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93화 (19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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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MVC 편성국장 조운영은 상당히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이었다.

특히 방송국의 갑질에 대해서, 그건 당연한 방송국의 권리인데 뭐가 문제인지 지금도 잘 이해를 못하는, 아니 안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골치 아픈 문제를, 굳이 챙겨가며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국내 3대 메이저 연예기획사 중 한 곳인, JYB엔터 대표와의 만남 역시 그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원래는 오후에 보자는 JYB엔터 측의 요구를 묵살하고, 오전 10시 10분에 잡은 것.

10시 30분에 MVC사장과 국장 회의가 잡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달랑 20분 보자고, JYB엔터 대표를 MVC방송국으로 부른 것이다.

근데 더 골 때리는 건 만나는 장소였다.

오늘 국장 회의가 있는 방송국 회의실이 그 만남의 장소였던 것.

그러니까 10시 10분에 만나 달랑 20분 있는 시간도, 줄여서 그 전에 빨리 얘기를 끝내야 했다.

왜냐하면 다른 국장들이 10시 30분 전에 회의실에 들어 올 테니 말이다.

한마디로 MVC 편성국장 조운영이 JYB엔터 대표를 조리돌림 하는 셈이었다.

다른 국장들 앞에서 말이다.

상대가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MVC 국장들이니, JYB엔터 대표도 그들 앞에서 뭐라고 할 처지가 못 됐다. 즉 꼼짝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쉽게 말해서 MVC 편성국장 조운영이, JYB엔터 대표를 길들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조운영이 TVM사태를 몰랐을 때 얘기였다.

뒤늦게 오늘 오전에 그 얘기를 전해들은 조운영은, 남 얘기 하듯 평소 친하게 지내던 드라마 국장에게 말했다.

“그러게 TVM은 왜 재벌 3세를 건드려서는....쯧쯧!”

“TVM도 설마 그 연예기획사 대표가, 그런 식으로 그룹 쪽에 얘기해서, 광고를 다 빼 버릴 줄 몰랐겠지.”

“연예기획사 대표?”

“뭐야? 당신 설마 TVM에 광고 빼게 만든 재벌 3세가, 연예기획사 대표란 걸 모르는 건 아니지?”

“아아. 맞다. 그런 얘기가 있었지. 재벌 3세가 차린 연예기획사가 대박을 쳤다고 말이야.”

“그래. 거기가 바로 삼명그룹 막내 백준열이 차린 연예기획사! 바로 JYB엔터잖아.”

“뭐, 뭐? 좀 전에 그 기획사 이름이 뭐라고?”

“JYB엔터. 개새끼 백준열이 대표로 있는 연예기획사. 이거 모르는 사람은 이 연예계에는 없을 걸 아마도.”

“씨발! 좆 됐다.”

지금 조운영에게는 TVM이 문제가 아니었다.

TVM에서 삼명그룹 광고를 다 빼버린 백준열이, 30분 뒤에 그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이곳 MVC방송국의 회의실에서 말이다.

“어떻게 됐어?”

“JYB엔터 대표실에 전화했더니, 거기 비서가 이미 이쪽으로 출발했다고....”

“젠장....”

조운영은 황급히 JYB엔터 대표와 미팅을 취소하려 했다.

하지만 상대가 벌써 이쪽으로 오고 있다니, 어쩔 수 없이 약속 장소인 방송국 회의실로 움직였다.

만약 조운영이 계획한 대로 백준열이 조림돌림 당한다면....

TVM에서처럼 MVC에서도 삼명그룹 광고 다 빼버릴지 몰랐다.

그렇게 되면 제일 먼저 그 사태를 만든 조운영, 자기부터 댕강 목이 잘려 나갈 건 불을 보듯 자명했다.

MVC사장이 조운영을 지켜 줄 리가 없으니까. 아니 그 하나 자르고 사태만 해결 된다면, 그의 목쯤은 가차 없이 잘라 낼 MVC사장이었다.

“옵니다.”

조운영은 자신의 따까리인 제작 1부의 강 부장을 대동하고, 방송국 회의실에 있었다.

망을 보던 강 부장이 말에 조운영 편성국장이 벌떡 몸을 일으켜서, 아예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JYB엔터 대표를 그의 방으로 바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여기 있다가는 그의 의도대로 JYB엔터 대표가 조리돌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아예 없게, 만남의 장소 자체를 바꿔 버리려는 것.

그때 조운영의 눈에 경호원들에 둘러 싸여, 이쪽으로 오고 있는 새파랗게 젊은 놈 하나가 보였다.

* * *

MVC방송국의 회의실은 예전에 한 번 와 본 기억이 백준열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엘리베이터에서 회의실까지는 족히 30미터는 떨어져 있었지만, 내 개 특성의 *소리가 잘 들립니다.*를 사용하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뭔 얘기를 하는지 다 들을 수 있었다.

-씨발. JYB엔터 대표가 백준열이란 걸 내가 왜 깜빡했을까?

-걱정 마십시오. 백 대표가 여기서 수모를 당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수모라니? 강 부장. 당신 말을 그따위로 밖에 못해?

-죄송합니다. 국장님. 하여튼 이번 길들이기는 아직 벌어지지도 않았으니, 국장님께서 잘 수습하시면 될 일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건 그래. 그렇게 보면 시사제작국장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아침에 TVM 얘기를 떠벌리고 다녀 줘서 말이야.

-저도 TVM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게 JYB엔터 백 대표 작품인 건 몰랐습니다.

-쯧쯧. 이래서야 자네가 내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겠어?

-죄송합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시고 대책을 세워 보도록 하시지요?

-대책은 무슨.... JYB엔터는 그냥 건너 뛰어. 거긴 건드려 봐야 좋을 거 없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뭐해? 백 대표 올 때 다됐는데 안 나가보고?

-네.

회의실로 가는 동안 그 안에서 하는 얘기를 들어 보니, 여기 편성국장이 내게 무슨 수모를 주려 한 모양이었다.

‘하여튼 방송계란....’

방송국이 절대 갑이라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JYB엔터라면 이제 어엿한 국내 3대 연예기획사 중 한 곳이다.

한데도 방송국에서는 그 대표인 나도 이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그러니 다른 중소연예기획사나 소속사 없는 연예인들은 어떻겠는가?

TVM이야 거기 대표인 백준기가 나와 사이가 나빠서 사이가 틀어졌지만, 지상파 방송국 중 하나인 MVC에서는, TVM의 편일수 편성국장보다 더 지독한 인간이 편성국장으로 있었다.

‘뭐? 나에게 수모를 줘?’

나는 그 수모가 어떤 건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졌다. 당연히 그 수모를 겪고 나서 가만있을 내가 아니지만.

“저깁니다.”

그때 앞서가던 문대식이 방송국 회의실을 발견하고 말했다.

그때 회의실 앞에 웬 중년 남자 하나가 서 있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안에 다 뭐라고 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반백 머리의, 딱 봐도 고집스럽게 생긴 중년 남자가 한 명 더 나왔다.

‘저 인간이로군.’

나를 길들이겠답시고 뭔 수작을 준비한 인간이 말이다.

근데 개 특성인 *멀리 봅니다.*로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이 기억났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예전 MVC사장 옆에서 열심히 아부 해 대던 제작2부장인가 뭔가 했던 자였다.

‘이름이....조운영?’

근데 그 아부가 또 먹혔는지 이제는 편성국장 자리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물론 조운영이 아부만큼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일수도 있었다.

“킁킁....”

그런데 또 개 특성인 *냄새를 잘 맡습니다.*를 통해서 그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구린 냄새가 심하게 나는 걸 보니까.

결국 무능한 인간이, 아부를 잘해서 편성국장 자리를 꿰차고 있단 소리였다.

“저쪽에서 옵니다.”

그때 앞장서서 걷고 있던 문대식이 말했다.

* * *

잠시 뒤 조운영 편성국장과 내가 서로 마주섰다.

“국장님. 오랜만입니다.”

“어서 와요. 백 대표.”

“안에서 기다리셔도 되는 데....”

내가 조운영 편성국장 뒤쪽 회의실을 보며 말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회의실은 지금 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 들어갈 수 없다지 뭡니까. 하하하하.”

보통 이렇게 얘기하면 약속 장소를 옮기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그래요? 아닌데? 안이 조용한데?”

나는 조운영 편성국장의 말을 생 까고, 그대로 회의실 쪽으로 향했다.

“아니. 백 대표. 어디 가는 거요?”

나의 그런 엉뚱한 행동에 조운영과 같이 있던 제작 1부장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던 말든 나는 기어코 회의실로 들어갔다.

“공사는 개뿔 아무것도 안하구만.”

그렇게 나 혼자 중얼거릴 때, 조운영과 제작 부장이 씩씩거리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백 대표. 이게 무슨 무례요?”

“무례요?”

“그럼 무례지. 내가 공사 중이라고 하면 공사 중인 것이지....”

“공사 안하는 데요?”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발끈한 조운영 편성국장이 꼭지가 돌았는지, 나한테 삿대질을 하며 뭐라 더 말하려 할 때 제작부장이 그런 그를 말렸다.

“국장님! TVM....”

제작부장의 TVM이란 말을 듣자마자, 나를 가만 안 둘 거 같았던 조운영 편성국장이, 움찔하더니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백 대표. 우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내 방으로 가서 얘기하도록 합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뭐 하러 그래요. 귀찮게. 저 시간도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만나기로 했으니 그냥 여기서 얘기하시죠. 그래서 대 MVC방송국의 편집국장님이, JYB엔터 대표에게 꼭 하실 말씀이란 게 뭘까요?”

살짝 비꼬듯 얘기하는 내 말에 MVC편성국장 조운영, 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좀 전 내가 한 말은, 그가 나를 여기 방송국 회의실로 불러내려고 한 말이었다.

편성국장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느 연예기획사 대표가 여기를 안 오고 배기겠는가?

그런데 막상 와보니, 그게 다 그 기획사 대표에게 수모를 주고 길들이기 위해서니. 이 얼마나 기가차고 코가 막힐 소린가?

“이봐요. 백 대표. 저희 국장님께서 일부러 신경 써서 국장실에서 얘기 하자고 하시는 데, 그걸 이딴 식으로 건방떨며 받는 건 예의가 아니지.”

그때 편성국장의 따가리처럼 보이는, 제작부장이 끼어들었다. 그런 제작부장에게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보기로 해 놓고 국장실로 왜 가냐는 거죠. 말씀대로 거기가 좋다면 진작 거기를 약속 장소로 잡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그건....”

내 말이 맞으니 제장부장이 버벅 거리자 편성국장 조운영이, 편성국장 자리를 그냥 딱지치기해서 딴 게 아니란 걸 보여주듯이 내게 말했다.

“내 실수요. 여기서 얘기하면 내 권위가 더 살 거 같아서.”

쿨하게 자기 실수를 인정하며 대인배 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조운영. 하지만 그가 어떤 인간인지 나는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가 나를 향해 발끈 했을 때, 나는 견신 시스템의 「개눈깔」 아이템을 조운영에게 사용했으니까.

지금 조운영의 몸에는 두 가지 빛이 강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하나는 밝은 자주 빛이었고 또 하나는 진한 회색빛이었다.

자주 빛은 위선을, 회색빛은 기만과 거짓을 나타낸다고 견신 시스템의 정보가 내 머릿속에 전달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MVC편성국장 조운영이 내게 하는 말은 그냥 개소리였다.

* * *

내가 버티자 조운영과 제작부장의 얼굴이 점점 더 초조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걸 놓칠 내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와 같이 내 방으로 갑시다.”

“그래요. 국장실이 여기보다 더 쾌적하니까 그쪽으로 갑시다. 백 대표.”

“아뇨. 저는 여기도 괜찮으니 어서 하실 말씀이나 하시죠.”

나를 회의실에서 못 데리고 나가 안달 난 두 사람에게, 나는 아예 회의실 의자 중 한 곳에 앉아 버렸다.

그걸 보고 기가 찬 얼굴의 조운영이 옆에 제작부장을 쳐다보자, 그가 힐끗 자기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고는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아주 험상궂은 얼굴이 누가 보면 나를 억지로라도 회의실 밖으로 끌어내기라도 하겠다는 걸로 보였다.

턱!

하지만 내게는 문대식이 있고, 경호팀원들이 있었다. 문대식이 바로 제작부장을 막아섰다.

“아니. 비켜 봐요. 내가 백 대표와 가까이서 할 얘기가 있어 그래.”

“....”

하지만 문대식은 끄덕도 하지 않고 계속 제작부장을 막아섰다. 그러면서 시간이 갔고, 회의실 안으로 누가 들어왔다.

“조 국장. 여기서 뭐해?”

“아아. 김 국장. 왔어?”

그 뒤로 또 누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뒤로 한 사람 더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지금 막 회의실 안으로 들어 온 세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백준열이 괜히 JYB엔터 대표가 아니었던 것.

“라디오 국장님, 뉴미디어뉴스 국장님, 시사제작국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더 어린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하며 세 사람에게 인사를 하자, 그들도 나를 유심히 쳐다봤고 그 중 라디오 부장인 김수용이 내가 누군지 드디어 알아봤다.

“혹시 JYB엔터 백준열 대표?”

“네. 맞습니다.”

내가 TVM에 광고를 뺀, 방송국에 최초로 갑질을 한 연예기획사 대표란 게 밝혀지자, 좀 전 회의실 안으로 들어 온 MVC방송국 세 명의 국장들이 다들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보통 연예기획사 대표라면, 이렇게 방송국의 실세인 국장 네 명 앞에서 당당하게 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방송국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고, 거기 실세들 역시 가소롭게 보였다.

왜냐하면 내가 방송통신위원회를 꽉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무슨 소리냐?

MVC방송국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누구겠니? 그래 바로 MVC사장님 되시겠다.

그 MVC사장의 임명권, 해임권 등을 갖고 있는 곳이 어디냐 하면....바로 방송문화진흥회다.

그러면 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들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곳이 어디 게?

딩동댕! 맞습니다. 바로 방송통신위원회 되시겠네요.

여기서 문제 나갑니다.

내 거수기나 다름없는 최명기 위원과 곽도식 위원이 꽉 틀어쥐고 있는 방송계 조직이 어디더라?

‘그렇지. 방통위, 늘려서 방송통신위원회지.’

즉 내가 방통위를 꽉 잡고 있는 이상, MVC사장은 내 밥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런 MVC 방송국의 수장이 내 밥인데, 그 밑에 자잘한 국장들이야 내게 가소로울 수밖에 더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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