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59화 (15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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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차은석은 유미영이 캐스팅 사업부의 김 부장에게 무슨 소릴 했는지 그게 궁금했다.

“자. 받아.”

“잘 마실게요.”

유미영이 자신이 건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들며 행복해 할 때 차은석이 물었다.

“좀 전에 니네 부장한테 뭐라고 한 거니?”

그 물음에 유미영은 싱긋 웃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신 뒤 말했다.

“그냥 언니가 저보고 한 말을 그대로 했죠.”

“내가 한 말?”

“네. 어제 저보고 그러셨잖아요. ‘내 직급이 상무’라고.”

“뭐? 너 설마?”

“맞아요. 저기 보이는 여성분이 새로 발령 받으신 특수 1부문장이시라고. 참고로 직급은 상무시고.”

상무면 임원이다. 캐스팅 사업부의 부장이 비빌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걸 알기에 김 부장도 바쁜 와중에 유미영을 빼 준 거고.

“언니 잘 둬서 이렇게 쉴 수도 있고 좋네요.”

“그래도 다 마시면 가서 일해.”

“호호호호. 언니도 임원이긴 한가 봐요. 직원들 노는 꼴을 못 보는 걸 보면?”

“그런가? 하긴. 나도 직책에 연연하지 않으려 하지만 조직 사회란 게 어쩔 수 없나 봐.”

“근데 무슨 일이에요? 어제 본 제가 보고 싶어서 아침부터 오신 건 아닐테고.”

눈치 빠른 유미영. 애초 그녀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온 차은석이었다. 그러니 뭘 숨기고 에둘러 말하고 자실 것도 없었다.

“내가 필요에 의해서 한 아이를 연습생으로 뽑아야겠거든.”

“네?”

“너희 캐스팅 사업부에 부담 주는 일은 아니야. 너희는 내가 말한 그 아이를 연습생으로 뽑아주기만 하면 돼. 그럼 특수 1부문에서 그 아이를 데리고 갈 테니까. 어때? 문제 될 거 없지?”

“특수 1부문에서 데려 간다면 못 뽑을 건 없죠. 보셨다시피 저희 부장님은 임원 분들이 콩을 보고 팥이라고 해도 그게 팥이 맞다고 할 사람이니까요. 근데 그 일을 두고 다른 부서나 임원들이 태클이라도 걸면 어쩌시려고요?”

어제 술을 마시며 의기투합한 유미영. 그녀는 진심으로 차은석을 걱정해 주고 있었다.

“걱정 마. 내가 그 정도 대비도 안 해두고 이렇게 움직일까?”

“대비가 되어 있다고요?”

“어. 대표님께 이미 허락을 받았어.”

“헉! 그렇다면 대표님께서도 아시는 일이란 거잖아요? 그럼 신경 쓸 거 없어요. 언니 하고 싶은 대로 밀어 붙이세요.”

JYB엔터에서 백준열 대표는 신이었다. 신이 허락 했다는 데 감히 누가 차은석이 하려는 일을 막을 수 있겠나?

“근데요....”

유미영이 어려운 말을 하려는지 차은석의 눈치를 봤다.

“어 왜? 괜찮으니까 말해.”

“저기....언니와 대표님은 무슨 사이에요?”

“뭐?”

“그렇잖아요. 대표님이 언니를 총애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총, 총애는 무슨....”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차은석은 곤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얼굴이 뻘개졌는데 그걸 보고 유미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일단 저만 알고 있을게요.”

“뭐, 뭘 너만 알아?”

“괜찮아요. 저 입 무거우니까.”

아무리 봐도 입이 무거울 거 같아 보이지 않는 유미영이었다. 어제 같이 술을 마셔보고 그녀가 상당히 입이 가벼운 편임을 알게 된 차은석은 등골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 * *

오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유미영은 차은석에게 언니가 말한 아이는 이번 오디션에서 꼭 합격 시킬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이름이 정민수 맞죠? 아빠 이름은 정재욱이고요?”

혹시 같은 이름이 있을까 봐 아빠 이름까지 언급한 차은석. 그녀가 유미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 해.”

그렇게 유미영과 20분 정도 티타임을 가진 뒤, 차은석은 특수 1부문 사무실로, 유미영은 오디션장으로 각기 돌아갔다.

“차 부문장님이 유 대리는 왜 찾은 거야?”

오디션장에 복귀하자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캐스팅 사업부 김 부장이 물었다.

“부탁하실 게 있어서 오셨더라고요. 원래는 부장님께 얘기해야 하는 데 제가 보여서 그냥 저보고 얘기하신다고.”

“그, 그래? 그 부탁이란 게 뭔데?”

“그건....”

유미영은 김 부장에게 차은석이 시킨 걸 그대로 얘기했다. 처음 그 말을 듣고 김 부장은 대 놓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건 아니지. 엄연히 캐스팅 사업부의 책임자는 난데. 외압에 실력도 되지 않는 아이를 연습생으로 들일 수는 없어. 그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돼!”

김 부장의 반응이 생각보다 강경하자 유미영이 의아해 하며 김 부장에게 물었다.

“말씀드렸잖아요? 차 부문장님의 직급이 상무라고 말이에요.”

“상무가 아니라 전무라도 안 돼.”

“그럼 대표님은요?”

“대표님? 대표님이 거기서 왜 나와?”

“차 부문장님이 그러셨어요. 이 일은 대표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고.”

“뭐? 그, 그럼 진작 그렇다고 얘기했어야지. 그렇게 해. 합격 시켜.”

“네? 하지만 좀 전에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아아. 됐고. 그 일은 유미영 대리가 맡아서 해.”

그렇게 그 일을 유미영에게 떠넘기고 김 부장은 휑하니 사라졌다.

그게 일단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얄팍한 속셈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유미영은 그걸 그냥 두었다.

왜냐하면 김 부장이 오디션장에서 설치고 다니는 것보다, 이렇게 사라져 주는 게 유미영에게도, 그 일을 진행하기 더 수월했으니까.

“이상으로 뮤지컬 배우 오디션을 마치겠습니다.”

그때 앞서 진행 중이던 오디션이 끝났다. 이제부터 JYB엔터에서 비정기적으로 뽑는 연습생 오디션을 시작해야 했다.

“자자. 안 대리는 참여 인원 점검을 하고 차 대리는 마이크와 음향기기 체크....”

오늘 연습생 오디션을 직접적으로 감독하는 표 과장이 나서서 캐스팅 사업부 직원들에게 각자 맡아 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

“유 대리는 심사위원들 챙기고.”

벌써 캐스팅 사업부의 책임자인 김 부장이 무슨 언질을 준 모양이었다. 표 과장이 유미영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유미영이 심사위원들을 챙기는 만큼, 그들을 채점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원래 기존 합격자에 +1명을 더 뽑는 오디션이었다.

따라서 그 +1이 누군지 미리 심사위원에게 말해 놓으면, 나머지 심사는 원래 하던 대로 진행하면 될 일이었다.

* * *

연습생 오디션의 열에 아홉은 아이돌 지망자들이었다.

즉 아이돌이 되기 위한 주제로 ,오디션에 임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란 소리다.

아이돌을 준비하려면 보컬 실력, 댄스 실력, 외적인 모습이 제일 중요했다. 하지만 평범한 외모라고 해도 꼭 오디션에 불합격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흰색 도화지 같은 평범한 외모가, 요즘은 화장법, 매력 등 다양한 요소로 커버가 되고, 또 다양한 요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만 높다면 얼마든지 연습생으로 뽑았다.

“민수야. 너도 알지? 1차 오디션은 30초 만에 결정 된다는 거?”

“응. 알아.”

“저번처럼 어리바리하게 굴었다가는 바로 탈락이야. 그러니까 30초 안에 너만에 매력, 실력을 심사위원들에게 확실히 각인 시켜. 알았지?”

“어. 알았어.”

알았다고 대답은 철석같이 잘했다. 하지만 막상 심사위원들 앞에 서면 버벅거리는 정민수였다.

그에 비해 TU엔터의 연습생이 된 효성이는 더 의젓해지고 아이돌 같아 보였다.

자기 자식을 다른 자식과 비교하면 안 되지만, 효성이 옆에 있다 보니 비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에효....”

자기도 모르게 절로 한숨이 나오는 정민수의 엄마 고미나. 하지만 그녀에게 도전은 있어도 포기란 없었다.

“세상에....”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민수가 최종 오디션에 진출 한 것이다.

“말도 안 돼! 민수가 올라갔는데 왜 우리 효성이가 떨어져요?”

이번에는 효성이 엄마나 난리를 쳤다. 그에 대해 JYB엔터 관계자가 와서 설명을 했다.

“심사위원께서 민수의 가능성을 발견하신 거겠죠. 그리고 효성이는 카메라 테스트에서 실격 점수를 받아서 탈락한 겁니다.”

관계자의 말에 효성이 엄마도 찔리는 게 있었던 모양이었다.

“흥! 가자. 효성아. 연예기획사가 여기뿐인 줄 아나? 여기보다 더 큰 데 오디션 보러 가면 돼. 울지 말고.”

효성이란 아이도 어지간히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작은 실수하나가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한다는 건, 여기 참가한 사람들은 다들 아는 바였다.

그만큼 효성이 카메라 테스트에서 한 실수는, 심사위원이 탈락 시켜도 할 말 없는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효성이 엄마도 더는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오디션장을 빠져 나가려 한 것이고.

어쨌든 오디션만 보면 1차에서 80-90% 떨어지고 보던 정민수가, 최종 오디션 까지 보게 되자 고미나는 감격에 겨울 수밖에 없었다.

“역시 JYB엔터야. 여기는 우리 민수의 가능성을 제대로 알아 봐 주는 구나.”

고미나는 최종 오디션에서 뭘 주의해야 하는지, 핸드폰으로 검색해보고 정민수에게 얘기했다.

“자기소개를 하는 경우에 좋아하는 음악, 가수, 롤 모델이나 나의 꿈을 말하는 게 좋다니까 잊지 말고.”

“네. 엄마.”

다행히 정민수는 아이돌 노래를 잘 불렀다. 그래서 고미나도 기대를 갖고 최종 오디션에 임했다. 그런데....

“아아....”

민수가 최종 오디션에서 크게 실수를 저질렀다. 선곡부터 문제였다.

아이돌 오디션에서는 대중적이면서도 본인이 잘하는 아이돌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해서, MP4의 노래를 선택했는데 이게 미스였다.

여자 아이돌 노래를 남자가 부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오디션 보는 회사의 곡은 피해야 하는 데 그것도 몰라서, 무대에서 민수가 쩔쩔 매다가 내려 온 것이다. 심사석의 심사위원들의 얼굴이 다들 굳어 있었다.

“엉엉엉엉~”

민수는 자신의 실수에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괜찮아 민수야. 앞으로 더 열심히 연습하면 돼. 오늘 봐. 최종 오디션까지 올라갔잖아?”

고미나는 민수을 다독이며 그래도 끝까지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원래는 이 정도 큰 실수면 탈락이라고 봐야 했다. 그래서 그냥 바로 집으로 가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고미나는 오디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왜냐하면 그래도 이곳만이 민수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에게 물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민수의 어떤 매력이 그들로 하여금 민수를 최종 오디션까지 올라오게 만들었는지 말이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

“민, 민수야! 합격이야! 합격!”

“뭐? 진짜?”

“그래. 여기 봐. 정민수 합격!”

“어. 진짜다. 나 합격했어. 으아아아!”

좋아서 폴짝폴짝 뛰는 정민수를 바라보는 고미나의 눈에서, 두 줄기 감격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 * *

JYB엔터의 경우 연습생을 뽑을 때 심사위원들은 직원들을 활용했다.

어차피 JYB엔터 소속 아이돌을 키워 내는 게 그들 일이었다.

그렇다보니 자기들 입맛에 맞는 아이돌 연습생을 뽑는 게 그들 입장에서도 더 좋았다.

그렇게 JYB엔터 소속 보컬 트레이너와 댄스 트레이너, 액팅 트레이너들로 구성 된 심사위원들이 이번 비정기 연습생 오디션의 심사위원석에 막 앉았을 때였다.

캐스팅 사업부의 유미영 대리가 와서 그들에게 말했다.

“오늘 번외로 +1명을 더 뽑을 거예요. 그리고 그 뽑을 아이는 제가 미리 소개서에 빨간 펜으로 별표를 그려놨으니, 적당히 합격점을 주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유 대리. 이런 식은 곤란하지. 요즘에도 이런 사전에 합격자 정해 놓고 보는 오디션이 있다니. 그게 우리 회사란 사실에, 나는 지금 경악을 금할 수 없어.”

역시 그녀의 말에 토를 달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있었다. 댄스 트레이너로 삼촌을 JYB엔터의 임원으로 두고 있는 K씨였다.

그 K씨를 믿어선지, 다른 심사위원들도 하나 둘씩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맞아. 나도 이런 불공정한 오디션 심사는 볼 수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오늘 오디션 감독이 누구야?”

“표 과장이잖아.”

“표 과장 당장 데리고 와.”

그런 그들 앞에서 유미영은 그저 담담하게 서 있었다.

그러다 팔짱까지 끼자 그게 보기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심사위원 중 K씨가 또 나섰다.

“유 대리. 지금 그 자세 뭐야? 지금 우리말이 우습다 이거야?”

K씨의 그 말에 바로 다른 심사위원들이 동조하며, 유미영을 완전 싸가지 없고 무례한 직원으로 몰아갈 때였다. 유미영이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K씨에게 말했다.

“삼촌이 우리 회사 임원이시죠?”

그 물음에 K씨가 잔뜩 목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으음! 맞아! 우리 회사 음반사업 본부장이신 고종대 전무님이 내 삼촌 되시지.”

“그분 내일 책상 비우실지도 모르겠네요.”

“뭐?”

유미영의 말에 K씨가 발끈했다. 하긴 회사 임원인 자기 삼촌이 내일 잘린다는 데 그 말을 하는 유미영에게 화를 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이었다.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제대로 화가 난 뜻 K씨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며 인상까지 사납게 짓고 있을 때였다.

유미영이 툭하니 뱉은 말에, K씨와 그녀에게 할 말 많아 보이는 심사위원들의 입이 한순간 합죽이가 되어 버렸다.

“이거 대표님께서 시킨 일인데....”

“....”

그때 가장 먼저 돌변한 사람 또한 아이러니하게 K씨였다.

그는 자기 옆에 있는 액팅 트레이너보다 더 빨리 싹 표정을 바꾸면서, 간사하게 웃는 얼굴로 유미영에게 말했다.

“하하하하. 유 대리. 대표님 지시라면 진즉 얘기했어야지. 빨간 펜으로 별 표 쳐져 있는 아이 합격 시키면 되는 거지?”

구렁이 담 넘듯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인 K씨. 하지만 유미영은 받은 모욕을 그냥 넘어갈 정도로 착하지 않았다.

“이런 식은 곤란하다면서요? 사전에 합격자 정해 놓고 보는 우리 회사 오디션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면서요?”

“아, 아니. 유 대리. 그, 그게....”

K씨가 진땀 뻘뻘 흘리며 변명을 늘어놨지만 유미영의 화를 전혀 풀어주지 못했다.

그런 둘을 보면서 나머지 심사위원들은, 불똥이 그들에게 튈까 전전긍긍 하는 모양새를 한 동안 계속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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