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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현 경찰청장을 아버지로 둔 다이아몬드 수저답게, 정재욱은 돈에 크게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은, 그 아버지만큼이나 대단했다.
그러니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아버지와 경쟁 관계였었던, 현 서울경찰청장에게 잘 보이려고 주말에 골프까지 치러 가려는 걸 테고 말이다.
“돈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골프 가방에 넣어서 어디든 보내 줄 테니까.”
“알았어. 근데 여기 자리 있어?”
“지금?”
“어. 반차 냈거든. 이렇게 된 거 골프나 연습해 볼까 해서.”
“자리야 있지. 너야 VIP고객인데.”
정재욱은 내친 김에 골프 연습장에서 프로골프에게 골프 스윙도 점검받았다.
“내려올 때 오른발이 너무 앞으로 나가다 보니 스윙 궤도가 앞으로 쏠리며 생크가 발생하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자세를 잡으시면....어깨 회전이 덜 되어서 골반을 조금 더 이용해서 상체 회전을 잡아주고 임팩트 구간에서, 너무 하체가 위로 들려올라가며 오른발이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오른발은 지그시 누르고, 팔이 먼저 리드하는 느낌으로....그렇죠. 잘하셨습니다.”
프로에게 골프 레슨을 얼마 받지도 않았는데 맞는 타감이나 공의 구질 자체가 변했다.
예전에 필드에서 그렇게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던 고질병이었는데 말이다.
이래서 골프는 레슨을 받고 안 받고의 차이가 크다고 한 건가 보다.
그렇게 정재욱은 레슨 받으며 혼자 연습을 했는데 공이 진짜 타깃 근처에서만 놀았다.
“이러다 주말 서울CC에서 1등 하겠는데?”
정재욱은 기분 좋게 3시간 내리 골프를 치고 샤워를 하고서, 골프채 챙겨들고 골프 연습장을 나섰다.
근데 뭐가 좀 허전했다. 그래서 핸드폰을 살폈더니 걸려 와도 벌써 몇 통은 걸려 왔어야 할 마누라의 전화가, 한통도 걸려 와 있지 않았다.
“뭐지? 설마 민수가 오디션에 합격이라도 한 건가?”
하지만 그 말을 하고 나서 정재욱 본인이 피식 웃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지금 집에 들어가 봐야 저녁도 못 얻어먹을 테고. 아아! 맞다. 그년 어떻게 조질지 오 경감한테 브리핑이나 받아야겠네.”
정재욱은 경찰대에서 있었던 그 수치스런 일에 대한 보복을 준비 중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차은석, 그년을 씹어 죽여도 시원찮았다.
하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나설 수는 없었다. 최연소 경찰청장이 되셔야 할 귀하신 몸에 오물이 튀게 할 순 없으니까.
해서 후배이자 자신의 오른팔이 되고 싶다며, 그 앞에서 죽는 시늉도 해 보이는 그의 따까리 오재수에게 그 일을 대신 맡겼다.
하지만 완벽주의자인 정재욱은 오재수가 과연 그 일을 잘 해 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어제 어떻게 차은석을 매장 시켜 버릴지,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정재욱은 골프채를 자신의 차 트렁크에 실은 뒤, 운전석으로 가면서 오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과장님.
“바쁘지?”
=아뇨. 괜찮습니다.
“어제 내가 말한 거 준비는 됐어?”
=네. 계획은 다 세웠습니다. 그걸 보고서로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야근이라도 하려고?”
=헉! 그걸 어떻게....
“보고서는 뭐 하러 만들어? 지금 너와 내가 그년 조지려는 거 증거라도 만들려고?”
=아니. 과장님이 보고를 하라고 하셔서....
“됐고. 나 지금 그쪽으로 갈 테니까 나와. 저녁 같이 먹으면서 구두로 네 계획을 듣도록 할 테니까.”
=지, 지금 이리로 오신다고요?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 아뇨. 문제는 무슨. 오십시오. 근데 저녁으로 뭐 드시려고....“그거야 네가 지금이라도 예약을 해야지. 참고로 오늘은 뜯고 싶다.”
=알겠습니다. 소갈비 잘하는 데로 예약해 놓겠습니다.
오재수가 딴 건 몰라도 눈치 하나는 빨랐다. 그리고 나름 실행력도 강했고. 문제는 성과인데....
저번 인사 때도 정재욱은 오재수를 밀었다.
한데 실적이 경쟁상대에 비해 너무 저조했다. 그래서 경정 승진 심사에서 탈락한 오재수.
한데 녀석은 정재욱이 자신을 밀어주지 않아서 탈락한 걸로 알고 있었다.
자기 무능한 건 생각지도 않고 말이다.
그때 화가 나서 녀석을 잘라 내 버리려 했는데, 주위를 살펴보면 오재수 만큼 그를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경찰 간부 녀석도 없었다.
그래서 좀 더 지켜보자고 한 것이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정재욱은 오재수와 통화를 끝내자, 그제야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오재수가 근무하는 강남경찰서를 향해 곧장 차를 몰았다.
막 출 퇴근 시간이 시작 된 터라 차가 밀리기 시작했지만, 그대로 최악의 정체 구간을 피해서 강남경찰서에 도착했다.
* * *
정재욱의 아내 고미나는 남편인 정재욱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말해도 믿지 않을 거 같았고, 거기에 더해 잘 된 이 일을 두고 언제든 고춧가루를 뿌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남편이자 정민수의 아빠 되는 정재욱이란 인간은 말이다.
“당분간 말하지 말아야지. 민수야. 너도 아빠한테 JYB엔터 연습생이 된 건 비밀로 해.”
“왜요?”
“네 아빠가 저번에 한 일을 그새 잊었니?”
“아아. 맞다.”
3달 전인가? 그때도 고미라와 정민수는 연예기획사에 오디션을 봤었다.
당연히 떨어졌고 고미라는 남편에게 그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랬더니 정재욱이 그런 딴따라 기획사 따위는 뭐 하러 가냐며 성질은 다 부렸다.
그러다 나온 말이 그 기획사가 조폭이 사장이라며, 거기 합격해서도 자신이 그곳을 가만 안 뒀을 거라고 말했다.
그 말에 고미나 뿐 아니라 그 아들인 정민수 역시 충격을 받았다.
마치 자신이 오디션 합격해도, 아버지가 수틀리면 언제든 그 기획사를 망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소리로 들렸으니 말이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난 듯, 정민수가 비장한 얼굴로 모친인 고미나에게 말했다.
“아빠한테는 절대로 말 안할 거야. 나 JYB엔터에서 진짜 탑 스타가 되고 말거라고.”
“그래. 우리 민수. 넌 할 수 있어. 이 엄마가 널 반드시 탑 스타로 키워 줄 거니까 이 엄마만 믿어. 알았지?”
“응. 엄마.”
“아이유. 우리 착한 아들.”
오늘 오디션에 합격한 아들이 대견했던 고미나는, 벌써 몇 번짼지 모를 정도로 아들 민수를 끌어안았다. 그때 그녀 품에 안긴 정민수가 말했다.
“엄마. 나 배고파.”
“배고파?”
“어어. 근데 엄마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 난다.”
“어머. 그러고 보니 이 엄마도 아침부터 지금까지 뭘 제대로 먹은 게 없네. 우리 민수 뭐 먹고 싶어?”
“난 불고기에 냉면 먹고 싶어.”
“알았어. 여의도로 가자.”
전에 여의도에서 먹은 불고기와 냉면의 맛을, 민수가 아직 기억하고 있은 모양이었다.
“출퇴근 시간 걸리기 전에 어서 가야지.”
JYB엔터를 나와 집 방향으로 일단 가던 중, 고미나는 유턴을 하며 방향을 돌려 여의도 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그녀의 차가 여의도에 접어들었을 때, 막 출퇴근 차량으로 도로가 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을 피해 목적지에 도착한 고미나는, 마침 가게 앞에 비어 있는 자리에 차를 주차시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360시간 초 저온 워터에이징 된 국내산 1+등급의 암퇘지에, 냉면도 자가 제면으로 제공하는 등, 정성까지 가득 넣는다는 이 가게의 불고기는 이미 유명해서 가게 안은, 아직 출퇴근 시간 중임에도 벌써 자리 반이 차 있었다.
고미나는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주문을 했다. 그러자 얼마 안 지나서, 메인 음식들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취향에 따라 고미나는 비빔냉면을, 매운 게 아직 부담스러운 아들 민수는 물냉면을 주문했는데, 그 냉면들 옆으로 불고기가 도마 위에 가득 올려 져서 나왔고, 정갈한 흰색접시에 담긴 무 반찬도 맛있어 보여 구성이 딱 좋았어요.
“와아. 맛있겠다.”
“먹자. 아들.”
그렇게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냉면을 먹기 위해 면에다 가위질을 하고 겨자와 식초를 취향껏 뿌려가며 먹을 준비를 시작했다.
아들의 냉면을 가위 잘라 주면서, 고미나는 물냉면 육수를 숟가락으로 떠 먹어봤는데, 그 맛이 상당히 담백하고 시원한 게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불고기도 따로 집어서 먹어봤는데, 불맛이 제대로 나면서 단짠단짠한 양념까지 쏙 배어 미소가 절로 번졌다. 딱 아들 민수가 좋아할 맛이었다.
불고기는 굳이 냉면과 먹지 않아도, 쫄깃한 식감과 풍족하게 튀어나오는 육즙에 여의도 고기집의 퀄리티를 느낄 수 있었다.
적당히 뿌려진 깨도 고소함과 톡톡 터지는 식감을 더해줘 좋았다.
“많이 먹어. 우리 아들.”
“응. 쩝쩝쩝....마시쪄....”
먼저 아들인 민수가 먹을 수 있게 물냉면부터 챙겨 주고 나서, 고미나는 오이, 무, 계란 등이 고명으로 올라가 있는, 비빔냉면을 비벼서 맛을 봤는데 역시나 맛있었다.
그렇게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난 뒤, 고미나는 민수와 같이 근처 노래방에서 노래 연습을 좀 하다가, 출퇴근 시간이 지나 훌쩍 지나 좀 한산 해진 밤에, 차를 몰아서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 집에 일찍 들어갈 이유가 없었으니까.
* * *
정민지는 처음에 백준열 대표가 왜 자신에게 외국인 여자를 맡겼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그건 곧 잊었다. 알고 보니 외국인 여자는 한국말을 썩 잘 했다. 그걸 알고 나서 둘은 한국말로 서로 대화를 나눴다.
“언니. 여기가 그러니까 연기자들이 대본 연습하는 곳이란 말이지?”
“응. 에이미.”
외국인 여자 이름은 에이미고 그녀보다 몇 살 아래였다.
그래서 언니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를 언니라고 불러댔다.
문제는 정민지도 에이미 같은 여동생이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는 점이었다.
에이미는 어른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귀염 상이었다. 그래서 언니라고 부르며 옆에 달라붙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녀 얼굴을 꼬집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볼 테니, 그러지는 못하고 대신 함박웃음을 지었다.
“언니는 웃을 때 너무 매력적이야.”
“그래? 난 네가 웃을 때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오. 그럼 우리 웃는 걸로 통한 거네?”
“그런 셈인가?”
둘은 잘 통했고 무슨 말을 해도 그게 재미있게 들렸다.
그래서 만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친 자매같이 편안해졌다.
“언니. 나 배고픈 데 여기 떡볶이 잘하는데 알아?”
“너 떡볶이 좋아하니? 안 매워?”
“맵긴. 하나도 안 매워. 저번에 불 떡볶이가 맵다고 해서 먹어 봤는데 그냥 먹을 만 했어.”
“와아. 불 떡볶이는 나도 매워서 콜피스 있어야 먹는데.”
“나도 콜피스 좋아해. 자두맛!”
“나도 자두맛이 제일 좋아.”
그렇게 또 떡볶이 하나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
결국 회사 근처 떡볶이 잘하는 곳으로 먹으러 갔다.
그때 백준열 대표에게서 문자가 날아왔고, 그걸 본 에이미가 그 문자를 정민지에게 보여줬다.
그리곤 빠르게 답장을 보낸 뒤 정민지에게 말했다.
“언니. 생각이 바뀌었어.”
“뭐?”
“이 근처에서 제일 맛있는 떡볶이 집이 아니라, 서울에서 제일 맛있고 비싼 떡볶이 집으로 가.”
“뭐?”
에이미의 말에 기가 찬 정민지. 그런 그녀에게 에이미가 일리 있는 궤변을 늘어놨다.
“준열. 엄청 부자야. 그러니까 비싼 거 먹어도 돼. 언니 내일 영수증만 챙겨 가면 그 돈 다 돌려 봤을 수 있는 거잖아?”
“그렇기는 해. 하지만 직장 상사가 비싼 거 먹으랬다고, 그대로 먹었다간 찍힐지도 모른다고.”
정민지는 에이미에게 그 말을 해 놓고, 그녀가 자기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 지가 우려됐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할 필요가 없었다.
“걱정 마. 준열은 그런 쪼잔 한 남자 아니니까. 나한테 건물도 줬어.”
“뭐, 뭐라고?”
아까 백준열과 한 빠구리 하고난 뒤 에이미가 물었었다.
신림동 고시촌의 원룸 건물에서는 안 살 거냐고.
그러자 백준열은 거긴 투자로 사 둔 곳이라며, 시세가 오르면 바로 팔 거라고 했다.
그 말에 놀란 에이미가 백준열에게 거기 팔지 말라고 하면서, 팔 거면 자기 달라고 했다.
그러자 백준열이 그랬다. 에이미가 자기 여자가 되어 준다면, 그 원룸 건물을 에이미에게 주겠다고.
에이미는 그 말에 바로 대답했다.
에이미는 이제부터 백준열의 여자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백준열이 내일 당장, 그 원룸 건물의 명의를 그녀 앞으로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자세한 내막까지 에이미는 일일이 정민지에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백준열이 그녀에게 오늘 건물 주기로 한 것은 어째든 사실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떡볶이를 검색해 봤고, 거기가 그랜드 하얏트 호텔임을 알아내서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우와. 무슨 떡볶이가 백만 원이 넘어?”
“그러게. 그 값이야 하겠지. 뭐.”
그렇게 호텔에 도착한 두 사람은 퓨전 한식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이때까지 정민지는 몰랐다. 자기 카드 한도가 얼마인지를 말이다.
* * *
강남경찰서 강주엽 총경. 그는 오늘 고등학교 동창회가 있어서 칼 퇴근을 했다. 당연히 옷도 정복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었고.
“뭐? 태현이 아버지가 돌아가셔?”
그런데 오늘 동창회 멤버 아버님이 별세하셨단다. 그래서 동창회 모음을 상갓집에서 하게 생겼다. 아직 빈소가 정해지지 않았다며 다들 저녁 먹고 대기타고 있으란다.
해서 강주엽은 오늘 오랜 만에 소갈비나 먹으러 가기로 했다.
저번 주부터 먹고 싶었는데 거기 부하들 데리고 갔다가는, 지갑이 거덜 날 테니 못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슨 소갈비를 혼자 먹으러 가냐고 하겠지만, 강주엽 총경이니 가능했다.
왜냐하면 그가 잘 아는 단골 소갈비구이 점에 갈 거니 말이다.
강남경찰서에서 소갈비하면 다들 거기를 떠올릴 것이다.
바로 그곳이 지금 강주엽이 가는 소갈비구이 점이었다.
강주엽은 차는 그냥 경찰서 주차장에 두고서, 두 발로 걸어서 그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