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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안 그래도 일이 많아서 직원들에게 미안해 죽겠는데, 대표란 작자는 그 바쁜 부서에서 핵심 인재 둘을 빼내서, 엉뚱한 곳에 발령을 내고 있었다.
문제는 과연 그 두 직원이 그곳에서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였다. 그런 김 본부장의 우려에 아랑곳 하지 않고, 황치열이 날 선 어조로 말했다.
“강 과장. 다시 가서 그 둘 데리고 와. 그리고 당신,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나?”
황치열의 그 말에 강 과장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리더니, 황치열과 김효석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몸을 빼내서 콘텐츠 사업부로 뛰어갔다.
그런 그를 황치열은 한심하게, 김효석은 어이없이 바라봤다.
하지만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파워 게임에서 황치열이 이겼다는 걸 말이다.
“이이....”
화가 제대로 난 김효석은 씩씩거리며 곧장 대표실로 향했다. 하지만 점심 먹고 벌써 와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대표실에 홍대복은 없었다.
“대표님 언제 오나?”
김효석이 대표실 앞 미스 김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떽떽 껌 씹고 있던 미스 김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몰라요. 알아서 들어오겠죠. 뭐.”
“아니 그게 비서....하아....”
미스 김은 홍대복 대표의 비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미스 김의 말처럼 대표인 홍대복이 회사에 언제 들어올지는, 순전히 대표인 홍대복 마음이었다.
안 되겠다 싶었던 김효석이, 홍대복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의 전화를 받을 홍대복이 아니었다. 해서 김효석은 홍대복이 보는 즉시 지워버리는, 문자 메시지를 작성해서 홍대복에게 보냈다.
그리곤 자기 부서로 돌아갔는데 ,마침 콘텐츠 사업부의 두 직원이 짐을 싸고 있었다.
황 차장을 만난 뒤 그에게 모종의 지시를 받은 모양이었다.
두 직원 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이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박 대리, 임 주임. 두 사람 잠깐 나 좀 봐.”
김효석은 당연히 그 두 사람이 그의 말을 듣고 자기 쪽으로 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
그들은 김효석의 말을 생 까버리고 싸던 짐을 마저 싸더니, 그 짐을 들고 휑하니 콘텐츠 사업부를 나가 버렸다.
“잠깐....하아....”
물론 김효석이 몇 번이나 그들을 다시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김효석의 말은 무시하고 떠나버렸다. 그걸 보고 황당해 하는 김효석에게, 오늘 그를 배신한 강 과장이 다가와서 말했다.
“저들도 안 거죠. 김 본부장님이 좆도 아니란 걸.”
“뭐, 뭐라고?”
“그리 꼬나보면 어쩔 건데요?”
“너, 너 이 새끼....”
“욕 하지 맙시다. 나보다 몇 살 많지도 않으면서....”
강 과장의 말에 김효석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부들부들 몸을 떨 때였다.
“우리 황 차장님이 이 말 전하라고 해서 왔습니다. 괜한 짓마시고 얌전히 회사 다니시랍니다. 잘리고 싶지 않으면.”
“뭐, 뭐라고!”
잘리는 게 무서웠다면, 애초 홍대복 대표에게 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또 그의 능력이면 오라는 연예기획사는 널리고 널렸다.
그건 오늘 황 차장 밑으로 강제로 발령 난, 박 대리와 임 주임도 마찬가지였고.
김효석이 좀 전 그들을 부른 건 당부라도 해 두기 위해서였다. 회사 그만 두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이다.
그럼 자기가 홍대복 대표에게 말해서, 그들을 원래 부서로 되돌려 보내 주겠다고.
하지만 이제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보아하니 홍대표가 곧 자신을 자를 것 같았던 것이다.
눈치 겁나 빠른 황치열이가 그것도 모르고, 자기에게 경고를 해 왔을 리 없었다.
‘그래. 나도 더는 이런 회사 다니기 싫다.’
홍대복 대표에게 그렇게 말해도 돌아오는 건, 공허한 그 자신의 메아리뿐이었다.
김효석은 차라리 자기가 먼저 이 회사를 나가서 재취업한 연예기획사에서, 박 대리와 임 주임을 그 회사로 끌어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박 대리와 임 주임만 날 받쳐주면....’
그 어떤 연예기획사에서도 성공할 자신이 있는 김효석이었다.
‘좋아. 사표 내자.’
한번 결심하면 무섭게 몰아붙이는 실행력의 끝판 왕이 김효석이었다.
그는 이미 써 놓은 사직서를 자신의 서랍 속에서 꺼낸 뒤 대표실로 다시 향했다.
미스 김도 손이 있으니 그가 건네는 사직서를 받아서, 홍대복 대표에게 전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대표님 아직 안 왔어요.”
대표실 앞 비서 자리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톱 손질 중이던 미스 김. 그녀는 김효석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간 김효석이 그녀 책상 위에 봉투 하나를 올리며 말했다.
“대표님 오시면 이거 드려요.”
“어머. 이게 뭔데요?”
김효석이 건넨 봉투에선 ‘辭職書’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한자를 모르는 미스 김은 봉투에 뭐가 들었는지 그걸 더 관심 있어 했다. 실제로 김효석이 가고 나자 봉투를 창 쪽으로 비쳐보고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쳇! 돈이나 상품권 같은 거 아니네.”
봉투 안에 든 것이 그냥 종이 쪼가리란 걸 알아차린 미스 김. 그녀는 그 봉투를 대충 자기 책상 귀퉁이에 던져 놓고, 마저 하던 손톱 손질을 이어서 했다.
* * *
QH엔터 홍대복 사장과 통화를 하고 난 백준기. 그가 기뻐하며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남산 타워 전망대 쪽으로 가.”
“네.”
안 그래도 목적지 없이 도로를 헤매고 다녔던 운전기사는, 백준기의 말에 기뻐하며 바로 유턴을 했다. 그리곤 남산 타워가 있는 용산구 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막상 홍 사장이 전에 그에게 접대를 했었던 곳으로 가려니 그곳 위치가 헷갈렸다.
“아아. 씨....”
오늘 그가 자른 수행비서는 거길 잘 아는 데 말이다.
백준기는 별 죄책감도 없이, 자신의 수행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야! 어디야?”
=버리고 간데 그대로 있습니다만.
“너 지금 당장 택시 타고 남산 타워 쪽으로 와.”
=왜요?
“뭐? 왜요? 이 새끼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그래서 못 오겠다고?”
=뭣 때문인지 알아야 가죠.
“저번에 QH엔터 대표 초대로 갔던데 있지?”
=아아. 남산 파라다이스 말씀이시군요.
“어어. 맞아. 거기 지금 가는 데 위치가 헷갈려서 그러니 와서 얘기 해주고 가.”
=그러니까 좀 전에 대표님이 자른 저보고, 거기 위치 알려주러 지금 남산 타워로 오란 겁니까?
“그래.”
=허얼....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 듯 보이는 수행비서. 하지만 백준기는 수행비서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더 이상했다.
잘린 건 잘린 거고 그가 하는 부탁은 어떻게든 들어줘야지 말이다. 그때 다소 흥분한 듯한 수행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대표님. 저 자르셔 놓고 어떻게 이런 부탁을 하실 수 있으세요?
“그래서? 이번 달 월급하고 퇴직금 안 받을 거야?”
=그거야 안주면 바로 노동청 가면 되죠.
사업장이 무려 방송국이다. 그런 곳에서 퇴직한, 그것도 대표가 자른 직원의 임금과 퇴직금을 가지고 장난친다? 그 이미지를 중시하는 방송사에서, 애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참. 이놈에 정부가 다 망쳐 놔. 임금 체불 신고에다가, 최저임금이다 최저시급이다 하면서, 고용주를 옭죄는 정책을 계속 고수하다간, 이 나라 언제고 망하고 말지.”
그렇게 투덜거리던 백준기. 마치 자기가 자영업자들의 대변자라도 된 듯 굴었다.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수행비서를 협박했다.
“너 당장 안 튀어 오면 ,네 앞길 다 막아 버릴 테니 그런 줄 알아. 나 TVM 대표야. 못 할 거 같아?”
=눼눼. 니 좆대로 하세요.
“뭐, 뭐?”
취애애애액!
그때 시원하게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 너 이 새끼 지금 어디야?”
=어어. 시원하다. 묵힌 똥 다 싸고 나니, 속이 이렇게 편한 것을. 또 성 접대 받으러 가시는 모양이신데. 조심하세요. 요즘 그쪽으로 단속 중이라던데.
“누, 누가 성 접대를 받아! 그리고 단속은 누굴 단속 해. 내가 누군데 감히....”
켕기는 게 있으니 자연 목소리가 높아지고 성질을 부리는 백준기.
=네. 네. 잘나신 대표님이 그럼 알아서 거기 잘 찾아가십시오. 저는 볼일 다 본 터라 이만 화장실을 나가야 해서요. 그럼 사요나라~
뚜뚜뚜뚜뚜....
“야! 야! 이 새끼 진짜 전화 끊었네?”
씩씩거리며 백준기가 수행비서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더 이상 백준기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 * *
TVM 백준기 대표의 수행비서 김준오.
그가 JYB엔터 특부 1부문의 차 과장과 최종적으로 전속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차은석 부문장을 만나러 가기 직전.
“저 화장실 좀....”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 온 김준오는, 차 과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근처 화장실에 들어갔다.
“으으으으....”
그리곤 큰 볼일을 보러 화장실 칸막이 안, 대변기에 앉아 바로 볼 일을 봤다.
하지만 요 며칠 계속 되고 있는 변비로 인해, 똥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고 애를 먹였다.
그때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시끄럽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똥꼬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던 김준오는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호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을 바로 받았다. 그랬더니 좀 전 그를 잘랐던 TVM 대표 백준기였다.
‘혹시....’
김준오는 솔직히 말해 일말의 기대감도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만약 백준기 대표가 잘못했다고 싹싹 빌며, 복귀하라고 하면 어쩌나 속으로 걱정을 했다.
하지만 백준기는 끝까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와아. 이거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그러니까 자신을 잘라놓고, 당장 자기가 좀 아쉽고 불편하니 그를 막 불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해고 한 직원에게도 이런 갑 질을 하다니.
김준오는 생각 같아서는 백준기에게 욕이라도 끌어 붓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참고 있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남산 타워에는 왜 오라는 거지?’
그래서 마치 왜 가야 하는 지 알려주면 갈 거처럼 굴었다.
그랬더니 백준기가 저번 달에 QH엔터 대표의 초대로 간, 남산 파라다이스에 또 가려는 모양이었다.
‘거기는 성 접대 받는 곳이잖아?’
김준오는 그때 남산 파라다이스 안에 있지는 않았지만 밖에서 전부 다 봤다.
어느 높으신 양반이 그 안에서 신인 여배우를 유린하는 걸 말이다.
거기 있던 다른 인기 여배우는 자신의 입지를 잃게 될까 봐, 그 부당함을 보고도 모른 척했고.
당시 김준오는 그 신인 여배우의 매니저가 우는 걸 달래주며, 남산 파라디이스가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게 됐다.
그 뒤 김준오는 백준기와 통화를 계속 하며 살살 그의 약 올렸고, 그가 화를 낼수록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막혔던 똥이 나오기 시작했고, 쾌변을 누고 난 김준오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졌다.
그 뒤 대변기 물을 내렸는데, 그 소리를 듣고 백준기가 지랄을 해댔다.
하지만 이제 자기 대표도 아닌 백준기에게, 더 이상 신경 쓸 이유가 없었던 김준오.
그는 쿨하게 백준기와 통화를 먼저 끊어 버리고, 그의 번호에 수신 제한을 걸어 버렸다.
그 뒤 화장실을 나간 김준오는 그를 기다리고 있던, 차 과장과 같이 특수 1부문 회의실로 갔고 거기 있던 부문장 차은석과 예능인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그 뒤 차은석과 가볍게 얘기 중 요즘 연예기획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유흥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 얘기가 나왔다.
“요즘도 그런 기획사가 있어요?”
차은석이 불쾌한 얼굴로 말하자, 차 과장이 바로 대꾸했다.
“있으니 단속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때 김준오가 그들 대화에 끼고 싶었던지 말했다.
“저 그런 기획사 아는데.”
“그래요? 어딘데요?”
이때까지 차은석은 별 대수롭지 않게 김준오에게 물었고, 김준오 역시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하며 대답을 했다.
“QH엔터요. 얼마 전에 그 장소에 갔었는데, 글쎄 거기서 강제로 성 상납 당하는 신인 여배우의 매니저가 울어서, 제가 달랜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가만. 지금 QH엔터라고 했나요?”
“네.”
김준오의 대답에 차은석이 시선을 옆으로 돌려 차 과장을 보고 물었다.
“거기 홍대복이 대표로 있는 곳 맞죠?”
“네. 맞습니다.”
“김준오씨. 혹시 그 성 상납 당한 신인 여배우가 누군지 아세요?”
“이름까지는 잘....아아! 그 신인 여배우 매니저 이름은 알아요.”
“누군데요?”
“QH엔터 소속 매니저 강기석이요.”
“확실해요?”
“네. 제 불알친구 이름이 강기석이거든요. 녀석과 이름이 같아서 저도 그 매니저 이름 만큼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거니까요.”
“중요한 정보 고마워요. 차 과장. QH엔터에 강기석이란 매니저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서 알려줘요. 저는 대표님 한데 전화 해드려야 할 거 같아요.”
어제 차은석은 백준열 대표와 이번에 데뷔하는 신인 걸 그룹의 론칭 문제를 두고 얘기를 나눴었다.
그때 JYB엔터의 신인 걸 그룹과 부딪치게 될, 그러니까 라이벌이 될 것으로 예상 되는 걸 그룹으로 백준열 대표는 QH엔터의 해피걸스를 꼽았다.
그러면서 거기 대표인 홍대복이 조폭 두목이라며, QH엔터와 연관 된 일이 있으면 바로 그 일을 추진하지 말고, 먼저 자기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었다.
그 기억에 차은석은 곧장 백준열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은석이 전화하자 백준열 대표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말씀하신대로 TVM 백준기 대표의 수행 비서였던 김준오씨와 예능인 전속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쓸 만했나 보군요. 계약까지 한 걸 보면.
“네. 문수찬 작가님께서 보증하셨어요.”
=문 작가 보증이면 당연히 잘 키워야겠네요.
“그렇죠.”
=근데 김준오씨 까지 더해지면, 특수 1부문에 맡은 연예인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네. 좀 많기는 한데 아직까지는 할 만합니다. 어째든 아직 저희 특수부문에서 탑 스타가 나온 건 아니니까요.”
=조급하게 굴 거 없습니다. 천천히 가도 결국엔 특수부문의 연예인들은 전부 탑 스타가 될 테니까요.
차은석은 좀 전 그 말을 당연히 백준열 대표가 덕담으로 한 말로 여겼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백준열 대표는 그 말이 진심이었던 거 같았다.
=차 부문장은 좋겠네요. 진짜 그렇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