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201화 (20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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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정재욱은 맛있는 냄새를 맡고 잠에서 깼다. 처음엔 자신이 꿈을 꾼 줄 알았다.

아들을 연예인 만들겠다고 싸돌아다니기 시작하고는, 아침에 제대로 된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그가 좋아하는 된장찌개와 굴비 굽는 냄새가 집안에 풀풀 나고 있었다. 그러니 이게 꿈이 아니고 뭐겠냐?

“여보. 깼으면 어서 씻고 나오세요. 식사 하시고 출근하셔야죠.”

“뭐?”

정재욱은 앞치마를 두른 아내를 보고, 역시 이건 꿈속이라 생각했다.

이 시간에 아내가 앞치마 입고 있다는 게 말이 안됐으니까.

평소의 아내는 이때 이미 단장을 하고, 아들 정민수를 챙겨서 집을 나간 뒤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에 아내가 보인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여보!”

그때 또 그의 아내가 보였다. 그 뒤로 아직 잠옷 차림의 아들 정민수도 보였다.

“어어. 알았어.”

정재욱은 이게 꿈이던 생시든, 어째든 출근 때문이라도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몸을 일으켜서 욕실로 가서 세수를 했다.

‘차갑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정재욱은, 그제야 이게 꿈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혹시 몰라 주방으로 나갔다. 그랬더니 주방에 아내가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가 든, 뚝배기를 식탁에 올리는 게 보였다.

“허얼....”

“어서 와서 식사해요.”

“아빠. 빨리 와. 민수 배고파.”

“어어. 그래. 먹자.”

후다닥 주방 식탁으로 간 정재욱이 자리에 앉자, 아내가 오븐 속에서 갓 구운 굴비를 꺼내왔다.

“아아....”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먹어보는 제대로 된 집 밥이란 말인가? 감격어린 정재욱.

그는 얼떨떨해 하면서도, 아내가 발라주는 굴비를 맛있게 받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식사 후 출근 준비를 하고 안방을 나온 정재욱. 그가 설거지 중인 아내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오늘 오디션 보러 안 가?”

“네. 당분간은 쉬려고요.”

“왜?”

“민수도 학교 가고 싶다고 하고, 오디션 하는 소속사도 없고 해서요.”

“그래?”

정재욱은 일말의 기대를 가졌는데, 역시나 아내와 아들의 연예인 병은 그대로였다.

정재욱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출근을 했고, 그가 출근 하자 그의 아내 고미나가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휴우. 들키는 줄 알았네.”

고미나는 남편이 아들 정민수가 소속사가 생긴 걸, 혹시나 알까 싶어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들켰다가는 저번처럼 남편이 초를 치려 들지 몰랐다.

“엄마. 우리 언제 회사 가?”

“오늘은 11시까지 가면 되니까 아직 시간 있어.”

“그럼 나 게임 해도 돼?”

“어디 보자. 한 시간?”

“콜!”

고미나는 아들 정민수가 자기 방에서 게임을 하는 동안 설거지와 집안 청소, 그리고 세탁기까지 다 돌려놓은 뒤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 * *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근한 정재욱. 그는 오늘 유독 기분이 좋았다.

아내와 아들의 그놈에 연예인 병이 나은 것은 아니지만, 어째든 앞으로 한 달 동안 제대로 된, 아침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뭐 그 사건이 해결 돼? 진짜?”

거기다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이 정말 운 좋게 해결이 됐다. 범인이 현장에 나타날 거로보고 한 달 가까이 잠복한 끝에 거둔 쾌거였다.

“하하하하. 다들 수고했어.”

사건 해결은 현장에서 했지만, 그들의 상관인 정재욱이 대표로 청장님께 칭찬을 들었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박대순 청장이 정재욱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 것이다.

“참. 자네도 내일 골프 치러 가기로 했었지?”

“네. 청장님.”

“그렇다면 오늘 서울CC에 가서....”

박대순 청장의 부탁은 소소한 것이었다. 내일 골프 치기로 예약되어 있는 서울CC로 가서, 그곳 관계자에게 미리 내일 돌, 코스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듣고 오는 것.

“얘기가 길어질 수도 있다니 지금 출발하게.”

“네. 바로 가겠습니다.”

이건 아무나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골프 코스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는 건, 곧 내일 정재욱이 박대순 청장과 같이 붙어서 골프를 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골프를 칠 때마다 그 코스에 대한 설명을, 정재욱이 박대순 청장에게 해줘야 할 테니 말이다.

“확실히 오늘 운이 좋은 거 같아.”

정재욱은 자기 방에 들어가자마자, 사복으로 옷을 갈아입고는 서울경찰청을 나섰다.

그때 서울경찰청장인 박대순은, 백준열 대표가 왜 자신에게 그런 부탁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골프 코스는 내일 골프 치면서, 골프장에서 제공하는 안내 팸플릿만 봐도 충분했으니까.

굳이 거기로 사람을 보내서, 설명을 듣고 올 필요는 없었다.

막말로 자신이나 내일 골프 치기로 한, 고위 공직자들이 하루 이틀 골프 쳐 온 것도 아니고 말이다.

“뭐 별거도 아닌 부탁이라 들어주긴 했지만....”

마치 정재욱 콕 집어 얘기한 것은, 백준열 대표가 정재욱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단지 그게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 감이 오지 않는 박대순 서울경찰청장.

“그거야 내일 골프 치다보면 알게 될 것이고....”

박대순은 이왕 생각 난 김에, 내일 칠 골프채나 닦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차 트렁크에 있는 골프백을 가져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랬더니 얼마 후 자신의 골프채를, 민병도 공안차장이 들고 청장 실에 나타났다

“아니. 자네가 왜 내 골프백을....”

“제 골프채를 관리하는 곳에서 찾아오는 길에, 청장님 골프백을 관용차에서 꺼내는 걸 보고, 제가 드릴 것도 있고 해서 그냥 메고 왔습니다.”

“내게 줄 게 있어?”

“네. 이거....”

민병도 공안차장이 박대순 청장의 골프백 뒤로 숨기고 있던 것을 꺼냈다. 그건 바로 새로운 골프백이었다.

“저번에 보니 골프백이 많이 닳아 있기에, 제가 청장님 쓰시는 골프채 브랜드 사에 문의해서, 같은 골프백으로 준비했습니다.”

“아니 뭘 그렇게 까지나....안 그래도 바쁜 사람이....”

박대순 청장은 말은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있었지만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골프채가 들어 있는 골프백이라면 박대순 청장도 거절했을 터였다.

왜냐하면 경찰청장 자리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몸을 사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골프채가 들어있지 않는 골프백은 받아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중요한 건 그 마음 씀씀이였다. 세심하게도 자신의 골프백이 낡은 걸 보고 그걸 바꿔 주려 한 공안차장의 그 마음이, 박대순 청장을 흐뭇하게 만든 것이다.

그를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 * *

정재욱은 차안에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서울CC로 향했다.

그때 오재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응? 지금쯤이면 그년 집에 압수수색하러 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럼 이렇게 그에게 한가하게 전화할 새도 없어야 맞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올 일도 없었고.

여하튼 복합적으로 지금 이 시간에, 오재수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는 거 자체가 문제였다.

“어. 왜?”

정재욱은 음악을 끄고, 일단 오재수가 걸어 온 전화를 받았다.

=과장님. 여기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역시나 정재욱의 생각대로였다. 뭔 문제가 있어 오재수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온 것이었다.

“뭔데?”

=그게....

오재수는 자신이 근무하는 경찰서의 서장인 강주엽 총경이, 그가 차은석의 집을 압수수색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말했다.

“강 총경. 그 사람 진짜 사람 짜증나게 하네.”

오재수의 얘기를 차근차근 듣고 난, 정재욱이 강주엽 총경을 싸잡아 목하기 시작했다.

“작년 인사 때도 경찰청에 진정을 넣고 난리를 떨더니....”

작년 경무관 승진이 가장 유력 했던 인물이 바로 강남경찰서의 강주엽 총경이었다.

하지만 결국 경무관이 된 것은 그가 아닌 현 경찰청장의 아들 정재욱.

그 일로 한 동안 말들이 많았다. 또한 그 일로 강주엽 총경과 정재욱의 사이도 많이 멀어졌고.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강주엽 총경보다 위였다.

“알았어. 내가 강 총경한데 전화 할게.”

=네. 그래 주십시오. 이러다가 오늘 하려던 압수수색이 물 건너가게 생겼습니다.“

“그럴 일 없을 테니까, 넌 오늘 하기로 한 거 확실히 해.”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정재욱은 강주엽 총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정재욱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아. 씨발....”

강주엽 총경이 자기 전화를 생 까자 머리가 확 돌기 시작한 정재욱.

그는 강남경찰서로 전화를 걸어서, 자신이 누군지 밝히고 강주엽 총경과 통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 온 대답은 오늘 서장님이 무지 바쁘신 관계로,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들이...”

결국 화가 제대로 난 정재욱. 그가 차를 돌렸다. 이렇게 되면 그가 직접 가서 얘기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강남경찰서로 갈 처지가 못 됐다.

“젠장....”

박대순 청장의 그 부탁 때문에 말이다. 할 수 없이 정재욱은 다시 유턴을 해서 서울CC로 향했다.

그러면서 수시로 강남경찰서와 강주엽 총경에게 전화를 했지만, 거기 서장과 통화를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날 오재수는 차은석의 집에 갈 수 없었고, 어제 정재욱과 계획했던 것을 실행 하지 못했다.

* * *

차은석은 정재욱의 와이프와 아들이, JYB엔터에 오는 것에 대해 최대한 배려를 해주었다.

다른 연습생들은 아침 8시 30분까지 와야 하는데, 정민수는 11시까지만 오면 됐고, 레슨 역시 다른 연습생들은 여럿이 한 사람의 트레이너에게 수업을 받아야 했지만, 정민수는 1대 1로 트레이닝이 이뤄졌다.

이것은 명백한 차별이고 특별 대우였는데, 정작 고미나와 정민수는 이런 대우를 받는 걸, 당연시 하고 있었다.

“왜냐? 그 만큼 우리 민수는 특별하니까요.”

이러니 다른 소속사에서 그들 모자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을 것이다.

차은석도 어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정재욱의 와이프와 아들이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소속사에 특별혜택만 원하는 걸로 이미 유명하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중소 연예기획사에서는, 그들이 나타나면 그냥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일상화 되어 있다나.

“그러니까 내가 그들에게 그 특별혜택을 주겠단 거지.”

차은석은 JYB엔터에서 해 주는 특별대우에, 입이 귀에 걸린 고미나를 보고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렇듯 특별한 대우를 받던 사람이, 그러지 못하게 되었을 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화가 나겠지. 짜증도 날 것이고. 근데 그게 다 자기 남편 때문에, 자기 아버지 때문에 그런 거라면, 과연 그 가정이 어떻게 될까?”

차은석은 정재욱이 자신을 망치려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그의 가정을 받치고 있던 축대를 하나둘씩 제거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축대가 무너지면 그의 가정도 폭삭 내려앉고 말 것이고, 이성을 잃은 정재욱은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백준열 대표가 나서서 그를 찍어 내 버린다면....한결 수월하게 정재욱에게서 경찰이라는 백그라운드를 제거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경찰이 아닌 정재욱은, 차은석도 얼마든지 상대해 줄 자신이 있었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이 희생을 좀 해 줘야겠어요.”

차은석은 신이 나서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정재욱의 아들 정민수와, 그런 아들의 모습에 웃음꽃이 만발한 정재욱의 아내 고미나를 향해, 나직이 그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트레이닝 실에 있는 그들 모자는 밖에 차은석이 와 있는 줄도 몰랐고, 당연히 그녀가 한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저들인가요?”

차은석과 함께 자신의 연기를 봐 줄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여기 온, 박혜지가 그녀에게 물었다.

“네. 저들이에요.”

“완전 악연이네요.”

“그렇죠. 저들 남편이자 아빠란 자와 내가 그렇고, 저들이 나와 그렇고.”

얽히고설킨 인연이 이렇게 악연으로 계속 이어지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그 악연의 고리를 놓지 못하고, 끝까지 쥐고 있는 건 차은석이 아니었다. 저들의 남편이자 아빠인 정재욱이지.

결국 그로 인해서 정재욱은 그의 가족들까지 망치고 있었고, 본인 역시 불구덩이로 뛰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정재욱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 * *

H여대 퀸카로 서울에 있는 연예 기획사들 사이에서 영입 0순위였던 박혜지.

차은석도 박혜지를 노렸던 스카우터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녀를 백준열 대표가 JYB엔터로 불러들여서, 떡하니 전속계약을 체결 하는 걸 보고, 차은석은 과연 백준열 대표다 싶었다.

사람들은 백준열 대표를 개새끼라며 폄훼하지만, 차은석은 그게 다 잘난 백 대표를 시기, 질투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으니까. 왜냐하면 그녀가 직접 겪어 본 백준열 대표는 인격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소양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분으로, 어디 하나 흠잡을 때가 없는 멋진 분이었다. 그런 분을 어떻게 제정신이면, 개새끼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특수 부문을 만든 것도 신의 한수였고.”

JYB엔터에 특수 부문이 생겨나면서, 연예인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면서 연예인들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지금 보다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연예인들이 자기 일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현장에서 좋은 결과를 낳고 있었다. 예전에 10명이 도전해서 3-4명 되던 캐스팅이 7-8명으로 훌쩍 늘어났고, 예능 프로에서도 인정을 받는 예능인이 대폭 늘어났다.

거기에 아이돌의 경우는 전국 투어 콘서트가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대박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비록 며칠 되지 않았지만 JYB엔터에 생겨난 이런 변화의 시작이, 바로 특수 부문이 새로 생겨나서 란 것을, JYB엔터 직원들이라면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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