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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174화 (17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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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태천파의 보스는 누가 뭐래도 양태천이다.

그는 주먹 하나로, 서울에서 지금의 태천파를 일궈 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지방에서 상경한 그가 이렇게 성공을 했으니, 개천에서 용이 나온 격이긴 했다.

하지만 조폭 두목의 말로 치고 좋은 적이 있었던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직원이 되어 주먹들의 낭만을 꿈꿨지만, 그게 그저 허울 좋은 허세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데 걸리는 시간은, 조직세계에 몸담기로 하고 나서 딱 하루면 충분했다.

조직원들은 실제 위아래도 없고 의리 같은 건 지키는 게 병신이었으며, 칼도 제일 먼저 맞아 뒈졌다.

조폭들은 그냥 개새끼들이었다.

그렇게 조직원의 생리를 깨닫고 나서, 양태천은 생각을 바꿨다.

기존 조폭이 아닌 다른 조폭이 되기로 하고, 정말 악착같이 살아왔다. 자기만을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말이다.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조직과 밑에 수하들을 위해서.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 새 수백 명을 거느린 조직의 두목이 됐고, 정치인과 재벌의 하수인을 자처하며 그들의 밑을 닦아 주면서, 조직의 덩치를 더욱 키워 나갔다.

그 결과물이 바로 서울 최대 조폭 조직인 태천파였다.

근데 그 태천파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어요.”

양태천의 맞은편에 도도한 자태로 앉아서,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저 여인.

서울 밤의 황제로 불리는 태천파 총보스 양태천 앞에서, 유일하게 그와 동등하게 마주보고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자.

양태천의 법적 아내인 안세영이었다.

그녀는 양태석에게 먼저 검경이 곧 태천파를 칠거라는 사실을 얘기하고 나서, 바로 그 다음 날, 양태천이 있는 태천파 총본산을 찾았다.

양태천은 조폭하면 떠오르는 무식함과는 사실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실제 대학을 다니기까지 했고. 그것도 철학과를 말이다. 물론 졸업까지 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평소 책 읽기를 좋아했던 양태천이, 대한민국 최대 범죄조직의 두목이 될 거라고는, 그 주변 사람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 양태천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동학 혁명의 접주 전봉준이었다.

그래서 그의 조직인 태천파의 총 보스와 지도부가 있는 곳도, 총본산이라 부르게 한 것이고.

아무튼 양태천은 지금 자기 앞에서, 조직의 명운에 대해 너무도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자기 여자를 보고,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렇지만 그걸 겉으로 티 낼 양태천이 아니었다.

“이 양태천의 태천파가 무너질 거란 소린가?”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건....당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잖아요?”

하긴 작년부터인가? 태천파는 내부 분열이 가속화 되었다.

그 결과 최문식을 비롯한 연합 세력의 보스들, 태천파 내에서는 그들을 원로라 칭했지만, 그들이 멋대로 설치면서, 태천파 내에서 총 보스인 양태천의 자질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양태천이 조직 일에 소홀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자기 동생인 양태석에게 조직을 물려주려고까지 생각을 했었고.

물론 양태석이 그걸 거부하는 바람에 그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하지만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줄은 몰랐다.

“그들이 내게서 등을 돌린 건가?”

“맞아요.”

지금의 양태천이 있기까지 두 세력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한데 그들이 양태천과 태천파를 버리기로 한 모양이었다.

하긴 그들에게 있어서 양태천과 태천파는, 언제든 쓰다 버릴 수 있는 조폭 나부랭이와 조폭 조직에 불과했을 테니까.

그들이 나섰다면 피할 길은 없었다. 국내에 있는 한 말이다.

양태천이 감옥에서 평생을 썩지 않으려면 당장 국내를 떠야 했다.

“당신은 날 따르지 않을 테지?”

“물론이죠.”

양태천과 안세영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 하지만 그 사랑에는 조건이 많이 붙어 있었고, 그 조건 중 하나가 바로 둘 중 하나가 떠나야 한다면, 다른 한 명을 자유롭게 놔 준다는 거였다.

“여기....”

안세영이 양태천 앞에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게 뭔지 양태천이 모를 리 없었다.

“이혼서류인가?”

“맞아요.”

“이렇게 끝나는군.”

양태천이 안세영과 자신을 묶고 있었던 인연의 고리가, 고작 서류 하나로 끊기게 생기자 허탈해 하며 말했다. 그런 그에게 안세영이 말했다.

“즐거웠잖아요?”

“그렇군. 즐거웠군.”

“그리고....태석씨는 그냥 두세요.”

“그 말은....녀석은 살 길이 있다는 소린가?”

“네. 다행히 모시는 분이....그들이 손대지 못할 위치에 있어요.”

“으음....그렇군.”

그 뒤 두 사람 사이에 10여 분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을 양태천이 먼저 깼다.

“태석이를 부탁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야.”

“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죠. 지금은 당신보다도 더.”

“하하하하. 그런가? 녀석이 그새 그렇게 컸다는 말이지? 내 눈에만 아이로 보인 건가?”

“....”

양태천의 연이은 질문에, 안세영은 그저 묵묵부답 웃음으로 화답을 했다.

“가야겠군.”

“잘 가세요.”

“서류는 정리해서 당신에게 보내지.”

“고마워요.”

“잘 있게.”

“건강 잘 챙기세요.”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 수 있었다. 하지만 법적 부부인 두 사람은, 가벼운 포옹도 없이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이별을 대신 했다.

* * *

손진아와 같이 백화점 지하 1층 마트에서 장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왜 외모는 떨어지는 부자들이 미인을 옆에 끼고 다니는 지, 그 기분을 조금은 알 거 같달 까?

아무튼 손진아 같은 미인을 달고 다니니,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그런 시선을 의식한 손진아가 적극적으로 내 팔짱을 낀다던지, 날 보도 다정하게 웃는 건 다행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트 손님들에게 그녀와 살짝 떨어져서 걷는 내가, 손진아의 매니저로 비쳐지는 듯 했다.

뭐 어쨌든 집에 가면 손진아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이목 따위에 나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늘은 크림 게살 스파게티에 감바스, 바지락 탕으로 먹어요.”

장을 보면서 내가 온통 그녀 생각만하고 있을 때, 손진아는 우리가 저녁에 뭘 먹을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좋네요.”

뭐든 안 좋겠나? 손진아와 저녁식사라면 밥과 김치, 아니 간장만 있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손진아는 빠르게 장을 봤고 나는 열심히 카터를 밀고 다녔다. 하지만 혹시 몰라서 나는 삼겹살과 라면을 샀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레드 와인을 챙기고 나자 손진아가 말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 동안 계산하고 기다려 줄래요?”

“그러죠.”

나는 카터를 밀고 계산대로 갔다. 앞에 두 사람이 먼저 계산을 하고 있어, 줄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이잉!

내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골프 여신 민혜주다. 나는 얼른 그 전화를 받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손진아와 같이 있을 때 걸려왔으면 어쩔 뻔 했어?’

손진아 앞에서 민혜주 전화를 받는다?

글쎄다. 아마 나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았을 거고, 그걸 손진아는 더 기분나빠했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예전의 백준열이었다면 눈치도 없게 민혜주의 전화를 넙죽 받았겠지만.

내가 속으로 지금 전화해 준 민혜주에게 고마워하고 있을 때, 민혜주의 목소리가 내 귀에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데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딴 생각하느라 민혜주가 하는 말을 제대로 못 들었다. 하지만 내 몸이 알아서 능청스럽게 연기를 했다.

“으음. 글쎄. 혜주 생각은 어때?”

=저는 하루라도 빨리 오빠가 보고 싶죠. 하지만 서울CC의 대표가 직접 제게 전화해서 양해를 구하는 데 어쩌겠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원래 민혜주와 나는 주말에 서울CC에서 골프를 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민혜주가 미리 토요일에 예약을 잡았고 말이다. 그런데 서울CC에서 토요일 민혜주가 잡은 예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거기 대표가 직접 사과를 해 왔다는 것이다.

‘가만 그럼 혹시 나 때문에?’

생각해 보니 이게 다 내가 판을 키워서 였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서울CC로 오기로 하면서 참가 인원이 더 늘었고, 그 때문에 옆에서 라운딩 할 사람, 즉 민혜주가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자리가 너무 딱딱했다. 예전의 백준열이라면 그런 분위기를 더 선호했다.

골프 치는 자리지만 비즈니스가 우선인 그곳에, 여자가 끼어 좋을 게 없다는 게 백준열의 원래 사고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무엇보다 백준열이 키운 그 판이, 정작 지금의 내게는 그다지 중요한 자리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 따분한 자리에 뭐라도 있어야 즐겁지 않겠나? 해서 나는 새롭게 내 여자 중 한 명이 된, 골프 여신 민혜주를 그 자리에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문제라면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

=오빠가요? 어떻게요?

“실은....”

나는 사실대로 민혜주에게 얘기를 했다. 토요일에 원래 민혜주가 예약한 그 시각에, 정계에 높으신 분들과 최고위 경찰간부들이, 나와 골프를 치기로 되어 있다고 말이다.

=아아. 그랬구나. 난 또....

“그래서 말인데. 그때 너도 참석했으면 해.”

=제가요?

“어. 프로가, 그것도 골프 여신이 참석해 준다면 그 자리가 훨씬 부드러워지지 않겠어?”

=그렇지만....

“괜찮아. 내가 있잖아.”

=알았어요. 오빠랑 같이 치는 거라면 야....

결국 골프 여신 민혜주를 섭외하는 데 성공한 나는, 토요일에 자칫 지루할 뻔한 하루를 그나마 세이빙 할 수 있게 됐다.

* * *

서울 월드컵 파크 아파트 단지 안으로 검은 색 SUV차량 한 대가 들어섰다.

당연히 입구에 통제가 있었지만, 입주민 손님으로 간단히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 그 차량의 운전석의 남자가 뒷좌석의 외국인 남자에게 한국말로 말했다.

“저기 108동 15층에 유지태란 자가 산다.”

그 말 후 운전석의 처리자 에이전시 직원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단지 내 차를 댈 만한 곳을 찾아서, 그곳에 차를 정차시킨 채 라디오를 켰다.

“크크크크....”

그리곤 열혈 청취자로 돌변해서 그 라디오 듣는 데 열중하던 중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지금 거기 아파트 단지 안입니다. 대기 중인 위치는....”

그렇게 전화를 받고나서 얼마 안 지나서, 같은 종류의 흰색 SUV차량이 다가 왔고 거기서 어리바리해 보이는 자가 내렸다.

그리곤 그들이 타고 있는 검은 색 SUV차량으로 다가왔는데, 그때 차량 뒷문이 먼저 열리며 뒷좌석에 타고 있던 세르게이가 손짓하며 한국말로 말했다.

“철수. 빨리 타.”

“세르게이.”

철수는 기뻐하며 후다닥 세르게이가 타고 있는 검은 색 SUV차량에 올라탔다.

철수는 괜히 운전석의 처리자 에이전시 직원 눈치를 살피며, 세르게이에게 러시아 말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얘기하려면 긴데. 다 들을 거야?”

“아니. 그랬다간 저들이 날 가만 안 둘 거 같아.”

철수가 눈짓으로 운전석의 처리자 에이전시 직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세르게이가 싱긋 웃으며 러시아말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 이제 저들이 우리 편이니까.”

“뭐?”

“문식파는 끝났어. 그러니까 너도 더는 그들 때문에 힘들어 할 필요 없어.”

“그, 그게 정말이야?”

문식파가 끝장났다면 그들에게 묶여 있던 그의 채무도 없어졌다고 봐야 했다.

물론 문식파로부터 빚 장부를 누가 챙기느냐에 따라, 그놈들이 문식파 대신 철수에게 변제를 요구할지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 봐야 아는 거고.

운 좋게 그 장부가 세상에서 없어졌을 수도 있는 거지 않은가?

철수로서는 충분히 기뻐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때 운전석의 처리자 에이전시 직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어. 뭐? 유지태가 집을 나왔다고?”

철수는 그 말부터 바로 번역해서 세르게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세르게이가 바로 말했다.

“그 자 뒤를 우리가 쫓는다.”

철수는 세르게이의 말을 운전석의 처리자 에이전시 직원에게 전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래야겠어. 유지태가 전화를 받고 급작스럽게 움직이는 걸로 봐서, 일행과 만나러 가는 것일 수 있겠다는 게, 우리 분석조의 의견이야.”

철수는 운전석 처리자 에이전시 직원의 말을, 바로 러시아 말로 세르게이에게 전달했다.

그 사이 계속 통화 중인 운전석 처리자 에이전시 직원이, 차에 시동을 걸고 그 차를 몰아 104동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막 104동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 나온 빨간색 경차를 발견하고는, 그 차의 꽁무니를 뒤쫓았다.

“저 차에 유지태가 타고 있다.”

운전석의 처리자 에이전시 직원은 그 말 후 집중해서 빨간색 경차를 미행했고, 그 뒤에 철수와 세르게이는 그 사이 소곤소곤 러시아 말로, 지금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 *

어제 함종도 의원을 만난 후, 하동훈은 오늘 하루 종일 자신과 같이 선거 운동을 해 줄 사람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야당 최고의원이면서 야당의 텃밭인 경북의 공천권을 실제로 움켜쥐고 있는 실세, 함종도 의원으로부터 사실상 공천권을 받기로 했다는 사실을 밝히자, 처음에는 난색을 표하던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하동훈과 같이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걱정 마세요. 제가 형님 아닌 누굴 제 보좌관으로 삼겠습니까? 네. 네. 그럼 내일 거기서 만나도록 하죠.”

하동훈은 국회 보좌진을 미끼로, 빠르게 자신의 선거 운동을 도와줄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그렇게 대충 20여명의 사람들을 모으는데 성공한 하동훈은, 내일 그들과 같이 그가 선거에 나설 지역구를 찾아가기로 했다.

“후우. 힘드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시작했던 일이 벌써 오후였다. 중간에 잠깐 쉬며 김밥 한 줄 먹은 게 다였다.

꼬르르르!

그래선지 그의 배가 고프다고 생난리를 치고 있었다. 하동훈은 그 배도 진정 시킬 겸, 함종도 의원에게서 임시로 빌려 쓰고 있던 사무실을 나서서, 근처 별 다방으로 향했다.

그 별 다방에서 진한 커피 한 잔에 리코타 치즈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배가 고파선지 금세 먹어치웠다.

해서 멕시칸 라이스 브리또 하나를 더 시켜 먹었다. 그러자 허기가 가시고 몸에 힘도 어느 정도 회복 됐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함종도 의원이었다.

“네. 의원님!”

현재 하동훈에게 있어서 함종도 의원은 하늘에서 내려 온 튼튼한 동아줄이었다.

그런 고마운 분의 전화를 어찌 기쁨 마음으로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네?”

하지만 세상은 역시 녹록찮았다. 함종도 의원이 새삼 그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그 진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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