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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허어....”
그 사이 하동훈이 변장술에 능하다는 걸 알게 된 박태식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상대가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면, 잡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테니 말이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상황실에서는, 그에 대한 대비책까지 마련해 두고 있었다.
“개들은?”
“지금 뒤에 트럭 채 싣고 오고 있습니다.”
하동훈을 잡을 비책까지 상황실에서 일일이 다 알려 주었던 것.
상황실에서 시킨 대로 하면, 제 아무리 변장술이 뛰어난 하동훈이라도 잡힐 수밖에 없다나?
그래서 박태식은 그저 본사 상황실에서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최현일 대표도 그러라고 그에게 신신당부를 했고.
“도착했습니다.”
남해에서 창선은 대교 하나 넘으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창선에 민박집이 어디 하나 두 개인가?
근데 이게 또 재밌는 것이 바닷가에 민박집 수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그곳들은 이미 본부 상황실에서 다 파악하고 있었다.
“민박집은 모두 12개. 그중 현재 손님을 받은 민박집은 3곳이다.”
즉 3곳의 민박집을 털면 하동훈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녀석의 눈치가 그렇게 빠르다니 그곳을 덮쳤을 때, 놈이 자칫 내빼버렸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3곳의 민박집을 동시에 덮친 박태식과 처리자들.
“이 방이다.”
하지만 역시나 눈치 빠른 하동훈은 그 새 튀고 없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흔적은 있었고....
“컹컹컹컹!”
박태식과 처리자들은 준비해 간 사냥개들로 하여금, 하동훈의 냄새를 실컷 맡게 한 뒤, 그냥 목줄을 아예 풀어버렸다.
그러자 사냥개들이 우르르 하동훈을 쫓기 시작했고, 박태식과 처리자들은 그 사냥개들을 뒤쫓았다.
그렇게 10여분 뒤 바닷가에 정박해 있는 한 고깃배 주위로 사냥개들이 몰려들었고, 일제히 그 배를 향해 짓기 시작했다.
“멍멍멍멍....”
이내 그 자리에 나타난 박태식과 처리자들.
“저 배에 숨은 모양이네요.”
“들어가서 잡죠?”
“아니.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병철아?”
박태식이 처리자들 중 막내를 불렀다.
“네.”
“개 한 마리 저 배에 던져 넣어 줘.”
“네.”
박태식의 지시에 처리자들 중 막내가 사냥개들 중 ,그래도 체구가 좀 작은 녀석을 안아 들고는 고깃배 위에 던져 놨다. 그러자....
“으아아아아....”
고깃배에 숨어 있는 한 노인이 괴성과 함께 고깃배에서 날 뛰다가, 결국 입에 게거품을 내물더니 쓰러졌다.
“멍멍멍....”
고깃배 위에 사냥개는 그저 배 안의 노인을 찾아내서 쫓기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박태식이 그 노인을 보고 차갑게 말했다.
“저 새끼 끌어 내.”
그러자 처리자들 둘이 고깃배로 넘어갔고 이내 노인을 들고 항구로 나왔다.
* * *
박태식은 만약을 위해 준비해 간, 개 알레르기 주사를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는 노인에게 주사했다.
“으허억! 헉헉헉헉....”
그러자 숨 쉬기 어려워 거의 질식사 수준까지 이르러서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있었던 노인이 제대로 숨을 내쉬었다. 그때 박태식이 말했다.
“변장 지워 내.”
그 말에 주위 처리자들이 노인에게 달려들어서 뜯어낼 거 뜯어내고 지울 거 지웠다. 그러자 노인이었던 사람이 어느 새 하동훈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잡았다. 하동훈.”
이제 완전한 하동훈이 된 노인. 그가 힘겹게 눈을 뜨면서 중얼거렸다.
“서, 서지현 불러....”
그때 박태식은 생각났다. 만약 하동훈을 잡게 되면 그 입부터 틀어막으라고 말이다.
삼명그룹 측에서 녀석의 입을 통해서, 무슨 말이 외부로 새어 나가는 걸 극도로 꺼려한다며 그런 부탁을 했단 것이다.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삼명그룹에서 이 일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한 처리자들을 다 손 쓸 수밖에 없다면서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이겠나?
‘다 죽여 버리겠다는 거지.’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손을 써 두는 게 나았다.
해서 박태식은 하동훈이 무슨 말을 더 하기 전에, 자기 양말 두 개를 벗어서 하동훈의 입안에 쑤셔 넣고는, 그 입을 테이프로 막아버렸다.
“우우웁, 우웁, 웁웁....”
그러자 하동훈이 발광을 하며 자기가 말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난리를 피웠다. 그걸 그냥 내버려 둘 박태식이 아니었다.
퍽! 퍽! 퍽!
박태식이 하동훈의 복부와 옆구리를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그러자 그 고통 때문인지 더는 날뛰지 못하는 하동훈. 그런 그를 보고 박태식이 주위 처리자들에게 말했다.
“또 난리치면 죽지 않을 선에서 지금처럼 두들겨 패도 좋다.”
그 말에 하동훈이 움찔하는 걸 박태식도 보았다. 아마 다시는 지금처럼 날 뛰지 않을 거 같았다.
그런 박태식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두들겨 맞기 싫었던 하동훈은, 그 뒤 얌전히 짐짝처럼 최현일 에이전시 처리자들의 차에 실려서 남해시청으로 향했고, 거기서 대기 중인 헬기에 다시 실려서 서울로 옮겨졌다.
* * *
엘리베이터를 타고 28층으로 올라간 나는, VVIP룸으로 곧장 들어갔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자는 것. 그 자는 것을 위해서 먼저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려는 데 또 전화가 걸려왔다.
“하아. 또 뭐야?”
핸드폰을 확인하니 중앙지검 반부패부의 나재석 검사였다. 그가 이 시간에 전화할 정도면 분명 급한 일 일거라 전화를 안 받을 수 없었다.
“네. 나 검사님.”
=죄송합니다. 웬만하면 내일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이게 삼명家와 연루가 된 일인지라....
“삼명家요?”
=네. 성상납 현장에서 연행 된 사람들 중에 백준기씨라고....자기가 삼명家 사람이라고 떠벌리고 있어서....저희 입장이 좀 곤란한 상황입니다.
하긴 중앙지검이 삼명그룹을 건드리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무엇보다 중앙지검장이 삼명 장학생 출신이었다.
고로 삼명家의 사람이라면 반부패부에서 잡아봐야 바로 풀어 줘야했다.
지검장이 풀어주라고 할 테니까 말이다.
“백준기가 저와 사촌인 건 맞습니다만, 그는 삼명家가 아니라 CH家라고 봐야 합니다. 중앙지검이 CH그룹 눈치 볼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네. CH그룹은 저희도 커버가 됩니다. 그렇다면 백준기씨 입건해도 문제 될 게 없겠군요?
“그렇죠. 삼명家에서 백준기 때문에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설혹 있다고 해도 제가 다 카버 쳐 드릴 테니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하십시오.”
원래는 다른 다섯 기업들처럼 블랙머니 박 비서에게 TVM에도 풋 옵션 걸고 폭락한 주식을 매입하라고 지시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자칫 백승렬 회장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생각에 거긴 그냥 뒀다. 사촌한테 너무했다고 말이다.
뭐 어차피 그냥 둬도 TVM은 내가 다 먹어치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럴 계획도 다 세워뒀고.
=감사합니다. 이 소식을 저희 부장 검사님께서 들으시면 엄청 좋아하시겠네요.
“부장 검사님만 좋아해서 되겠습니까? 나 검사님도 좋은 일 있어야지. 전에도 말했지만 다음 정기 인사 때 부부장검사로 영전하실 겁니다. 혹시 가시고 싶은 곳 있으시면 언제 시간 내서 연락 주시고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앞으로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중앙지검에 내가 긴요하게 쓸 칼 하나는 필요했다. 나는 그 칼로 좀 전 나재석 검사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나 검사와 통화 후 나는 진짜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쏴아아아아!
원래는 욕조에 들어갈까 했는데 언제 물 받고 씻고 나와 잔단 말인가? 해서 그냥 샤워만 하기로 했다. 그래도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니 어느 정도 피로가 풀리는 거 같았다.
다 씻은 뒤 수건 한 장으로 하체만 가린 채 욕실을 나온 나는, 곧장 냉장고로 가서 그 안에 맥주 캔 하나를 꺼내서 마셨다.
“캬아. 쥑인다.”
샤워 후 맥주 한잔은 언제나 진리다. ‘쭈욱’ 맥주 한 캔을 다 비운 후. 잠깐 VVIP룸의 전경을 감상하고는 그대로 자러 침대로 향했다.
* * *
홍대복은 자신의 숨겨 둔 부동산 중 한곳인, 이태원 원룸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문을 잠갔다.
이곳은 자신만 아는 곳이니, 검경에서도 여기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후우....”
홍대복은 숨을 고르며 냉장고 안에 생수 하나를 꺼내 마셨다.
차가운 물이 속에 들어가자 그나마 살 거 같았다. 정신도 번쩍 들고. 그러면서 생각을 시작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부터 파악해야 해.”
그러려면 그보다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가령 QH엔터의 브레인 김효석 본부장이나 그의 고문 변호사.
일단 남산 파라다이스를 급습한 자들이 특수통 일 공산이 큰 이상 법적으로 해박한 고문 변호사에게 전화해 보는 게 옳았다.
여기서 특수통이란 권력형 비리나, 재벌관련 소송, 또는 기타 특수한 사안들을 전담한 검사를 말했다.
“뭐야? 왜 안 받아?”
그런데 홍대복의 고문 변호사가 그의 전화를 받지를 않았다. 10번도 넘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자, 홍대복은 결국 차선으로 김효석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김효석도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이 새끼들이....”
자기는 급해 죽겠는데, 그의 이 난제를 정작 풀어줘야 할 자들이, 그의 전화를 이렇게 씹으니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른 홍대복. 그때 김효석이 세 번 전화 끝에 그의 전화를 받았다.
“김 본부장. 뭐 하느라 이제 전화를 받는 거야?”
=술 한 잔 하고 있었습니다.
“뭐? 술? 김 본부장도 술 마실 줄 알았어?”
=당연하지요. 저도 술, 담배 다 합니다. 단지 일을 해야 해서 끊었을 뿐.
가히 김 본부장다운 대답이었다. 홍대복이 아는 김효석은 지독한 일 벌레였다. 그랬기에 QH엔터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고.
“김 본부장. 일이 좀 생겼어. 그래서 김 본부장의 조언이 좀....”
=잠깐만. 안 그래도 술맛 떨어지는 데, 지금 나보고 당신하고 더 대화를 하자고?
“뭐, 뭐? 당, 당신?”
=그래. 당신. 어쩔 건데?
“김 본부장. 당신 미쳤어?”
=미친 건 당신이지. 사표 쓴 사람한테 조언을 듣겠다고? 진짜 술맛 다 떨어지게....끊어!
뚜뚜뚜뚜뚜뚜....
홍대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김효석의 반응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사표 썼다는 사실에 놀랐다.
분명 오늘 낮까지만 해도 김효석은 괜찮았다. 홍대복이 그의 말을 좀 무시하긴 했지만 그거야 늘 있어 온 일이었고.
근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김효석이 회사를 관두게 되었는지 그게 궁금해졌다.
그래서 김효석이 QH엔터에서 맡고 있던 콘텐츠 사업부의 한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어. 그러니까 황치열이 그 새끼 때문에 김효석이 관뒀단 말이지? 하아. 이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천을 다 흐려 놓을 꼴이군.”
아까까지만 해도 QH엔터의 대들보였던 황치열이 졸지에 미꾸라지 신세가 됐다.
홍대복으로서는 지하실에 가둬 둔, 황치열을 직접 손보지 못하고 그대로 두고 이렇게 온 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밀실은 몰라도 지하실은 그 특수통에서 눈치 챘겠지?”
근데 이게 또 문제인 게, 황치열이 QH엔터의 성상납을 주도해 오다보니 그쪽으로다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증언을 할 수도 있었다.
“민식이가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홍대복은 자신의 지시를 받고 황치열을 남산 파라다이스 지하실에 가둔, 그곳에서 조폭들을 이끌었던 김민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특수통의 급습에 잡히지 않고, 남산 파라다이스를 무사히 빠져 나왔기를 속으로 기도하면서 말이다.
=네. 형님!
“민식아. 너 무사했구나?”
=네. 황치열이 지하실에 처넣고 나서, 잠깐 밖에 바람 쐬러 나갔는데 그때 놈들이....
“다른 애들은?”
=거기 있던 애들은 다 잡혀 들어갔고, 쉬고 있던 애들 지금 불러 모으고 있는데 7명밖에 안 됩니다.
“7명이 어디야. 걔네들 데리고 지금 이태원 쪽으로 와라.”
아무래도 혼자 보다야 여럿이 나았다. 당장 자신의 신변부터 보호해 줄 사람도 필요했고.
늘 주위에 조폭들을 달고 다니던 홍대복. 그들 없이 움직이자니 속 빈 강정 같달 까? 허전해서 도저히 안 되겠기에, 김민식과 7명의 조폭들과 합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 * *
홍대복의 예상대로 남산 파라다이스 지하실에 감금 되어 있었던 황치열. 그를 중앙지검 반부패부 사람들이 찾아냈다.
“저는 보시다시피 감금당해 있었습니다. 피해자라고요.”
“그건 조사 받아 보면 알 일이고. 일단 같이 가 주시지요.”
그렇게 황치열이 지하실에서 나오자마자 그의 정체가 탄로가 났다.
“황 차장님!”
“저희 이제 어떡해요?”
당장 남산 파라다이스 관리 직원들이 그를 붙잡고 늘어졌던 것이다. 왜냐하면 어째든 그들의 상사는 황치열이었으니까. 어째든 그가 책임져줘야 그들의 죄도 가벼워 질 테니 말이다.
“쯧쯧, 피해자라더니....하여튼....”
그런 황치열을 지하실에서 데리고 나온 검찰 수사관이 혀를 차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나재석 검사가 황치열에게로 곧장 다가와서 말했다.
“당신이 여기 관리 책임자라면서?”
“네? 그, 그게....”
황치열이 열심히 눈 굴리는 게 나재석 검사의 눈에도 훤히 다 보였다. 나재석 검사도 검사 생활 5년째였다. 이런 부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 잘 알았다.
“우릴 돕는다면 정상참작이 될 거고, 잘만 하면 훈방 조치까지도 가능한데?”
“훈방이요?”
황치열이 반짝 눈빛을 빛내며 나재석 검사를 쳐다봤다. 그러자 나 검사가 웃으며 말했다.
“할거야? 말거야? 싫으면 딴 사람 알아보고.”
너 아니어도 자기를 도울 사람은 많다는 듯 말하는 나재석 검사를 보며 황치열이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그리곤 궁금하다는 듯 나재석 검사에게 물었다.
“근데 저희 사장님은 잡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