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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 짓거리를 10여분 하고 나자....
“컷! 여기까지....좋은데요? 카메라 잘 받는 타입입니다.”
“그렇겠죠. 대표님이 보낸 사람인데. 자아. 다음 장소로 갑시다.”
뭐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야 좋았지만, 김준오는 자기가 왜 이러고 다녀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차 과장이란 사람에게 물었다.
“저기....제가 왜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지....”
“여보세요? 네? 문작가님이요? 알았습니다.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따라와요.”
하지만 하필 그때 차 과장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전화를 받고 난 그가 다급히 움직이자, 결국 묻고 싶은 걸 물어보지도 못하고 김준오는 또 어딘가로 끌려갔다.
“작가님!”
그곳에서 김준오는 KVS 개그 페스티벌의 메인 작가인 문수찬 작가를 만났다.
이번에는 그나마 누구를 만나러 간다는 것 정도는, 이동 중 차 과장이 말해 준 것.
“어어. 차 과장. 무슨 일인가?”
“어디 가세요?”
“나? 요 앞에 누가 찾아왔다고 해서.”
“금방 들어오실 겁니까?”
“아니. 점심 먹고 바로 KVS 들어 갈 건데. 왜?”
“혹시 지금 만나실 분, 일적으로 만나시는 겁니까?”
“아냐. 내 친구야. 왜?”
“대표님께서 이 친구 좀 봐 주십사 하셨거든요.”
“대표님이?”
차 과장은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문수찬 작가에게 백준열 대표를 팔았다.
차은석 부문장의 지시라고 해도 되지만, 그럴 경우 문수찬 작가가 바로 납득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아마도 확인 차 차은석 부문장에게 전화를 걸어 볼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대표님이 부탁했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졌다.
“뭐하는 친군데?”
문수찬 작가의 그 질문에 차 과장이 힐끗 김준오를 쳐다봤다.
그보고 대답하란 제스처였다. 김준오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불과 30분 전까지 저는 TVM백준기 대표 수행 비서였습니다만.”
김준오의 그 대답에 문수찬 작가가 흡족하니 웃으며 말했다.
“쓸 만한 녀석을 데려 왔군. 데리고 와.”
그리곤 앞장서서 걸어갔고, 차 과장이 김준오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뭐해? 빨리 따라가지 않고.”
“네. 뭐....”
김준오가 문수찬 작가를 따라 갈 때 차 과장이 외쳤다.
“작가님. 저 뭐 좀 사가지고 가야하는데 어디서 뵐까요?”
그러자 문수찬 작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아라비카로 와.”
“네. 그럼 거기서 뵙겠습니다.”
그렇게 김준오는 차 과장에서 문수찬 작가로 갈아 탄 체 또 어딘가로 끌려갔다.
* * *
문수찬 작가가 말한 아라비카는 경양식 집으로,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 때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 동안은, 커피숍으로 운영이 되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문수찬 작가는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다가, 점심 식사 시간이 되면 거기 치즈 돈가스를 시켜 먹는다고 했다.
그걸 김준오가 어떻게 알았냐고? 가는 동안 이리 오라고 해서 문수찬 작가 옆에 다가갔더니, 그때부터 문수찬 작가가 혼자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고, 그 말을 듣다보니 알게 된 사실이었다.
“동표야!”
“어어. 수찬아.”
문수찬 작가는 경양식 집에서 친구를 만나자, 그 동안 옆에 끼고 떠들어 댔던 김준오는 바로 버렸다.
“허얼....”
그런 그의 급 돌변하는 태도 변화에 혀를 내두르던 김준오. 하지만 이대로 무시만 당할 수는 없는 노릇. 김준오는 문수찬 작가가 앉으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옆 자리에 떡하니 앉았다. 그런 그를 문 작가 친구가 빤히 쳐다보자 김준오가 말했다.
“저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 문 작가님 심심풀이 땅콩이거든요.”
“네?”
“뭐?”
그 말에 문 작가와 그 친구가 다들 어이없어하며 김준오를 쳐다보았다. 그러던 말든 김준오가 손을 들며 외쳤다.
“여기 시원한 콜라 한잔요.”
김준오는 넉살 좋게 콜라 한잔을 시켜서 마셨는데, 그 사이 문 작가와 그 친구는 밀린 얘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때 차 과장이 나타났다. 그런 차 과장의 손에는 마카롱 상자가 들려 있었고, 그걸 문 작가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건 뇌물입니다.”
그러자 문 작가가 옆에 김준오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뇌물은 잘 받을 게. 근데 이 녀석, 제법이야. 키워 볼 만 하겠어.”
“그, 그래요?”
예능인을 알아보는 문 작가의 눈은 탁월했다. 그러니 10년 넘게 KVS의 간판 개그 프로의 메인 작가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이고.
“손 좀 봐서 개그 페스티벌로 보내. 신인으로 데뷔는 시켜 줄 테니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작가님. 준호씨. 뭐해요? 인사드리지 않고.”
“네. 뭐....고맙습니다.”
차 과장의 닦달에 어쩔 수 없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김준오를 보고, 문수찬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 장점은 웃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야. 그냥 하던 대로 하면 편하게 해. 그럼 예능인으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문수찬 작가로부터 영광스럽게 조언까지 들은 김준오.
그는 결국 그 경양식 집에서 점심을 먹지 못하고 나와서, 근처 분식집에서 차 과장과 같이 김밥을 먹었다. 그때 김준오가 차 과장에게 물었다.
“라면하나 시켜 먹으면 안 돼요?”
“되죠. 당연히. 아줌마. 여기 라면 하나 추가요.”
원래 김준오는 차 과장에게 물을 게 많았다. 하지만 점심 식사 중 그걸 차 과장에게 묻지 않은 것은, 그냥 끝까지 가 보자 싶어서였다.
JYB엔터에서 그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걸 안 순간, 김준오도 기대란 걸 하게 된 것이다.
‘어차피 잘려서 할 일도 없는 데 뭐....’
백수가 된 그로서는 하루 이틀 허비하는 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김준오는 마음이 편해졌고, 그러자 먹고 싶은 게 더 늘었다.
“떡볶이하고 튀김 먹어도 되죠?”
“네. 아줌마. 여기 떡볶이, 튀김도 추가요.”
차 과장은 김준오가 원하는 건 다 시켜 주었다. 그렇게 배 터지게 먹고 JYB엔터로 돌아 온 김준오. 그런 김준오에게 JYB엔터 최연소 임원이라는 차은석 부문장이 말했다.
“준호씨. 저랑 차 한 잔 같이 해요.”
그렇게 그녀와 둘이서 회의실로 들어간 뒤, 차 부문장의 전화를 받은 차 과장이 계약서를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 부문장과 김준오가 악수를 했다.
불과 오늘 오전까지 TVM의 대표 백준기의 수행 비서였던 김준오. 그가 JYB엔터와 예능인 전속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내일부터 9시까지 회사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퇴근 시간은 5신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얼마든지 트레이닝 실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트레이닝 실은 24시간 개방 되어 있으니까요.”
“근데 제가....진짜 연예인이 될 수 있는 겁니까?”
김준오의 진지한 물음에 차은석 부문장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까 문수찬 작가님 말씀 들으셨죠?”
“네.”
“그 분이 인정하신 이상 김준오씨는 연예인으로써 끼가 충분히 있으신 거예요. 그리고....”
차은석 부문장은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였는데 그걸 얼버무렸다. 그래서 김준오가 물었다.
“그리고요?”
“으음. 실은 김준오씨를 테스트 해보고, 가능성이 있으면 계약하라고 지시하신 분이 따로 계십니다.”
“아아. 저도 알아요. 여기 백 대표님이시죠?”
“네. 저희 대표님이 보는 눈은 정말 정확하시거든요. 대표님이 김준오씨를 찍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김준오씨는 연예인으로서 성공 가능성이 보장 된 거나 마찬가지에요.
일단 저희 대표님께서 김준오씨를 전폭적으로 지원하실 테니까요.”
“백 대표님께서 저의 뭘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신 건지 지금도 궁금하지만, 그분의 안목이 그러시다니 일단 노력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제가 예능인으로 성공한다면....저는 이곳 JYB엔터에 뼈를 묻을 겁니다.”
“오우. 김준오씨도 예외는 아니에요.”
“네?”
“실은 백 대표님 추천으로 계약하신 분들이 다들, 회사에 대표님에 대한 충성심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김준오씨도 마찬가지고요.”
“아무래도 자기를 알아 봐 줘서 그런 것 아닐까요?”
“하긴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기를 사랑해주는 자를 위해 치장한다고 했던가요?”
“네. 그만큼 자기 마음과 능력을 헤아려 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네요. 김준오씨 말을 듣고 보니, 저 역시도 백 대표님이 절 알아 봐 주셔서, 이렇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요.”
서로 공통분모가 생겨서 일까? 김준오를 보는 차은석과, 차은석을 보는 김준오의 눈빛이, 확연히 이전과는 달라졌다.
* * *
TVM의 대표 백준기는 안 그래도 열 받는데, 자신을 더 화나게 만든 자신의 수행 비서를 그 자리에서 해고 했다. 하지만 그걸로 화가 풀리지 않아 TVM의 인사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봐. 구 팀장. 내 수행비서 말이야.”
=김준오 비서 말입니까?
“그 새끼 이름은 내가 어떻게 알아?”
버럭 화를 낸 뒤 백준기는 너무도 잔인한 말을 내 뱉었다.
“그 새끼 좀 전에 잘랐으니까 바로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 해. 그리고 그 새끼 다시는 우리 회사에 기웃거리지 못하게 하고. 그 새끼 내 눈에 띠면 나 진짜 죽여 버릴지 몰라.”
=알,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백준기가 이런 게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 인사팀장은 이런 지시를 내린 뒤 백준기가 꼭 확인을 하는 쫀쫀한, 아니 속 좁아 터진 놈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확실하게 조치를 취했다.
그 사이 백준기는 여전히 부친과 CH그룹 쪽 전화는 일체 받지 않으면서 차 안에서 백준열 욕하기 바빴다.
하지만 욕한다고 백준열이 백준기가 처한 상황을, 원래대로 돌려놓지는 않을 거란 건 누구보다 백준기 본인이 잘 알았다.
“하아. 씨발. 그냥 눈치껏 잘해 줄 걸.”
괜히 백준열이 꼴 보기 싫다고 그를 갈군 게 지금 와서 후회가 됐다. 하지만 엎지러진 물인 걸 어쩌랴.
“뭐 아버지가 알아서 하시겠지.”
어차피 자기가 TVM의 대표지만 또 TVM의 최대주주도 아니었다.
TVM의 최대 주주는 백준기의 큰형인 백준모였고, 부친인 백승호 회장은 자신이 가진 TVM 지분을 가지고, 매번 백준기에게 희망고문을 가했다.
백준기가 TVM을 잘 경영한다면, 자신의 지분을 백준기에게 넘겨주겠다고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백준기의 보유 지분이 백준모를 넘어서면서 TVM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었다.
“흥. 누가 그 시커먼 속을 모를 줄 알고?”
하지만 백준기도 알았다. 그가 제 아무리 TVM을 잘 경영해도, 결국 TVM은 장남인 백준모에게 넘어갈 거란 걸 말이다.
백준기 뿐 아니라 다른 형제들 역시 알고 있었다.
부친인 백승호 회장이 말만으로, 자기 지분을 자식들 중 뛰어난 경영 능력을 보인 자식에게 넘기겠다고 떠들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러니 누가 자기가 맡은 CH그룹의 계열사를 키우려 노력하겠나? 어차피 키워 봐야 큰형, 즉 장남 좋은 일시키는 건데 말이다.
근데 백준기도 그렇고 다른 형제들도 제일 짜증나는 건, 백승호 회장이 장남을 뺀 나머지 아들들에게는 이렇게 박하게 굴면서, 딸인 백진희에게 만은 다 퍼준다는 점이었다.
“씨발. 진희만 총애하고....”
당장에 증여한 주식만 봐도 티가 났다. 백준기가 보유 한 TVM의 주식은 3.7% 밖에 안 되는 데, 이번에 백진희가 증여 받은 CH홈쇼핑의 주식은 8.6%나 됐다.
그것뿐이면 말도 안 해. 백진희에게 CH그룹의 지주사인 CH제당 지분을 3%나 증여한 것이다. 장남인 백준모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아들들에게도 절대 주지 않았던 지주사 주식을 말이다.
“그래. 어디 그 잘난 장남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막내 딸 데리고 잘 살아보세요. 백승호 회장님.”
백준기는 자신의 핸드폰에 걸려 온 전화에 뜬 발신자 이름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런 그의 핸드폰 액정에는 ‘아버지’가 아닌 ‘CH그룹 회장님’이란 글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 * *
기어코 부친의 전화를 받지 않은 백준기.
“하아....”
하지만 당장 그가 갈 곳이 없었다. 그가 대표로 있는 TVM에 갈까 했지만, 거기 갔다간 그곳 임원들이 그를 가만 두지 않을 거 같았다.
하긴 마케팅 박 국장에게 큰소리 떵떵 쳐 놓은 상태라 다들, 그들의 대표인 백준기가 해결 할 거 철석같이 믿고 있을 텐데, 그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회사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직 퇴근 시간도 아닌데 집으로 갈 수도 없고. 만날 친구들도 지금은 일하느라 바쁘지 그와 만나 줄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아아. 맞다.”
그때 백준기의 뇌리에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국내 연예기획사 대표들 중에서 TVM대표인, 자신에게 가장 입안의 혀처럼 굴었던 인물. 바로 QH엔터 대표인 홍대복.
“그래. 홍사장이 있었지.”
홍사장이라면 지금 이 시간이라도 그를 만나 줄 거라 확신했다. 백준기는 핸드폰의 연락처에서 홍대복의 이름을 찾았다.
“어어?”
그런데 그가 저장해 둔 연락처에 홍대복이란 이름이 없었다.
“분명 여기 있는데....”
예전에 이 핸드폰으로 홍사장에게 전화를 건 적도 있었다. 그 사이 자신이 지웠다면 그런 기억이 있어야 하는 데, 아무리 생각해도 백준기는 홍대복의 전화번호를 지운 적은 없었다.
“이상하네....”
그러면서 쭈욱 다른 연락처를 살피던 백준기.
“아아. 맞다.”
백준기는 연락처 이름 중에 홍대복은 찾지 못했지만, 그 이름 대신 ‘딸랑딸랑’이란 글을 발견하고는 그게 바로 홍대복의 연락처란 걸 드디어 기억해 냈다.
저번에 술 마실 때 백준기가 장난삼아 홍대복이란 이름을 ‘딸랑딸랑’이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가 하도 자기에게 딸랑거리며 아부를 해 대서 말이다.
“헷갈려서 안 되겠다.”
백준기는 자기 핸드폰 연락처의 ‘딸랑딸랑’을 다시 홍대복이란 이름으로 바꾸고 나서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