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66화 (16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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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내 아버지 되시는 백승렬 회장님이시다.

워낙 바쁘신 분이시라, 그에게 전화를 걸어도 열이면 열, 다 비서실장이 받았다.

‘백승렬 회장의 비서실장 오규동이라....’

오규동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큰형 백준경의 사람이었다. 아마 이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가만....’

오규동은 얍삽하고 교활한 작자였다. 신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면 백준경에게 넘어갔다고 해서 아직까지는 확실한 그의 사람이라 보기 어려웠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오규동 역시 조진호 전무가 포섭한 게 분명했다.

‘만약 백준경의 뒷배라고 볼 수 있는 조진호 전무가 없어진다면....’

오규동의 백준경에 대한 신의도 금이 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규동은 무조건 내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유사시 백승렬 회장에게 무슨 문제가 생겨도, 삼명그룹 본사를 내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오규동을 포섭할 생각까지 하며 생각의 폭을 넓혀 갈 때였다.

=무슨 일이냐?

당연히 오규동이 받아야 할 전화를 백승렬 회장이 직접 받았다.

“우와아. 진짜 아버지가 받으시네요?”

=그러면 내 전화를 내가 받지. 무슨 일이냐니까?

시간을 금처럼 여기시는 양반이시다.

여기서 더 뜸 들였다가는 바로 전화를 끊고도 남을 분이기에, 나는 바로 내가 그에게 전화 건 용건을 말했다.

“아버지. 황충식이가 저를 죽이려 해요.”

=뭐? 누가 널 죽여?

“황충식이요. 국회의원 황충식, 법사위원장이요.”

=허어. 그 인간이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로구나. 감히 누굴....알았다. 그게 다냐?

“네.”

띠띠띠띠띠....

내가 전화 건 용건을 다 듣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 버리는 백승렬 회장.

“와아. 진짜 칼 같으신 분이시네.”

하긴 백승렬 회장의 1초가 보통 사람의 1초랑 같을 수야 없겠지.

나는 일단 황충식이 날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백 회장에게 알렸다.

황충식 같은 거물 정치인은, 그에 걸 맞는 분에게 맡기는 게 맞았다.

아마 미전실에서 조사하면, 황충식이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황충식이 나를 노리고 준비한 패는, 내가 처리하면 되지만 내가 직접 황충식에게 손을 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백승렬 회장은 달랐다.

감히 자기 아들을 노린 황충식이다.

그와 그를 도운 자들에게 백승렬 회장이 철퇴를 휘둘러도, 누구도 그를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어째든 명분은 백승렬 회장에게 있을 테니까.

그렇게 황충식 제거는 백승렬 회장에게 떠넘기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내 방, 즉 대표실로 향했다.

* * *

직무교육이랍시고 경호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거 같은, 쓸데없는 얘기만 강사로부터 들으며 정민지는 몰래 하품을 했다. 그때 강사의 핸드폰에 울렸다.

“잠깐만요.”

강사는 그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정민지씨를요? 알겠습니다. 지그 즉시 올려 보내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강사가 바로 정민지에게 말했다.

“정민지 요원. 지금 즉시 대표실로 가세요.”

“대표실이요?”

“네. 빨리 가보세요.”

“네.”

정민지는 뭔 일인지 모르지만, JYB엔터의 수장인 백준열 대표의 방인 대표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정민지가 어제 봤다고 반갑게 김 비서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하지만 김 비서는 어제와 달리 정민지를 대하는 태도부터가 싹 바뀌어 있었다.

“네. 대표실에 손님이 있어요. 그 손님 모시고 회사 구경 좀 시켜 주세요.”

“제가요?”

직무교육 중이지만 정민지도 아직 JYB엔터 본사를 다 아는 건 아니었다.

따라서 그녀보다는 더 고참인 경호 요원이 그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게 그녀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표님 지시에요.”

“네. 알겠습니다.”

백준열 대표의 지시라면 얘기가 다르다. 정민지는 김 비서로부터 임무를 부여받고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

거기서 정민지는 외국인 여자를 발견했다. 당연히 그 외국인 여자에게 정민지는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저는 이 회사 대표님의 경호팀원 정민지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외국인 여자도 일단 자기가 누군지 짧게 영어로 밝혔다.

“에이미에요.”

“반갑습니다. 대표님께서 저보고 에이미씨에게 회사 구경을 시켜 주라고 하셨거든요. 일단 같이 나가실까요?”

“그래요.”

에이미는 정민지 말을 잘 들었다.

그래서 정민지는 에이미가 착한 외국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에이미가 순순히 정민지의 말을 들은 것은, 그녀가 에이미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한국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에이미가 동성애자란 건 아니다. 같은 여자지만 한국적인 미를 갖춘 정민지 같은 미인과 꼭 얘기를 나눠 보고 싶었던 에이미.

그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걸 잡지 못할 정도로 에이미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렇게 에이미는 정민지의 안내를 받으며 JYB엔터 본사 구경에 나섰다.

* * *

대표실로 돌아오니 에이미가 보이지 않았다.

김 비서 말에 따르면 정민지가 회사 구경 시켜 주러, 에이미를 데리고 나갔다고 했다.

나는 김 비서에게 내가 처리해야 할 서류들 가져 오라고 했다.

오늘부로 자잘한 일들은 전부 부대표 전결로 박인호에게 떠 넘겼는데도, 대표인 내가 처리해야 할 서류가 제법 됐다.

“빨리 하자.”

뭐 그래봐야 평소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양. 나는 30분 동안 집중해서 그 서류들을 처리하고 책상에서 일어섰다.

“김 비서 퇴근하자.”

내가 이렇게 퇴근을 서두르는 이유는....

맞다. 손진아 보러가려고 이러는 거다.

아직까지 손진아에게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 말은 내가 오늘 그녀 집에 가도 된다는 얘기고, 이왕 갈 거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서 손진아와 손도 잡아보고, 뽀뽀도 좀 하고....

“으흐흐흐흐....”

손진아와 한 집에서 같이 있을 생각만으로도, 입에서 음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도 엄연히 내 여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뜨겁게 사랑해 줘야지. 그 생각에 벌써 아랫도리로 피가 쏠렸다.

‘안 돼!’

지금 내 자지를 세워서 뭘 어쩌려고. 나는 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발기를 시작한 내 자지를 달랬다.

“휴우....”

그렇게 겨우 내 자지를 진정 시킨 뒤, 나는 여느 때처럼 김 비서를 먼저 퇴근 시켰다.

그리고 퇴근하기 전에 에이미에게 보낼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작성했다.

[갑자기 급한 미팅이 생겨서 너랑 저녁 못 먹을 거 같다. 대신 같이 있는 정민지 요원에게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해. 정민지 요원. 에이미와 같이 맛있는 거 사먹어요. Ps. 영수증 챙겨 와야 정산 받을 수 있습니다.]

몇 번 읽어보고 이대로 보내면 되겠다 싶어, 그대로 문자 메시지를 에이미에게 보냈다.

그 다음 퇴근길에 올랐는데 막, 차에 탈 때 에이미로부터 답 메시지가 날아왔다.

[바쁘다니 뭐 어쩔 수 없지. 정민지 요원이랑 떡볶이 먹으러 벌써 회사 나왔어. 내일 봐.]

이제부터 매일 JYB엔터로 출근해야 하는 에이미였다. 새로운 걸 그룹 멤버로 거듭나려면 그녀가 훈련 받아야 할 게 많았으니까.

“뭐 에이미라면 잘 해 내겠지.”

QH엔터테인먼트 같은 순, 깡패 소굴 같은 곳에서도 해낸 일은 JYB엔터에서 못할 리 없었다.

“어디로 모실 깝쇼?”

그때 차안 내 옆의 문대식이 내게 물어왔다.

“삼성동에 삼명 힐라스트로 가.”

특이하게 손진아는 강남 삼성동의 주상복합아파트에 살았다.

그것도 삼명건설에서 지은 아파트 브랜드에 말이다. 평수는 널찍하게 잘 빠진 98평에 현 시가는 대략 40억쯤 됐다.

나의 이른 퇴근에 문대식도 그렇고, 경호 팀원들의 얼굴이 많이 밝았다.

하긴 경호일 하면서 이런 날도 있어야 일 할 맛도 나는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막상 손진아 보러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었다.

원래라면 출퇴근 시간이라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 말이다.

* * *

서울경찰청 수사과장 정재욱은 시간에 맞춰서 주차장으로 나갔다.

거기서 민병도 공안차장의 차와 박대순 서울경찰청장의 차, 그 두 대에 고위 간부 4명이 나눠 타고 오리탕 집으로 향했다.

짬밥에서 밀리는 정재욱은 당연히 박대순 청장이 탄 차에 타지 못하고, 민병도 공안차장의 차에 타야했다.

“자. 한 잔 받아.”

하지만 오리탕 집에서 정재욱은 박대순 청장으로부터 제일 먼저 술잔을 받았다.

“주말 서울CC에서 잘해 보자고.”

그 말을 하면서 정재욱에게 대 놓고 윙크를 날리는 박대순 청장.

그걸 보자 속이 느끼했지만 정재욱은 잘 참아내고는, 박대순 청장이 따라 준 술을 마셨다.

“근데 말이야. 청와대 정무 수석님이 자네 외삼촌 친구라고 하지 않았나?”

“네. 최재훈 수석님께서 어릴 때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지요.”

“그래. 으음. 내 듣기로 그 최 수석이 비서실장님하고 친하다던데?”

“글쎄요. 그것까지는 저도 잘....”

그때였다. 누가 그의 옆구리를 쑤셨다. 돌아보니 민병도 공안차장이었다.

그가 재빨리 정재욱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뭐하는 거야? 빨리 네 외삼촌이든, 최 수석이든 전화해서 물어 봐야지?”

그렇게 민병도 공안차장에게 등 떠밀려서, 정재욱은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어서 최 수석에게 전화 좀 해 달라고 했다.

다행히 외삼촌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뭐 청탁을 부탁한 것도 아니고, 그냥 궁금한 거 물어 보는 거뿐이니 뿐이니 말이다.

그렇게 점심 식사가 끝나갈 무렵 외삼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네. 아아. 그렇구나. 잘 알겠습니다. 삼촌.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받은 뒤, 정재욱이 박대순 청장이 궁금해 하던 걸 막 말해 주려 할 때였다.

“하하하하. 그런 일이 있었군. 자네가 비서실장님과 아는 사이였다니. 그렇다면 이번 주말 서울CC에 자네도 끼어야겠어.”

“아이고.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 영광이지요.”

박대순 청장이 오늘 대동하고 온 안보수사과장을 열심히 띄워 주고 있었다.

“저 청장님.”

그때 정재욱이 끼어들자, 박대순 청장이 대 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럴 거 같았으면 애초 자기에게 묻지나 말 것이지.

“뭔가?”

“최재훈 수석님께 저희 외삼촌께서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최 수석님과 비서실장님은 대학동문으로 실제로 친하다고 하십니다.”

“오오! 그래?”

갑자기 찌푸리고 있던 얼굴이 풀리며 박대순 청장이 정재욱을 챙겼다.

그걸 보고 좀 전까지 박대순 청장에게 예쁨을 받았던, 안보수사과장이 도끼눈으로 정재욱을 흘겼다.

나이야 안보수사과장이 더 많았지만, 어차피 같은 경무관이었다.

정재욱이 그에게 꿇릴 건 하나도 없었다.

“정 과장. 주말에 서울CC에서 자네가 잘 좀 해줘야겠어. 안보수과장도 마찬가지고. 내가 경찰청장이 되면 자네 두 사람의 공은 잊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점심 식사가 끝나고 일어날 때 쯤, 박대순 청장이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를 밝혔다.

정재욱과 안보수사과장 모두 이번 기회에 서울청의 차장 자리와, 경찰청의 국장 자리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박대순 청장의 그 말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비서실장님은 제가 잘 아니까요.”

“저도 정무 수석님을 통해서 비서실장님께 미리 언질을 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내 두 사람만 믿도록 하지. 하하하하.”

그래서 올 때와 달리 정재욱은 점심 먹고 서울경찰청으로 갈 때는 박대순 청장의 차를 탔다.

그 때문에 점심 먹고 복귀할 때 잠깐 들러서 찾으려던 골프채는 찾지 못했다.

결국 경찰청에 들어가서 정재욱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반차를 낼 수밖에 없었다.

* * *

정재욱은 자기 차를 몰고 자신의 골프채를 맡겨 둔 골프 연습장으로 향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정 경무관님 아니십니까?”

경무관은 지방청의 차장, 서울청의 부장 급으로 경찰조직 수뇌부의 위치에 있는 자리였다.

그 위가 치안감인데 정재욱이 올해나 내년에, 그 자리에 오른다면 최연소 기록을 갈아 치울 수 있었다.

“됐고. 내 골프채나 가져 와.”

이곳 골프 연습장의 사장은 정재욱의 고교 동창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가 많이 챙겨 주는 곳이기도 했고, 대신 종종 재정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알았어. 근데 골프채는 왜? 주말에 필드라도 나가?”

“어어. 서울CC.”

“뭐? 서울CC라고? 주말에 거긴 아무나 못 가는 곳인데?”

“안 그래도 겨우 거기 끼었다. 이번에 우리 청장이 경찰청장 되려고 혈안이 됐거든.”

“아아. 접대 골프! 높으신 분들 뒤치다꺼리해야 할 모양이네?”

“뭐 그렇지.”

“필요한 건 없고?”

그러면서 이곳 골프 연습장 사장인 고교 동창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보였다.

돈 필요하면 얘기하란 거다. 하지만 정재욱을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번 자리는 돈으로 해결 될 자리가 아냐. 그래서 더 귀찮지만.”

“그래? 뭐 그럼 어쩔 수 없고. 야! VIP고객실에 가면 타이틀리스트 캐디백 있어. 그거 가져 와.”

“네. 사장님.”

직원에게 정재욱의 골프채 가방을 가져 오게 시킨 뒤, 고교 동창이 은근한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그럼 너도 이번에 치안감 되는 거야?”

“바로야 되겠어? 우리 청장님 경찰청장 되고 나면 기회 봐서 승진시켜 주시겠지.”

“치안감 되면 지방으로 보내는 건 아니겠지?”

“그것도 나쁘진 않아. 지방에서 서울경찰청장으로 금의환향하는 경우도 많거든. 물론 새로 대통령이 되실 분의 눈에 띠어야겠지만.”

“아무튼 나는 너만 믿는다.”

“걱정 마.”

고교 동창은 이번에 골프 연습장이 아닌 골프장을 인수할 예정이었다.

그러려면 정재욱의 도움이 당연히 필요했고, 또 골프장을 유지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골프장이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도 필요했지만, 경찰 쪽에 고위직 인사를 끼고 있는 것과 아닌 것에 차이도 컸다.

여러모로 정재욱은 고교동창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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