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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211화 (2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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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경기도지사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백지연과 백준열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서지현에게 혼담 얘기를 꺼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서지현은 백준열은 몰라도, 백지연은 아직 결혼 시킬 생각이 없었다.

‘아니. 지연이가 결혼하는 건 무조건 손해야.’

누구 좋으라고 지연이를 결혼 시킨단 말인가? 백지연은 장차 백승렬 회장 뒤를 이어서 삼명그룹을 물려받아야 할 아이였다.

서지현은 아직까지 자기 딸인 백지연을, 삼명그룹 주인으로 만드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허황된 생각인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 아들 녀석이라서가 아니라, 그 놈이 좀 잘 나긴 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쭉 공부하면서 그 어렵다는....”

자기 아들 자랑에 침까지 튀겨가며 열정적으로 말하는 경기도지사. 하지만 그런 그의 흥을 서지현이 바로 깨버렸다.

“저희 딸은 이미 혼처가 있어요.”

“네에? 아아....그, 그렇습니까?”

경기도지사의 얼굴빛이 확 어두워졌다. 그가 알아 본 바에 따르면 백지연은 아직 혼처가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친이 있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그저 자기 아들이 탐탁지 않아서 반대한다고 생각할 밖에.

그러니 경기도지사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어두웠던 얼굴이 한순간 싹 밝아졌다.

“대신 저희 막내아들과, 따님이 선을 보는 건 어떨까요?”

백준열이야 누구랑 결혼하든 말든 상관없는 서지현이었다.

안 그래도 여자관계가 복잡한 백준열이었다. 오히려 지금 경기도지사의 여식과 맺어 주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 그래주시겠습니까? 저희 딸이 외모는 좀 부족하지만, 그 이외 부분은 어디 내 놔도 손색이 없는 참한 아입니다.”

하지만 여자가 외모 떨어지면 다 떨어지는 거다. 특히 외모 따지는 백준열이 행여나 경기도지사의 여식을 마음에 들어 하겠다.

“그럼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도지사님을 보면 따님 또한 요조숙녀에, 가정교육 잘 받은 참한 색싯감 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네. 뭐....하하하하.”

서지현의 말에 경기도지사가 멋쩍게 웃었다. 왜냐하면 그의 딸의 별명이, 낮엔 ‘요조숙녀’고 밤에는 ‘문란녀’였던 것이다. 밤에 얼마나 잘 놀았던지 말이다.

그런데 서지현의 입에서 요조숙녀란 말이 나왔고, 그 말을 들은 경기도지사가 속으로 뜨끔한 것이다.

그걸 서지현이 알면서 한 소린지 아니면 그냥 경기도지사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린지를 두고 눈알 굴리기 급급한 경기도지사.

그렇게 백준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경기도지사의 여식과 그의 선 자리가 서지현 사모님과 경기도지사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보고 있었던 한 쌍의 눈이 있었으니....

맞다. 바로 서지현 사모님의 비서인 안지은 되시겠다.

그녀는 백준열이 졸지에 선을 봐야 할 상황에 처하자, 그 사실을 문자 메시지로 백준열에게 보냈다.

앞서 백준열에게 연락 할 때는 께름칙한 부분이 많았다.

내가 왜 이러나 싶었고. 자신과 백준열은 아무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한데 그와 통화 후, 그녀의 심경에 큰 변화가 일었다.

왠지 백준열을 위해 뭐라도 더 해야 할 거 같았고, 그가 잘못 되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백준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그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경기도청에서 일정을 모두 다 소화 한 후, 그곳을 빠져 나올 때 서지현이 안 비서에게 물었다.

“다음 스케줄은 어디지?”

“서울 문학 경기장 내에, 작은 도서관 개장식에 참석하시기로 되어 있으십니다.”

“문학 경기장? 거기 야구장 아냐?”

“맞습니다.”

“나 야구 하나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내가 거기 꼭 가야 해?”

“네. 문학 경기장을 저희 삼명 라이온스가 홈구장으로 쓰고 있어서요.”

“흥! 삼명 재단 이사장인 내가, 이제 하다하다 야구까지 신경 써야 해?”

“그룹 차원에서 협조 공문이 온 터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진짜 안가면 안 돼?”

“그럼 본사에서 재단 지원에 제약을 둘지 모릅니다.”

그 말에 서지현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삼명그룹 본사에서 지원이 끊기면, 삼명 재단의 업무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즉 본사에서 부탁하는 걸 삼명 재단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재단 이사장인 서지현이 난리를 친다면 또 모를까?

대신 서지현이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백승렬 회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요즘, 그녀가 그런 미친 짓을 할 리 없었다.

“알았어. 문학 경기장으로 가.”

“네.”

어차피 지금 가는 차의 목적지는 문학 경기장이었다. 그래서 안 비서가 따로 운전기사에게 지시를 내릴 필요는 없었다.

띠로링!

대신 문자 메시지가 왔는데 확인하니 백준열이 보낸 답 메시지였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그 메시지를 보는 안 비서의 가슴에서,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빨라지고 동시에 그녀 입의 입 꼬리가, 자꾸만 위로 올라갔다.

* * *

아무리 삼명그룹의 미전실장이라도, 삼명가내의 일에 개입하는 건 오지랖이 너무 넓었다고 봐야했다.

내가 이 사실을 굳이 백승렬 회장에게 얘기하지 않아도, 이미 백승렬 회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해서 나는 그걸 백승렬 회장에게 고자질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전실장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서지현 사모님이 회장 부인이라도, 백승렬 회장은 회사 일을 두고, 치맛바람에 흔들릴 사람이 절대 아니었으니까.

지이이잉!

그때 내 손에 쥐어져 있던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확인하니 김훈 대표.

나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강지영이란 여배우, QH엔터 소속은 아닌데 홍대복 사장하고, 약간의 채무관계로 엮여 있더군요.

“채무요?”

=네. 4천만 원 정도 빚을 변제하기 위해서, 다른 소속사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홍 사장이 시키는 건, 뭐든 다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어쩌다 그런 놈에게 빚을 지게 된 건데요?”

=강지영의 빚이라기보다는, 그녀 아버지 빚입니다.

“네?”

요즘도 부모의 빚을 떠 앉는 그런 착해 빠진 자식이 있단 말인가?

대개의 경우 부모의 빚을 상속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다들 상속 포기를 하지 말이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김훈 대표가 말했다.

=강지영 아버지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네? 그런데 강지영이 그 빚을 왜 갚아요? 그 아버지가 갚아야지.”

=그게 도박 빚입니다.

“....”

김훈의 도박 빚이란 말에 나도 더 할 말이 없어졌다.

도박 빚은 일반 빚과 그 성질이 달랐다. 특히 조폭들이 끼게 되면 문제가 상당히 골치 아파졌는데, 강지영의 아버지가 딱 그런 쪽인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강지영 아버지 도박 빚을 받을 사람이, QH엔터 홍 대표란 거군요?”

=네. 빚을 갚지 않으면 홍 사장이, 강지영 아버지 팔 다리를 잘라 버린다고 그녀에게 협박을 한 거 같습니다.

“허어....”

내가 기가 차 할 때 김훈 대표가 마저 하던 얘기를 이어서 했다.

=성 접대 할 때마다 얼마씩 빚을 까기로 한 거 같은데, 정작 이자가 1,000%를 넘습니다.

“뭐라고요?”

1,000% 이자면 자칫 빚을 갚는 게 아니라, 빚이 축적 되어 영영 그 빚을 못 갚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자를 강지영이 갚고 있다고요?”

=법 보다 주먹이 더 가까우니까요.

강지영이라고 이런 위법 부당한 고리대금의 피해를 받고 싶어 받는 게 아니었다.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그의 부친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그 빚을, 몸으로 갚아 나가고 있는 것이지.

=더 기가 찬 건....그녀 아버지가 지금 강원랜드에 있다는 겁니다.

딸을 사채업자에게 넘겨 놓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도박장이나 전전하고 있는 그녀의 부친.

내가 봐서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 딸을 위해서 그냥 사라져 주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그 뒤 강지영이 죽은 부친의 빚을 상속 받지 않겠다고 하면 모든 게 해결 될 문제였다.

* * *

내 성향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던 김훈 대표. 그가 은근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처리해 버릴까요?

강지영의 부친을 없애버릴지 내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김훈 대표가 나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내가 사람 없애는 것에 대해 그리 크게, 부담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데, 그건 맞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내가 사람을 없앨 때 적용하는 절대 기준은, 바로 그 사람이 나를 해치려 하려거나, 또는 했을 때였다.

그게 아니면 나도 대 놓고 사람을 죽이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무슨 살인귀도 아니고.

분명히 말하는 데 나는 사이코패스도, 소시오패스도 아니다.

그러니까 나만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상대를 해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걸 나는 지금 김훈 대표에게 확실히 알려 주고 싶었다.

“아뇨. 됐습니다. 이후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대표님은 하동훈 처리에 더 집중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람 함부로 죽이는 거 아닙니다.”

=네. 뭐.....아아. 그리고 하동훈이 서울을 뜨기 전에 연락한 사람을 추적해 보니, 삼명家의 사모님이더군요. 그래서 그쪽과 하동훈이 무슨 관계인지 파 봤더니, 하동훈이 사모님의 내연남이지 뭡니까.

그 말에 나는 서지현 사모님이, 왜 미전실장과 통화를 했는지 알거 같았다.

아니 서지현 사모님이 먼저 미전실장에게 연락을 했겠지. 하동훈의 부탁을 받고 말이다.

‘백지연의 친부니 하동훈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겠지.’

서지현의 처지는 이해가 되었지만, 이번 일로 인해 그녀는 제대로 자충수를 뒀고, 그로 인해 그녀와 백지연은 곧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것을 나는 확신했다.

그 근거? 그거야 이 사실을 미전실로부터 보고 받은 백승렬 회장이 과연 가만있을까?

‘미전실장의 목도 뎅강 잘리겠군. 거기다가....’

서지현의 운명도 그 딸인 백지연과 함께 외국에 나가서 살아야 할지 몰랐고. 나의 이전 삶에서처럼 말이다.

“김훈 대표님. 딱 거기까집니다. 더는 서지현 사모님에 대해 캐지 마세요.”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정도는, 김훈 대표도 알 거라고 본다.

만약 여기서 김훈 대표가 더 서지현 사모님의 뒤를 캐게 된다면, 그 사실을 미전실에서 백승렬 회장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삼명가내의 일에 누가 개입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백승렬 회장이다.

그가 김훈 대표를 가만 안 둘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나서서 그를 지켜 준다면, 또 얘기는 다르지만.

그러나 내 생각도 여기까지였다. 여기서 김훈 대표가 더 오버하면, 나도 그에게 더 이상 안전펜스를 쳐 줄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 김훈 대표는 내 말 뜻을 바로 알아들은 거 같았다.

=그러죠. 하동훈을 잡거든, 그때 연락드리겠습니다.

원래는 오늘 까지였지만, 하루 더 시간을 번 김훈 대표였다.

하지만 내일까지도 하동훈을 잡지 못한다면....김훈 대표에 대한 내 신뢰가 상당히 추락할 거 같았다.

그렇게 하동훈과 통화를 끝냈을 때, 나를 태운 차가 백제 호텔 입구에 다다랐다.

지잉!

그때 내 핸드폰이 짧게 울렸고, 확인하니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근데 그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다름 아닌, 서지현 사모님의 비서인 안지은이었다.

나는 이제 나의 「충견」이 된, 안 비서가 내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바로 확인했다.

[사모님 경기도지사 여식과 대표님 선보기로 결정!]

“에?”

이게 무슨 엿 같은 일이란 말인가? 누구 마음대로 선을 봐? 이 아줌마가 기어코 나를 ‘팍’치게 만드네?

* * *

서지현은 자신이 경기도청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까마득히 잊고, 지금은 자신의 내연 남이자 백지연의 생부 되는, 하동훈을 어떻게 살릴지를 두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하동훈을 살리려면 백준열을 설득 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와 그녀 사이는 이미 완전히 틀어져 버린 터라, 연락 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그때 욕은 하지 말 걸 그랬나?”

하지만 시작은 백준열이 했고, 지금도 자신의 딸인 백지연을 뻐꾸기 운운한 백준열이 서지현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그렇지만 이대로 하동훈이 죽는 걸 내버려 둘 수만은 없었고....

“하아. 어쩔 수 없네. 전화해서 어떻게든 달래 보는 수밖에....”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그녀로서는 백준열을 어쩔 수가 없었다.

오규동 비서실장의 말에 따르면, 남편이 최근 백준열을 꽤나 챙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에 비해 그녀와 그녀의 딸인 백지연은 찬밥 신세고 말이다.

뭐 남편의 그 애정이 오래 갈 리 없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아는 서지현이었다.

장남인 백준경도 처음에는 이랬다.

그래서 기다리다보면 차차 해결이 될 문제이긴 했다.

남편의 백준열에 대한 총애가 사라지고나면, 자신이 백준열을 압박해서 더는 하동훈을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백준열이 하동훈을 찾아내서 없애버리기라도 한다면....

그 때문에 서지현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렵게 백준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사모님.

백준열은 서지현의 전화를 바로 받았다.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부디 자신의 다른 부탁도 백준열이 들어 주기를 속으로 기도하면서, 그에게 자신이 전화 건 용건을 담담하게 말했다.

“....인데 하동훈이라고 우리 아빠 보좌관이었던 사람이야. 그를 네가 잡아 죽이려 한다던데. 그게 사실이니?”

=하동훈? 아아! 저를 죽이려 한 그 새끼 말이군요.

“뭐? 너, 너를 죽이려 하다니?”

=그 새끼가 킬러들을 시켜서 절 죽이려 했지 뭡니까? 아마 이 사실을 아버지가 아시면, 저보다 너 난리치실 걸요.

“잠, 잠깐만. 그러니까 회장님께는 아직 얘기 안 했단 거네?”

=네. 뭐 좋은 일이라고....그냥 제 선에서 해결하려고, 그 새끼 잡으라고 사람 좀 풀었는데....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 그게 그 사람 좀 살려 줄 수 없겠니?”

=네? 지금 절 죽이려 한 놈을 살려 주라는 겁니까?

“사정이 있어서 그래.”

=사정이요? 왜 하동훈이 백지연이 생부라도 됩니까?

“....”

백준열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두 눈이 동그래진 서지현은, 목에 뭐라도 걸린 듯 얼굴만 새파랗게 질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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