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89화 (18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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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이주희는 손진아의 매니저가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에게 제대로 따지기로 했다.

손진아 본인도 아닌 매니저니까 말도 좀 함부로 해도 될 테고.

물론 지켜보는 작가가 있으니, 일단 예의는 지키면서 조목조목 따질 생각이었다.

그래서 전화를 받고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차분히 통화를 하려 했는데 오히려 저쪽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나왔다.

‘오해 운운? 이년이....’

오해 운운이 아니라 오해가 맞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손진아한테 무슨 그리 죽을죄를 지었다고 방송사PD들 한데, 죄 전화까지 돌리냐는 말이다.

생각 같아서는 쌍욕부터 끌어 붓고 시작하고 싶었지만 자기 앞에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작가 언니를 봐서, 이주희는 최대한 인내를 발휘해서 얘기를 했다.

한데 손진아의 매니저가 미친 건지 그녀 말을 도중에 잘랐다.

‘이게 진짜....’

이주희는 제대로 팍 쳤는데 손진아 매니저의 뒷담화란 말에 일단 움찔했다.

하지만 이어진 손진아 매니저 말처럼 선배로서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지.

한데 진짜는 그 뒤에 나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내 남자한테 진아 얼굴에 칼질을 시키다니?’

당연히 이주희는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진 손진아 매니저의 조폭 두목이 손진아를 테러하려 했다는 말에, 뭔가로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거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그 뒤 충격에 빠진 이주희가 말이 없자, 저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주희! 이주희! 야! 주희야!”

“네?”

이주희는 직접 몸을 일으켜서는 그녀 옆으로 와, 그녀 몸을 흔드는 작가 언니를 돌아보고서야 그제서 정신을 차렸다.

“정신 차려! 너 지금 통화는 하는 거야?”

그때 이주희의 핸드폰에 전화 끊김 음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이주희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힘없이 내려놓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작가 언니가 물었다.

“오해라며? 왜 오해를 풀려다 말고 전화를 끊은 건데?”

“그, 그게....”

막상 작가 언니에게 얘기를 하려는 데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니 열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기 남자, 그러니까 조폭 두목이 손진아의 얼굴을 칼로 그으려고 했다는 걸, 작가 언니에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일단 그 남자와 나는 모르는 사이야.’

이주희가 살기 위해서는 최덕구와 바로 손절해야만 했다.

사실 어제 헤어지자고 했으니, 그가 더 이상 자기 남자가 아닌 건 사실이 아닌가?

하지만 어제 이주희와 최덕구가 같이, 현동 백화점에서 돌아다닌 걸 본 사람은 많았다.

무엇보다 현동 백화점과 그 주변 CCTV에 그들이 연인처럼 같이 다닌 게 찍혔을 테니, 그들이 사귄 건 어차피 빼도 박지도 못하는 팩트였다.

‘그래. 인정할 건 하자. 대신 내가 시킨 건 아니잖아?’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똑똑똑!

작가 실에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보조 작가 하나가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작가님. 드릴 말씀이....”

근데 그 보조 작가가 이주희를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작가 언니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귓속말로 뭐라고 얘기했고, 그 말을 들은 작가 언니가 자신의 노트북에서 뭔가 확인을 하더니, 놀란 얼굴로 이주희를 보고 말했다.

“주희야. 너 이거 사실이니?”

그러면서 인터넷이 뜬 기사 하나를 이주희에게 보여 주었다.

그 기사에는 현동백화점에서 이주희와 최덕구가 팔짱을 끼고 쇼핑 중인 장면이 나왔는데, 타이틀이 가히 압권이었다.

[조연배우 L씨, 자기 조폭 두목 남자 시켜 탑 스타 S양 테러!]

이주희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 했지만, 조폭 두목 최덕구의 얼굴은 그대로 보이게 해 놓고 있었다.

은퇴한 조폭 두목 최덕구 정도쯤이야, 그 얼굴을 기사에 낸다고 겁낼 인터넷 신문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아....”

이주희는 커다랗게 난 그 기사를 보고 절망했다. 하지만 인터넷만이 아니었다. 당장 KVC 연예부 기자가 이주희를 찾아왔다.

“저 인터뷰 좀....”

“아뇨. 저 좀 바빠서. 언니 다음에 봬요.”

이주희는 황급히 작가 실을 빠져 나왔고 창백한 얼굴로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는, 그녀의 매니저를 보고 외쳤다.

“빨리 차에 시동 걸어.”

그러자 오던 길을 되돌아 냅다 뛰어가는 이주희의 매니저.

이주희는 얼굴을 가리고 주차장으로 거의 뛰다시피 이동했고, 그녀 앞에 다가 온 차에 급하게 탑승했다.

“잠깐만....”

부우우웅~

그리곤 KVC 연예부 기자 뿐 아니라, 어느 새 늘어 난 다른 신문사 기자들을 따돌리고, 방송국을 급하게 빠져 나갔다.

* * *

이주희를 실은 차는 곧장 그녀의 소속사로 향했다.

근데 그녀가 속한 소속사가 하필 QH엔터테인먼트였다.

바로 조폭 두목이 대표로 있는 그 연예 기획사.

이주희는 그 사실도 모르고, 새로 생긴 QH엔터란 곳에서 그녀에게 가장 많은 계약금을 제시해서, 그쪽으로 옮겼다.

연예인에게 있어 자신의 가치는 곧 돈이었다. 즉 QH엔터에서 그녀의 가치를 가장 크게 인정해 준 것이다. 그러니 그 소속사로 옮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소속사를 옮긴 이주희는, QH엔터에서 연예인 케어를 어느 정도 잘 해주고 있어서, 현재로서는 자신이 소속사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속사의 진정한 능력은, 이런 식으로 대형 악재가 터졌을 때였다.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 내고, 또 소속 된 연예인을 잘 지켜 주느냐가, 그 연예 기획사의 능력을 증명하는 기회인 셈이었다.

이주희는 자신의 소속사를 어느 정도 믿었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고, 소속사에서 그 정도 이슈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 해 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조폭 따위한테 다리나 벌려주는 계집을 어따 써. 그냥 내 보내 버려.”

이주희의 일이 대표 귀에도 들어간 거 같았다.

“네? 하지만 대표님....”

“시끄러. 안 그래도 딴 일로 골치 아파 죽겠는데. 그깟 조연 배우 뭐 하러 신경 써? 김 본부장. 그렇게 할 일이 없어?”

“그게 아니라....”

“됐고. 그냥 내 보내. 그리고 황 차장 들어오라고 하고.”

“네.”

QH엔터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고 있던, 콘텐츠 사업부 김효석 본부장.

그가 맥 빠진 얼굴로 사장실에서 나와 자기 부서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연예인, 매니저 사업부에 들렀다.

거기 황치열 차장에게 다가간 김효석.

“아아. 본부장님.”

그럴 본 황 차장이 바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김효석은 그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대표님이 찾으시니 가봐.”

“아네.”

황 차장은 대표실에 갈 때 챙겨 갈 게 있는지 책상 위에 서류를 챙겼다.

그걸 잠깐 지켜보고 있던 김효석이 황 차장에게 말했다.

“해피걸스, 기어코 수빈이로 간다고? 예지가 아니라?”

“뭐 그렇게 됐습니다.”

“하아. 우리 회사 직원이라면 다 알아. 예지가 수빈이보다 몇 배 더 뛰어나다는 거 말이야.”

“저도 압니다. 하지만 대표님이 수빈이라고 하시니....”

“그러니까 자네가....하아. 아니야.”

김효석은 황 차장이 어떤 인간인지 생각하자, 바로 그를 설득 시키려고 하려든 말을 도로 입 안으로 삼켰다.

황치열은 QH엔터에 들어 올 때부터 위에 눈치를 많이 봤다.

연예인과 매니저를 관리하는 지금의 자리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고.

그러니까 김효석이 아무리 뭐라고 그래도, 황 차장은 자기 사는 게 중요하지 연예인과 매니저가 어떻게 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이 회사 최고 높으신 대표님께서 그렇다면 그런 게 황치열이었다.

“하아....”

긴 한숨과 함께 자기 부서로 간 김효석은, 그를 기다리고 있는 조연 배우 이주희가 대기하고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본부장님!”

이주희가 그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네.”

하지만 김효석은 이주희의 그 인사를 같이 반갑게 받아 줄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이주희.

“....설마? 아, 아니죠?”

“하아. 주희씨 미안. QH엔터에서는....이주희씨와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없게 되어 정말 유감으로....”

“말도 안 돼!”

이딴 회사인줄 알았으면 소속사를 옮기지도 않았다.

이주희는 다시 한 번 절망감을 맛보고는, 김효석 본부장이 건넨 계약 해지 통보서를 들고서, QH엔터를 나가야 했다.

나갈 때는 혼자였다. 그녀 매니저는 이미 다른 배우에게로 배정 되어 있었고 말이다. 당연히 그녀에게 지급 됐던 차도 딴 연예인에게 넘어간 상황.

결국 택시를 타고 혼자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주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이 아닌,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녀가 조폭 두목의 여자란 게 맞다 면, 소속사에서 계약 해지 통보를 하는 게 정당하다는 변호사의 답변만 듣고, 허탈한 얼굴로 집으로 향했다.

그때 문자 메시지가 한 통 날아왔다.

“아아....”

오늘 그녀가 만나기로 했던 KVS 미니 시리즈 팀에서, 그녀와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는 통보를 해 온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녀와 함께 하기로 한 영화며 연극, 뮤지컬까지 전부 함께 할 수 없게 되어 유감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또한 몇 군데, 싼 값에 광고 출연 했던 곳에서 어이없게도 손해배상을 하란 내용 증명을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고.

“호호호호. 진짜 유감스럽네. 호호호호. 하도 부탁해서 골랑 백만 원 받고, 출연해 줬더니 이제 와서 내용 증명이라?”

미친년처럼 실실 웃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그녀를, 힐끗 백미러로 쳐다보던 택시 운전기사는, 그녀 집에 도착하자 택시비를 받아서는 휑하니 내뺐다.

* * *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

그는 어제 막내아들인 백준열로부터 두 통의 전화를 직접 받았다.

백준열을 자신의 후계자로 사실상 낙점한 그는, 비서실장인 오규동에게 별도의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준열이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내가 받는다. 그런 줄 알아.”

“네. 회장님.”

누가 감히 백승렬 회장의 지시에 토를 단단 말인가?

현재 삼명그룹에서 백승렬 회장의 지시가 곧 법이었다.

그 만큼 삼명그룹에서 백승렬 회장의 지위는 공고했다. 하지만 그가 후계자를 지목하는 순간 얘기는 달라질 터였다.

차기 회장이 될 사람이 생긴다는 건, 곧 권력이 그쪽으로 이동한다는 얘기였다.

백승렬 본인도 앞으로 20년은 더 삼명그룹의 오너 노릇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부친이셨던 백선엽 선대 회장 역시, 그런 자신감을 내비치셨다가 불과 2년 뒤 돌아가셨다.

현재 백승렬 회장의 나이로 본다면 언제 무슨 일을 당해 하늘나라로 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실제 지금 그의 나이에 백선엽 전 회장이 타개했었다.

그래서 백승렬 회장은 올해부터 자기 자리에 미련을 버리려 최대한 노력 중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나?

무엇보다 뭘 믿고 아들놈들에게, 자기 회사를 맡긴단 말인가.

근데 그나마 막내가 싹수를 보이기 시작했고, 최근 녀석의 행동들이 백승렬 회장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이제야 욕심을 내려놓으려 했는데, 그 녀석에게 시비를 거는 것들이 벌써 생겨났다.

“뭐 황충식이가 감히 누굴 노려?”

미전실에 알아보라고 시켰더니 진짜였다.

황충식이 실종 된 자기 아들의 배후에 백준열이 있다는 억지를 부리며, 황동식 국회의장을 움직여서 감히 백준열을 죽이려 들었다.

다행히 백준열이 먼저 손을 써서 위기는 모면한 모양이었다.

그런 보고가 간밤에 쭉 삼명가의 본가로 전해졌고, 그것을 아침 식사 전 백승렬 회장이 전해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제부터 국회의장 황동식이가 쭉 내 전화를 씹고 있다지?”

“네.”

미전실장이 즉시 대답했다.

“국회부의장이 누구랬지?”

“조성호 의원입니다.”

“국회의장 될 준비하라고 해. 여당 대표와 통화 지금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연결 해.”

“네.”

잠시 후 미전실장이 핸드폰을 백승렬 회장에게 건넸다.

“백승렬이요. 허허허. 뭐 늙으면 잠이 없어지는 지라....국회의장 바꿨으면 하는데. 선거가 코앞이니 더 바꾸기 쉽지 않겠소? 임 대표. 대통령 되기 싫소? 내가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줄 수 있소만. 그렇지요. 허허허허. 이제야 말이 통하는 구려. 그럼 국회의장 바뀌고 나면 다시 연락하겠소.”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 그가 실제로 전화 한통으로, 대한민국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바꾸는 걸 지켜 본 미전실장이, 백승렬 회장이 통화 후 건네는 핸드폰을 떨떨 떨며 받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백승렬 회장이 미전실장에게 또 물었다.

“황치국이 장부 있지?”

“네.”

“그거 대검 중수부에 보내. 대검차장 한데 전화 하고.”

“네.”

검찰총장은 아니지만 현 대검차장은 삼명 장학생이었다.

백승렬 회장이 언제고 부담 없이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삼명 장학생은 삼명그룹 사람이나 마찬가지니까.

“강 검사. 나다. 허허허. 아침 먹었어? 나랏일 하는 사람이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지. 굴비하고 갈비짝, 소뼈 좀 보낼 테니까 많이 먹어. 뭐 별일은 아니고, 장부 하나 중수부로 들어갈 거야. 누구냐고? 황치국이. 쯧쯧. 뭘 그리 겁먹어. 법사위원장 자리도 이번 달로 끝인데. 그 형도 국회의장 자리에서 내려 올 거고. 그래. 걱정할 거 없다. 둘 다 이번 선거에서 떨어질 테니까. 이제 됐나? 그래. 동생 다음에 그 형도 들어가야지. 그냥 황씨 그 집 씨를 말려. 음. 음. 좋지. 언제 한 번 보자. 어어.”

국회의장에 이어서 국회 법사위원장까지 간단히 처리 해 버린 백승렬 회장. 그가 입이 쓴지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미전실장을 보고 물었다.

“TVM에 우리 그룹이 몰아주고 있는 광고가 얼마나 되지?”

미전실장이 긴장한 얼굴로 백승렬 회장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 그룹 계열사 중 12곳이 그곳에 광고 수주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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