, 결국 잡히고 만 것이다.
그런 그들이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왔는데, 그 안에 냄새가 장난 아니었다.
그래서 살폈더니 한쪽에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아직 쳐 자빠져 자고 있는 젊은 놈이 눈에 띠었다. 그런데 그 놈 상태가 영 아니었다.
오바이트 한 게 뭐 좋다고 얼굴에 쳐 바르고, 거기다가 바지가 축축하니 젖은 게....
“이야. 오줌까지 싼 거야?”
“C발. 이런데 어떻게 있으라고. 이봐. 여기 방 좀 바꿔줘.”
J씨와 K씨가 같이 있기를 거부할 정도로, 엉망진창인 채 술이 떡이 되어 널브러져 있던 백준기.
“으으으으....”
그도 염치가 있었던지 정신을 차렸다.
“여, 여기가....헉!”
백준기는 철창 쪽에 바짝 붙어서 곧 죽일 듯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인상 더럽게 생긴 범죄자형 두 남자의 모습에 기겁해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사, 사람 살려!”
그리고는 유치장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제일 먼저 의경이 뛰어왔고 그런 의경을 보고, J씨와 K씨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 옆을 빙빙 돌렸다.
백준기가 미쳤다는 소리였다. 잠시 뒤 백준기를 담당하게 된 형사가 유치장에 왔다.
“정신 좀 드셨습니까?”
“여, 여기가 어디야? 내, 내가 왜 여기 있는 건데?”
형사는 존대를 하는데 백준기는 당연하다는 듯 반말을 찍찍 내뱉으니 형사가 기분 좋을리 없었다.
“백준기씨. 당신은 어제 성상납 현장에 있다가 거기서 체포되셨습니다. 당시 백준기씨 권리는 충분히 고지했는데 너무 술에 취해 계신 터라 못 들으셨을 거 같아서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백준기씨. 당신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형사는 백준기에게 미란다 원칙을 다시 한 번 고지했다. 그러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도 알아차린 백준기가 형사에게 말했다.
“전화 좀 합시다.”
“네. 나오세....우웁....이게 무슨 냄새....”
형사는 백준기가 유치장을 나오려고 철창 쪽으로 다가오자, 그에게서 나는 이상한 냄새 때문에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섰다.
그 뒤 조사실로 갈 때까지 백준기가 풍긴 그 냄새 때문에 경찰서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불쾌한 얼굴을 하고, 괜히 백준기와 같이 움직이고 있는 형사를 째려 봤다.
“죄, 죄송합니다.”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는 데 괜히 백준기와 같이 있던 담당 형사만 주위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기 바빴다.
* * *
막상 전화기 앞에 앉은 백준기. 그는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부친인 CH그룹 백승호 회장에게 전화를 하는 게, 여기서 가장 빨리 나갈 길임은 알지만 차마 그쪽으로 전화를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TVM에 연락을 하자니 대표로 쪽팔리고. 해서 결국 백준기가 전화한 곳은....
“엄마. 나야.”
=너 어떻게 된 거야? 어제 외박했어? 좀 전에 은지 엄마가 전화 와서 난리도 아니었어. 너 이번에도 여자 때문에 외박한 거면, 더는 같이 못 살겠다는 데 어쩔 거야?
전화 한 백준기의 모친은, 그의 전화를 받기 무섭게 폭풍 잔소리를 늘어놨다. 그 만큼 백준기가 사실상 모친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아아. 진짜....엄마. 나 지금 유치장에 있거든. 엄마 고문 변호사 있지?”
=뭐, 뭐 유치장?
“변호사 데리고 올 때 옷도 좀 가져 와줘. 그리고 빨리 와. 여기 사람 있을 곳이 아냐.”
그 말에 주위 형사들이 일제히 백준기를 째려 봤다. 여기가 사람 살 곳이 아니면 여기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몇 배나 많은 형사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하지만 눈치 없는 백준기는 그런 형사들의 분노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더한 소릴 늘어놨다.
“어떻게 사람을 침대도 아닌 땅바닥에 재울 수 있어? 그뿐만 아니라 이상한 놈들하고 같이 넣어 놨지 뭐야. 아아. 맞다. 보나마나 밥도 이상한 거 줄 거 같으니까 올 때 제일 호텔 도시락 좀 가져 와. 어. 알았어. 입 꾹 다물고 있을게.”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백준기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담당 형사에게 말했다.
“나 좀 씻었으면 하는데?”
그제야 자기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걸 안 걸까? 하지만 경찰서는 씻고 싶다고 해서 지 마음대로 씻을 수 있게 배려 해 주는 곳이 아니었다. 특히 범죄인에게 여기는 절대 우습게 보여선 안 될 곳이었다. 그래도 상대가 재벌 3세임을 고려해서 담당 형사가 꾹 참으며 말했다.
“손 씻고 세수까지는 가능합니다.”
“무슨 소리야? 나 샤워해야 돼.”
“샤워는 안 됩니다.”“뭐? 샤워가 안 돼? 뭐 이딴 데가 다 있어. 여기 사장, 아니 서장 나오라고 해!”
이곳이 무슨 상점이나 식당도 아니고 행패를 부리는 백준기, 그런 그를 가만히 놔 줄 정도로 경찰서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결국....
“야! 이 문 열어!”
백준기는 씻지 못하고 다시 철창 행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가 유치장에서 나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 뒤였다. 그의 모친이 자기 고문 변호사를 대동하고 경찰서를 찾아 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