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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하동훈도 나름 사랑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자식을 낳고 살면서 정도 많이 들었고.
그래서 국회의원이 되려고, 그렇게 기를 쓰고 살았는지 몰랐다.
그에게 평범한 삶이란, 적어도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지위에 올라야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그가 그 권력을 쫓으며 가정에 무심했을 때, 그가 사랑했던 아내는 그 몰래 바람을 피웠다.
당연히 그는 그 사실을 몰랐다. 왜냐하면 그가 아는 그의 아내는 순진하고 착해 빠진, 자기 밖에 모르는 여자였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고, 그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하동훈의 아내가 그랬다. 순종적이고 착한 아내의 모습 뒤에, 이해 타산적이고 악한 아내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여자는 역으로 나쁜 남자의 타깃이 되기 딱 좋았다. 끼리끼리 통한다고 말이다.
그 나쁜 남자의 전형이 바로 김훈 대표였고.
김훈이 하동훈의 아내를 유혹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이면 충분했다.
하동훈과 달리 잘생기고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 김훈.
하동훈의 아내는 그런 김훈에게 너무도 쉽게 넘어가서, 몸도 마음도 그에게 다 줘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그가 시키는 건, 뭐든 다 하는 하수인 노릇까지 하고 있었다.
“저기 택시 타네요.”
하동훈의 아내는 남편이 캐리어를 끌고 나갈 때, 자기 차를 쓰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하동훈은 출장 갈 때 꼭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하동훈은 캐리어를 끌고 굳이 걸어서 택시 승강장에 줄 서 있다가, 그곳 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움직였다.
그걸 알기에 하동훈의 아내는 자기 차로, 택시 타고 움직이는 하동훈을 생각보다 손쉽게 미행할 수 있었다.
미행하면서도 그녀는 수시로 김훈에게 하동훈의 움직임을 보고했다.
하지만 택시 타고 그냥 버스 터미널로 가는 중인 하동훈에 대해, 그렇게 자주 연락을 할 필요는 사실 없었다.
그렇지만 하동훈의 아내는 김훈과 조금이라도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거의 10분에 한 번씩 전화를 걸고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한데 김훈은 싫은 티 한 번 내지 않고, 그런 하동훈의 아내 전화를 다 받아주었다.
보통 사람들은 왜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좋아할 까 싶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나쁜 남자를 좋아할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나쁜 남자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의 여자로 여긴 이상, 그 여자에게 간과 쓸개도 빼 줄 정도로 잘 해주었다.
그녀의 사소한 투정도 다 들어 주고, 이해해 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여자가 더 이상 자신의 여자가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매정하게 차 버린다.
=뭐? 놓쳤다고?
“분명 터미널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버스 터미널까지 잘 쫓아간 하동훈의 아내. 하지만 그녀는 잠깐 화장실에 들어갔던 남편이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안면몰수하고 남자 화장실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을 샅샅이 뒤진 결과, 거기 남편은 없었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됐어.
뚜뚜뚜뚜뚜뚜....
“자, 자기야!”
하동훈의 아내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린 김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아....”
여자의 직감은 무섭다. 하동훈의 아내는 자신이 좀 전 나쁜 남자 김훈에게 버림받았음을 직감했다.
* * *
하동훈에게는 취미가 하나 있었다. 근데 그 취미는 그 누구도 몰랐다.
그 만이 알고 즐기며 이제는 거의 장인의 경지에까지 오른, 그 취미는 바로....변장술이었다.
하도훈은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강박증이 생겼다.
당연히 처음부터 그가 강박증에 시달린 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추격, 혹은 미행을 당하면서 생긴 증상인데, 그때마다 하동훈은 자신의 장기인 변장술로 그 추격과 미행을 따돌렸다.
그게 버릇이 됐다고 할까? 그는 어디 출장을 갈 경우, 변장술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서 움직였다.
그건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는 늘 그렇듯 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갔고, 그곳 화장실에서 70대 노인의 모습으로 변신을 했다.
“완벽해.”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흡족해 하며, 하동훈은 꼿꼿이 펴고 있던 허리를 구부정하고 숙였다. 그리곤 화장실을 나가서 매표소로 향할 때였다.
‘어?’
터미널 안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발견했다. 바로 자신의 아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에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그녀에게 갈 뻔했다.
주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가 나올 때 앞치마바람이었던, 그의 아내가 왜 여기 있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좀 더 지켜보니 그녀가 누군가에게 심각한 얼굴로 전화를 하는 게 보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 곁으로 다가갔고, 거기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자기?’
그녀는 하동훈이 알았던 그 순진하고 착한 아내가 아니었다.
딴 남자에게 너무도 쉽게 자기라고 부르는, 그녀에게 질겁한 하동훈은 곧장 매표소로 가서 급하게 표를 구입했다.
원래는 춘천 정도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촉이 거기는 서울에서 너무 가깝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장 가는 차편 중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차표를 끊었다.
‘경남 남해라....’
하동훈은 곧 떠난다는 그 경남 남해로 가는 고속버스에 황급히 탑승했다.
그리고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는 후진해서 움직였고, 잠시 뒤 터미널을 빠져나와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휴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하동훈. 그는 아내가 자기라고 부르며 통화한 남자가 누군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게 궁금하다고 서울에 더 있을 수는 없었다. 아니. 혹시 누군가 자기 아내까지 포섭한 거라면....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하동훈. 그런 치밀한 자가 자기를 노린다면, 자신이 정말 위험한 처지에 놓였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쓸 수 있는 최상의 패를 써야했다. 안 그러면 그 패를 써보기도 전에 죽을지 몰랐으니까.
하동훈은 바로 자신의 대포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침에 자기 핸드폰의 유심 칩을 부러트리고, 변기에 넣어 없앤 게 잘한 일이라고 말이다.
그로 인해 핸드폰 추격은 불가능해졌을 테니까.
=여보세요?
“지현아. 나야.”
=오빠가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전화를 다하고?
하동훈이 지금 전화 한 사람은, 바로 삼명그룹의 회장 사모님. 서지현이었다.
그에게는 아내 말고 그가 건드린 여자들 중 한 명이었고. 또 편하게 지금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여자였다.
“지현아. 잘 들어. 나 지금 쫓기고 있어.”
=뭐?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날 노리는 거 같아.”
=오빠를 왜?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래서 너한테 이렇게 전화하는 거잖아. 네가 좀 알아 봐줘. 삼명그룹을 움직이면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그렇기는 한데....요즘 그이랑 사이가 좋지 않아서....
하동훈은 서지현이 슬그머니 몸을 빼려하자, 바로 타이트하게 조였다.
“하아. 지현아.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아니. 오빠가 왜 죽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
“나 내 딸 지연이 두고 이렇게 못 죽어.”
그리곤 필 살기를 시전 했다. 바로 서지현과 그 사이 불륜의 씨앗, 즉 백지연을 걸고넘어지는 것이었다.
서지현도 사실 불륜남인 자기는 몰라도, 딸인 백지연은 만큼은 끔찍이 아낀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하동훈이 쓸 수 있는 확실한 카드였다.
=....
하동훈이 백지연을 거론하자 서지현이 한 동안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나름 하동훈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서지현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어떡하든 하동훈을 죽지 않게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가 움직여야 했다. 삼명그룹의 정보 라인을 말이다.
=하아. 알았어. 내가 삼명그룹에 얘기해서 오빠를 누가 노리는 지 알아 볼게.
“고맙다. 지현아. 그리고....그 자가 누군지 밝혀지면....그쪽과 잘 좀 얘기해서 나 좀 살려주라.”
하동훈은 자기 구명까지 죄다 서지현에게 떠 넘겼다. 서지현 입장에서야 누가 하동훈을 죽이려는 지만 알아내면, 자기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하동훈을 구해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누구던가? 바로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 부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누가 감히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과 척을 지려 하겠나? 그랬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 되고 말지.
=그럴게. 그러니 오빠는 내가 해결할 때까지 어디 잘 숨어나 있어.
“그건 걱정 할 거 없어. 내가 작정하고 숨으면,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으니까.”
하동훈의 그 귀신같은 변장술이 있는 한, 그의 정체가 탄로 날 일은 없었다.
설혹 그가 있는 곳이 어딘지 노출이 되더라도, 그는 그곳에서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서 빠져 나올 자신이 있었다.
* * *
저번 주에 펑크 낸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평소보다 타이트 하게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삼명재단이사장 서지현. 그녀는 지금 한성대학장학재단을 방문한 상태였다.
“삼명재단에서 이렇게 매번 지원을 해주시니 저희 대학에서도....”
한성재단 이사장이 단상에 올라서 침을 튀겨가며 떠들고 있을 때, 서지현은 웃는 얼굴로 그 뒤편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무슨 복화술이라도 익혔는지, 옆에 있는 안 비서에게 무슨 말을 했다.
“다음이 한성대학 총장과의 점심 약속이라고? 그거 취소하면 안 돼?”
“안 됩니다.”
안 비서 역시 복화술 까지는 아니지만, 웃으며 앉아 있는 서지현을 보지 않고 앞을 직시하고 있으면서, 마치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대답을 했다.
그렇게 한성재단 이사장의 연설이 끝나고, 서지현은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을 때였다.
서지현의 손에 쥐어져 있던 그녀의 개인 핸드폰이 울렸다.
그 핸드폰의 번호를 아는 사람은 다섯 명 밖에 되지 않았다.
즉 지극히 개인적인 그 핸드폰에 걸려 온 전화는 꼭 받아야 할 전화란 소리다.
“잠시만....”
서지현은 한성재단 이사장 다음에 단상에 올라서 연설을 해야 함에도, 그 행사 순서를 잠시 멈추게 하고 그 전화를 받았다.
분명 실례 되는 행동이었지만, 삼명그룹 사모님이 전화 좀 받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지현은 아예 전화를 받으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행히 움직인 방향이 화장실 쪽이어서, 그녀가 잠깐 화장실에서 전화 받고 돌아 올 거라, 그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생각했다.
그건 안 비서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서지현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예 행사장 밖으로 나가는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이사장님. 그쪽이 아닙니다.”
안 비서가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서지현은 그녀 말을 무시하고, 쭉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더니 기어코 행사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사장님!”
안 비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뛰어서 서지현 앞을 막아섰다.
그제야 직진하던 서지현이 발걸음을 멈췄는데 얼굴 인상이 좋지 않았다.
그 말은 서지현이 좀 전 받은 전화가 심상치 않은 말을 그녀에게 전했다는 거고, 그건 오늘 밀린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던, 안 비서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제, 제발....’
안 비서는 속으로 기도까지 하며 별일 아니길 바랐지만, 신은 이번에도 그녀의 기도를 외면했다.
“안 비서. 삼명그룹 본사로 가자.”
“네?”
근데 서지현이 딴 곳도 아닌 삼명그룹 본사로 가자는 말에, 안 비서의 눈이 반짝 빛났다.
왜냐? 안 비서도 따지고 보면 삼명그룹 사람이었다.
즉 그녀를 매번 쪼아대는 직장상사들이, 사실 삼명그룹 본사에 있었던 것.
그런 삼명그룹 본사로 서지현이 간다? 그렇다면 충분히 어필이 가능했다.
삼명그룹에 일이 있어가는 바람에, 펑크 난 스케줄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했다고 말이다.
“뭐해? 빨리 차 부르지 않고.”
“네. 사모님.”
안 비서는 서지현이 외부 일을 볼 때면, 그녀를 꼬박꼬박 이사장님으로 불렀다.
하지만 삼명가의 본가에 있을 때는 사모님으로 불렀고. 한데 지금 안 비서는 서지현을 사모님으로 불렀다.
삼명그룹에서도 서지현은 사모님으로 불렸던 것이다. 즉 안 비서도 서지현이 지금 삼명그룹으로 가는 걸 받아드렸다는 얘기다.
단지 행사장에는 알려야 했다. 안 비서는 먼저 서지현의 경호팀에 전화를 했다.
그래야 경호 차량과 함께 서지현이 탈 차가 이쪽으로 올 테니까.
그 다음 한성재단 측, 이번 행사를 주관한 한성대학 교무처장에게 연락을 했다.
“....라서 급하게 삼명그룹에 들어가시게 됐습니다. 저희 이사장님께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한성재단 측에 지원만큼은 확실히 챙겨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차피 저쪽에서 원하는 건 지원일 테니, 안 비서가 그걸 언급하자 한성재단 측에서도 이해한다면서,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해 왔다.
그렇게 이쪽 문제를 무난히 해결한 후, 안 비서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쉴 때, 경호 차량과 삼명 재단 이사장 차가 같이 도착했다.
안 비서는 서지현과 함께 이사장 차량에 탑승을 했고, 목적지를 이미 밝힌 터라 경호 차량이 앞장서서 움직였고, 그 뒤를 이사장 차량이 뒤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삼명 재단 이사장 차가, 막 한성대학의 정문을 빠져 나왔을 때였다.
서지현이 안 비서에게 물었다.
“안 비서 소속이 어디라고 했었지? 내가 알기로 비서실은 아닌 걸로 아는 데.”
“네. 맞아요. 저는 비서실 소속이 아니라 미전실 소속입니다.”
안 비서가 자신이 미전실 소속임을 강조해서 말하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미전실 소속이었지. 근데 강규석이가 여전히 미전실장이야?”
삼명그룹 미래전략실장 강규석. 그의 이름을 이토록 하찮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안 비서에게 그는 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 놀랐는데 그런 안 비서를 보고 서지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안 비서. 내 말 안 들려?”
“네?”
“내가 물었잖아?”
“아네. 강 실장님께서는 여전히 미전실장 자리에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