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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177화 (17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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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세르게이는 곧장 이성욱의 집 현관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쓰러져 있는 이성욱은 아직 권총을 손에 쥔 체, 시퍼렇게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정신력이 어마무시 했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았는지 가늠케 했다.

그렇지만 그의 몸은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지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세르게이는 그런 이성욱에게 다가가서, 여전히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마취총으로 그의 후두부를 강하게 내려쳤다.

퍽!

그러자 그제야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지는 이성욱.

그런 그에게서 권총을 뺐고, 절단기가 없으면 끊을 수 없는 와이어로프로 그의 사지를 묶었다.

그 다음 아직 현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유지태 역시 와이어로프로 사지를 묶은 다음, 그 둘을 하나씩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 문을 전부 닫은 뒤, 유지태와 이성욱의 입도 다 틀어막은 세르게이.

그가 곧장 인이어 모니터 송, 수신기를 통해서 밖에 있는 철수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철수. 두 놈을 다 제압했다. 거기서 통역해 줄래? 아니면 올라올래?”

=여기 있기 좀 그러네. 내가 올라갈게.

“그래. 그럼 올라오면 초인종 눌러라.”

=알았어.

세르게이는 철수가 왜 거기 있기 그런지 바로 눈치 챘다.

하긴 드론 조종 후 다시 회수해서 뒷마무리하기 바쁜 사람 옆에서, 철수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그저 뻘쭘하게 지켜보고 서 있는 거뿐일 테니, 거기 그러고 있느니 세르게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자기도 제대로 일을 하겠다는 거겠지.

세르게이는 철수가 오길 기다렸다. 대략 5분 쯤 뒤 초인종이 울렸고, 세르게이는 바로 문을 열어줬다.

그러자 철수가 들어왔고 다시 현관문을 닫은 세르게이는 철수와 같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는 사지가 묶이고 입까지 틀어 막힌 두 명의 중년 남자들이 침대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저들이야?”“어.”

“보기보다 무섭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철수도 이미 봤다. 욕실 문에 뚫린 구멍과 거실 벽에 박힌 총알, 그거다 천정에 구멍까지 말이다.

다 저들이 총질을 한 거다. 저들을 제압하는 데 세르게이가 사용한 건, 마취총 하나란 걸 철수도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 깨울까?”

그 말을 하면서 세르게이는 한꺼번에 두 처리자를 동시에 깨웠다.

뭔가 생각이 있어 그러는 거겠지만, 철수는 벌써 심장이 쫄깃해지는 거 같았다. 세르게이가 잠든 두 마리 맹수를 깨우는 거 같아서 말이다.

* * *

유지태에게 생각 할 시간을 주고 욕실로 들어간 이성욱. 그는 훌훌 옷을 벗고 막 샤워기 물을 틀려고 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응?”

이성욱은 유지태와 달랐다. 유지태야 누가 자기 뒤를 쫓아오는지, 몇 번을 확인하고 이 집에 들어왔으니, 위험한 자가 이 집에 방문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이성욱은 경각심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의 촉이 갑자기 경고를 보내왔다.

파파팟!

이성욱은 곧장 욕실 선반을 열고, 그 안에 권총과 소음기를 꺼내서 권총에 소음기를 장착했다.

그 사이 유지태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문 여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리고 유지태가 당해 쓰러지는 소리와 누가 안으로 들어오는 인기척까지.

이성욱은 지체 없이 욕실 안에서 거실 쪽으로 총 두 방을 쐈다.

그 뒤 인기척이 들리지 않자, 바로 욕실 문을 열었고 권총을 밖으로 겨누며, 시야를 확보한 뒤 몸을 거실 쪽으로 내 던졌다.

그리고 침입자를 찾아 총구를 겨눴는데, 정작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 뭐야?”

놀란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마취총에 맞아 현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료 유지태에게 시선을 잠깐 뒀을 때였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창가로 돌렸더니 거기 드론이 보였다.

근데 드론에 무슨 장치가 많이 붙어있었고, 그 중에 총구로 보이는 걸 발견한 순간 위험하다 느낀 이성욱은 총으로 쏴서, 그 드론을 박살내 버리려 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그 드론이 뭔가를 발사했다. 하지만 막상 그를 향해 날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성욱은 귀가 멍멍하고, 머리가 띵해지면서 몸이 통제권을 잃고 비틀댔다.

무의식중으로 위기를 느낀, 그의 몸이 권총에 3발 남은 총알을, 다 천장에다 쏴대게 만들었고 그 직후 쓰러졌다.

이성욱은 의식을 잃지 않으려 일부러 혀를 깨물었다.

그렇게 버티다보면 몸도 곧 그가 의도한대로 움직여 질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때 웬 외국인 하나가 밖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왔다.

‘저놈이로군.’

이성욱은 저 외국인이 마취총을 쏴서 유지태를 제압하고, 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척해서 자신을 욕실 밖으로 끌어내고는, 자신은 밖으로 도로 나간 것으로 봤다. 그것도 모르고 자신은 저 놈이 파 놓은 드론 함정에 빠진 것이고.

이성욱은 최대한 저 외국인의 얼굴을 봐 두려고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그건 이성욱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자가 먼저 이성욱의 뒷머리를 뭔가로 강하게 내려쳤고, 맞는 순간 이성욱은 의식을 잃었다.

그러다 얼마 뒤 정신을 차린 이성욱.

“으으으으....”

머리가 깨질 듯 아팠는데 그런 이성욱 옆에, 유지태도 비몽사몽인 채 눈은 겨우 뜬 채 누워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의 모습이 이성욱의 눈에 포착 됐다.

한 명은 자신을 잡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외국인이고, 그 옆에 한국인 한 명이 더 나타나 있었다.

“세르게이. 이쪽은 완전 정신을 차렸는데 저쪽은 아직 마취 성분이 몸에 남아 있나 봐. 헤롱헤롱 거리는 데?”

그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러시아어를 썼다. 그걸 듣고 이성욱은 이렇게 말하려 했다.

‘러시아 킬러인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입은 뭔가에 틀어 막혀 있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우웅’ 거렸는데 그 소리를 듣고 한국인이 이성욱에게 한국말로 말했다.

“세르게이가 뭘 물으면 그냥 대답해요. 괜히 버텨 봐야 당신 몸만 상할 테니까.”

그 말에 이성욱은 히죽 웃었다. 자신이 누군데 기껏 고문 따위에 굴복 할 거 같은가?

“으으으으....”

그때 유지태가 완전히 의식이 돌아 온 모양이었다. 같이 누워 있는 이성욱을 알아 본 듯 ‘우웅’거렸다. 유지태 역시 입의 틀어 막혀 있어서 말을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때 세르게이가 잠깐 안방을 나가더니 이 집 식칼을 들고 나타났다. 그걸 보고 이성욱은 생각했다.

‘저걸로 날 고문하려나 보군.’

하지만 아니었다.

서걱!

곧장 이성욱에게 다가 온 세르게이란 외국인은, 단칼에 이성욱의 목을 그어버렸다.

‘미친....’

이성욱은 자신이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죽을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 생각을 처음 하면서....죽었다.

* * *

유지태는 정신을 차린 뒤, 자신처럼 꼼짝없이 제압당한 이성욱을 보고 절망했다.

만약 지금이 의뢰수행 중이었다면, 동료 전규호라는 희망이라도 있어, 어떤 식으로든 버텼을 것이다.

그럼 전규호가 어떻게든 자신과 이성욱을 구해 줄 테니까. 전규호라면 그 정도 능력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전규호는 자기 집에서, 가족들과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 열심히 짐을 싸고 있었다.

그런 그가 여기 ‘짜잔’하고 나타나서, 자신들을 구해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물론 그들이 밤 10시까지 살아있다면, 그때는 또 달라지겠지.

인천공항에서 전규호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인지하고 움직일 테니까.

그 사이 운 좋게 전규호가 전화를 해서, 움직일 가능성까지 배제할 순 없었다.

그러나 그걸 기대하는 건 틀린 듯싶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제압한 외국인이, 식칼을 들고 나타나서 바로 이성욱의 목을 그어 버렸으니까.

이성욱은 한 번에 다량의 피를 쏟아내고는 곧 죽었다. 그는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건만.

그때 피 묻은 식칼을 든 외국인이 유지태에게 다가왔다. 유지태는 질끈 눈을 감았다.

외국인이 그 역시 식칼로 목을 그을 거라 여겼던 것.

“눈 뜨세요.”

그때 우리나라 말이 들려서 눈을 뜬 유지태. 그런 그 앞에 핸드폰이 보였다.

근데 그 핸드폰 화면에는 좀 전에 하동훈이 보낸 유지태의 미국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걸 들고 있는 외국인이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그때 외국인이 뭐라 말했다. 익숙한 언어였는데 유지태는 그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대신 한국말이 또 들려왔다.

“가족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 소리에 한국말이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린 유지태. 그의 눈에 안경 낀 왜소한 체구의 한국 중년 남자가 보였다.

“통역이요?”

유지태의 물음에 그 한국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지태가 태연하게 말했다.

“가족 아니라고 전하시오.”

하지만 외국인의 통역인 한국인은 유지태의 그 말을 외국인에게 바로 전달하지 않았다.

지이이잉!

그때 그 한국인의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고, 그가 유지태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거짓말을 하셨네요?”

그러면서 그 한국인이 자기 핸드폰을 유지태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에 유지태의 가족사진이 있었다. 그걸 보고 유지태가 질끈 눈을 감자 그 한국인이 말했다.

“부인은 강수정, 큰아들은 유재현, 둘째 아들 유재명. 단란한 가정이네요.”

그리고 이어서 그들이 지금 어디 사는지, 그 주소를 말할 때 유지태가 버럭 소리쳤다.

“그만. 그들을 건드리면....다 죽인다.”

작정하고 터트린 유지태의 살기는 엄청났다. 거기에 기가 죽은 통역 철수가 딸꾹질을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아니었다. 세르게이가 유지태에게 뭐라고 했고, 철수는 딸꾹질을 하면서 그 말을 통역해서 유지태에게 말했다.

“히꾹....가족을 살리고 싶으면....히꾹....협조하면....히꾹.....된다고 하네요.”

세르게이의 말은 자기에게 협조하면 가족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즉 유지태는 여기서 100% 죽는다고 봐야했다.

‘젠장....’

자신의 살길이 더는 없음을 직감한 유지태. 그가 질끈 눈을 감았다.

그가 죽고 나면 가족들은 앞으로 어쩔 것인지 벌써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큰 아들은 대학 공부를 다 시킨 게, 이때 위로라면 위로가 됐다.

“좋다. 협조 하지.”

유지태는 자신은 죽더라도 가족은 무사히 남아 그들 삶을 다 살기를 바랐다.

‘미안하다. 규호야.’

이미 죽어 버린 이성욱은 어쩔 수 없었지만, 전규호는 자신의 배신으로 곧 죽게 될 테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히꾹....전규호씨 지금....히꾹....집에 있나요?”

여전히 딸꾹질 중인 한국인 통역을 보고 유지태가 말했다.

“러시아 말이라면 나도 좀 하니까, 당신은 더 나서지 않아도 된다.”

그 말 후 유지태가 유창한 러시아 말로 세르게이에게 말했다.

“내 가족을 살려 준다고, 예수 그리스도께 맹세해라.”

러시아 공화국 인구의 약 80%는 대러시아 인으로, 국교는 러시아 정교회다.

즉 유지태는 지금 세르게이도 그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 신도라고 보고, 신에게 맹세를 하라고 한 것이다.

물론 그래도 세르게이가 그 약속을 안 지키면 그만이었지만.

“맹세하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행히 러시아 킬러는 러시아 정교회의 신도인 듯 했다.

“자아. 그럼 물어봐라.”

“우선 네 동료가 지금 집에 있는가?”

“그렇다. 전규호는 지금 그의 가족과 함께 집에 있다.”

대답하는 유지태는 가족이란 말을 특별히 강조했다. 세르게이는 유지태가 뭔 말을 하고 싶은지 바로 눈치 챘다.

“그 동료의 가족을 구하고 싶거든, 네가 그를 불러내라.”

“그러지.”

유지태는 전규호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전규호를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함정으로 불러내기로 했다. 아마 전규호도 이런 그의 결정을 이해해 줄 거라 여기면서.

* * *

미국으로 떠날 채비를 다 한 후, 전규호는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서 먹었다.

이사하는 날 먹던 자장면을 한국을 떠나는 날 먹는 게 좀 기분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단골이라고 서비스로 준 군만두까지, 깨끗이 다 먹어치웠다.

인천공항까지 운전을 해야 해서, 중국집에서 뭘 시키면 꼭 딸려 왔던 빼갈(고량주)도 오늘은 시키지 않았다.

대신 딸아이가 좋아하는 콜라를 따라 마시며 부른 배를 두드리던 전규호. 그런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아까부터 아빠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거 같던데?”

“그래? 알았어.”

전규호는 곧장 안방으로 가서 장롱을 열었다. 그러자 거의 텅 비어 있는 장롱 안을 보고 기분이 확 다운됐다.

옷장에 있던 아내 옷들이 싹 사라지면서 그의 옷가지만 덩그러니 남은 게, 앞으로 처량해질 그의 한국 생활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거 같아서 말이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그가 아까 입었던 점프에서 핸드폰 진동소리가 계속 울렸다. 전규호는 가족들과 쓰는 폰과 일할 때 쓰는 폰을 분리해서 사용했다.

지금 진동하고 있는 건 그가 일할 때 쓰는 폰이었고.

전규호는 점프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누가 건 전화인지부터 확인했다.

“지태형이네? 여보세요?”

전규호는 유지태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바로 받았다.

=어어. 나다.

“성욱이 걱정 돼서 전화하신 거면, 제가 좀 있다가 한 번 더 들러서 녀석 챙길게요.”

=그,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뚜뚜뚜뚜뚜....

그 말 후 바로 전화를 끊는 유지태. 좀 무뚝뚝하긴 하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걸 알기에 이성욱도 전규호도, 그 누구보다 유지태를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전규호는 바지주머니 속에 일할 때 쓰는 전화를 쑤셔 넣고는, 차키를 챙겨서 집을 나서며 아내에게 말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주희 하고 자기 기내에서 쓸, 목 베게 사가지고 올게.”

“빨리 와. 여기서 8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하니까.”

그 말에 시간을 확인한 전규호. 아직 8시가 안 됐다. 이제 7시 30분.

“알았어.”

이성욱의 집에 가는 데 10분이면 되고, 이성욱 깨우고 이성욱이 사는 단지 앞 대형 쇼핑몰에서, 목 베게 사가지고 오면 8시 10분.

그때 짐 챙겨서 차에 싣고 바로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면 됐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자기 활동 반경에 대한 시간 계산을 끝낸 뒤, 전규호는 바로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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