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60화 (1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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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오디션의 시간은 다가오고 심사는 해야 했기에, 일단 유미영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제가 부탁드린 대로 심사 부탁드릴게요.”

“그거야 당연하죠. 자자. 우리 유 대리가 시킨 대로 다들 잘들 합시다.”

역시나 살아보겠다고 K씨가 진땀을 흘리며 주위 심사위원들에게 호응을 바랐는데, 어째 심사위원들은 그와 눈 마주치는 걸 피했다.

아무래도 폭탄을 지고 있는 K씨를 회피하는 모양새들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이렇게까지 K씨를 배척하는 건, 다 대표인 백준열 때문이었다.

요즘 JYB엔터에서는 백준열이 살생부(殺生簿)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나 있었다.

엊그제 잘린 배 상무도 살생부 중 살부(殺簿)에 그 이름이 올라 있었다가 단칼에 잘렸고, 그 배 상무를 따랐던 직원들도, 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날 다들 짐 싸서 회사를 나간 상황.

그렇다보니 안 그래도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한데, 오늘 유미영 대리가 배 상무에 이어서 고 전무를 언급했다.

고 전무가 잘릴 거라고 말이다.

그것이 백준열 대표가 유미영 대리를 이용해서 이번에는 고 전무와, 그를 따르는 직원들을 쳐내려고 이러는 것으로 밖에, 심사위원들의 눈에는 비쳐지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로서는 최대한 고 전무와 자신이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을, 백준열 대표의 끄나풀인 유미영 대리 앞에서 다들 증명해야 했다.

그게 바로 고 전무의 조카인 K씨를 생 까는 거로 표출 된 것이다.

“자자. 연습 생 선발 오디션을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유미영 대리가 심사위원들 준비가 다 됐다고, 이번 오디션의 감독인 표 과장에게 사인을 넣자 표 과장이 외쳤다.

그렇게 오디션은 시작 되었고, 심사위원들 앞에 곧 정민수라는 아이가 등장했다.

그러자 심사위원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으며 그 아이를 주목했다.

한데 딱 보는 순간 심사위원들은 알 수 있었다. 그 아이가 아이돌, 아니 연예인이 될 재목이 아니란 걸 말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아이에게 낮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대부분 90점 이상의 점수를 줬고, 그 아이는 무난히 1차 오디션을 통과했다.

그리고 이어진 오디션에서도 정민수는 마찬 가지로 높은 점수로, 결국 최종 오디션까지 진출했다.

“아아....”

하지만 그 최종 오디션에서 정민수가 뼈아픈 실수를 저질렀다.

이건 도저히 합격 시킬 수 없는 상황에 심사위원들이 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심사위원들 중 그 누구도, 고민하는 기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들에게 정민수는 나와서 하품만하고 들어가도, 90점 이상의 고득점을 줬을 테니 말이다.

결국 그렇게 해서 정민수는 최종 오디션도 통과하고, JYB엔터의 연습 생으로 선발이 됐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JYB엔터에서는, 저희 민수의 재능을 알아봐 주시는 군요.”

정민수의 합격에 그 모친인 고미나가 아이보다 더 좋아하고 감격해 했다.

하지만 같이 합격한 3명의 연습 생들이 바로 다른 연습 생들을 만나러 갈 때, 정민수만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어야 했다.

“왜 저희 애만 여기 남긴 거죠?”

고미나가 걱정 반 불안 반 인 얼굴로 JYB엔터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관계자가 자기도 모른다며, 여기서 있으면 누가 올 테니 계속 기다리라고만 했다.

고미나와 정민수는 둘 다 초조해 하며 무작정 누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는데, 그때 젊은 여자 한 명이 그들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JYB엔터 특수 1부문의 이상미 대리라고 합니다.”

“그, 그런데요?”

“정민수 연습 생 이죠?”

그 이상미란 대리가 정민수를 보고 묻자, 정민수 대신 그 옆의 고미나가 대신 대답했다.

“맞아요. 애가 정민수고 저는 민수 엄마 됩니다.”

“아아. 안녕하세요. 민수 어머니. 민수를 저희 특수 1부문으로 데려가기 위해 왔습니다.”

“네? 어, 어디로 제 아들을 데리고 간다고요?”

“특수 1부문이요. 저희 회사에서 새로 신설 된 부서인데, 뜰 만한 연예인을 집중 케어해서 최고 스타로 만들어 내는 게, 저희 부서가 하는 일입니다.”

“뜰 만한 연예인이요?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 준다고요?”

이상미 대리의 말을 듣고 고미나가 놀라서 동그랗게 두 눈을 떴다.

이건 연습생이 아니라 당장 데뷔 시켜 연예인으로 만들어 줄 기세이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고미나가 원하는 바였다. 자기 아들 같이 잘 생기고, 재능 있는 아이가 연습 생이 웬 말이란 말인가?

안 그래도 그 점이 불만이었는데, 이상미 대리가 그 점을 관통해서 시원스럽게 얘기해 주니 고미나는 그 동안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거 같았다.

“가요. 당장 그 특수 1부문이란 곳으로 말이에요.”

“네. 이쪽으로....”

더 말하고 자실 것도 없었다. 고미나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아들 정민수를 데리고 이상미 대리를 따라서 JYB엔터테인먼트 특수 1부문으로 향했다.

* * *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안 그래도 요즘 발 없는 말은 초고속 날개까지 달았는데, 하물며 한 건물 안에서 소문이야 말해 뭘 하겠는가?

JYB엔터 음반사업 본부장인 고종대 전무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 노무 새끼는 왜 시키지도 않은 소릴 해가지고....”

애초 조카를 자신의 회사에 취직시키는 게 아니었다. 형님의 간곡한 부탁과 녀석의 애원에 눈 딱 감고 취직을 시켜줬다.

그랬건만 녀석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이야.

안 그래도 간당간당하던 목이었다.

백준열 그 인간은 피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다. 회사 설립 때는 쭉 함께 가자고 하더니....

그제 배 상무 잘릴 때 사실 간담이 서늘했었다.

하지만 며칠이나 됐다고, 자기까지 이런 식으로 토사구팽 시킬 줄이야.

“난 배 상무와는 달라.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날 잘라?”

하지만 자신의 비위는 하늘이 알고 자신이 알았다. 그렇지만 그의 이기적인 본성이 그걸 쉬이 인정하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날 건드리면 나도 가만 못 있지.”

연예계는 평판이 중요했다. 그 점에서 JYB엔터는 인지도 뿐 아니라 그 평판을 좋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평판에 찬물, 아니 똥물을 끼얹을 생각을 고 전무는 하고 있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상대가 누군지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입게 될 피해에 너무 매몰 되어 있다 보니, 자신의 회사 대표가 개새끼 백준열이란 걸 잠깐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백준열이 인천에서 볼일을 다 보고 회사로 복귀했다.

그의 옆에는 늘 그렇듯 경호팀장인 문대식이 붙어 있었고, 뒤로 경호 팀원 둘이 가방 두 개를 들고, 그 둘을 그림자처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백준열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표실이 있는 8층으로 바로 올라갔다. 그는 비서실을 지나쳐서 곧장 대표실로 향했는데 그때 문대식이 물었다.

“가방은 따로 보관할까요?”

“아니. 가지고 들어 와.”

“네.”

그렇게 백준열이 대표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비서실의 김 비서가 대표의 오후 일정표를 챙겨들고 막 자리에서 일어날 때, 가방을 들고 대표실 안에 들어갔던 경호 팀원들이 막 대표실을 나오며 김 비서에게 말했다.

“10분 뒤에 들어오시랍니다.”

그 말을 듣고 김 비서는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 사이 문대식을 비롯한 경호 팀원들이 비서실을 빠져 나갔다.

그 10분 동안 딱히 할 일이 없었던 김 비서. 그녀는 곧장 탕비실로 가서, 거기 청소 및 비품 정리를 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자 책상의 서류를 다시 챙겨 든 김 비서가 대표실 앞에 섰다.

똑똑똑!

평소처럼 세 번의 노크를 한 후 대표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선 김 비서.

뭘 봤는지 모르지만 살짝 놀란 얼굴의 그녀가, 한 동안 눈앞에 멍하니 서 있다가, 백준열의 목소리에 움찔하며 대표실 안으로 서둘러 걸어 들어갔다.

* * *

그래도 회사 안에 내 방이라고 들어오자, 편안함과 안락함이 느껴졌다.

그때 문대식과 같이 가방 두 개를 들고, 대표실로 들어 온 경호 팀원을 보고 내가 말했다.

“그 가방들은 응접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다들 나가 봐요.”

그 말에 문대식이 날 쳐다봤다. 그에게 따로 시킬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도 나가보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우르르 대표실을 나섰는데 그때 김 비서가 생각났다.

저들이 나가자마자 바로 김 비서가 들어 올 텐데, 나는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해서 대표실을 나가려는 경호 팀원의 발걸음을 잠깐 붙잡았다.

“잠깐! 나갈 때 김 비서에게 10분 뒤에 들어오라고 전해 줘요.”

“네. 대표님.”

그렇게 경호팀원들을 다 내보낸 뒤, 나는 응접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두 개의 가방 중 하나를 열었다.

“와아. 이게 대체 얼마야?”

이미 견신 시스템은 두 개의 가방에 뭐가 얼마가 들어 있는지, 다 데이터화해서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걸 실제로 보는 것과 수치로 아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특히 현금의 경우는 바로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니까. 지금 내게는 그것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견신 시스템의 두 개 미션을 한 번에 수행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다.

가방 속에 현금은 전부 100달러짜리들이었다.

달러야 내 은행 계좌에 넣을 때 ,원화로 바꾸면 되니까 현금이나 마찬가지다.

“여기 현금을 내 계좌에 넣어서 이제동의 아들 정철희 앞으로 10억을, 나미혜의 부모님한테 10억을 보내는 건 가능하지?”

내가 견신 시스템에게 물었다. 그러자 견신 시스템이 바로 대답을 했다.

-원혼 최문식의 돈을 잘 쓰는 행위임으로 물론 가능합니다. 더불어 최문식의 미션 또한 같이 완수할 있어 일타삼피의 효과가 기대 됩니다.

“일타삼피?”

견신 시스템의 두 가지 미션을 끝내려다 세 가지 미션을 한꺼번에 완수하게 생겼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였다.

-원혼 허정호의 금괴도 처분해 현금화 한 후, 그 돈을 이제동과 나미혜의 원혼을 달래는 데 쓴다면, 일타사피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견신 시스템이 처음으로 조언다운 조언을 해왔다. 하지만 허정호의 금괴를 어느 세월에 현금화 하겠나?

아무리 빨라도 하루는 걸릴 텐데 말이다. 해서 나는 일타삼피에 만족하기로 하고 두 개의 가방 속에서, 현금만 응접 테이블 위에 쌓고 나머지 금괴와 달러, 그리고 무기명 채권과 차명의 부동산 계약서들은 인벤토리 안에서 개톤백을 꺼내서 그 안에 넣었다.

그 뒤 개톤백을 다시 인벤토리 안에 넣고 나자, 텅 빈 가방 두 개만 남았다.

그 두 개의 가방은 한쪽에 치워 놓고 나는 내 책상 쪽으로 움직였다.

“여기 전망 좋네.”

만날 출근하면 책상에 앉아 일하기 바빴지 그 책상 뒤의 통창 너머, 진짜 사람 사는 세상은 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살아 온 백준열.

나는 팔짱을 낀 체 창문 너머 서울 도심의 오후 정경을 쳐다보며 잠시 멍을 때렸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김 비서가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근데 뭘 봤기에 그런지 바로 안으로 안 들어오고 문 앞에 서 있는 김 비서.

“뭐해? 안 들어오고?”

그래서 내가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하자, 그제야 빠른 걸음으로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김 비서.

나도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몸을 돌려서 책상 쪽으로 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척!

그러자 내 앞의 김 비서가 내가 앉은 책상 위에 파일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오후 일정표입니다.”

오늘 오후 일정이라야 박인호 부대표와 인수인계 확인절차를 빼고 나면 별거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굳이 일정표까지 줄 필요가 있나 싶어 파일을 열어보니, 어제 내가 처리하지 못한 일들과 대표의 결정이 필요한 긴급을 요하는 일들이 파일에 쭉 나열 되어 있었다.

“휴우....”

그걸 처리하려면 박인호 부대표와 인수인계 확인을 끝내고도, 퇴근시간까지 빡 세게 일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니 내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올 밖에.

“근데 저기 돈은 뭔가요?”

응접 테이블에 제법 많이 쌓여 있는 100달러 지폐를 보고 김 비서가 내게 물어왔다.

“어. 안 그래도 부탁 좀 하려 했는데. 저것들 은행가서 내 계좌에 좀 넣어 줘.”

응접 테이블에 쌓으면서 대충 세어 봤을 때 100달러 다발이 한 300개 쯤 됐다.

즉 300만 달러 정도 되는 돈이었다. 우리 돈으로 30억이 좀 넘는 돈. 그 돈을 보고도 무덤덤한 김 비서.

내가 이런 일을 하도 많이 시켜서 그런지 수 십 억의 돈에도 별 감흥이 없는 모양이었다.

“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는 내가 치워 둔 빈 가방을 자기가 알아서 챙겨, 응접 테이블 위의 돈을 전부 그 가방에 담더니 그걸 들고 대표실을 나갔다. 그 뒤 채 5분도 되지 않아 박인호 부대표가 날 찾아왔고, 나는 어제처럼 그를 대표 자리에 앉힌 뒤 인수인계 확인 절차에 바로 들어갔다.

* * *

한 시간쯤 박인호 부대표가 일 처리하는 걸 지켜보던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완벽해.’

문일십지(聞一十知)!

말이야 쉽지,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만 알아들어도 다행인 마당에, 박인호 부대표는 내가 알려 준 것을 이미 다 파악하고 제대로 써먹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박인호 부대표가 내게 배운 것을 제대로 응용해 가며 써먹고 있단 거다.

아무리 똑똑해도 그걸 써먹지 못하면 다 헛것이니까.

학생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실력이 쑥쑥 늘고, 스승은 문일십지 하는 제자를 만날 때,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게 된다더니, 박인호 부대표에게 대표 일을 인수인계 하다 보니 그걸 다 깨닫게 됐다.

누가 그랬던가? 인생은 만남이라고 말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는,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만남은 참 중요하다.

그렇게 봤을 때 박인호 부대표와 나의 만남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 중요한 순간이라 할만 했다.

“좋아요.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박인호 부대표는 내가 그 말을 하기 전에, 이미 확신에 찬 상태로 서류에 결재를 하고 있었다. 그런 시원시원한 그의 일처리가 나로서는 흡족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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