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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192화 (19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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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나는 출근하자마자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이, 바로 회사를 나서야 했다.

김 비서가 오전 스케줄 일정표를 나와 문대식에게 보냈는데, 둘 다 그걸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잘못이라 뭐라 말도 못하고, 대표실에서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 온 나와 문대식.

“죄송합니다.”

“아냐. 새벽부터 난리였잖아. 누구와 미팅이라고?”

“MVC 편성국장과 미팅 자립니다.”

대답 후, 문대식이 재빨리 핸드폰에 메모 된 스케줄을 다시 확인했다.

혹시 틀릴 수 있으니까. 다행히 내게 잘못 대답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약속 시간이 10시 10분이니까. 지금 바로 출발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 가자.”

그렇게 MVC방송국으로 가면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문대식의 말에, 중간에 커피 전문점 앞에 차를 대고 테이크아웃 된 커피 한잔을 차 안에서 즐기는, 나름의 티타임을 가졌다.

커피를 워낙 좋아하는 문대식이, 역시나 이런 짬 내서 즐기는 티타임을 제일 좋아했다.

사실 문대식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다.

이전 삶의 나는 사실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백준열의 식도는 아주 양호했고, 커피 정도는 물마시듯 마셔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나도 요즘 조금씩 커피 마시는 양을 늘려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를 태운 차가, MVC방송국이 있는 상암동에 들어섰을 때였다.

“어?”

나의 투자 회사 블랙머니의 박 대리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 박 대리.”

나는 그 전화를 바로 받았다. 투자 운영에 관한한 다른 일 보다 우선시 하던 백준열의 습성상 말이다. 그러자 박 대리가 내게 전화건 용건을 바로 말했다.

=대표님. 어떤 투자자가 옥수수와 대두(콩)에 선물 투자를 하시겠다고 하는데 어쩌죠?

옥수수와 대두 같은 일종의 원재료에 대한 투자는 원래 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 재료비 외에도 보관비, 판매, 유통비까지 모두 고려해 보면, 실제 옥수수와 대두 값이 올라도 결과적으로 적자를 보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하지만 선물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선물이란 파생상품의 한 종류로 선매후물(선매매, 후물건 인수도)의 거래방식을 말한다.

실물이 아니니 당연히 사고 팔 때 유통, 판매비 따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이 선물 거래를 하겠다는 투자자가 얼마 되지도 않는 거래를 하겠다고 했다면, 박 대리가 내게 전화를 했을 리 없었다.

“투자 규모가 큰가?”

=네. 개인 치고는요.

“얼만데?”

=30억이요.

“250만 달러가 넘는 돈이로군.”

옥수수와 대두(콩)는 미국이 최대 생산국이다.

따라서 이 투자는 미국 특히 아이오와(Iowa)주는 캘리포니아 주, 그리고 콘벨트(Corn Belt, 미국의 중, 서부에 걸쳐 형성된 세계 제1의 옥수수 재배지역)에 대한 투자라고 보면 됐다.

“위험성에 대해서는 잘 설명 드렸나?”

=그럼요. 선물은 전 세계의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옥수수와 대두 가격이 오르리라는 보장을 없다고요. 제가 알아 본 바로 올해 미국 곡물 시장은, 풍작으로 수확량이 작년에 비해 25% 이상 늘 거라고, 다들 예상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가격이 떨어지면 떨어지지 오르지 않을, 그 옥수수와 대두에 옵션 투자라니....

“뭐? 지금 뭐라고 했지?”

=그냥 투자도 아니고, 선물 옵션에 투자하시겠다지 뭡니까?

선물옵션이란 선물계약을 매매대상으로 하는 옵션을 말했다.

선물옵션의 매입자는 대상이 되는 선물의 포지션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갖지만 의무는 없었다.

콜의 경우 옵션 소지자가 콜을 행사하면 행사가격으로 선물의 매수포지션이 발생되며, 풋의 경우 옵션 소지자가 풋을 행사하면, 행사가격으로 선물의 매도 포지션이 발생된다.

=투자자가 30억을 옥수수와 대두 선물 옵션에, 그것도 내려갈 것이 확실한 마당에 오르는 쪽에 몰빵 하시겠다니, 제가 답답해서 대표님께 이렇게 전화를 드린 겁니다.

박 대리의 말을 듣는 순간, 이전 삶의 내 기억이 ‘유레카’를 외치고 있었다.

* * *

그러니까 그 대박 투자의 한 예로 꼽히는 ‘콘벨트 선물옵션투자’가 올해 있었던 것이다.

나도 정확히 그 투자자가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투자 사례는 워낙 유명해서, 특히 ‘콘벨트 선물옵션투자’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바로 미국에 갑자기 발생한 허리케인으로 인해, 미국 제 1의 옥수수 재배지역인 콘벨트가 쑥대밭이 되어 버린다.

그런 기상이변을 예측한 그 투자자는 30억을 투자해서, 1조에 가까운 돈을 벌었다.

‘이거 잘만 하면....’

비트라 코인 말고 당장 큰돈을 손에 쥘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투자란 게 같이 하면 얻게 되는 수익이 줄 수밖에 없다.

즉 이번 대박 투자자가 30억을 투자했다고, 내가 그 4배인 120억을 투자한다고 치면, 내가 벌어들일 수익이 4조가 되는 건 아니란 얘기다.

‘그러니까 그 투자자의 투자 금액을 낮추게 하고, 내가 그보다 좀 더 투자를 하는 게 최선이다.’

머리를 재빨리 굴린 나는 박 대리에게 말했다.

“그 투자자에게 혹시 투자 실패 시 리스크에 대해 다시 설명해. 30억 다 틀어넣고 나서, 투자 실패하면 쪽박 차는 사람 일수도 있잖아?”

=아아. 그러니까 투자 실패 시 리스크를 들먹여서, 최대한 투자 금을 낮춰 보란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투자란 건 안전하게 하는 거라고, 잘 말씀 드려. 아무리 확신이 있어도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그 후 최종 투자금액이 정해지면, 나한테 얘기하고 투자에 들어가도록.”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블랙머니 박 대리와 통화 후, 나는 내 계좌부터 살폈다.

내가 생각하는 콘벨트 선물옵션투자에서의 투자금 맥시멈은 50억 정도였다.

만약 박 대리가 투자자의 설득에 실패 한다면 나는 20억만 투자해야 할 것이고, 성공한다면 그 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 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최대 50억만 내 통장에 있으면 됐다.

당연히 이번 투자는 개인투자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잭팟이 터지면 가만있을 한국 정부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당시 그 투자자는 25%가까이 되는 양도세를 내 놔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

“바하마와 버뮤다 같은 조세피난처에 법인 하나 세운 후, 그 법인을 통해 투자 하면 그만이거든.”

역시 투자법인은 외국, 그것도 조세피난처에 세우는 게 맞았다.

일단 신고만 제대로 하면 합법인데다가, 그곳은 세금이 없거나 아주 낮은 세율이 부과되는 곳이었으니까.

그런 일을 하는 곳이 바로 백준열이 세운 투자전문 회사 블랙머니다.

일단 투자자의 투자금액이 정확히 정해지면....

“가만?”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투자자가 블랙머니를 이용했다면, 박대리가 조세피난처 얘기를 하지 않았을 리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거....블랙머니에서 그 투자를 유치하지 못한 거로군.”

아무래도 지금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투자자가 30억을 그대로 콘벨트 선물옵션투자에, 몰빵 투자 한다고 봐야 했다.

결과 적으로 나는 20억 밖에 투자하지 못하고.

그 결과 그 투자자는 자신이 원래 벌게 될 수익 1조원 보다 훨씬 못한 돈을 벌게 될 것이고, 나는 좀 아쉽긴 하지만, 어째든 큰돈을 손에 쥐게 될 것이었다.

‘한 5천억 쯤 벌려나?’

5천억이면 이 당시 강남 쪽으로 꽤 괜찮은 건물 십 수채는 살 수 있는 돈이었다.

‘투자는 역시 부동산이지.’

강남불패의 신화를 알고 있는 나였다.

돈 생기면 무조건 강남 부동산에 투자하면 그만이었다.

골치 아프게 통박 굴려가며 주식에, 선물에 투자할 거 없었다.

그렇게 보면 블랙머니 같은 투자 회사도 사실 필요 없었다. 하지만 내가 블랙머니를 유지하고 경영하는 건, 이런 식으로 잭팟을 터트렸을 때 명분 때문이었다.

이번에 ‘콘벨트 선물옵션투자’를 통해, 성공 신화를 쓴 투자자만 해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블랙머니의 대표이자 투자의 신, 거기다가 재벌 3세이기까지 한, 내가 그 투자의 주인공이라면 어땠을까?

그 정도 주목은 받지 않을 것이다. 그냥 ‘부자가 더 부자가 됐네?’ 딱 그 정도의 관심 밖에 세인들에게 받지 않았을 것이다.

* * *

상암동 MVC방송국에 도착해서, 곧장 그곳 편성국장을 만나러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을 때였다. 내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고, 바로 꺼내서 확인했다.

“엥?”

백승호....라는 이름이 내 핸드폰 화면에 떡하니 떴다.

백씨 성을 쓰는 사람 중에 가운데 이름에 ‘승’자 항렬을 쓰는 사람들은, 내 큰 아버지들 뿐이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그 큰 아버지들은 딱 두 분 있으신데, 한 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나머지 한 분이, 바로 백승호 CH그룹 회장님 되시겠다.

근데 이 양반이 왜 나한테, 이 시간에 전화를 건 걸까?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백승호 회장이 그에게 전화를 건 건,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뭐지?’

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백승호 회장은 내 백부이면서, 어제 나를 엿 먹이려 들었던 TVM 백준기 대표의 부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TVM 때문에 무려 백승호 회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아아!”

그 말은 백승렬 회장이 내 부탁을 제대로 들어 준 모양이었다.

TVM에서 삼명그룹 계열사의 광고를 전부 빼는 거 말이다.

“여보세요?”

나는 상대가 누군지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며 전화를 받았다.

=나는....이거 뭐라고 해야 하지?....그래....으음. 너의 큰 아버지 되는 CH그룹 회장 백승호다.

백승호 회장도 막상 나한테 자신을 소개하려니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평소에도 좀 자주 연락하고 친하게 지내지 그랬어요? 백승호 회장님.’

나는 속으로 그 생각을 하면서, 백승호 회장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네. 백부님. 안녕하셨어요? 이렇게 전화상으로 인사드리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뭔 송구까지야. 내가 너한테 이렇게 직접 전화를 한 건, TVM 때문이다. 너하고 우리 준기하고 사이가 안 좋다면서?

“저야 준기 형님 좋아하죠. 그런데 준기 형님이 저를 너무 싫어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제 회사 연예인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구박을 해 대니....”

나는 엘리베이터가 왔는데도 그걸 타지 않고, 오히려 뒤로 물러나서 전화기를 잡고 한창 백준기가, 어떤 식으로 그 동안 나를 괴롭혀 왔는지 세세하게 전부 다 백승호 회장에게 얘기했다.

=그, 그랬구나. 준기 그 녀석이 평소에 그리 속 좁은 녀석은 아닌데....

백승호 회장도 내가 이렇게 스스럼없이 그에게 그의 아들 잘못에 대해 일장연설을 해 댈 줄 몰랐던 거 같았다.

적잖아 당혹해 하며 내게 아쉬운 소리를 하려 했는데, 그보다 빨리 내가 말했다.

“그뿐이면 말도 안 해요. 제가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자기 밑에 사람을 시켜서 저를 비참하게 만들려고까지 하니....거기 TVM에 편성국장인 편일수라고 있는데, 아주 못돼 처먹은 사람이에요.”

편일수라면 백승호 회장이 더 잘 알았다. 왜냐하면 백준기의 경영 능력이 걱정이 되어서, 백승호 회장이 자기 주위에서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뛰어난 면이 있는 인재를, 백준기에게 붙여 주었는데 그게 바로 편일수였으니까.

그때 백승호 회장에게 구원자가 있었으니 바로 문대식이었다.

“대표님. 약속 시간 다 되어갑니다.”

“어어. 알았어. 그런데 백부님. 무슨 일로 제게 전화를 하신 건가요?”

그 물음에 내 핸드폰 너머에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백승호 회장으로서는 투머치토커인 내가 알아서 얘기를 끊고서, 이렇게 먼저 그가 전화 건 용건을 물어 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나?

=준기 녀석이 그 동안 널 그렇게 괴롭혀 왔다니....이제 이 백부가 알았으니 녀석을 혼쭐내마. 그래서 말인데 TVM에 끊은 광고. 그거 어떻게 좀 다시 원상 복구 해 줄 수 없겠느냐? 이 백부가 부탁 좀 하마.

늙은 생강이 역시 더 매웠다. 백승호 회장은 그럴싸한 말로 나를 위로해 주면서, 동시에 백부로서 거절하기 어렵게 부탁이란 말까지 꺼냈다.

보통 이러면 조카 입장에서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에이. 백부님도 참. 말로야 다하죠. 저도 말로야 준기 형님 싹 다 용서합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제가 당한 게 아니라, 제 밑에 연예인들이 당한 거잖습니까? 그들이 다 용서한다면 모를까 그건 어렵습니다.”

=....

너무도 단호하게 거절해 버리는 나 때문에, 백승호 회장도 꽤 놀란 모양이었다. 한 동안 말이 없었고 나는 잘 됐다 싶어 말했다.

“저 지금 미팅이 있어서 그만 전화 끊어야겠습니다.”

=잠, 잠깐만....

하지만 백승호 회장은 일단 내가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해 놓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그래서 뭘 어쩌면 TVM에 광고를 넣어 주겠다는 거냐? 네 밑에 연예인 운운하지 말고. 네 본심을 얘기해라.

백승호 회장의 목소리부터가 변해 있었다. 이전은 어째든 날 잘 구슬려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취하려 최대한 친절하게 얘기했다면, 지금은 나를 비즈니스 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형제끼리 닮았다고 할까? 싹 바뀐 백승호 회장은 흡사 백승렬 회장과 비슷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내 본심이라....’

나는 사실 원하는 게 없었다. 그냥 백준기에게 좆 대 봐 란 식으로 TVM에 광고를 뺀 것 뿐.

하지만 굳이 백승호 회장이 얘기를 하자니 한 소리 했다.

“준기 형님의 진심어린 사과? 뭐 저는 그거면 됩니다.”

=....알았다.

뚜뚜뚜뚜뚜....

그 대답 후 백승호 회장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때 문대식이 말했다.

“빨리 가시죠.”

경호팀원들이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었고, 엘리베이터 안에 먼저 탄 방송국 사람들이 날 빤히 쳐다봐서,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향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쭉 위로 올라갔다.

몇 층에서 내렸는지도 몰랐지만 어째든 문대식이 늦지 않게, 오늘 미팅 장소인 방송국 회의실에 나를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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