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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유명한 맛 집 답게 가게 안은 출퇴근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북적댔다.
“어머. 서장님. 너무 오랜 만이시다.”
그래도 여기 사장은 한 눈에 강주엽 총경을 알아봤다.
“여기 고기가 워낙 비싸니 자주 올 수 있나요.”
“서장님께는 특별히 싸게 드린다니까.”
“그건 안 되죠. 아니 큰일 납니다. 저 경찰 생활 오래 할 생각이거든요. 그러니 자꾸 절 유혹하지 마십시오.”
“알았어요. 오늘도 혼자세요?”
“네.”
“그럼 그 자리에 가 앉으세요.”
강주엽은 소갈비구이 점 사장이 가 앉으라는 곳에 알아서 가서 앉았다.
가게 구석에 두 사람이 고기 구워 먹기 좋아 보이는, 다소 협소해 보이는 자리였다. 하지만 혼자서 고기 구워 먹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소갈비 2인분 드리면 되죠?”
“네.”
원래는 고기는 다들 3인분부터 기본으로 팔았다. 하지만 이곳 관할경찰서장이 혼자 와서 2인분 달라는데, 그걸 그렇게는 안판다고 말할, 간 큰 상공인은 없을 거다.
이곳 소갈비구이 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게 당연한 일처럼 되어 버렸다.
물론 이 가게에서 그게 가능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강남경찰서장인 강주엽 총경뿐이지만.
강주엽이 자리에 앉자마자, 사장이 직접 물수건과 마실 물을 챙겨 왔다.
그리곤 뒤이어서 밑반찬들이 나오고, 숯불이 가운데 둥근 테이블 한가운데 자리를 잡는 사이, 고기까지 한 번에 나왔다.
분명 강주엽보다 먼저 온 손님들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장이 이렇게 빨리 음식을 내 온 건 그만큼 그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빨리 먹고 나가란 거지.’
강주엽도 그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음식이 빨리 나오면 그에게는 더 좋았다.
맛있는 소갈비 더 빨리 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그 맛있는 소갈비를 허겁지겁 빨리 먹지는 않았다.
느긋하게 쌈 싸서 그 맛을 즐기면서 먹으면 그만이었다.
막말로 여기 사장이 그보다 빨리 먹고 나가라고 눈치나 면박을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치이이익!
숯불의 열기가 빠르게 소갈비의 연한 고기부분을 익혀 나갈 때였다.
강주엽이 앉은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주엽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뒤로 돌려 보고는 바로 원위치 시켰다.
“오재수 경감이잖아?”
강주엽이 서장으로 있는 강남경찰서 형사 2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오 경감이 직접 고기를 구우면서, 꼬박꼬박 존대하면서 극도로 잘 챙기고 있는 인물.
근데 뒷모습이 많이 젊어보였다. 옷차림도 마찬가지고.
‘누구지?’
강주엽은 고기를 굽다 말고 귀를 쫑끗 세웠다. 그렇게 온통 신경을 뒤에다 두고 있다 보니 고기가 타는 줄도 몰랐다.
“이런....”
타는 냄새에 그제야 자기 아까운 고기가 탄 걸 알고는, 잽싸게 탄 고기를 옆으로 들어 낸 강주엽.
그때 오 경감이 그와 마주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제대로 된 힌트를 들려주었다.
“....데 그때는 과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서울경찰청에서 압력을 행사해 주시면, 관할 서에서는 수사하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걱정 마.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으니까. 근데 그걸로 그년이 회사를 그만둘까?”
“당연히 아니죠. 그년이 얼마나 독한 년인데. 하지만 회사에서 자르겠다는 데 제까짓 게 어쩔 겁니까?”
“하긴. 그렇긴 하군. 그년 다니는 데가....”
“JYB엔터입니다.”
“아아. 맞다. 거기다 미리 얘기는 잘 해 놔.”
“애들 데리고 한 번 들쑤셔 놓으면 알아서 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 뭐 그런 일까지 내가 일일이 간섭할 건 아니지. 오 경감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자아. 한 잔 받아.”
“넵. 주십시오.”
강주엽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무슨 소린지 다 알아들었다.
왜냐하면 서울경찰청의 수사과장 정재욱과 강남경찰서의 형수 2부 팀장 오재수가, 민간인 불법 사찰을 한 것을, JYB엔터 백준열 대표에게 알려 준 당사자가 바로 자신이니 말이다.
당연히 불법 사찰로 끝낼 자들이 아니란 건 강주엽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조직적으로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쳐 놓으려는, 두 사람의 행태에 강주엽은 치가 떨렸다.
그리고 서둘러 이 사실을 백준열 대표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주엽은 이미 타버린 소갈비는 버리고, 남은 소갈비 중 연한 살 부분만 구워서 먹고, 살점이 붙은 갈비대는 그대로 남긴 채, 밥이나 국수 같이 식사 될 음식은 시키지 않고, 서둘러 카운터로 향했다.
“벌써 가시게요?”
평소보다 한 시간은 더 일찍 나서는 강주엽 총경을 보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돕던 가게 사장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네. 급한 일이 생겨서.”
“아네.”
경찰에게 급한 일이 생기는 거야 당연한 일 아니겠나?
그 말을 듣고 난 가게 사장은, 강주엽이 서둘러 가게를 나가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 * *
소갈비구이 점을 나와서 곧장 강남경찰서로 걸어가면서, 강주엽은 백준열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서장님.
다행히 백준열 대표가 바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저번 그 민간인 사찰 문제로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 되십니까?”
=네. 전화 상 통화는 가능합니다.
“전화로 충분합니다. 저희 서의 오재수 경감이 좀 전에 서울경찰청 정재욱 수사과장을 만났는데....”
강주엽 총경은 방금 전 소갈비구이 점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을 백준열 대표에게 낱낱이 얘기했다.
=그들이 모종의 수작질을 부릴 거란 건, 저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대 놓고 경찰 공권력을 이용할 줄은 몰랐네요.
“하아. 죄송합니다. 그런 놈을 제가 거느리고 있다니....”
=정재욱 경무관은 어려울 테고, 오재수 경감은 통제가 가능하시죠?
“물론입니다. 그래도 제가 관할경찰서장입니다.”
=그럼 일단....
강주엽 총경은 경찰서의 자기 차가 있는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백준열 대표와 심각하게 통화를 했다.
“....다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들어가십시오.”
자기 차 앞에서 백준열 대표와 통화를 막 끝낸 강주엽 총경. 그가 막 차에 타자 동창 중 하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어. 준석아.”
=야. 뭔 전화를 그렇게 오래 해!
“미안. 급한 전화라. 그래서 어디 모셨데?”
=신라대학병원 장례식장. 지금 바로 올 거지?
“그래야지. 지금 출발하면 30분이면 가.”
=알았다. 빨리 와. 고스톱 멤버가 한 명 빈다.
“벌써 판 벌리려고?”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이 고스톱 치는 문화는 여전했다. 실제로 조문객들이 사고 쳐서 경찰서로 잡혀 오는 경우도 많았다.
경찰에서 그러지 말라고 수차례 계몽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국민여론도 상갓집에서 고스톱 치는 사람들이 빠지면 앙코 빠진 찐빵 같다나?
하긴 당장 자기 고교동창들도 이런데 무슨....
=아아. 맞다. 너 경찰이지. 딴 놈 알아봐야겠다.
“판 만 안 키우면 괜찮아. 대신 살살 쳐라.”
=알았어. 넌 임마....천천히 와도 돼.
경찰이라고 졸지에 찬밥 신세가 된 강주엽은 피식 웃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강주엽은 빈소가 아는 곳이라 네비게이션은 켜지 않고, 곧장 차를 몰아서 신라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이동 중 강주엽은 다시 한 번 백준열 대표가 참 대단한 인물이란 생각을 했다.
자기가 한 대략적인 말만 듣고, 어떻게 그런 기지를 발휘할 수 있는 건지 말이다.
“하긴 그러니까 투자의 신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겠지.”
강주엽 총경은 백준열 대표가 단순히 JYB엔터의 대표가 아닌, 자산운용사 블랙머니의 대표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 투자의 신으로 투자자들 사이에 입소문 나 있는 백준열을 말이다.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강주엽이 이렇게까지 백준열의 직원 일에 발 벗고 나서지도 않았을 테지만.
* * *
백준열 대표와 세르게이의 만남을 주선 하고 나서, 다시 자기 아지트로 돌아 온 김훈 대표.
그는 자신의 에이전시 정보 총책을 맡고 있는 직원에게 급히 지시를 내렸다.
“전 HID교관이었던 유지태 중령, 지금 어디 있는지 찾아.”
“HID요? 그 북파 공작 부대 말입니까?”
HID(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는 육군 첩보부대를 말했다. 해군 첩보부대는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 공군 첩보부대는 AISU(Airforce Intelligence Service Unit)라고 했으며, 이들을 통틀어 북파공작 부대라고 칭했다.
“어어. 맞아. 그 설악산 개발 단이라는 회사에 다닌다는, 일명 돼지부대라고도 하지.”
“거기 교관이라....”
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보이는 에이전시 정보 담당을 보며 김훈이 말을 덧붙였다.
“현재 우리와 같은 처리자로 활동하고 있어.”
그 말에 에이전시 정보 담당이 얼굴에 희색을 띠며 말했다.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지.”
처리자 에이전시끼리는 서로 정보를 공유했다. 따라서 에이전시에 속한 처리자들에 대한 정보도 꽤 됐다.
“여기 있네요. 유지태.”
“현재 위치 파악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건 뭐 얼마 걸리고 자실 것도 없어요. 전화 두 세 통이면 알 수 있으니까.”
“10분이면 된다는 거네?”
“네. 뭐 그렇죠. 알아볼까요?”
“그래.”
김훈은 에이전시 정보 담당에게 유지태의 현 위치를 알아내게 하고는 세르게이를 보러 갔다.
이때 세르게이는 사냥 나갈 준비를 벌써 하고 있었다.
그가 필요로 하는 건 다 구해 주라는 지시를 수하에게 내려 놨는데, 아무래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게 문제가 된 모양이었다.
“훈. 여기서는 통역이 필요할 거 같은데?”
세르게이의 말에 김훈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한 사람, 어제부로 백준열 대표 옆으로 파견 보낸 정민지가 아쉽게 느껴졌다.
그녀는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으니 말이다.
“내가 쓸 만한 통역 하나 아는데?”
그때 세르게이가 알아서 김훈의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놨다.
“그 통역 누구고 어디 있는데?”
“그 자는....”
세르게이가 앞서 문식파에서 그의 통역을 맡겼던, 철수에 대해 김훈에게 얘기하며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도 설명했다.
“알았어. 지금 애들 그리로 보내서 그 철수란 자를 데려 오도록 하지.”
어차피 지금은 양태석이 문식파를 끝장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태천파의 마약 관리소 중 한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사람 하나 빼 온다고 문제 될 건 없었다.
특히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면 그걸 두고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렇게 세르게이의 통역 문제를 간단히 해결 한 후, 김훈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세르게이. 지금 바로 움직여 줘야겠어.”
“찾았나 보군?”
세르게이가 눈빛을 번뜩이며 물었다. 그게 김훈의 눈에는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의 눈빛으로 보였다.
“그래. 찾았다. 일단 한 놈이지만....”
“괜찮아.”
그 한 놈을 조지면 다른 놈들도 줄줄이 나올 테니 말이다.
세르게이는 이런 식의 사냥을 즐겨했다. 그걸 알기에 김훈도 믿고 이일을 세르게이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고.
“더 필요한 장비는?”
“아까 보니 쓸 만한 게 여기 있더군?”
“쓸 만한 거?”
“그 드론 말이야.”
“아아. 그거....”
세르게이는 김훈이 회심의 역작이라 부르고 있었던 드론을 이용한 장비들까지 챙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좀 전에 알아 낸 유지태가 지금 어디 있는지를 알려주면서 그를 그곳까지 데려 다 줄 에이전시 소속 처리자 한 명을 붙여 주면서 말했다.
“거기로 통역인 철수란 자를 보낼 테니 알아서 해.”
“그러지.”
아무래도 세르게이가 유지태를 잡고 나면 통역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처리자 사냥꾼으로 세르게이를 보낸 뒤, 김훈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거기서 누군가에게 은밀하게 전화를 걸었다.
* * *
원래는 태천파의 마약 관리소였다. 하지만 최문식이 그곳을 장악하면서, 이제는 문식파의 마약 관리소로 변모했다.
그러나 그 최문식이 죽고, 문식파의 조직원들이 빠르게 양태석 휘하의 조직원들에게 제압당하면서, 사실상 문식파는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그런 사실을 문식파의 하부 조직, 그러니까 마약 관리소 같은 곳에서 알 리가 없었다. 하긴 문식파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그 조직이 사라져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봐. 철수. 거기 짐들도 3층으로 올려.”
“네.”
세르게이 통역이나 하며 편히 살던 철수는, 이곳 마약 관리소에 와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존재가 됐다.
“씨발....”
2층도 아니고 3층까지 짐을 들고 올라가라니. 철수의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벌써 세 시간 째다. 점심 먹고 쉴 틈도 없이 말이다.
이미 다리가 후들거리고 팔에 힘도 다 빠졌다. 잠깐 쉬면서 물도 좀 마셨으면 좋겠는데, 여기 관리소장이란 놈은 그럴 틈을 안줬다.
“으으....”
약간 빈혈 끼까지 있어 어지러웠던 철수. 그가 결국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쉬었다.그러자 그걸 보고 관리소장이 다가와서 말했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그, 그게 너무 힘들어서....”
“뭐 힘들어? 고작 짐 좀 날랐을 뿐인데, 그거 가지고 힘들다니? 너 그냥 편하게 통나무(장기가 적출된 시체를 가리키는 은어)로 만들어 줘?”
통나무란 말에 철수가 움찔했다. 그럴 것이 빚이 많은 그는 언제 통나무가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곳 마약 관리소장도 그걸 알기에 그걸 핑계로 철수를 겁박한 거고.
그 겁박에 제대로 먹힌 듯 철수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걸 보고 관리소장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새끼. 꼴에 죽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네. 빨리 일해.”
그리곤 자신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딱 봐도 시원해 보이는 아이스 콜라를 마시고 남은 피자를 먹으며, 마저 하던 컴퓨터 게임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