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96화 (19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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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양태석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사태가 실제로 터지자 가슴이 답답했다.

“백 대표님께 알리셔야지요?”

그때 양태석 맞은편에 공손히 서 있던 그의 오른팔 정준호가 말했다.

“그래야지.”

검경의 태천파에 대한 합동수사는, 이미 예고되었던 바였다.

그에 대한 대비도 이미 다 해 놓았고.

단지 안타까운 건, 이렇게 허망하게 태천파가 공중분해 되는 것이었다.

태천파에 반기를 들었던, 문식파도 어제부로 다 처리한 마당이었다.

이제 좀 조용히 사나 싶었을 텐데, 조폭들에게 있어서 가장 까다로운 존재, 검경 둘이 한꺼번에 치고 들어오면 태천파가 남아날리 없었다.

하지만 태천파에서 쓸 만한 핵심 인재, 혹은 전력은 이미 양태천이 다 빼돌린 상태.

검경은 아마도 잔챙이들만 몇 명 감방에 쳐 넣고, 요란하게 시작한 이번 ‘조폭 일제 단속’을 끝내게 될 것이었다.

물론 그 여타가 양태석과 그의 조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지금 양태석이 백준열 대표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 것이고. 하지만 그 보다 양태석이 먼저 챙길 사람이 있었다.

“형은?”

태천파 총 보스는 예정대로라면 어제 중국으로 떴어야 했다.

그런데 양태석이 지금 정준호에게 그걸 또 묻는다는 것은....

“좀 전에 중국으로 출항하는 배에서, 총 보스를 봤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양태석은 씁쓸하니 웃었다. 그래도 형이 검경에 잡히지 않고, 무사히 국내를 떴다는 사실이 안도가 됐다.

“형수, 아니 안 대표는?”

양태석도 이제 알았다. 형과 형수가 법적으로 남남이 되었다는 걸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형은 끝까지 형수, 안세영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끝끝내 형의 품으로 가지 않았다.

“잘 계십니다.”

“그렇군. 으음....이제 그쪽에 나가 있는 우리 애들 철수 시켜.”

“벌써요?”

“검경이 거긴들 가만 두겠어? 괜히 우리 애들 얼쩡거리다가 들키면 문제만 더 복잡해져.”

“안 들키면....”

“어허!”

“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가만 보면 정준호는 너무 자신이 넘쳤다. 그 만큼 머리를 잘 쓰는 편이지만, 세상에는 그보다 더 머리를 잘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검경에는 정준호 같은 잔대가리 잘 굴리는 녀석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작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정준호는 그저 맛있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그걸 모르고 불나방처럼 설치는 정준호를 누가 통제하겠나? 그게 가능한 사람은 양태석. 그 뿐이었다.

“이제....백 대표님한테 전화 걸어.”

“네.”

정준호가 백준열 대표에게 전화를 건 다음, 그 핸드폰을 양태석에게로 넘겼다.

=여보세요?

“대표님. 접니다. 양 전무.”

=아아. 근데 무슨?

“아셔야 할 거 같아서 전화 드립니다. 검경이 움직였습니다.”

=그쪽 피해는?

“아직 없습니다.”

=알았어. 내가 두 곳 다 손 써 놓을 게.

“감사합니다.”

=알아서 잘 하겠지만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야.

“네. 애들 단속 잘 하겠습니다.”

=그래. 또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네. 들어가십시오.”

뚜뚜뚜뚜뚜뚜....

백준열 대표와의 전화는 초스피드로 이뤄졌고, 서로 할 말만 딱 했다.

그렇게 백준열이 먼저 전화를 끊자, 그제야 양태석이 핸드폰을 정준호에게 넘겼다.

* * *

양태석과 통화 후 옆을 보니 문대식이 움찔했다.

아마 나와 양태석의 통화를 열심히 엿들은 모양이었다.

평소와 다른 그런 문대식의 모습에, 내가 의아해하며 그에게 물었다.

“혹시 양태석에게 무슨 약점 잡힌 거 있어?”

“네?”

“아니면 양태석 한데서, 무슨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던지?”

“라, 라이벌이라니요? 그런 조폭두목한테 제가요? 하아....”

문대식은 아니라고 하지만, 암만 봐도 그는 양태석을 많이 의식하고 있었다.

특히 정민지 요원이 경호팀원에 합류 한 뒤로, 둘의 관계가 계속 표면적으로 부딪치고 있었다.

그 전에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던 둘이, 정민지라는 여자 하나로 지금은 뒤섞여 있다고 해야 하나? 결과적으로 섞이지 못할 둘이다보니, 그게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둘 사이의 신경전을 이렇듯 내가 다 느낄 정도니 말 다한 거지.

그때 운전석의 경호팀원이 말했다.

“5분 뒤에 식당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식당이라 함은 닭볶음탕을 잘하는 곳을 말했다.

그 남은 5분 동안 나는 삼명그룹 인사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 밝히자, 알아서 인사팀장 위에 임원인 박 전무를 바꿔 주었다.

=회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누구를 미전실에 넣으실 생각이신지요?

박 전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그래서 나도 바로 말해줬다.

“삼명종합화학에 기조실장인 백지훈을 미전실에 좀 넣어 주세요.”

=오늘 오후에 바로 발령 날 겁니다.

“고마워요.”

=더 필요한 인사 조치가 있으시면, 언제든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그럴게요.”

그렇게 좋게 백지훈의 미전실 입성을 일단락 짓고 나자, 차가 식당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은 닭볶음탕 말고 삼계탕도 파는 곳이었다.

“하하하하. 역시....”

문대식이 흐뭇해하며 운전석을 바라봤고, 나는 참 먹고 살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애잔한 눈으로 운전석의 경호팀원을 쳐다봤다.

저 경호팀원도 나름 살아남기 위해서 중간의 도, 즉 중용을 생각해 낸 것이다.

즉 내가 정한 닭볶음탕을 잘하는 곳은 가야 하는데, 또 자기의 직장 상사인 문대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닭볶음탕과 삼계탕을 같이 하는 식당을 찾아 온 것일 테고.

“어린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더니....”

점심 먹기 전에 경호팀원 하나에게 중용을 배운 나는, 그 이치를 잘 적용시켜서 닭볶음탕 말고 그 식당 다른 메뉴도 같이 시켜서 먹었다. 물론 삼계탕은 빼고.

“후루룩....쩝쩝쩝....”

식당 한쪽에서 맛있게 삼계탕을 먹고 있는 문대식을 보며, 나를 비롯한 나머지 경호팀원들이 알게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후식으로 수정과를 먹고 입 안을 개운하게 만든 뒤 식당을 나섰다.

아무래도 닭볶음탕은 만드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식사 후 나오니 한 시간이 후딱 지나 있었다.

해서 바로 JYB엔터 본사로 출발했다. 그래도 시간적인 여유가 좀 있어 중간에 커피 전문점에서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마셨다.

역시나 삼계탕만큼이나 커피를 좋아하는 문대식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며 웃고 있는 걸 옆에서 지켜보다가, 문득 생각 난 게 있어서 JYB엔터 공연기획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아. 그렇구나. 알았어요.”

저번 주에 김 비서에게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확인 차 전화해 봤는데. 역시나 맞았다.

“하아. MP4가 이때 지방 콘서트 중이라니....”

고로 오늘 밤에 우희와 뜨거운 시간은 물 건너갔다.

* * *

내가 오늘 밤은 누구랑 같이 자야 하나 생각 중일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전화가 걸려왔고 확인하니 김 비서였다.

“왜?”

=회사 오시는 중이시죠?

“어.”

=지금 여기로 TVM에 백준기 대표님이 오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형이 뭐 하러....아아....”

아까 CH그룹 백승호 회장과 한 통화가 생각났다.

아무래도 그 양반 내가 한 말을 잘못 이해한 거 같았다.

내가 원하는 진심어린 사과는 백준기 따위가, 나를 찾아와서 하는 진정성 1도 없는 그 딴 사과가 아닌데 말이다.

“알았어.”

일단 나는 김 비서와 통화를 끝냈다. 그 뒤 짜증 섞인 얼굴로 혼잣말을 했다.

“하여튼 모든 게 자기들 위주라니까.”

백승호 회장은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서는, 이제 그걸 나에게 강요하려고 들고 있었다. 마치 백준기가 나를 찾아와서 사과하면, 모든 게 다 해결 될 것처럼 말이다.

“이것들이 내가 가만있으니 가마니로 보이나?”

백승호 회장과 백준기 둘 다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때 생각 난 것이 백승렬 회장이었다.

그는 최근 나에게 이상하게 관심이 많았다. 내가 전화해도 재깍 받고, 내 부탁도 툴툴거리지만 다 들어주고 말이다.

그래서 한 번 시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백 회장이 어느 선까지 내 부탁을 들어 주는지 말이다.

“CH그룹도 결국 삼명그룹에서 손 빼면, 좆도 아닌 곳이란 말이지.”

그게 증명 된 것이 백승렬 회장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였다.

새로이 회장 자리에 오른 장남 백준경이, 혁신을 외치며 그룹 개혁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삼명그룹에 빨대를 꽂고 있던 협력사 정리에 나섰다.

그랬더니 CH그룹과 백두그룹이 휘청거리며, 그 다음 해에 바로 재계 50위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그 말은 삼명그룹이 두 그룹에 그만큼 많은 일거리를 제공하고,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있었단 소리였다.

단지 그들 회장이 백승렬 회장의 형님들이란 이유에서 말이다.

당시 CH그룹과 백두그룹에서 수시로 사람을 보내서 가족 운운했지만, 백준경은 칼같이 그들을 끊어 내어버렸다.

하긴 그들은 더 이상 삼명家의 일원도 아닌데 백준경이 그들을 챙겨 줄 이유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 뒤 CH그룹과 백두그룹은 사세가 꺾이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어디 백 회장님이 어디까지 갈지 볼까?”

좀 오만한 생각이지만 나는 그 생각을 내 자신에게 관철시키고는, 기어코 백승렬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작 좀 전화해라.

짜증 제대로 난,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내 전화를 받는 백승렬 회장.

이럴 거면 전처럼 받지를 말던지. 전화하면 받으면서 왜 이리 툴툴거리는지 모르겠다.

“저도 안하고 싶은데, 자꾸 그럴 일이 생기니 어쩌겠어요.”

=또 뭐?

“CH그룹 백 회장님께서 귀찮게 사람을 보냈어요.”

=백부님이라고 하면 될 것을, CH그룹 백 회장님은 뭐냐? 뭐 그쪽에서 사과를 할 모양이지.

“제가 원하는 사과는 쓸 데 없는 사람을 보내서 잘못 했니, 무릎 꿇을까? 뭐 이런 영혼 없는 제스처가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백승렬 회장은 내가 하려는 말이 뭔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냥 바로 본론을 얘기하라고 나를 압박했다. 그래서 나도 서론, 본론 다 건너뛰고 결론을 말했다.

“CH그룹이 요즘 신사업으로 은행에 돈 좀 당겨쓰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거기 삼명그룹이 보증을 섰을 것이고요. 그 보증 철회 하고, 은행에 상환 하라고 압력 좀 넣어주세요.”

=뭐?

“싫으면 말고요.”

나는 당연히 백승렬 회장이 싫다고 말할 줄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네 백부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래. 그렇게 해 주마.

“네?”

=나와 형제지, 너와는 한 다리 건너 아니냐. 그 양반도 이제 슬슬 현실을 깨달을 때가 됐고.

“정, 정말 그래 주시겠다고요?”

=그게 뭐 힘든 일이라고. 그보다 얘기 들었다. 미전실에 동구 아들을 넣었다고?

“백지훈의 부친을 아세요?”

=그럼 잘 알지. 뭐 어째든 아버지 호적에 올라 있는 내 동생인데.

백승렬 회장이 그 말에 나는 좀 놀랐다.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방계도 살뜰하게 잘 챙기고 있어서 말이다.

=필요한 부서에 네가 넣고 싶은 만큼 넣어라. 내 기대하마.

뚜뚜뚜뚜뚜....

뭘 또 기대씩이나 한다는 건지. 아무튼 자기 얘기 끝나자, 또 먼저 전화 끊어 버리는 백승렬 회장.

* * *

백준열과 통화를 하고 난 뒤, 백승호 CH그룹 회장은 히죽 웃었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뭐 진심어린 사과? 하여튼 감성적은....”

백승호 회장에게 있어 사과는, 그가 좋아하는 과일인 사과보다 못한 거였다.

그까짓 사과로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면, 백 번 넘게도 사과할 수 있는 게 백승호 회장이었다.

하지만 그 아들인 백준기는 달랐다.

=싫어요. 제가 왜 그 새끼한테 사과를 해야 하는데요.

“뭐? 싫어? 지금 이 사태를 만든 게 누군데....좋다. 그럼 이 아비도 TVM의 일에서 손을 떼도록 하마.”

=그건 아니죠. 아버지가 손 떼면 여긴 망한다고요.

“망하는 게 싫거든 가서 녀석에게 사과하고 와.”

=에이. 씨. 진짜 쪽팔리게....

“허어. 내 그리 누누이 말했건만. 말로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일단 사과해서 광고 수주 다시 받고, 기회를 엿보다가 놈이 실수하면, 그때 제대로 한 방 먹여 주면 되지 않느냐.”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그리고 그 새끼 보고 사과 하라니....전 못해요.

“이놈이 그래도.....사과가 아니라 놈이 무릎 꿇으라고 하면, 꿇어서라도 광고를 되찾아 와야지.”

=네? 무릎 꿇으라고요. 저 절대 못해요.

뚜뚜뚜뚜뚜뚜....

백승호 회장은 싹퉁머리 없게 아버지와 통화 중 먼저 전화를 끊어 버리는, 아들 백준기에게 별로 화도 나지 않았다.

“쯧쯧쯧....”

그저 혀를 차다가 비서실을 통해서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그랬더니 한 시간도 안 돼서 백준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뭐하긴. 버릇없는 자식 놈 혼쭐 좀 낸 거지.”

TVM의 대표가 백준기인 것은 맞지만, 그곳의 실무는 백승호 회장 사람들이 지금도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즉 백승호 회장이 마음만 먹으면 TVM에서 백준기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타고 다니는 차량과 그가 쓰는 카드 모두 법인에 속해 있었다.

그걸 막아버리니 백준기도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하아. 알았어요. 제가 뭘 어쩌면 되는데요?

“당장 백준열 한데 전화해서 사과하러 그쪽 회사로 간다고 해.”

=그냥 전화로 사과하면 안 돼요?

“안 돼. 그녀석이 그랬단 말이다.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그게 뭐겠니?”

=새끼가....

“어허. 넌 그냥 녀석이 시키는 대로 다 해주고 돌아오면 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그렇게 대답은 철썩 같이 잘해 놓고, 막상 백준기는 부친이 시킨 대로 백준열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회사인 JYB엔터 대표실에다가, 그것도 자기 비서를 통해 자신이 방문할 거란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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