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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나는 손진아의 얼굴을 향해 칼을 휘두른 남자를 바라보면서 몸을 날렸다.
그리곤 다급히 내 왼팔을 뻗어서 그 남자의 팔을 막았다.
다행히 늦지 않게 내 팔이 그 자의 팔을 막는 데 성공했는데, 그때 내 몸이 또 알아서 움직였다. 이런 걸 직감적으로 움직인다고 하는 걸까?
휙!
제자리에서 몸을 띄워, 홱 그 몸을 틀면서 그 남자의 안면을 차버렸다.
‘미친....’
내가 차 놓고 내가 놀랐다. 내 몸이 이렇게 유연했던가?
아무튼 상대는 방심을 한 탓인지 몰라도, 제대로 한방 맞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 씨발 새끼가....”
하지만 체구가 워낙 좋았던 상대는 그걸로 쓰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열 받은 뜻 욕설과 함께 내가 바닥에 착지해 균형을 잡기 전에 주먹을 날려 왔다.
나는 그걸 또 가볍게 머리 숙여 흘리고, 주먹을 위에서 아래로 쳐 올렸다.
이것 역시 본능적인 반응이었는데 이걸 복싱에서는 어퍼컷이라고 하나?
쩍!
주먹에 뭔가 제대로 걸리는 느낌이 났다.
손맛이라고 하나? 아무튼 둔탁한 소리로 알 수 있었다. 내 주먹이 상대의 턱에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걸 말이다.
“어억!”
털썩!
눈이 홱 돌아간 상대가, 썩은 고목나무 넘어가듯 맥없이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때였다.
“준열씨!”
내가 싸우는 동안 경호팀원들의 보호를 받고 있던, 손진아가 그들을 뚫고 내게 뛰어오며 내 이름을 불렀다.
“아아....”
그리곤 한 마리 아름다운 나비가 살포시 내 품안에 안겨들었다. 그만큼 손진아는 예뻤다.
그런데 안기자마자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손진아의 가슴은 적어도 C컵이며 허리 사이즈는 23인치 정도란 걸 말이다.
‘김 비서와 비교해도 될 정도네.’
가슴에서 김 비서가 좀 더 풍만한 거 같았다. 하지만 얼굴은 손진아가 훨씬 화려했다.
무엇보다도 손진아는 멜로의 여왕이 아니던가?
나야 좀 더 오래 손진아를 품에 안고 싶었다. 그러나 손진아가 꿈틀거리며 내 품에서 벗어나려 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놓아 줄 수밖에 없었다.
“어디 봐요? 괜찮아요? 119 부르라고 할까요?”
근데 그게 다 내 걱정을 해서였다. 손진아가 이렇게 다정한 여인이었던가?
백준열의 기억에 이런 모습의 손진아는 없었다. 그래서 내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이런 손진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아서 말이다.
그러면서 좀 멍청한 모습을 보였더니, 그게 제대로 된 반응이었던 것 같았다.
“이 넋 나간 거 좀 봐. 얼마나 놀랬으면....”
손진아가 막 울 거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그 섬섬옥수로 내 얼굴을 쓰다듬는데 진짜 그녀와 영화 한 편 찍는 기분이었다.
“당신이 날 이렇게 사랑하는 줄 몰랐어요.”
‘나도 몰랐어. 내가 이렇게 싸움을 잘 할 줄 말이야.’
물론 이게 싸움꾼 이제동의 재능을 내가 획득해서 그렇다는 건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한 번 시험 해본 후에, 이런 일을 겪는 것과 바로 겪는 건 다른 얘기다.
나는 이제동의 재능을 한 번 테스트해 볼 틈도 없었다.
“그냥 당신이 위험하다 싶으니까 보이는 게 없어지더라고요.”
근데 평소의 백준열이었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말이 지금 내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허얼. 이게 무슨....’
그 말을 해 놓고 내가 속으로 놀랄 때 그 말을 들은 손진아. 그녀가 더욱 더 감동한 얼굴로 ‘또르르’ 양쪽 눈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말했다.
“준열씨. 저 오늘 당신을 다시 보게 됐어요.”
“나도 마찬가지요. 당신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됐달 까?”
그러면서 손진아와 나는 무슨 멜로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처럼 사랑에 애틋, 애잔하면서도 절절히 사랑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미친....’
하지만 이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이 알아서 저지르고 있는 애정행각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나미혜의 연예인 끼 중에 연기자로서의 재능이란 거네?’
이제동의 싸움 실력에 이어서, 나미혜의 연기력 또한 손진아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허얼. 내가 진짜 제대로 된 봉을 잡은 거네.’
직접 겪어 보고 나서야 나는, 이제동과 나미혜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 * *
손진아와 나의 한편의 드라마 촬영은, 문대식 감독의 말에 끊길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 현동 백화점 최 전무가 왔습니다.”
현동 백화점 최 전무라는 문대식의 말에, 나는 그가 누군지 바로 생각이 났다.
‘백준열이 그나마 친하게 지내는 재벌 3-4세 중 한 명이로군.’
나보다는 10살이 위지만 ,그래도 유능한 인재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다고, 사업적으로 얘기가 통하는 몇 되지 않는 재벌가의 인물이었다.
“잠깐만요.”
나는 손진아를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며 양해를 구한 뒤, 이곳 현동백화점의 사실상 책임자라고 볼 수 있는, 최유선 전무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
“형님!”
“어어. 준열아.”
우리는 웃으며 서로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다시 한 번 끌어안기까지 한 후에야, 가까이 붙어서 소리 낮춰 얘기를 나눴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최유선 전무는 내가 여자가 많으며 ,그 여자 중 한 명이 손진아란 걸아는 사람이었다.
“진아씨가 여기서 쇼핑을 하다가 문제가 생겼다 길래 한 번 와 봤습니다.”
“네가 여자 때문에 백화점을 와?”
내 말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날 쳐다보는 최유선 전무.
하긴 예전 백준열이었다면 아마 경호팀원만 보내고, 본인이 직접 오진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그 백준열이 아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백준열이 아니란 걸 딱히 티 낼 이유도 없지만.
“오늘 진아씨 집에 가는 날이라 서요. 마침 근처고 해서 와 본 겁니다.”
“그렇군. 얘기 들어 보니 손진아씨 잘못이 50, 우리 잘못이 50이야. 어쩔 거냐?”
적어도 최유선 전무는 없는 얘기를 지어내서 할 인물은 아니었다. 그가 반반 잘못이라면 그게 맞다고 봐야 했다.
“손진아가 고집을 피운다면, 우리 직원이 잘못했다고 사과를 할 수는 있다만....”
그럴 경우 손진아가 갑질을 했다고 언제 어디서 터져 나올지 몰랐다. 지금은 막는다 해도 말이다.
“아뇨. 서로 상방과실이니 쌤쌤 하도록 하죠.”
내 대답에 최유선 전무가 턱짓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손진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손진아에게 안 물어보고 내 마음대로 결정해도 돼?”
지금 손진아는 내가 하는 말을 다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서 그런 냄새가 강하게 나고 있었으니까.
“네. 제 여잔데요. 뭐.”
“오오. 강한 모습. 그런데 너 좀 달라진 거 같다?”
역시 최유선 전무는 촉이 좋은 사람이었다. 뭐 하지만 그라고 백준열의 몸에 내가 빙의했을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할 거다.
“달라져야죠. 그래야 살아남지 않겠습니까?”
삼명家도 후계자 문제로 분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현동家는 그보다 더 심했다.
최유선 전무는 방계라 후계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전부터 내게 말했었다.
그러니 내 말에 그가 이심전심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살아남고 봐야지. 우리네 삶이란 게....휩쓸려 가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내 뱉은 뒤, 최유선 전무는 현장을 빠르게 정리했고, 그 사이 나는 손진아에게 가서 말했다.
“이번 일은 이렇게 마무리 짓도록 하죠?”
“그냥 이대로 끝내고 간다고요?”
손진아는 내 결정이 불만인 듯 했다. 하지만 이어진 내 말에 그녀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화점 측에서는 진아씨가 요구하면 직원에게 사과를 시키겠다는 데, 그걸 본 주위 반응이 어떨 거 같아요? 진아씨가 갑질한다고 생각지들 않을까요?”
“갑질이요? 하지만 난 갑질 한 적이 없는데....”
손진아의 말 대로였다. 문대식이 알아 본 바에 따르면 말이다.
손진아는 최신 유행 명품백을 백화점 측에 미리 예약을 해 놓았다.
그런데 손진아가 그걸 찾으러 와보니, 명품코너 직원이 실수로 그걸 10분 전에 팔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손진아가 요구했다. 그 직원에게 빨리 그 사람을 찾아가서, 그 명품백을 도로 가져 오라고 말이다.
만약 그 직원이 한두 시간 전에 그 명품백을 팔았다면, 손진아도 그런 요구를 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10분 전이라면 그 손님이 아직 백화점 내에 있을 것이고, 그 손님을 찾아서 그 명품백을 회수 할 수도 있지 않냐는 게 손진아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직원은 그게 귀찮아선지, 아니면 쪽팔려선지 몰라도 그렇게 못하겠다고 버텼고, 그걸로 티격태격 하다가 손진아의 매니저가 오면서,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 된 것이다.
“뭐 갑질? 당신 말 다했어?”
“그럼 팔아 버린 걸 저보고 어쩌라고요?”
“이런 미친....그걸 판 게 당신 잘못이잖아?”
“그래서 사과 말씀 드렸잖아요.”
“사람 죽여 놓고 사과하면 다야?”
“그게 어떻게 사람이에요. 가방이지.”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당신 지금 계속 내 말꼬리 잡고....한 번 해보자는 거야? 여기 점장 나오라고 해.”
“제가 여기 브랜드 책임자니까, 저한테 말씀하시면 돼요.”
“우와. 완전 배 째라네. 좋아. 여기 백화점 사장 나오라고 해.”
그렇게 매니저가 손진아를 대신해서 본격적으로 그 직원과 말싸움을 시작했고, 그로 인해 먼저 백화점 보안 요원들이 움직였으며, 상대가 탑 스타 손진아란 게 알려지면서, 백화점 관계자들이 우르르 명품 코너로 몰려 온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툭 튀어 나온 세 남자들에 의해서 손진아가 테러를 당할 뻔한 것이고.
내 경호팀원들에 의해 제압 된 세 남자들은, 경찰이 막 와서 잡아갔고 그 경위에 대해서는 나 대신 문대식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만약 문대식의 선에서 해결이 안 된다면, 내 고문 변호사인 이주혁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다행히 문대식 선에서 잘 얘기가 된 모양이었다.
경찰들이 먼저 떠나고 문대식이 돌아와서 내게 말했다.
“놈들이 누군지는 조사해 보고 알려준다니 기다리면 될 거고, 어떻게 두 분 집으로 가실 겁니까?”
매니저와 문대식을 비롯한 경호팀원들이야 그래주면 좋았겠지. 하지만 손진아는 아니었다.
“그 백 때문에 장을 하나도 못 봤어요. 집에 먹을 것도 없는데....”
“그럼 장 봐서 가요.”
내 그 말에 손진아와 매니저와 문대식을 비롯한 경호팀원들이 일제히 날 쏘아보았다.
하지만 어쩌라고? 집에 먹을 게 없다는 데....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 * *
손진아는 오늘 마음이 복잡했다.
한 달 전인가? ‘이스트 보이즈’라는 요즘 뜨고 있는 보이그룹 멤버 택수란 녀석이, 손진아에게 좋아한다며 사귀자고 들이댔다.
팀의 리더인 녀석은 올해 22살로 손진아와는 5살 차이가 났다. 하지만 녀석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손진아의 촬영장이며 피트니스센터, 집에까지 꽃과 편지를 보냈다.
그래서 몇 번 만나줬다. 그 성의가 갸륵해서 말이다.
한데 그제부터 연락이 딱 끊겼다. 그리곤 어제 녀석과 신인 걸 그룹 멤버의 열애설이 터졌다.
열애설이라면 지겹도록 터져 본 손진아였다.
지금 대한민국 미혼 남자 탑 스타 중에, 손진아와 열애설 한 번 안 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심지어 유부남 배우와도 여러 차례 열애설에 시달려야 했던 손진아였다.
그런 그녀에게 택수의 열애설은, 그냥 한번 웃고 넘어갈 헛소문에 불과했다.
한데 그날 밤에 택수와 그 신인 걸그룹 멤버가 기자 회견을 열고 둘이 사귀며, 특히 걸 그룹 멤버가 임신을 한 탓에, 다음 달에 부득이하게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발표를 해 버린 것이다.
“와아....”
그때 손진아가 충격을 받은 건, 택수가 임신 시킨 걸 그룹 멤버가 임신 4주째란 사실 때문이었다. 즉 손진아와 사귀자고 하기 전에, 택수는 이미 그 걸 그룹 멤버를 임신 시켰던 것이다.
그래 놓고 손진아를 사랑한다며, 그녀를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다고 떠벌렸던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 징조는 있었다. 엊그제였던가?
손진아가 KVS의 한 주간의 연예계 소식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하는 프로그램에 출연 했다가, 마침 가요순위 프로그램인 ‘톱 뮤직 텐’에 ‘이스트 보이즈’가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택수의 진심을 손진아가 한 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지금 KVS 로비인데 여기 국장이 자꾸 내 손을 잡고, 자기 방에 가자고 하는데 어쩌지?]
누가 봐도 KVC국장이, 손진아에게 성추행을 저지르고 있는 장면이 연상 되는 문자 메시지였다.
만약 이걸 택수가 봤고, 진심으로 손진아를 사랑한다면 그는 방송이고 뭐고 다 그만 두고, KVS 로비로 달려와야 했다.
하지만 택수는 손진아의 문자를 확인했으면서도 로비로 달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톱 뮤직 텐’에 출연하고 나서, 다른 곳으로 행사를 가면서도 KVS 로비에 나타나지 않았고 답 메시지도 일절 없었다.
아니 그 이후로 손진아와의 연락을 딱 끊어 버렸다.
마치 손진아가 이제는 자기 여자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손진아는 오늘 하루 종일 우울했고, 그나마 그런 기분을 업 시켜 보려고 며칠 전 주문해 둔, 명품백을 찾으러 그녀가 사는 집 근처 현동백화점을 찾았다.
한데 그곳에서 손진아는 알게 되었다.
진짜 등잔 밑이 어두웠다는 걸 말이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던 것.
그게 바로....백준열 대표 였던 것이다.
백준열 대표는 재벌 3세로, 그에게 그녀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여자에 불과했다.
막말로 그가 자기와 결혼 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손진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탑 여자 배우가 될 때까지 그녀를 지원해 줄 스폰서,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백준열 대표였다.
그녀가 다른 스폰서들도 많지만 백준열 대표를 고른 건, 그가 젊고 잘 생겨서 였다.
이왕 같은 스폰서라면 젊고 잘 생긴 스폰서가 더 나았으니까.
그랬는데....오늘 보니 백준열 대표가 자기 목숨을 내 던지면서까지 자신을 구했다.
그 어떤 여자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건 손진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오늘 백준열이란 남자에게 제대로 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