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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231화 (23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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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날이 훤히 밝았음에도 서재국이 일어나지 않자, 같이 살고 있었던 아들인 서병현이 나섰다.

“아버지. 저 병현입니다.”

서병현이 제법 크게 외쳐도 서재국이 있는 안방에 일체 기척이 없었다.

그러자 불길한 느낌이 강하게 든, 그의 아들 서병현이 결국 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 아버지?”

서병현은 딱 보고 알았다. 생기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서재국이, 침대에 한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찡그린 얼굴로 누워 있는 걸 말이다.

즉시 구급차가 왔고 서재국을 인근 병원으로 데려갔다.

물론 그때 이미 서재국은 죽은 상태였고, 응급처치 따위는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망 사실을 입에 담지 못했다.

그렇게 실려 간 병원에서, 서재국은 최종 사망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 크흐흐흑!”

“할아버지! 흑흑흑흑!”

응급차에 같이 따라 나섰던 서병현과 바로 뒤따라 차를 몰고 온, 서병현의 아들이 죽은 서재국을 보고 오열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한 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날 리 없었고, 병원에서는 서재국 전 대통령의 사인을 심장마비로 예단했다.

확실한 것은 부검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사자의 시신을 훼손 하는 일임을 알기에, 누구도 선뜻 그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

“최 원장. 당신에 보기에도 우리 아버님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거 같은가?”

“네. 제 생각도 마찬가집니다. 대통령님 연세가 워낙 많으시고, 또 전적도 있으신 터라....”

3년 전인가? 흉통으로 긴급히 병원으로 후송 된 서재국 전 대통령은, 이 병원에서 협심증 치료를 받았었다.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이 바로 갑작스런 심장마비의 주요 원인이지 않은가?

그랬던 서재국 전 대통령이 자던 중, 심장마비로 죽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군. 그렇다면 이대로 장례를 치러야겠어.”

“그러시는 게 좋겠습니다.”

병원 원장까지 찬성하자 서병현은 바로 서재국 전 대통령의 부고를 일가친척들에게 알렸다. 그러자 소문이 바로 났고,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사람들이, 병원으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해서 서병현은 이 병원 장례식장을 빈소로 정해 버렸다.

그 즉시 현 대통령과 장차관들, 여, 야를 가리지 않고 전, 현직 국회의원들이 조문을 오기 시작하면서, 상주인 서병현은 더 정신이 없어졌다.

“흑흑흑흑....아빠아~ 이렇게 가면 나는 어쩌라고....흑흑흑흑....”

상주 중에서 서재국 전 대통령의 죽음을 가장 애통해 한 건 역시 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서지현이었다.

실제로도 서재국 전 대통령에게 가장 예쁨을 받은 딸이기도 했고. 그렇다보니 서재국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의구심 역시, 서지현이 가장 크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냐. 아빠가 이렇게 돌아가실 리 없어. 오빠. 아빠 죽음에 뭐가 있어. 그러니까 우리 부검하자.”

“하아. 지현아. 나도 아버지 돌아가신 거, 지금도 믿기지 않아. 하지만 아버지는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 의사들도 그렇다고 하고.”

“돌아가시기 전에 뭘 드셨다고 들었어. 혹시 거기에 무슨 약 같은 거 탄 거 아냐?”

“하아. 그 점은 나도 의심이 돼서 경찰에 얘기했고, 경찰에서 아버지가 주무시기 전에 드셨던 다과에 대한 정밀 검사가 이뤄졌어. 그 결과 그 다과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국과수의 의견이고.”

“그, 그럴 리가 없어. 아빠는 누가 손을 쓴 거야. 그게 누군지는 오빠도 알고 나도 알잖아?”

“쉬잇! 너 말 조심 해. 네가 누굴 의심하는지 아는데....지금 그를 건드렸다간 너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 살아남지 못해.”

서병현은 실제로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런 서병현을 보고 서지현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오빠나 그 사람이 무섭지, 나는 아냐.”

그 말에 서병현이 길게 한숨을 내 쉰 뒤 말했다.

“너 딴 놈 아이 낳은 거, 그걸 빌미로 백 회장이 너와 이혼 소송 들어가면, 그때부터 너는 아무것도 아냐.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는 서재국 전 대통령의 딸이었지만 말이야. 지금은 서병현 국회의원의 여동생? 그게 과연 널 지켜 줄 수 있을까?”

서병현이 서지현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자, 서지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사실 어제 서지현은 딸 백지연처럼 백승렬 회장의 전화를 받았었다. 그때 백승렬 회장이 그랬다.

딸내미 데리고 조용히 외국으로 나가라고 말이다.

이미 자기 두 딸을 외국에 내 보내서 살게 만든 백승렬이었다.

근데 그걸 로도 모자라서 이제 그녀와 막내딸인 백지연까지 외국에 나가 살라고 하니, 서지현으로서는 당연히 그걸 받아드릴 수 없었다.

그때 백승렬 회장의 말이 서지현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서 박혔다.

=너와 붙어먹은 그 놈 말이야. 이름이 하동훈이었나? 그놈 살리고 싶으면 내 말 듣는 게 좋을 거야.

순간 서지현은 하동훈을 잡으려는 배후가 백준열이 아니라, 백승렬 회장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서지현으로서도 하동훈을 살리는 건, 이제 영영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해서 서지현은 과감히 하동훈을 버리기로 작심했다.

그래서 오히려 당당하게 백승렬 회장의 그 말을 받아쳤다.

=하동훈? 그게 누군데?

서지현의 그 대답에 백승렬 회장은 크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서지현은 부친인 서재국 전 대통령을 만나러 평창동에 가려 했다.

그래도 백승렬 회장에게 맞설 수 있는 존재는, 그녀 아빠 서재국 전 대통령 뿐이었으니까.

“안 됩니다. 사모님.”

하지만 그런 그녀를 최 집사가 제지하고 나섰고, 서지현이 지랄발광을 해도 결국 그녀는 삼명家 본가 집밖으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었다.

“최 집사 당신....내 오늘 일은 잊지 않을 거야.”

“죄송합니다. 저도 이럴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길길이 날 뛰던 그녀가 불과 한 시간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삼명家 본가를 나설 수 있었다.

“말, 말도 안 돼!”

바로 그녀가 믿고 있던 유일한 배경이었던 그녀의 아빠, 서재국 전 대통령이 별세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말이다.

그제야 최 집사도 그녀를 놓아 준 것이다. 보아하니 백승렬 회장의 허락을 받는 듯 보였지만.

처음에는 서재국 전 대통령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던 서지현, 그러다 생각이란 걸 해보니 알 거 같았다.

누가 아빠를 죽였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범인을 얘기한다고 해도, 그 범인이 처벌을 받을 일은 없었다.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정작 그 범인 지목한 사람이 도리어 처참하게 찢겨 나갈 것이다. 그 정도는 서지현도 알았다.

오빠인 서병현이 조문 온 손님을 맞는 사이, 서지현은 생각하고 또 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오후 4시쯤, 백승렬 회장이 조문하러 나타났다.

자신의 세 아들들을 데리고 말이다.

* * *

백승렬 회장은 오늘 출근하기 전 두 가지 기쁜 소식을 접했다.

하나는 하동훈이라는 작자를 잡아서 지금 서울로 데려 왔다는 소식이고, 또 하나는 평창동에 그 일이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좋군.”

그렇게 흡족한 얼굴로 출근길에 오른 백승렬 회장.

그런 그에게 노성식 경호실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리 줘.”

수행비서로부터 직접 핸드폰을 건네받은 백승렬 회장.

“나야. 말해.”

=네. 회장님. 하동훈이 말인데 어떻게 할까요?

“지금 어딘데?”

=좀 전에 그쪽에서 하동훈을 넘겨받았습니다. 일단 본사로 데리고 갈까 하는데....

“거기에 그 새끼를 왜 데리고 와? 으음. 아현동 집으로 데려 가. 나도 지금 그쪽으로 갈 테니까.”

=회장님께서 직접이요?

“그 새끼 낯짝은 봐야지. 그리고 뭐라고 하는지도 들어 보고. 그 다음....”

백승렬 회장의 살기가 번뜩였다. 하지만 통화 중인 노성식 경호실장은 그걸 볼 수 없었다.

“처리 하는 걸로 하지.”

=네. 회장님.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노성식 경호실장과 통화를 끝낸, 백승렬 회장이 수행 비서에게 말했다.

“오 실장에게 전화 넣어.”

“네.”

잠시 뒤 백승렬 회장은 오규동 비서실장과 간단히 통화를 했다.

“....니까. 오전 스케줄 한 시간씩 뒤로 미뤄. 그래.”

그렇게 이번에는 오규동 비서실장과 통화를 끝낸 백승렬 회장. 그가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아현동 집으로 가지.”

“네. 회장님.”

잠시 후 백승렬 회장을 태운 차를 비롯해서, 경호차량까지 줄줄이 다섯 대가 유턴을 해서 삼명그룹 본사가 아닌, 아현동 방면으로 움직였고 20여분 뒤 아현동 집에 도착했다.

“회장님!”

백승렬 회장이 차에서 내리자, 그를 마중 나온 노성식 경호실장이 머리를 숙이며, 그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이곳 아현동 저택은 백승렬 회장이 처음 첩으로 들였던 여자가 살던 곳이었다.

한데 그 첩이 아이를 낳다가 그만 잘못 되어, 아이와 같이 죽으면서 임자 없는 집이 되었다.

그 뒤 백승렬 회장이 이 집을 팔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집이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국가에 기부할까 했는데, 어느 날 꿈에 죽은 첩이 나타나서, 자기가 살았던 집은 팔지 말아달라고 백승렬에게 애원을 했고, 그 꿈이 기이했던 백승렬이, 그 꿈을 해몽가에게 물었더니 해몽가가 말하기를, ‘절대 그 집을 팔지 말라’고 했다.

이유는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 집을 억지로 팔게 되면 그 모자의 원한이, 역으로 백승렬 회장과 그 일족을 향하게 된다나?

백승렬 회장은 미신이나 꿈같은 걸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때 해몽가가 말한 ‘모자母子’란 말 때문에 찜찜해서, 그 집을 팔지 않고 지금까지 빈 집으로 버려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난산 끝에 죽은 첩이, 배에 가진 아이가 바로 사내 아이였던 것.

첩이 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뱃속에 아이도 사산되었는데, 그녀의 뱃속 아니가 사내였다는 건, 백승렬 회장만 아는 사실이었다.

물론 당시 첩의 죽음과 연관 있는 의료진은 그 사실을 알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첩의 뱃속 아이가 사내인지 계집인지 알아서 뭐하겠나? 설혹 알았다고 해도 지금은 다 잊었을 테고.

하지만 백승렬 회장은 지금도 그 첩과 그 아이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든 당시는 그가 사랑해서 들인 첩이고, 그런 여자가 낳을 뻔 했던 자기 아들이었으니까.

백승렬 회장이 이곳에 하동훈을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은, 이곳 집의 마당에 꽤 넓었고 수풀도 많이 우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이 집에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첩이 공예에 소질이 있어서 이 집을 지을 때, 백승렬 회장이 특별히 집 안에 가마를 만들게 했던 것이다.

비록 전기가마지만 집 안에 가마가 있다는 건, 뭘 태워서 없애기에는 이곳보다 적합한 곳도 없었다.

그걸 알기에 백승렬 회장이 하동훈을 여기로 데려 오라고 한 것이다.

“녀석은?”

“말씀하신대로 지하실에 감금해 뒀습니다.”

“그리로 가지.”

또 이 집은 유독 깊게 땅을 파고 지하실을 2층까지 두게 했다.

그리니까 지하 2층의 경우, 그 안에서 누가 뭘 해도 밖에서는 알 수가 없었다.

소리가 외부로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 방음시설까지 제대로 갖춰놨으니 말이다.

* * *

어두컴컴한 방 안.

“으으으....C발....아파 죽겠네.”

웬 남자 목소리가 그 방안을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하동훈. 남해 시청에서 헬기를 타고 서울로 날아 온 그는, 여기까지 올 때까지 그야말로 짐짝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아무짝에 쓸모없는 짐짝 말이다. 값나가는 짐짝이라면 이 모양 이 꼬락서니로, 엉망진창이진 않았을 터였다.

쓸데가 없다는 건 짐꾼들이 막 다뤄도 된다는 얘기고, 그 결과 하동훈의 몸에서 성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얼굴은 하도 맞아서 퉁퉁 부었고, 몸에 멍이나 타박상을 입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손발가락이 퉁퉁 부어 있었다.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늘어나서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하동훈의 상태로는 도망을 치라고 해도, 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뭘 잡거나 만지지도 못하고 또, 잘 걷지도 못하니 튀어봐야 금방 다시 잡힐 테고 말이다.

일단 여기가 어딘지를 알지 못하는 하동훈. 여기 올 때 역시 사지가 묶이고 눈이 가려진 상태로 옮겨진 터라, 그는 이곳이 어딘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에게는 서지현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동훈은 알지 못했다. 간밤에 그가 모셨던 서재국 전 대통령이 죽은 걸 말이다.

그리고 서지현이 이미 그를 포기한 사실도.

저벅저벅!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쿵! 철컥!

어째든 그가 지금 있는 곳의 철문이 시끄럽게 열렸고, 누가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 스위치 켜는 소리가 들렸다.

“으윽!”

그리고 어두운 실내가 환하게 밝혀졌다. 그 빛이 너무 눈부셔서 하동훈이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안에 들어왔던 자가 도로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하동훈은 그 자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자가 활짝 문을 열어 놓은 것은 바로 확인했다.

볼 수 있게 가렸던 눈을 풀어줬지만, 사지가 여전히 결박 되어져 있었던 하동훈.

그가 살아보겠다고 꿈틀거리며 애벌레처럼 기어서 열린 문 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가 그 문에 절반도 채 가지 않아서, 여러 개의 발걸음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C발....”

그들이 여기로 오고 있다면 그가 기어봤자 소용없음을 깨달은 하동훈은, 더는 미련스럽게 바닥을 기지 않았다.

그냥 벌러덩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는데, 잠시 후 그가 있는 방으로 네 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아마도 중간에 다수의 사람을 남기고 딱 네 명만 여기로 들어 온 모양이었다.

그 중 한 명이 지시를 내렸다.

“일으켜!”

그러자 그들 중 두 명이 와서 드러누워 있는 하동훈을 일으켜 무릎 꿇린 체 앉혔다.

그때 하동훈도 볼 수 있었다. 여기 들어 온 네 명이 누군지를 말이다.

“으음....”

그런데 그 네 명 중 한 명을 바로 알아 본 하동훈의 입에서 침음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럴 것이 그가 생각하기로, 여기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 여기 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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