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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최현일은 이번 일을 직접 의뢰한 삼명그룹 경호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통화 연결 음이 딱 한 번 울리고, 삼명그룹 노성식 경호실장이 그의 전화를 받았다.
=뭐야? 벌써 끝난 거야? 역시 최 대표야. 허허허허.
전화를 받자마자 사람 무안하게도, 자기 멋대로 헛물을 켜고 있는 노성식 경호실장.
그런 그에게 최현일이 정중히 사과를 하며, 하루의 시간을 더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사람이 싹 돌변한 노성식 경호실장.
=최 대표. 당신이 된다며? 우리 회장님 오늘 중으로 처리 되는 걸로 알고 계신단 말이야.
“하지만 현장 사정이란 게....
=아아. 난 몰라. 오늘 중으로 무조건 해결해. 아니면 당신과 나 둘 다 죽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해병대 장성 출신인 노성식 경호실장의 성격은 누구보다 최현일이 잘 알았다.
그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사람이었다. 그가 둘 다 죽는다면 진짜 둘 다 죽을지 몰랐다.
“일이 그 정도까지 꼬인 겁니까?”
=하아. 나도 현장 사정 왜 몰라? 그런데 회장님께서 그러시더라고. ‘그 말 지키는 게 좋을 거야.’라고 말이지. 그 말 듣는 데 등골에 식은땀이 나더라. 안 그래도 지금 여기 본사 분위기 좆같은데, 나 백수 되면 안 돼. 최 대표도 알잖아? 내 자식들 아직 대학생인 거?
“잘 알겠습니다. 어떡하든 현장에서 해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하면 돼. 최 대표. 군인 정신! 알지?
노성식 경호실장에게, 그 뭐 같은 군인정신 얘기까지 듣고 통화를 끝낸 최현일.
그가 다시 경남 남해의 현장에 나가 있는 박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어떻게 됐습니까?
“태식아. 일이 제대로 꼬였다.”
=네?
“그게 삼명그룹에서....
최현일로부터 자초지종을 전부 듣고 난 박태식. 그가 길게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오늘 안으로 그 놈 잡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누가 결정적인 정보라도 제공한다면 또 모를까요.
그때였다. 상황실 안에 있던 허재훈이 뛰어나와서 최현일을 향해 외쳤다.
“대표님. 하동훈에 대한 결정적인 제보를 하겠다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뭐? 태식아. 잠깐 기다려. 내가 좀 있다가 연락할 테니까.”
최현일은 박태식의 다음 말은 듣지도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허재훈이 다시 들어 간 상황실로 뛰어 들어갔다.
“무슨 소리야? 제보라니?”
최현일의 말에 허재훈이 지금 그 전화를 받고 있는 상황실 직원에게 말했다.
“스피커폰으로 통화 해.”
“네.”
그렇게 상황실 직원이 전화기 상태를 스피커폰으로 돌리자, 전화를 건 상대의 목소리가 비로소 최현일에게도 들려왔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어째 귀에 익은 최현일이었다.
* * *
문대식은 남산 파라다이스에서 15분여 정도 떨어진 거리의 문화 병원 응급실로 강지영을 데려 갔다고, 내가 탄 차의 운전석 경호팀원이 말했다. 당연히 내가 탄 차는 그리로 가는 중이었고.
지이이잉!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려서 확인하니 김훈 대표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런데 갑자기 국내에 중요한 일이 생겨서 외국에 나가는 게 유보 됐단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궁금했지만, 우리가 그것까지 꼬치꼬치 캐물을 사이는 아니잖은가?
그렇다고 문자 받았는데 답장을 해 줘야 할 거 같고. 그래서 지금 생각나는 생각을 그대로 답 문자로 보냈다.
그 뒤 문화 병원에 도착한 나는, 당연히 강지영이 응급실에 누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쪽으로 움직였다. 당연히 내 경호팀원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네? 특실이요?”
그런데 강지영은 이미 몇 가지 검사를 마치고, 현재 특실에 있다는 응급실 당직 의사의 말에,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서 특실로 향했다. 여전히 경호팀원들을 달고서 말이다.
“어때?”
널찍한 특실 안. 문대식이 혼자 강지영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가며 내가 묻자 그가 바로 대답했다.
“검사 결과 영양실조와 함께 살짝 폐렴 끼가 있다고 하네요. 이 링거 맞고 나면 상태가 크게 호전 될 거랍니다.”
“다행이네.”
“근데 가족에게 연락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문대식의 그 말에 나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거 없어. 그냥 간병이 구해.”
“네?”
“아버지라고 하나 있는데 지금 강원랜드에 있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문대식도 바로 알아먹었다. 도박장이 아버지는 아픈 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문대식도 아는 것이다.
나는 문대식이 간병이를 구하러 간 사이, 한 시간 가량 강지영의 곁에 있었다.
“으으으....”
그리고 정신을 차린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여, 여긴....”
강지영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한 여자였다. 링거의 효과 때문인지 모르지만 누워 있던 병원베드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는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그냥 누워 있어요. 보시다시피 여긴 병원입니다.”
“병원이라고요?”
강지영은 병실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의 팔뚝에 꽂힌 바늘과 링거 줄을 보고, 여기가 진짜 병원이란 게 실감 나는 모양이었다.
“무슨 병실이 이렇게 넓어요? 그리고 전혀 병실 같지가 않아요.”
그야 당연하지. 여기 특실의 하루 입원비만 백만 원이 넘으니까.
강지영은 그래도 내가 구면이라선지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다 했다.
그때 내가 기다리고 있던 문대식이 드디어 간병인을 구해서 돌아왔다.
아무래도 시커먼 남자들 보다야, 이모 같은 나이 조금 있는 간병인 아줌마가, 강지영에게도 편할 터라 우리는 그녀를 간병인에게 맡기고 그 병실을 나왔다.
자세한 얘기는 내일 하자고 하고서 말이다. 강지영도 약기운이 돌자 또 잠이 쏟아지는 듯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문화 병원을 막 나선 내가 오늘 내 집이라고 볼 수 있는 백제 호텔로 갈 때였다.
지이이잉!
내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아까 나한테 문자 보낸 김훈 대표였다.
“뭐지?”
김훈 대표가 이 밤에 나에게 전화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그것이 궁금해서 나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양해 좀 구할 일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무슨 양해요?”
=혹시 삼명그룹에서 하동훈을 어떻게 처리할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왜요?”
=실은 저희 처리자들 에이전시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나는 김훈 대표의 간략한 설명을 듣고 나서 대답했다.
“네. 바로 알아보고 연락 할게요.”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대표님과 꼭 ‘같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뭐....”
=저는 지금 김해공항에 와 있습니다. 곧 남해로 갈 건데 혹시 주말에 시간 되시면, 남해로 오십시오. ‘같이’ 낚시도 하고, ‘같이’ 회도 먹게 말입니다.
“알다시피 내일은 골프 약속이 있어 어렵고, 모레 일요일에 급한 일 없으면 한 번 가도록 하죠.”
=네. 그럼 연락 주십시오.
* * *
통화하는 내내 김훈 대표가 ‘같이’라는 말을 자꾸 써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보아하니 내가 보낸 답 문자가, 김훈 대표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어디 보자.”
나는 내 핸드폰의 연락처에서 오규동 비서실장의 전화번호를 찾아내서, 곧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일은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오 실장이 제일 잘 알았다.
=네. 도련님.
재깍 내 전화를 받는 오 실장. 아무래도 백승렬 회장의 과도한 애정의 여파가 그의 비서실장에게도 영향을 미친 듯싶었다.
“뭐 좀 물어 보려고요.”
나는 굳이 늦은 시간에 전화 한 것에 대해, 오 실장에게 양해 말 따위는 구하지 않았다. 그가 내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물론 오 실장을 포섭하려는 내 계획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게 서두른다고 될 것이 아니란 것도 안다.
=네. 말씀하십시오.
“오늘 아버지가 지시하신 것 중에 하동훈 건 말인데요. 어떻게 처리하기로 했습니까?”
뭐 이 정도는 물어도 대답해 줄 수 있겠지 싶었는데 역시 나였다.
=그 건은 경호실에서 맡았는데, 제가 알기로 오늘 안으로 처리가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요?”
오늘 중이라면 이제 한 두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새벽과 아침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어째든 백승렬 회장이 그 일에 대해 보고를 받는 건, 내일 아침 출근해서 일 테니까.
즉 시간적으로 봤을 때, 하동훈을 처리하는 데까지, 아직 10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다고 보면 됐다.
“시간이 제법 촉박하군요. 알겠습니다.”
그 말 후 나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내가 그렇게 한 이유는 일부러 오규동 비서실장의 성질을 건드려 보기 위함이었다. 즉 이 일을 두고 그가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이면, 그걸 핑계로 그에게 접근하려는 의도에서 말이다.
그러니까 비서실장 오규동을 낚기 위한 미끼를 내가 던진 셈이었다.
그 뒤 나는 바로 김훈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고, 오규동 비서실장이 말한 그대로를 그에게 전달했다.
=역시. 잘 알았습니다. 이걸로 모든 게 명확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뭘요. 하시는 일이나 잘 되길 바랍니다.”
=내일 골프 끝나고 나서, 모레 일정 괜찮으시다 싶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그럴게요.”
그렇게 김훈 대표와 막 통화를 끝냈을 때, 나를 태운 차가 백제 호텔 앞에 도착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문대식이 따라 내리면서 내게 말했다.
“이제 진짜 나가시면 안 됩니다.”
“알았어. 나도 피곤해. 들어가서 바로 잘 거야.”
그렇게 나는 문대식과 경호팀원들과 작별을 하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 호텔 로비는 한산 했는데, 그 로비를 막 가로질러 갈 때 개방형 로비 소파에 펼쳐져 있는 경제지가 눈에 띠었다.
“아아. 맞다.”
그러고 보니 까먹은 게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면서, 핸드폰을 꺼내서 블랙머니 박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준열이 아는 박 비서는 이 시간에 잘 인간이 아니었다.
=네. 대표님.
전화벨이 세 번 울리기 직전 내 전화를 받는 박 비서. 그에게 내가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부르는 기업에 주식들 말이야. 만약 블랙 머니가 보유하고 있으면 내일 장이 열리자마자, 바로 팔아 치우라고. 그리고 그 기업들에 풋 옵션 걸고....”
내 생각이 맞다면 오늘 밤에 중앙지검 반부패부에서 거둔 쾌거는 2-3일 묵힐 공산이 컸다.
왜냐하면 거기 있는 최상류층들의 저항이 만만찮을 테니 말이다.
그들은 법꾸라지 마냥 반부패부의 그물망을 잘도 빠져 나가려 들 것이다.
실제로 그게 가능할 것도 같았고. 하지만 내가 반부패부에 제공할 확실한 증거가 최종적으로 그들을 옭아매게 될 것이고 기소까지 일사천리로 진행 될 것이다.
‘그리고는....’
펑하고 터질 것이다. QH엔터 대표의 성 상납 현장에서 검거 된 15명의 최상류층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말이다.
“거기가 어디냐면 미래기업, 제일 푸드, 동화신문, 아리랑 호텔, 동북제약, 이상 다섯 곳이고 거기 주가가 폭락하면, 최저점에서 풋 옵션 행사로 번 수익으로, 다시 그들 주식을 사 들이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당연히 잘 알죠. 대표님. 드디어 다시 ‘투자의 신’으로 복귀하시는 겁니까?
이 늦은 시간 내 지시에 박 비서는 불만은커녕 오히려 흥분해서 물었다.
그런 그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잠깐 고민했다가, 나는 이번에도 김훈 대표 때처럼 내가 지금 박 비서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내뱉었다.
“복귀는 무슨. 눈에 맛있는 먹잇감이 보이는 데 그걸 어떻게 그냥 지나쳐? 그건 아니지 않아? 박 비서?”
=그, 그렇죠.
“그럼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보자고.”
=네. 대표님.
박 비서와 통화가 끝났을 때 내 눈앞에 엘리베이터 문이 ‘쩌억’ 하니 입을 벌렸다.
* * *
김포공항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김해공항에 도착한 김훈 대표. 그는 도착하자마자 자기 회사 분석실과 계속 통화를 했다.
“크하하하하. 그러니까 우리 예상대로 된 거로군. 하동훈. 그 놈이 제대로 최현일의 애새끼들을 엿 먹인 건가?”
공항 터미널 라운지에서 대 놓고 크게 웃는 김훈. 그런 그를 주위 사람들이 흘깃거리며 쳐다봤는데, 정작 김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치 주위에서도 보란 듯 라운지를 활보하며 그가 나갈 제 1터미널 출구 쪽으로 쭉 걸어갔다.
그렇게 김훈이 터미널 밖으로 나오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그의 회사 처리자가, 그 앞에 차를 정차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본 김훈은 분석실과의 통화를 끝냈다.
“또 연락하지.”
그리곤 그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하는 처리자에게 물었다.
“하동훈은 지금 어디 있나?”
그 물음에 처리자가 바로 대답했다.
“지금 남해에서 창선으로 간 상탭니다. 좀 전 알려 온 얘기로는, 창선 인근 바닷가 민박집에 있다고....”
“창선이면 남해와 가까운 곳 아니야?”
“네. 남해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거기가 창선입니다.”
“등잔 밑을 노리겠다! 역시 보통 놈이 아냐.”
절레절레 고개를 내 젓던 김훈. 그는 그렇게 잠시 그를 마중 나온 처리자와 대화를 나눈 후, 정차 중인 차에 탑승했다.
부우우웅!
그리고 그 차는 곧장 사천 쪽에 위치한 창선으로 내달렸다. 차 안에서 김훈은 다시 서울의 자기 회사 분석실에 전화를 걸었고, 현재 남해에서 최현일의 에이전트 쪽 처리자들이 얼마나 곤욕스러워 하는지, 또 서울의 최현일이 아직 퇴근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또 큰 소리로 웃었다.
“크하하하하. 꼴좋다. 이제 슬슬 임도 보고 뽕도 따 볼까? 예정 된 대로 연락 해. 아아. 잠깐! 아니다. 내가 직접 그쪽에 연락하도록 하지.”
원래 계획과 달리, 김훈은 최현일을 직접 상대하기로 생각을 고쳐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