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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TVM에 이어서 MVC까지. 두 방송사를 내가 다 건드려 놓으면, 방송계에서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해서 좋게, 모양 빠지지 않게 뒤처리를 하려는 데 그게 영 쉽지 않았다.
‘그래도 본보기는 있어야겠지?’
그냥 이대로 국장들을 다 용서해 준다면, 저들은 곧 원래 오만하고 독선적인 예전의 갑질 국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걸 어느 정도 커버 쳐 줄 수 있는 본보기는 필요했다.
해서 나는 이 자리에서 세 사람을 자르기로 했다.
물론 내가 자른다는 건 아니다. 이재균 사장이 자를 것이다.
“이 사장님. 저들 다 자르면 MVC에도 문제가 생기겠죠?”
내 그 물음에 이재균 사장이 두 눈이 동그래져서는 재빨리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방송이 불가할 정도는 아니지만, 방송사 입장에서는 대체 자원이 그 자리를 메울 때까지, 혼선은 불가피하다고 봐야겠지요.”
“그래서 말인데 딱 3명만 자릅시다.”
“3명이요?”
이재균 사장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국장들 90%에서 3명이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다른 국장이 빈 국장자리를 대신 봐주면, 그 사이 새로운 국장을 임명해서 그 자리를 채우면 그만이었으니까.
그 정도는 이재균 사장이 굳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왜요? 어렵습니까?”
“아뇨. 그렇게 하십시오.”
이재균 사장이 선선이 허락한 가운데, 나는 그 자를 세 사람을 지목했다.
“뉴미디어뉴스국장님? 편성국장님? 라디오국장님?”
내가 그 세 명을 호명하자, 나머지 국장들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아주 대 놓고 좋아라 했다.
뭐 죽다가 살아났으니 그 정도 기뻐하는 거야 나도 이해한다.
반면, 괜히 나를 자극했다가 좆 된 3명의 국장들. 그들에게 이재균 사장이 잔인하게 말했다.
“백 대표가 호명한 세 국장들은, 지금 즉시 자기 방으로 가서 짐 빼세요.”
“....”
그런 이재균 사장을 한참 어이없어하면 쳐다보던 3명의 국장들.
하지만 사장의 지시는 내려졌고, 해고 된 그들은 더 이상 MVC방송국의 국장들이 아니었다.
당연히 오늘 MVC의 국장 회의는 취소되었고, 나는 이재균 사장의 간곡한 부탁에 별수 없이 사장실로 가야했다.
“뭐든 저희 방송국에서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저게 말 만 하십시오.”
“네 뭐....”
거기서 30분이나 붙잡혀 있다 보니 스케줄이 꼬여 버렸다.
그래도 어쩌겠나? 방송사 사장과 친해졌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사실 말이 친해진 것이지, 이재균 사장이 내 따까리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겨우겨우 MVC방송국을 빠져 나왔지만, 바로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러 갈 수는 없었다.
11시 10분에 만나기로 한 국회의 17개 상임위원회 중 하나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만남이 무산되었기 때문에.
이미 지금 시간이 11시 10분이었다. 약속 장소까지 텔레포트라도 한다면 또 모를까.
해서 김 비서가 이미 30분 전에 약속을 취소 시켰다.
김 비서도 내가 MVC사장과 사적으로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는, 별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곧 임기 끝나는 국회의원 따위야, 사실 이쪽에서 좀 무시해도 되었으니까.
뭐 그 국회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는다면 앙금이 좀 남을 일이지만, 그야 그때 가서 뭐 좀 찔러 넣어 주면, 다 풀리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자 시간이 40분 정도 여유 시간이 생겨 버렸다.
점심시간까지 생각하면 얼추 1시간 40분의 자유 시간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우희와 재회를 하는 건가?’
오늘 퇴근하면 MP4의 멤버 우희와 그녀 집에서 또 뜨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니 아랫도리가 묵직해져 왔다.
* * *
원래 다음 행선지는 국회의사당과 가까운 여의도 쪽이었다.
거기 프라이빗한 공간이 있는 음식점과 가까운 커피라운지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가벼운 만남을 가질 예정이었다.
내가 굳이 그 국회의원과 만나려는 이유는, JYB엔터에서 시작한 문화사업콘텐츠가 국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에 국회 차원에서 지원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만남이 무산되면서, 그 얘기도 아마 도로 들어가 버리지 않을까 싶었다.
김 비서는 얘기가 잘 되면, 그 국회의원 데리고 여의도에서 가장 맛있다는 음식점에서, 같이 점심을 먹으라고 했는데, 뭐 그럴 일이 없어졌으니 내 점심도 이제 내가 챙겨야 할 판이었다.
아직 점심시간까지는 40분이나 남았으니, 그 전에 뭐 먹을지 천천히 생각하면 됐다.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내 투자운영사 블랙머니의 박 비서였다.
내가 기다리던 전화 중 하나라, 나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어. 그래.”
=대표님. 성공했습니다.
“성공해?”
=네. 말씀하신 그 괴짜 투자자 설득하는 거 말입니다.
“뭐?”
나는 콘벨트 선물옵션투자에 몰빵 해 1조가 넘는 돈을 손에 쥘, 그 투자자가 우리 블랙머니를 이용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었다.
왜냐하면 그가 2천억도 넘는 세금을 냈으니 말이다.
그가 우리 블랙머니를 통해 투자를 했다면, 그런 세금을 대한민국 정부에 내 놓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박 비서가 그 투자자를 설득했단다. 해서 나는 궁금한 걸 바로 박 비서에게 물었다.
“그래서 얼마 투자하기로 했는데?”
=안전하게 10억 빼고 20억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오케이. 잘됐다.’
나는 속으로 기뻐하며 계속 생각했다.
‘이로서 내가 30억을 투자할 수 있게 되었군.’
물론 내가 30억을 투자했다고, 1조가 넘는 돈을 버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최대한 근접한 돈을 벌 가능성이 컸다.
‘7천억 이상은 벌겠지?’
내가 속으로 되게 기뻐할 동안, 박 비서가 내게 뭐라고 계속 말을 했는데, 나는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라서 오늘 바로 투자 진행 할까 합니다.
나는 다른 말은 못 들었지만 끝에 투자 진행할 거란 말을 듣자, 바로 박 비서에게 말했다.
“조세피난처 이용해서 최대한 절세 해 드리는 거 잊지 말고.”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했더니, 크게 감복해서 제 말을 더 잘 들어 주더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박 비서에게 콘벨트 선물옵션투자자를 설득하라고 한 게 제대로 주효한 모양이었다. 그로인해 투자자의 마음이 바뀌어서, 우리 블랙머니를 이용하게 되었고 말이다.
‘사실 투자자에게 손해 날 건 없지.’
왜냐하면 딴 데서 투자를 했다면 투자자는 2천억이 넘는 세금을 내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를 이용하면서 비록 벌게 된 수익은 좀 적어져도, 세금은 내지 않아도 되니, 어째든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아아. 그리고 회사 계좌로 30억이 들어갈 거야. 그 돈으로 그 투자자와 똑같이 투자해 줘.”
=네?
“내 개인 투자야.”
내가 하는 개인 투자란 말에 박 비서는 더는 그 돈과 투자에 대해 일체 묻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백준열 때에도 이런 식으로 개인 투자를 종종했는데, 그때마다 꽤 크게 재미를 봤다.
사실 그래서 백준열이 ‘투자의 신’ 소리를 듣게 된 것이고.
요즘에는 개인 투자가 뜸했었는데 그 공백을 깨고, 내가 개인 투자를 한다는 말에, 박 비서가 좀 놀란 거 같았다.
하지만 내가 결정한 이상 박 비서는, 그 선물 옵션에 투자를 하면 그만이었다.
* * *
박 비서와 통화 후 생각 난 게 있었다.
“백지훈이....”
바로 새벽에 삼명家의 방계, 백지훈에게 한 약속 말이다.
“녀석을 삼명그룹 미전실에 넣어 주기로 했었지.”
그러려면 백승렬 회장에게 또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확실히 그를 상대하는 건 껄끄러운 점이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래 주기로 했으니 그래야지. 나는 백승렬 회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 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전화질이냐?
이번 역시 백승렬 회장이 직접 내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이상해.’
나 역시도 꺼림칙해 하며, 백승렬 회장의 퉁명스런 말에 바로 대꾸를 했다.
“저도 전화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거든요.”
=흥. 또 뭘 부탁할 거면서 큰소리는.
“맞아요. 거 부탁 좀 합시다.”
=허어. 누가 들으면 네가 나한테 뭐라도 맡겨 놓은 줄 알겠구나. 그래. 이번에는 뭔 부탁이냐?
“나도 미전실에 사람 하나 넣읍시다.”
=뭐?
“형들도 다 넣었잖아요. 나도 거기 사람 좀 넣게 해주세요.”
=그거라면 얼마든지 좋다. 네가 넣고 싶은 대로 넣어라. 내가 박 전무에게 연락해 두마.
여기서 박 전무라 함은, 삼명그룹 본사의 인사담당 임원 중 최고 높은 자리의 인물이다.
그러니까 백승렬 회장의 최측근 인사 중 한 명이란 소리다.
TVM의 광고 문제는 백승렬 회장이 확실히 해결 해 준 것은 알았다.
하지만 다른 부탁은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기에, 나는 그걸 백 회장이 전화 끊기 전에 슬쩍 물었다.
“황충식 의원은 어떻게 됐어요?”
=그건 더 신경 지 않아도 된다. 내가 다 손 써 뒀으니 말이다. 그 보다 양태천의 동생을 데리고 있다던데. 괜찮겠느냐?
아마도 태천파 때문에 백 회장이 날 걱정해 주는 모양이었다.
“괜찮죠. 그쪽과 엮인 게 없으니까요. 물론 그쪽에서 엮으려면 어떻게든 엮겠지만, 그게 무리한 짓이란 걸 알면서 굳이 그러겠다면, 쓴 맛을 보여 줄 수밖에요.”
=허허허허. 쓴 맛이라. 그래. 알았다.
뚜뚜뚜뚜뚜뚜....
또 자기 마음대로 전화를 끊어 버리는 백승렬 회장.
뭐 나도 딱히 더 할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부자지간의 대화치고는 너무 삭막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오늘은 점심 맛있게 드시라고 하려 했는데....”
뭐 그럴 기회를 안 주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백승렬 회장이 어떻게 손을 써 뒀기에 나보고 걱정하지 말란 건지 궁금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이 하나 있었다.
백승렬이 본사에 심어 둔 첩자가 있듯이, 국회에도 심어 둔 사람이 있었던 것.
그 사람은 바로 현 국회사무처의 수장인 사무총장 산하 홍보기획관으로 있는 사람이었다.
이름은 홍윤식이고, 그가 홍보기획관이 된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었다. 즉 국회 마당발이었던 것.
그가 국회에서 만큼은 모르는 건 없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어디....”
나는 내 핸드폰의 연락처를 살폈다. 그랬더니 홍윤식이란 이름이 있었고, 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와아. 백 대표님. 진짜 오랜만에 연락하시네요?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내 전화를 받는 홍윤식.
백준경이 감시하려고 삼명자동차에 심어 놓은 첩자 김준호는, 이제 쓸모가 없어서 김 비서에게 지원을 끊으라고 해 둔 상태.
그에 비해 홍윤식은 그가 국회에 있는 한, 그 지원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백준경의 기억에도 그는 돈 값을 하는 첩자였으니까.
“누가 들으면 몇 년은 연락 끊고 산 줄 알겠습니다.”
=하긴. 곧 선거철이니 백 대표님 연락이 올 줄은 알고 있었죠. 아아. 그 때문에 전화 하신 거죠? 황동식 국회의장 사퇴설?
오오! 백승렬 회장! 역시 스케일이 다르네.
그냥 황충식 의원의 형인 황동식 국회의장의 목을 날려 버린 건가?
하긴 황충식 의원 뒤에 황동식 국회의장이 버티고 있는 한, 그를 손대기 쉽지 않았겠지.
그러니 정공법으로 황동식 국회의장부터 날려버리고, 그 다음 황충식 의원을 손보겠다 이거였다.
“그거 설이 아닐 텐데?”
=역시 아시고 전화하신 거 맞네. 네. 지금 여당에서 긴급 지도부 회의가 열리고 있는데, 압도적인 찬성으로 황동식 국회의장이,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걸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줄 압니다.
삼명그룹이 개입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황동식 국회의장도 버티려면 버틸 수 있겠지만, 아군 하나 없는 장수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식물인간 국회의장으로 버티느니 차라리 당의 뜻을 따르는 게 나았다.
아니면 곧 있을 국회의원 선거를 그 혼자 치러야 할 판이 아닌가?
당 차원에서 그에게 그 어떤 지원도 해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즉 버티다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못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었다.
그러니 황동식 국회의장은 어차피 당의 뜻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홍윤식과 얘기해 보고 백승렬 회장이 자기가 한 말대로, 내가 황충식 의원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얘기 들었습니다. 오늘 박 의원님과 만나기로 하시고, 그 약속 취소하셨다고.
누가 국회 마당발 아니랄까봐. 내가 좀 전에 취소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의 미팅도 홍윤식은 알고 있었다.
“그 박 의원 기분 나빠 하던 가요?”
=아뇨. 선거철 다가와서 바쁜데 잘 됐다고, 자기 지역구 내려가던데요?
“지역구 챙기는 걸 보면 어떻게....다음에도 배지 계속 달 거 같아요?”
=그게 좀....그쪽 지역구에 여당 쪽에서 제법 거물을 공천할 거로 소문이 나 있어서....제 사견으로는 박빙의 승부가 될 거로 봅니다.
참고로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홍윤식이 엿 먹을 거라고 예상한 국회의원은 다들 그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런 홍윤식의 능력을 높이 사서 백준열은 그를 자기 밑으로 영입하고 싶어 했지만, 홍윤식이 바로 거절했다. 거절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은 국회에서나 인정받지, 밖에 나가면 별거 아닌 존재라나?
‘언제고 국회 가면 꼭 만나봐야겠군.’
그가 어떤 능력이 있는지는 내가 직접 보고, 냄새 좀 맡아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식사 맛있게 하고 다음에 또 봅시다.”
=네. 대표님도 점심 맛있게 드십시오.
원래는 백승렬 회장에게 하려던 말을 홍윤식에게 하고는, 통화를 끝낸 나는 갑자기 점심 때 먹고 싶은 게 생각났다.
“문 팀장. 닭볶음탕 좋아해?”
내가 내 옆에 문대식에게 묻자 그가 뚱하니 대답했다.
“닭은 왜 볶나 몰라요. 그냥 삼 넣고 푹 삶아 먹으면 최곤데.”
누가 삼계탕 성애자 아니라고 할까 봐. 또 삼계탕 타령을 하는 문대식.
문대식의 그 삼계탕이란 말에, 내 차를 운전하는 경호팀원의 얼굴이 어째 떨떠름했다.
보아하니 요즘에도 밑에 경호팀원들을 삼계탕 집에 억지로 데려 가는 모양이었다.
“얼큰한 닭볶음탕 먹고 싶으니까 잘하는 대로 가자.”
내 말에 운전석의 경호팀원이 싱긋 웃었고, 반면 문대식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근처에 삼계탕 죽이게 잘하는 곳이 있는데....”
나는 문대식의 말을 한 귀로 듣고 바로 한 귀로 흘린 뒤, 징징거리며 울리는 내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랬더니 양태석의 전화였다. 나는 생각하고 자실 것도 없이 그 전화를 바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