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224화 (22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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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황치열의 그 질문에 나재석 검사가 얼굴을 굳혔다.

분명히 QH엔터 홍대복 대표는 남산 파라다이스 안에 있었다.

검거 된 사람들의 말을 들어 봐도, 홍 대표가 이곳을 벗어나서 달아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막상 여기를 아무리 뒤져도, 홍 대표는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하늘로 솟기라도 한 거처럼 말이다.

“그게 실은....”

나재석 검사는 황치열에게 사실대로 얘기했다. 어차피 다들 아는 사실이고 말이다.

“저런....”

나재석 검사의 말에 황치열이 또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홍 대표가 여길 빠져 나갔다면, 혹시나 그가 이번 일을 잘 무마하고 다시 QH엔터 대표로 돌아가서 이전처럼 잘 먹고 잘 산다면....

‘그러면 안 되지. 아까 나를 지하실에 감금시킨 것만 봐도, 그 인간 절대로 날 가만두지 않을 거 같았는데 말이야.’

생각해 보니 황치열에게 있어서 홍대복은 무사하면, 또 잘 되면 안 됐다.

그러니까 그가 살 길은 홍대복이 잡혀 감방에 들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려면 지금 눈앞의 검사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검사가 그에게 훈방시켜 주겠다는 제의까지 한 상황이지 않은가?

‘그래. 협조하자.’

작심한 황치열이 나재석 검사에게 말했다.

“홍 대표가 튀었다면 아마 회사로는 안 갔을 겁니다. 제가 아는 대표님의 숨겨 둔 부동산이 꽤 되거든요. 아마 그 중 한 곳에 갔을 겁니다.”

“호오! 그래?”

반부패부에서 특히 잘하는 게 숨겨진 재산이나 은닉한 부동산을 찾는 것이었다.

홍대복이 얼마나 잘 숨겨 뒀는지 모르지만, 나재석 검사는 하루면 그의 숨겨진 재산과 부동산을 탈탈 다 털어서, 찾아 낼 자신이 있었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다른 정보는 없어? 가령 성 상납과 관련 된 장부라든지, 아니면 동영상 찍어 둔 하드디스크라던 지 말이야.”

“홍 대표는 장부 같은 건 안 만들었습니다. 거기다 동영상이라? 그런 걸 찍는다는 낌새라도 났으면 그분들이 여길 오지도 않았겠지요.”

“그래서 없다고?”

“네. 대신 홍 대표의 협박에 억지로 성 상납을 강요당한 여배우들이 몇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제가 관리한 터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오오. 강요에 의한 성상납이라....”

뭔가 쓸 만한 건수 하나를 건졌다는 듯 흡족해 하는 나재석 검사를 보고 황치열이 하던 말을 계속 이어했다.

“홍 대표는 안 찍었을지 몰라도, 그 여자 배우 중 누군가는 혹시 찍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황치열의 그 말에 나재석 검사가 눈빛을 강렬히 빛냈다.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 그게 누군데?”

“그거야 지금부터 알아 봐야죠.”

당장이 아니란 사실에 나재석 검사는 살짝 실망스런 얼굴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프로답게 황치열이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동영상만 가져 와. 그럼 넌 그날로 훈방이니까.”

“약속하신 겁니다?”

“그래. 약속해. 빨리 알아 봐.”

“네.”

황치열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서, 홍 대표가 빚을 핑계로 그 동안 성상납을 강요 해온 여배우들 이름을 차례로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들의 연락처는 그의 핸드폰에 이미 다들 저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떠오른 여자 배우 순서대로 그는 차례차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 *

평창동에 위치한 전 대통령 서재국의 저택.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자택 경비를 담당하는 경비부대가 저택 주위에 주둔 중이었다.

하지만 저택 안까지 그 정도로 경비가 강화 된 건 아니었다.

시간이 자정이 다 되어 가고 있었기에, 저택 안에 불들은 대부분 꺼진 상황.

저택 주위의 자택 경비를 담당하던, 의무 경찰들이 조금 전 근무 교대를 마쳤다.

이때 저택의 서재가 위치한 2층 방에는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고, 그 안에 이 집의 주인인 서재국 전 대통령이 굳은 얼굴로, 원목 나이테가 보기 좋은 널따란 마호가니 책상에 홀로 앉아 있었다.

“으흠....”

그는 생각에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원래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법이지만, 서재국 대통령의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만큼 향후 그와, 그의 가문의 운명을 좌우할 중차대한 결정을, 지금 내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백승렬이 그놈이 그냥 있을 리 없는데....괜히 그런 승냥이 같은 놈에게 지현이를 맡겼어. 그나저나 딸내미와 손녀를 이대로 외국으로 보내야 하나?....당장은 다른 방법이 없군. 거기다 총선이 가까웠고....총선 뒤 권력을 쥐고 상대하느냐? 아니면 지금이라도 삼명그룹에 폭탄 몇 개를 터트려야 하느냐? 그것이 문제인데....”

원래 서재국 대통령의 성향은 저지르고 보는 편이었다. 그래서 한때 성정이 너무 불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다.

그러니까 몇 년 만 젊었더라도, 그는 지금처럼 더 생각하고 자실 것 없이 바로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80살을 훌쩍 넘긴 그의 사고 능력은 10년 전보다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나이로 봤을 때 그는 언제 죽어도 이상 할 게 없었다. 사실 그만큼 건강 상태도 좋은 편은 아니었고.

똑똑!

그때 서재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서재국 대통령이 묻자 서재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하. 다과 좀 내어 왔습니다.”

다과란 말에 서재국 대통령은 군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처럼 그가 생각이 많을 때면 그의 집에서 일하는 춘천 댁이 이렇게 다과를 내어 오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서재국 대통령을 볼 때면 꼭 각하라고 불렀다. 그래서 서재국도 집에 일하는 아줌마 중에서는 그녀를 제일 살갑게 대했다.

“들어 와.”

“네.”

잠시 뒤 복스럽게 생긴 50대 전형적인 한국의 아줌마가, 다과상을 들고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알아서 자신이 챙겨 온 다과를 응접 테이블 위에 차례대로 묵묵히 내려놓고는 조용히 서재를 나갔다.

“으음....구기자찬가?”

응접 테이블 위에 폴폴 나는 차 연기가, 벌써 서재국 대통령이 앉아 있는 책상까지 그 진한 차향을 전해 오고 있었다.

서재국 대통령은 자기 전에 부담스럽지 않게, 목 만 살짝 축이자며 몸을 일으켜 응접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 구기자차만 딱 한 모금 마시고 다른 건 손대지 않았다.

“하아....피곤하군.”

결국 서재국 대통령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그 결정을 내일로 미루며 서재를 나섰다.

그러자 저택 안에서 대통령을 경호하던 경호원이 서재국 대통령을 모시고, 그를 안방으로 모시고 갔다.

그 장면을 저택 안에서 ‘쭈욱’ 지켜보는 눈이 있었으니, 바로 좀 전 서재국 대통령의 서재에 차를 내어갔던 춘천 댁이었다.

* * *

춘천댁 이미숙. 그녀는 10년도 넘게 평창동 서재국 전 대통령의 저택에서 일해 왔다.

워낙 부지런하고 또 손끝도 야무지고 손맛도 좋아서 서재국 전 대통령의 사모, 즉 전직 영부인이 총애하던 그녀는 조용히 일 잘하는 아줌마로, 지금도 서재국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런 그녀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모습을 오늘 여럿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이상한 반응을, 그대로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저택 내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그녀가 워낙 조용하다보니, 저택 내 존재감이 없었던 것.

“드디어....여기를 떠나는구나.”

살짝 흥분된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이 저택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그녀가 이런 식으로 혼잣말을 하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 저택에 상주하며 하루 대부분을 여기서 일하며, 먹고 자고 있었던 그녀가 저녁 일을 마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옷장 깊숙이 숨겨 둔 작은 금속 박스를 꺼냈다.

그 박스는 잠금장치가 있었고, 이미숙이 비밀번호를 누르자 ‘철컥’ 하며 박스가 열렸다.

그 박스 안에 연녹색 유리 샘플 병이 있었는데, 그걸 바로 꺼낸 이미숙.

그녀가 그 샘플 병을 호주머니 속에 넣더니 이내 몸을 일으켜서 방을 나섰다. 그리곤 주방으로 가서 뭘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 된 다과상. 이미숙은 그 다과상을 들고 서재국 대통령이 있는 서재로 향했다.

이런 식으로 서재국 대통령이 서재에 오래 들어가 있을 때 다과상을 내어갔던 이미숙.

그랬기에 저택 안에서도 서재국 대통령을 근접 경호하는 경호원도, 그런 그녀를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반갑게 그녀를 맞았다. 왜냐?

“여기....”

“고맙습니다.”

그녀가 그때마다 수고 한다고 경호원에게도 맛있는 간식을 건넸기 때문에.

경호원은 자기 임무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이미숙이 건넨 한과를 벌써 하나 입속에 넣고 있는 경호원.

그런 경호원을 지나쳐서 서재 앞에 선 그녀는, 노크를 했고 곧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서재국 대통령에게 다과를 내어 주고 돌아 선 그녀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는데, 당연히 그걸 알 리 없는 서재국 대통령.

그런 이미숙은 얼마 후 서재국 대통령이 서재를 나서자, 뭔가를 들고 몰래 다시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그녀가 내어간 다과를 ‘쭈욱’ 살피더니 이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셨군.”

찻잔에 찻물이 그녀가 내어 갔을 때 보다 조금 줄어 있었다.

그것 말고 다른 한과는 서재국 대통령이 손도 대지 않았다.

그때 이미숙이 손에 들고 있던 것과 서재국 대통령이 한 모금 마신 찻잔을 바꿔치기 했다.

즉 이미숙은 서재국 대통령이 좀 전 마신 그 찻잔과 똑같은 찻잔에, 그가 마신 구기자차를 그대로 담아내서 그걸 여기로 가져 온 것이다.

그리곤 서재국 대통령이 마신 찻잔을 들고 서재 밖으로 나갔다.

찻잔에 들어 있던 구기자차는 그대로 싱크대 배수구에 버려졌고, 이미숙은 세정제까지 동원해서 그 찻잔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 뒤 그녀는 힐끗 서재국 대통령이 잠들었을 거로 보이는 안방 쪽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복수를 하는구나.”

회한에 찬 그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에서 굵은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딱 봐도 무슨 기구한 사연이 있어 보이는 이미숙.

그렇게 한참을 서재국 대통령이 잠든 안방을 쳐다보던 그녀는, 경호원의 인기척이 들리자 이내 몸을 틀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 * *

연수원 성적도 좋았고 또 결혼까지 잘한 터라, 도재욱은 승승장구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가 원하는 검사가 됐고 첫 발령지도 서울이었다. 그것도 서울서부지검.

물론 중앙지검이나 대검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그거야 서부지검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쪽으로 보직을 옮겨 갈 수 있는 일.

도재욱은 그걸 두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서부지검에서 그가 아무리 날고 기게 일해도, 좀체 중앙지검이나 대검으로 옮겨 갈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장인의 도움으로 서부지검에서는, 연수원 동기 중 가장 빨리 승진해서 부부장검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검찰의 주요 보직에 접근하지 못했다.

이러다가 자칫 지방으로 좌천 될 수도 있었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 열심히 아부도 하고, 높으신 분 청탁도 뭐든 다 들어주었다.

그랬더니 최근 좋은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바로 중앙지검의 반부패부에 자리가 하나 날 거 같다나?

그래서 거기 부장검사에게 줄을 대려고 노력 중이었던 도재욱.

그런 그에게 오늘 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고, 그게 하필 자신을 직격해 버렸다.

“씨발....”

집 안이라 어떻게 도망치고 자실 게 없었다.

“경찰입니다. 성 상납 현장에 계신 관계로, 부득이 하게 조사를 좀 받으셔야겠습니다. 서까지 동행해 주십시오.”

당장 용빼는 재주가 없는 도재욱으로서는, 형사의 임의동행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재빨리 눈치를 살폈는데 마침 형사 중에 아는 자가 있었다.

“강 형사!”

도재욱이 재빨리 그 형사에게 아는 척을 하며 그를 불렀다.

“어어? 도 검사님?”

그 형사가 놀란 얼굴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런 그에게 도재욱이 재빨리 말했다.

“강 형사. 나 지금 잠입수사 중이거든. 그래서 말인데 나 좀 여기서 빼내줘야겠어.”

“잠입수사요? 검사님이요?”

기가 차다는 듯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강 형사.

그때 도재욱은 뒤늦게 생각이 났다. 자기 지시를 안 듣고 일방적으로 판사를 찾아가서 영장 청구를 했던, 그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온 건방진 형사.

그래서 도재욱은 자기 힘으로, 그 형사를 딴 데로 보내 버렸다. 근데 그 형사가 바로 지금 눈앞의 강 형사였던 것.

‘씨발....하필....’

그러고 보니 여기는 그의 서울서부지검 관할이었다. 그런데 형사 중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그 말은....

“서 검사님. 여기 현직 검사님 한 분 계신데 어쩌죠?”

그때 눈치 없는 강 형사가 일을 쳤다. 괜히 아는 형사라고 불렀다가 좆 된 것이다.

“검사?”

확 일그러진 얼굴의 젊은 정장남 한 명이 도재욱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도재욱?”

“어어. 너는....서재석?”

하필 여기서 연수원 동기이자 법무연수원에서 검사 직무 수행 교육을 같이 받은 서재석을 만날 건 또 뭐란 말인가?

“뭐야?”

그때 반부패부장이 험악한 인상을 하고 그 자리에 나타났다.

도재욱이 그토록 만나려고 열심히 줄을 댔던, 그 중앙지검 반부패부장이 말이다.

한 번 만나기 그렇게 어려웠던 그 반부패부장을, 이렇게 쉽사리 만날 줄 도재욱인들 알았겠나?

* * *

모친인 서지현이 걱정할까 싶어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요 며칠 백지연은 그야말로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제부터였던가? 갑자기 삼명그룹 본사에서 나온 감사팀이 삼명 호텔을 탈탈 털었다.

그리곤 바로 다음날 그녀를 횡령, 배임 혐의로 중앙지검에 형사 고소를 해 버린 것.

그 때문에 다음 주 월요일에 중앙지검으로, 조사 받으러 오라는 소환장이 오늘 그녀 손에 쥐어졌다.

“하아....”

삼명家의 일원이라면 절대 받을 수 없는, 받을 일이 없는 검찰 소환장이었다.

그 말은 더 이상 백승렬 회장이 그녀를 삼명家의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진짜 뻐꾸기 신세가 됐네.”

그러니까 뻐꾸기인 그녀가 이제는 둥지를 떠날 때가 됐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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