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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오규동은 쪼르르 그쪽으로 갔고, 그를 본 백 회장이 턱짓을 하며 말했다.
“앉아.”
그러자 오규동이 백 회장의 오른쪽 응접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때 백 회장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말했다.
“서지현이 그년....어디 좀 멀리 보내야겠어.”
“네?”
백 회장의 그 말에 놀란 오규동이 동그래진 눈으로 백승렬 회장을 쳐다봤다.
그러자 백 회장이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것이 비서실장이 회장님 말씀에 눈을 부라린 꼴이었으니까.
“죄, 죄송합니다.”
오규동은 황급히 눈을 내리깔고 머리를 거듭 숙이며 말했다.
그런 오규동을 보고 백 회장이 하던 말을 마저 이어 했다.
“서지현이 그년하고 그 딸내미도....이번 기회에 내 눈에 띠지 않게 만들고 싶은데....”
말이 ‘싶은데.’지. 그렇게 만들라는 지시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왜? 서지현은 공식적인, 아니 법적인 백승렬 회장의 부인이다.
그런 그녀를 자기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비서실장 앞에서 ‘그년’이라고 부른 건, 백 회장의 입장에서도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또 엄연히 자기 딸인 백지연을 남의 자식 얘기하듯 말하고 있었다.
물론 오규동도 백지연이 백 회장의 친딸이 아닌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사실을 숨기며, 친딸처럼 키워 온 건 백 회장 본인이 아니었던가?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백지연을 갑자기 남 취급한다는 게, 오규동으로서도 쉽게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막말로 그래 놓고 백 회장 마음이, 또 언제 바뀔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대답이 없네? 자네도 이제 다 된 모양이로군.”
“아, 아닙니다. 당연히....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내가 따로 얘기 해 둘 테니까. 별다른 저항은 없을 거야.”
백승렬 회장의 그 말에 오규동의 굳어 있던 얼굴이 금방 펴졌다.
백승렬 회장이 사모님과 백지연 대표에게 얘기를 한다면, 일은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 모녀가 어디서 살지 정하게 하고, 그 제반 사항을 챙기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런 오규동의 반응에, 백승렬 회장은 속으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예전의 그 빠릿빠릿하던 오규동이 아니야. 겁도 많아졌고.’
이미 막내 백준열에 대한 승계 작업을 시작한 백승렬이었다.
그 작업이 빠르게 탄력을 받으려면, 자신의 수족들 역시 그와 손발이 맞아야 하는데, 그의 오른팔, 왼팔인 비서실장과 미전실장은 남의 수족 역할을 하거나, 딴 주머니를 차고 자기 꺼 챙기기 급급했다.
그래서 백승렬 회장은 과감히 두 팔을 잘라 낼 생각이었고, 그 중 한 팔은 이미 감사실장 시켜서 자르게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다른 한 팔도 곧 잘라야 할 거 같았다.
“나가 봐.”
“네. 회장님.”
들어 올 때 눈치 보던 오규동은 나갈 때는,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무래도 미전실장이 잘린 걸 두고, 자신이 그 이권에 개입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럴 경우 오규동의 그룹 내 입지는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미전실장 자리를 두고, 그룹 임원들이 다들 오규동의 눈치 보기 급급할 테니 말이다.
* * *
홍대복은 좀 전 백준기가 백준열 앞에 무릎을 꿇은, CCTV영상을 따로 편집해서 USB에 담았다.
“이거면 TVM에 우리 연예인들 출연하는 건 앞으로 문제없겠군.”
그 사이 백준열은 그 방을 나갔고, 혼자 남은 백준기는 미쳐 날 뛰다가 양주를 물마시듯 퍼 마시더니 이내 뻗어버렸다.
“쯧쯧.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겠군.”
시간을 확인하니 12시가 다 되어갔다. 홍대복이 초대한 손님들 중 2명은 이미 본일 다 보고 남산 파라다이스를 떠나고, 다른 손님들도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근데 손님 중 몇 명이, 또 여자 연예인들을 데리고 나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건 안 되는 일이었다. 남산 파라다이스에서는 여기 들어 올 때처럼, 나갈 때도 혼자 나가는 게 원칙이었다.
그러니 이 안에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게 시설을 갖춰 놓은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뒷북치는 인간들이 있었다. 대개는 술에 취해 진상 짓으로 그러는 경우가 많았다.
해서 그런 손님들을 위해서는 그들이 타고 온 차량을, 미리 파라다이스 입구 앞에 대기 시켜 두게 했다.
그리곤 여자 연예인과 같이 나가게 했다가, 손님만 그 차에 쏙 태우고 여자 연예인은 도로 빼내는 식으로 해결을 해 왔는데, 아무래도 그 방법을 오늘 또 써야 할 모양이었다.
홍대복이 막 그 지시를 여기 조폭들의 우두머리인 김민식에게 전화하려 할 때였다.
“어?”
그가 보고 있던 컴퓨터 화면에 경찰차가 갑자기 한 대 나타났다.
바로 CCTV외부 카메라에서 실시간으로 찍힌 장면이었다. 근데 그 경찰차 뒤로 차량 여러 대가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 저거 뭐야?”
그 경찰차와 차량들은 남산 파라다이스 주위를 삽시간에 에워싸더니, 그 안에서 경찰과 형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맙소사!”
그걸 보고 질겁한 홍대복. 그가 황급히 통제실에 있던 안마 의자를 밀었다.
그러자 안마 의자 뒤편에 작은 문이 나왔고, 그 문을 연 홍대복은 기어서 그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문 안은 통로가 있었고, 그 통로를 기어서 5분여를 움직이자, 옆집 벽에 면한 남산 파라다이스 벽 끝에 다다랐다.
퍽! 퍽!
홍대복은 입구를 막고 있던 시선 차단 창을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그 창이 빠져 바닥에 나뒹굴었고 홍대복은 벽 안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는 경찰의 눈을 피해서 황급히 남산 파라다이스를 빠져 나와서는 큰 길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강남 일진 타워 빌딩으로 갑시다.”
홍대복은 자신의 소속사인 QH엔터가 있는 건물로 가자고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내 목적지를 변경했다.
왜냐하면 경찰이 어떻게 알고 남산 파라다이스를 급습했는지 모르지만, 그곳이 QH엔터의 성상납 장소임을 알고 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QH엔터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었다.
해서 홍대복은 자신의 숨겨 둔 부동산 중 한 곳인 이태원의 원룸으로 향했다.
일단 그곳에서 숨 좀 고르면서 사태 파악에 나설 생각으로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하지만 거기로 가는 동안,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단 단속 같은 건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 경찰서에 칠한 기름칠 값만 얼만데.
단속이 있다면 경찰서에서 미리 알려 줬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은 경찰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사복 경찰들 사이에서 유독 형사 같아 보이지 않는 자들이 있었지. 참.”
홍대복은 바로 검찰이 의심 됐다. 그렇지만 검찰에도 홍대복의 사람은 있었다.
특히 오늘 성 접대 자리에 이곳 관할 지검의 부장검사도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지검이 아닌 특수통 검사가 이번 일을 벌였을 공산이 컸다.
“에이씨. 누군지 몰라도 이번 일을 꾸민 놈....절대 가만 안 둬.”
홍대복은 분통 터져 하며 복수를 다짐했지만, 정작 거기 있었던 사람들 중 누구도 하나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아니더라도 다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소위 말해서 최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으니까.
* * *
백준기는 홍대복 앞에서는 한껏 허세를 부렸다. 하지만 그가 나가고 나자 내게 바짝 엎드렸다.
“준열아. 내가 다 잘못했다. 그러니 TVM의 광고문제와 CH그룹의 대출금 상환 건 좀 해결해 주라.”
“여기 좋다더니 순 별로더라고.”
나는 백준기의 말은 그냥 흘려듣고 내 할 말만 했다. 그게 무슨 소리이겠나?
백준기의 부탁을 들어 줄 생각이 없다는 거다. 녀석도 그 정도 눈치는 있는 모양이었다.
해서 어떤 식으로든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 술을 따라주고 마시게 하려 했다.
“형은 안 마셔?”
“어? 어어. 나도 마셔야지.”
하지만 나는 이제 시작이고 백준기는 벌써 꽤 술을 퍼 마신 상태. 그런 그와 대작을 하면 결과야 뻔했다.
“자자. 마셔. 근데 이제 여자들 좀 부르면 안 될까?”
아무래도 자기보다 여자들이 들어오면 분위기도 살고, 또 여자들로 하여금 백준열에게 술을 퍼마시게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백준열이 싫다고 했다. 여기 이상한 곳이라면서. 여자 호스티스들을 여자 연예인으로 둔갑시킨다나?
당최 그게 뭔 소린지 술에 취한 백준기는 알 수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할 말 다 한 거면 나 이제 가도 되지?”
“뭐?”
“내가 말했잖아? 여기 구리다고. 나 간다.”
나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나를 백준기가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이제동의 싸움 능력을 각성한 내가, 술 취한 백준기에게 잡힐 리 있나?
“준열아. 제발. 이렇게 무릎 꿇을 게. 너 좀 살려주라.”
하지만 백준기가 무릎까지 꿇은 탓에 살짝 방심을 한 거 같았다.
당연히 녀석의 무릎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진 못한다. 나는 내게 무릎 꿇은 백준기의 몸에 둘러져 있는, 가식과 거짓의 빛인 진한 회색빛을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흥! 연기력이 제법이네. 이번 기회에 연기자로 직접 나서 보는 건 어때?”
그 말 후 나는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가려 했고, 그런 나를 백준기가 그대로 덮치면서 내 바짓가랑이가 녀석에게 잡히고 말았다.
“하아....”
뭐 녀석을 뿌리치는 건 일도 아니지만, 이런 놈에게 잡혔다는 사실이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뭐 결국에 나는 그 방을 나왔고 녀석은 그 방 안에서 생 지랄을 떨었다.
안 봐도 안에서 나는 온갖 욕설과 때려 부수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곧장 발코니 쪽으로 나갔고, 거기서 핸드폰을 꺼내서 중앙지검 반부패부의 나재석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어딥니까?”
=지금 막 남산 타워 지났습니다.
남산 타워에서 여기까지는 차로 10분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10분 뒤에, 반부패부의 검사들과 사법경찰관들이, 다른 쪽 경찰서 형사들의 도움을 받아 여길 쳐들어온다는 얘기다.
“아직 파티가 진행 중이니 검거 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저희 부장검사님께서도 고맙다는 말을 전해 달라 시네요.
“뭘요. 이런 성상납 장소가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일 수 없게, 단호히 처단해 달라고 부장검사님께 전해 주십시오.”
=네. 꼭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나재석 검사와 통화 후에도 계속 남산 파라다이스에 있었다.
내가 여기서 움직이면 그걸 보고, 따라서 여길 나가려는 자들이 속출할 수 있었다. 그
게 우려 된 나는 반부패부에서 여길 급습할 때, 나재석 검사의 도움을 받아 여기서 조용히 빠져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응?”
그런데 이 집 안에 있어야 할 집 주인 격인 홍대복 대표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개코」 아이템을 사용해서 냄새를 맡았다.
그랬더니 그의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나는 그 냄새가 나는 쪽으로 갔는데, 거기는 출입문 대신 커다란 벽장이 가로 막고 있었다.
“뭐지? 킁킁킁....”
나는 다시 냄새를 맡았고, 벽장 안쪽에 홍대복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벽장을 살피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그걸 건드렸다.
그랬더니 달칵 소리와 함께 벽장이 스르르 미끄러지듯 옆으로 움직였고, 그 안에 빈 공간을 발견했다.
그 공간의 바로 옆쪽으로 출입문이 따로 보였다. 거기 문을 열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홍대복 대표의 냄새가 또렷하게 났으니 말이다.
“뭐야?”
그때였다. 갑자기 홍대복 대표의 냄새가 내 후각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이겠나?
철컥!
나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고 문고리를 돌렸다. 하지만 문이 안에서 잠겨 져 있었다.
“젠장....”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럴 때 아무 문이든 열 수 있는 마법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디링! 견신이 그런 스킬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스킬을 원하면 줄 수 있다는데....어떻게 받겠습니까?[Y/N]
“아아. 맞다. 스킬을 하나 받기로 되어 있었지. 참.”
나는 더 생각하고 자실 것도 없이 속으로 ‘예스’를 외쳤다.
언제 견신이 나를 실망시킨 적이 있었던가? 견신이 준다는 건 무조건 다 받는다.
그게 설혹 독이라도 말이다. 그 정도로 견신에 대한 나의 신뢰는 맹목적이다.
-디링! 견신이 당신의 그런 생각에 감복해 마지않습니다. 원래는 열수 있는 문을 ‘방문’으로 한정 지으려 했으나 거기에 ‘차문’까지 더해서 열 수 있는 ‘만능 오프너’ 스킬을 지급합니다.
그 말 이후 견신 시스템이 내 눈앞에 바뀐 상태 창을 띄웠다.
[이름: 백준열(Lv6)]
[나이: 27]
[보유 아이템: 「개눈깔」(2Up), 「개좆」(Up)], 「개목걸이」(1Up), 「개코」(Up), 「개방울」(Up)
[보유 스킬: 「말하는 개」(일,Up), 「충견」(일,2Up), 「개 끗발」(역,Up), 「개호구」(역,1Up), 「만능 오프너」(일,Up-방문, 차문 한정)
[인벤토리: 개톤백(In)
[특성: 개(3차UP완료)]
*냄새를 잘 맡습니다.*
*소리가 잘 들립니다.*
*멀리 봅니다.*
*행동이 빠릅니다.*
*잘 짖습니다.*
*교미 합니다.*
*친화력이 뛰어납니다.*
[개지수: 40]
나는 일단 상태창의 보유 스킬 항목에서 「만능 오프너」스킬이 생긴 것을 확인하고 나서, 눈앞에 상태창을 바로 지웠다.
왜냐하면 지금은 눈앞의 방문을 여는 게 먼저였으니까.
나는 속으로 「만능 오프너」스킬을 사용하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달칵!
그러자 마치 문이 애초에 잠겨 있지 않았다는 듯 즉각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