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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209화 (20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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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안 비서의 대답에 서지현이 바로 말했다.

“강 실장한테 연락 해.”

“네?”

“쓰읍. 안 비서. 오늘 따라 왜 이러지? 내 말 못 알아듣겠어?”

여기서 못 알아듣는다고 했다간 바로 잘린다. 안 비서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바로 대답했다.

“아뇨. 알아들었습니다.”

안 비서는 즉시 자기 핸드폰에 저장 된 미전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그러자 살짝 짜증이 묻어나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비서는 급격히 뛰기 시작하는 심장 박동을 고스란히 느끼며 강규석 미전실장에게 말했다.

“실장님. 사모님께서 찾으십니다.”

=사모님께서?

좀 전 안 비서의 전화를 받은 사람이 지금 말한 사람이 맞나 싶게, 강규석 미전실장이 텐션을 한껏 올리며 말했다.

“네. 바꿔드리겠습니다.”

그 말 후 안 비서는 자기 핸드폰을 서지현에게 건넸다. 그 핸드폰을 받아 자기 귀에 갖다 대며 서지현이 바로 말했다.

“강 실장님. 내 부탁하나 들어줘야겠어요.”

=부탁이라니요. 말씀만 하십시오.

“내 지인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데, 그 배후에 사람이 누군지 알아 봐줘요.”

상당히 뜬금없는 소리다. 하지만 재벌가의 안주인이 이정도 말해 준 것만 해도 사실 많이 얘기해 준 거다. 그걸 알기에 강규석 미전실장이 시원스럽게 대답을 했다.

=네. 그 지인이 누군지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신다면 바로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이름과 연락처를 전화상 밝히기는 좀 그렇고, 또 그쪽이 내가 이 일에 개입 됐다는 걸 몰랐으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이름과 어디 사는 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저희가 다 알아내서 하겠습니다.

“그래요. 이름은....”

서지현은 이름을 말할 때 목소리를 낮춰서 강규석 미전실장만 알아듣게 얘기하고, 그 사람이 사는 곳 역시, 마찬가지로 손으로 핸드폰을 가린 채 말했다.

그래서 안 비서도 서지현이 누구를 얘기하는지 정확히 몰랐다.

단지 사는 곳이 대치동의 현동 아파트란 얘기는 얼핏 들은 거 같았다.

하지만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는 게, 그녀의 일인지라 모른 척 하고 있었다.

그 사이 강규석 미전실장과 얘기를 다 끝낸 서지현이 안 비서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강 실장이 바꾸라네.”

“네.”

안 비서는 공손이 서지현에게서 자기 핸드폰을 받아서는 강규석 미전실장의 전화를 받았다.

“네. 실장님.”

=안 비서라고 했던가?

“네.”

=지금 차 안인가?

“네.”

=으음. 그렇다면 자세한 얘기를 나눌 수는 없겠군. 사모님과 얘기는 끝냈어. 그룹으로 올 필요 없으니 사모님 모시고 하던 재단 업무마저 진행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시간 나면 나한테 전화 하고.

자세한 건 이따 안 비서를 통해 결국 자기가 듣겠다는 소리였다. 미전실장이니 그럴 수 있었다. 해서 안 비서는 한성재단 측 다음 스케줄이 잡혀 있는 경기도청에서, 강 실장에게 전화를 하기로 하고 그와 통화를 끝냈다.

* * *

삼명그룹 미래전략실장 강규석은 백승렬 회장의 사모, 서지현의 전화를 받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말한 지인인 하동훈은 그도 아는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백승렬 회장이 자기 가족들 말고 따로 특별 관리하는 인물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하동훈은 백 회장의 장인이자 전직 대통령인 서재국과 세트로 묶어서 미전실에서 관리해 오던 인물이었다.

“장 차장. 이리로 좀 와 봐요.”

강규석은 미전실에서 주로 정보 쪽을 맡고 있는 장남식 차장을 불렀다. 그리곤 하동훈의 최근 행적에 대해 물었다.

“오오. 그러니까 하동훈, 그 자가 서재국 전 대통령의 비호 속에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공천을 받을 게 유력하단 얘기군.”

“네. 사실상 받는다고 봐야 합니다. 함 의원이 그의 뒷배를 봐주고 있으니까요.”

“그렇군. 그런데 말이야. 그 하동훈이 쫓기고 있다는데 어떻게 된 일이야?”

“하동훈이요? 잠시 만요.”

장 차장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더니, 몇 군데 연락을 취하고는 다시 강규석에게 와서 말했다.

“실장님. 이 일을 하동훈이 쫓기고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개입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개입 할 수 없다니.”

“그게....”

그때였다. 검은 정장에 빨간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우르르 미전실로 들어왔다. 그들 맨 앞에 뺀질뺀질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는 강규석도 익히 잘 아는 자였다.

“강 실장. 오랜 만이야.”

“감사실이 여긴 어쩐 일입니까?”

상대는 바로 삼명그룹에서 저승사자들로 불리는 감사실 직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나타난 자는, 감사실장 전지석으로 강규석보다 한 기수 위의 선배였다.

한때 전지석은 강규석과 같이 미전실장 후보에 올랐는데, 백승렬 회장의 선택은 전지석이 아닌 강규석이었다.

그 이후 전지석은 강규석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하긴 강규석 때문에 전지석이 그토록 오르고 싶어 했던 미전실장 자리에 오르지 못했으니까.

“감사실이 여기 왜 왔겠어. 감사하러 왔지.”

“뭐, 뭐요? 허어....”

강규석은 기가 찼다. 삼명그룹에서 미전실을 건드릴 곳은 없었다. 왜냐하면 삼명그룹의 모든 정보를 미전실이 움켜 쥐고 있었으니까. 감사실? 그곳 역시 미전실이 작정하면 부서 자체를 없애 버릴 수 있었다.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미전실을 감사실이 감사하시겠다고 설치니 실장인 강규석 이하 미전실 직원들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지석은 그들이 웃던 말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때 강규석의 책상 위 전화가 울렸다. 그걸 보고 전지석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받아.”

전지석의 그 기분 나쁜 웃음에, 강규석은 께름칙해하며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자기 책상 위의 전화를 받았다.

“네.”

=강 실장. 나야. 비서실장.

“네. 실장님.”

누가 뭐래도 삼명그룹 본사에서 2인자는 오규동 비서실장이었다. 그런 오규동의 전화에 일단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기는 했지만, 이내 강규석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지금 감사실장이 거기 있지?

“네. 와 있습니다.”

=감사 받아.

“네?”

=회장님 지시야.

“그, 그런....”

회장님 지시로 감사실장의 감사를 받으라는 건 곧....미전실장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단 소리였다.

=문제없으면 하던 일 계속 할 수 있을 거야.

오규동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했다. 남 일이라 이거다. 그 말에 강규석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미전실장 다음으로 강규석이 노리던 자리가 비서실장 자리였다. 그런데 자칫 그 자리는 가보지 못하고 여기서 미끄러져서, 그가 지금껏 누려왔던 모든 걸 이렇게 하루아침에 잃게 생겼다. 그러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밖에.

“네. 뭐....회장님 오해야 금방 풀릴 겁니다.”

이게 다 백승렬 회장이 그의 충성심을 의심해서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강규석은 백 회장의 눈 밖에 날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가 잘못 될 일은 없었다.

‘어디 두고 보자.’

만약 그가 이번 감사를 잘 넘기고 미전실장 자리를 보전한다면, 강규석은 제일먼저 오규동 비서실장을 쳐 내 버리기로 작심했다.

‘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 앉는 거지.’

반면 오규동 비서실장은 강규석 실장을 쳐 내고 나면, 미전실장 자리에 누구를 앉힐지 고심 중에 있었다.

그렇게 오규동 비서실장과 강규석 미전실장이 동상이몽을 꿈꿀 때, 정작 그 둘의 주군이라고 볼 수 있는 백승렬 회장은, 이제는 너무 커 버려서 자기 통제가 어려운, 자신의 오른팔과 왼팔을 둘 다 잘라 내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 * *

감사를 받는 동안 강규석은 미전실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이때 강규석이 너무도 큰,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그게 뭔가 하면 강규석이 살길로, 바로 백승렬 회장의 부인, 즉 서지현 사모님에게 기대기로 한 것이다.

아무래도 그녀가 회장 부인이니, 백 회장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거라 본 것이었다.

그래서 강규석은 그녀가 원하는 하동훈을 쫓는 자의 배후가 누군지 알아내서 그걸 그녀에게 알려줬다.

이때 정보통 장남식 차장이 극렬히 반대를 했는데, 강규석이 기어코 자신이 모두 책임지겠다면서, 그 사실을 서지현에게 사실 그대로 다 얘기 해 버린 것이다.

그 뒤 강규석은 뒤늦게 알게 됐다.

백승렬 회장이 자기 부인인 서지현을 내치려 한다는 걸 말이다.

그 이유는....서지현이 낳은 딸 백지연이 알고 보니, 하동훈과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란 것이다.

“으아아악!”

와장창창! 쿠쾅쾅!

강규석은 미전실장실, 안 그래도 감사한답시고 엉망진창을 만들어 놓은 그곳을 다 때려 부셨다.

그가 한 짓은 바로 백승렬 회장에게 직보가 됐고, 좀 전 백 회장의 지시로 강규석은 미전실장 자리에서 보직 해임 되었다.

추후 발령이 날 거라고는 했지만 어디를 가든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리 없었다. 백승렬 회장의 눈 밖에 난 이상 말이다.

강규석은 바로 사표를 제출 했다. 하지만 그 사표는 즉시 반려가 됐다. 순간 강규석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젠장....’

그러면서 자신이 하려는 짓을 극구 말렸던 장남식 차장이 한 말이 생각났다.

[실장님. 이번 일은 삼명가내의 일입니다. 저희가 끼어들어서 좋을 게 하나 없습니다. 자칫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모님께 연락하지 마십시오.]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누구보다 정보에 밝은 장 차장이었다. 그가 그랬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강규석은 너무도 자신만만했다.

그 동안 그가 맡아서 처리해 온 일 중, 실패한 일이 하나도 없다보니 그게 마친 그의 능력 때문인 것처럼 여기고 있었던 거 같았다. 따지고 보면 그 모든 성공은 미전실의 직원들의 노력의 결실들이었는데 말이다.

“하아....”

그가 퇴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관리실에서 직원들이 와서, 미전실장실을 정리했다.

강규석은 참담한 얼굴로 쫓기듯, 미전실장실을 나와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에게 제공 되었던 회사 차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결국 다시 1층으로 올라가서 대중교통을 타고 집으로 가야 할 신세가 되어 버린 강규석.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 실 앞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그의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렸다.

“강규석씨?”

그의 뒤에서 분명 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규석은 그 소리에 뒤로 고개를 돌렸다.

퍽!

하지만 그의 머리가 채 반도 돌기 전에, 둔탁한 소리가 울리고 머리가 핑 돈 강규석은 그 자리에 픽 쓰러졌다.

끼이이익!

그때 승합차 한 대가 나타났고, 그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쓰러진 강규석을 승합차에 실었다. 그때 둔기로 강규석의 머리를 내려 친 인물이, 승합차의 앞쪽으로 가서 거기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있는 인상 무섭게 생긴 자들에게 말했다.

“뒤처리 잘 해.”

그러자 조수석의 남자가 차창을 내리더니 음흉한 얼굴로 말했다.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걱정 마십쇼. 실장님. 그 보다 수고비나 두둑이....아시죠?”

“회사에서 지급하는 거 말고 따로 한 장 더 넣었으니까 그걸로 한잔씩 해.”

“역시. 실장님. 앞으로도 자주 이용해 주십쇼.”

“알았어. 사람들 보겠다. 빨리 가.”

그렇게 승합차가 사라지고, 앞서 강규석이 누른 엘리베이터가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딩동댕! 지하 3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그 안에 몇 명의 직원들이 타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그, 둔기로 강규석의 머리를 내려 친 인물을 보고, 다들 슬슬 눈치를 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는 빈 엘리베이터에 홀로 탔고 그가 위로 쭈욱 올라가고 나자, 좀 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직원들이 한 소리씩 하며 주차장 쪽으로 움직였다.

“우와. 너도 봤지? 감사실장님 포스 쩌는 거?”

“근데 실제로 보니 별로 안 무섭게 생겼는데?”

“그야 니가 감사실의 감사를 안 받아봐서 그렇지. 나중에 한 번 받아보면 알게 될 거야. 왜 감사실장을 저승사자라고 하는지 말이야.”

“뭐 우리 같은 말단들이야 감사 받을 일이 뭐 있겠어?”

“하긴 그것도 그러네.”

“자자. 빨리들 움직여. 퇴근 전에 재고 파악 끝내야 해.”

직원들은 흩어져서 각자들 차를 타고, 자기들 볼일 보러 삼명그룹 본사 사옥을 빠져나갔다.

* * *

서지현은 점심을 먹고 열심히 삼명 재단 이사장으로서 밀린 일을 해나갔다. 그러면서 수시로 자기 손에 들린 핸드폰을 살폈다.

그런 그녀가 경기도청을 찾았을 때였다. 경기도에서 열리는 장학 사업이 있는데 거기 삼명재단에서 후원을 하기로 하자, 경기 도지사가 감사의 의미로 감사패와 함께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다른 도지사 같으면 불러도 안 갔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 도지사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유력시 되는 인물. 당연히 삼명재단의 이사장이 참석해서 경기 도지사를 빛내 줄 필요가 있었다.

지이이잉!

도청 청사에 막 도착했을 때 서지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잠깐만! 전화 좀 받고 갈게요.”

그렇게 말한 뒤 서지현은 경호원들을 주위로 물리고 도청 한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때 그녀의 비서인 안 비서는 그나마 서지현과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다. 혹시 필요하면 서지현의 지시를 바로 수행하기 위해서.

“뭐, 뭐라고요? 그러니까 그 사람 쫓는 배후가 준열....크음. 그 아이란 말이죠? 네. 네. 그래서....”

안 비서는 분명히 들었다. 서지현이 ‘배후가 준열’이라고 말하는 걸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알게 된 것을 누구에게 꼭 얘기해야 할 거 같은....

그 누구는 바로 백준열이었고. 저번 주에 백준열과 빠구리 후, 안 비서는 한시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밥을 먹어도 국그릇에 그의 얼굴이 떠오르고, 책을 봐도 그 책에서 백준열이 웃는 얼굴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또 잠들면 꿈에 나타나서....그 큰 말자지로 그녀를 기쁘게 만들어 주었다.

안 비서는 원래는 경기도청에서 미전실장인 강규석과 통화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전실장은 지금 서지현과 통화 중이었고, 그녀는 반쯤 넋 나간 얼굴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 전화를 건 사람이....하필 백준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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