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58화 (15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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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전규호의 말처럼 김희준의 시체를 사료분쇄기 안에 넣고 나서, 이 공장의 공장장이 나타났다.

하지만 전규호가 능청스럽게 이성욱을 자기 친구로 소개 하면서, 세 사람은 전자동으로 돼지 사료가 만들어지는 동안 공장 안에서 술판을 벌였다.

“자자. 마셔. 여기 막걸리가 진짜배기라니까.”

공장장이 따라 주는 막걸리를, 이성욱은 마다하지 않고 주는 족족 마셨다.

그럴 것이 그가 할 일은 이걸로 전부 끝이 났으니,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말이다.

“야. 그만 마셔.”

“아냐. 괜찮아. 이 정도 가지고 뭐....”

하지만 술 앞에 장사 없다고 이성욱은 공장장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그만, 두 사람 다 취해 버렸다.

“어어....취한다.”

털썩!

먼저 술에 취해 뻗은 건 공장장이었다. 이성욱도 만취했지만 다행히 뻗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 만큼 이성욱은 술이 셌던 것이다. 그랬기에 공장장이 주는 술을 계속 마다치 않고 마셔댄 것이고.

“규호. 너 이 새끼. 이제 행복 끝 고생시작이다. 타국에 자식과 마누라 보내놓고, 한국에 돌아오면 가슴이 뻥 뚫린 거 같거든. 히히히. 지금 내가 백번 말해 봐야 이해가 안 될 거야. 하지만 이번에 미국 갔다가 돌아오면, 내 말이 ‘아아 그렇구나’ 싶을 거다. 나도 처음에는 지태 형의 말이 이해 안 됐거든. 근데 시간이 지나고 직접 겪어 보니 알겠더라.”

평소 전규호와 티격태격 거리기나 하지, 깊은 얘기는 하지 않았던 이성욱. 그가 술 취한 김에 말이 많아졌다.

“하아. 새끼. 시끄러워 죽겠네.”

전규호는 취해 뻗은 공장장은 아무렇게나 내버려두고 이성욱만 잘 챙겨서, 그가 타고 온 승합차로 데려갔다.

그리곤 이성욱을 그 차에 태운 후 자신이 운전석에 올랐다. 신기하게도 차에 타자 이성욱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 차가 집처럼 편하다는 건가?”

원래 이성욱의 술버릇은 술을 아무리 마셔도 집에 가서 자는 거였다.

근데 이 승합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는 건, 그만큼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이 차를 오랫동안 타고 다녔다는 소리였다.

운전해서 서울로 가기 전에 전규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규호야.

“형님. 시체 처리 끝내고 지금 서울 올라갑니다.”

=그래. 수고했다. 근데 성욱이가 아니라 왜 네가 전화 해?

“성욱이 지금 술 취해 뻗었습니다.”

=뭐?

전규호는 이성욱이 공장장과 대작을 하다가 술에 취한, 저간의 사정을 전부 유지태에게 얘기했다.

=쯧쯧, 일 끝났다고 성욱이가 또 풀렸구나. 네가 좀 말리지 그랬냐?

“제가 말린다고 들어 먹을 녀석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다만. 일단 집에 데려다 줘라. 너도 짐 정리해야 하는 데 귀찮게 됐다.

“아닙니다. 집에 가는 길에 내려주면 되는 데요. 뭐. 그리고 짐 정리는 와이프와 애들이 하지 저야 뭐....”

=서운하지?

“....”

=나도 너희들까지 다, 나처럼 기러기 아빠가 될 줄 몰랐다.

“어쩌겠어요? 이게 다 애들의 장래를 위한 건데....”

=그래. 품안의 자식이라고. 이제 컸으니 제 갈길 가는 거라 생각해라.

“네. 그럼 이따 공항에서 뵐 게요. 저 때문에 형님 귀찮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귀찮긴. 나도 마누라와 애들 보러 미국 가는 건데. 괜한 소리 말고 성욱이나 잘 데려다 줘.

“네.”

그렇게 통화를 끝낸 전규호는 승합차에 시동을 걸고, 곧장 서울을 향해 운전을 시작했다.

* * *

어제 경찰청 회식에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수사과장 정재욱은,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으으으으....물....물....”

물을 찾아 몸을 일으킨 그에게 누가 생수통을 건넸다.

정재욱은 그 생수통을 받아서 벌컥벌컥 들이켠 뒤에 겨우 정신을 추슬렀다.

그때 화려한 꽃무늬 롱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보였고 정재욱은 일순, 자신이 여자와 호텔방에 와 있는 건가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제 술자리는 룸빵 같은 데 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잘 보니 여자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민수 엄마?”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어요? 콩나물국 끓여 놨으니까, 출근 전에 챙겨 먹고 가요.”

그의 와이프이자 아들 정민수의 엄마인 고미나가, 외출 하려는 듯 뭘 열심히 챙기고 있었다.

“지금 몇 신데?”

“8시 요.”

“이 시간에 어딜 간다고?”

“샵 예약해 뒀어요. 민수랑 같이 메이크업 받고 오디션 받으러 가야해요.”

오디션이란 말에 정재욱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놈에 연예인 병. 그의 아들 민수는 끼도 능력도 안 되면서, 연예인이 되겠다고 난리다.

문제는 그 아들놈에 편승해서 더 설치는 마누라다.

다른 집 여자들은 남편 승진을 위해서 상관 집 드나들기 바쁘다는 데, 정재욱의 아내 고미나는 아들 데리고 연예기획사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아....”

정재욱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랬다간 아침부터 대판 싸울 테니 말이다.

어차피 저들 모자는 오디션을 보러 갈 거고, 정재욱은 서울경찰청으로 출근을 해야 했다.

괜히 아침부터 서로 인상 쓰고, 마음 상해 각자 갈 길을 갈 필요는 없었다.

정재욱은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고 샤워 후 나오자, 이미 아내와 아들은 집을 나간 뒤였다.

옷을 챙겨 입은 정재욱은 아내가 끓여 뒀다는 콩나물국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경찰청 근처 해장국 집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정재욱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황태 북엇국 집이었다.

“크으....좋다.”

거기서 쓰린 속을 달랜 정재욱은 서울경찰청으로 늦지 않게 출근을 했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는데 오전 10시쯤 넘어서 민병도 공안차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차장님.”

정재욱은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어제 뭘 그리 달려? 속은 괜찮아?

“네. 아침에 해장했습니다.”

=젊어서 좋겠다. 나도 40대 초 반에는, 전날 아무리 마셔도 아침에 해장국 한 그릇이면 속 다 풀렸거든. 그런데 이젠 아니야. 해장국 갖고는 어림도 없어. 약 먹지 않으면 출근도 못한다니까.

그렇게 정재욱은 민병도와 별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좀 나눴다. 그 뒤 민병도가 본론으로 들어가자 귀를 쫑긋 세웠다.

=청장님이 오늘 점심 때 오리탕 드시러 가시는데, 너도 갈 건지 물어 보라고 해서 말이야.

“당연히 가야죠.”

=그래. 알았어. 그럼 11시 50분에 주차장에서 보자고.

“네. 고맙습니다. 선배님.”

=고마우면 잘 해. 너만 크지 말고 나도 같이 좀 키워 달라고.

“걱정 마십시오. 제가 청장님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아. 너만 믿는다.

그렇게 민병도와 통화 후 정재욱이 피식 웃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믿는 도끼에 발등도 좀 찍혀봐야, ‘인생 참 쉽지 않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랍니다. 선배님.”

정재욱은 당연히 민병도에 대해, 박대순 청장에게 좋게 얘기해 줄 생각이 쥐꼬리만큼도 없었다.

“나 크기도 바쁜데 당신 키워 줄 여력이 어디 있어? 그냥 각자 알아서 크는 거지 말이야.”

정재욱은 처리해야 할 일을 대충 살폈다. 11시까지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일거리였다.

그래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주말 골프 회동에 필요한 것들이 뭔지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골프 장비를 단골 스크린 골프장에 맡겨 놓은 게 그제야 생각났다.

“점심 먹고 올 때 찾아 와야겠군.”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골프채나 닦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시던 커피를 마저 다 마신 뒤, 정재욱을 하던 일을 마저 처리하러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 *

연예인들 협찬하는 곳으로 유명한 미용샵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미리 예약을 해 둔 터라, 고미나와 아들 정민수는 제 시간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엄마. 저 사람 ‘해신’에 나온 배우 아니야?”

“맞아. 장일국이라고. 직접 보니 키가 상당히 크네.”

“사인 받을까?”

“뭐 하러? 넌 저 사람보다 더 유명해 질 텐데. 격 떨어져.”

“그, 그런가? 뭐 알았어.”

그렇게 두 사람 다 연예인 급으로 화장을 받은 뒤 샵을 나섰다.

그때 고미나가 손에 차고 있던, 명품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오디션 시간 늦겠다. 빨리 가자.”

둘은 샵 주차장에 주차 되어 있던 외제차를 타고 JYB엔터 본사로 곧장 출발했다.

근데 생각보다 차가 밀리지 않아서, 빨리 JYB엔터 본사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차를 데려고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출근 시간이 지난 JYB엔터 본사 지하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저기 빈 곳 있어. 엄마.”

그때 유독 한 자리가 비어 있는 곳이 있었다. 주차 선도 금색으로 칠해 놓았고 말이다.

누가 봐도 특별해 보이는 자리이건만, 그곳이 두 모자에게는 마치 그들을 위해 비어 놓은 자리처럼 보였나 보다. 왜냐하면 그들 모자는 항상 특별대우를 받아왔으니까.

그렇게 주차를 완료한 두 모자는 곧장 차에서 내려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고, 마침 엘리베이터가 지하층으로 내려오고 있어서 금방,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디션이 진행 되고 있는 4층 컨벤션홀로 갈 수 있었다.

JYB엔터에서는 정기적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그때마다 컨벤션홀을 활용했다.

그래서 JYB엔터 직원들은 4층 컨벤션홀을 그냥 오디션장으로 불렀다.

오늘 오전에는 배우 오디션과 함께 비정기적으로 모집 중인 연습생 선발 오디션도 같이 있었다.

배우 오디션도 종류가 나뉘는 데 오늘은 뮤지컬 배우 오디션을 보는 날이었다.

그래서 JYB엔터 측에서 그 수가 많지 않은 뮤지컬 배우 오디션을 먼저 실시하고 있었다.

“엄마. 우리 안 늦었어.”

“그러게.”

아들 정민수의 말에 엄마 고미나가 대충 대답을 하고는, 오디션장을 빙 둘러봤다.

오디션을 하도 많이 봐서 고미나는 현재 진행 상황만 보고, 지금 무슨 오디션을 보고 있는지 바로 파악이 됐다.

“뮤지컬 배우 오디션이네. 그 다음이 연습생 선발 오디션이고.”

오디션은 지정곡과 자유곡, 자유연기, 자유안무 순으로 진행 되고 있었다.

오디션에 참가한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이 준비한 곡들을 노래하고, 연기하고, 준비한 자유 안무를 추며, 또 남들과 다른 자기들만의 특기로 심사위원들에게 어필을 하고 있었다.

“저쪽으로 가자.”

고미나는 오디션에 방해 되지 않게 그들처럼 연습생 선발 오디션을 보러 온 참가자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어머. 효성이 엄마?”

“어어. 민수 엄마! 여기 오디션 보러 오셨어요?”

“네. 그런데 효성이 엄마가 왜 여기에....”

“뭐 좀 사정이 그렇게 됐어요.”

고미나는 아는 얼굴을 봐서 기쁜 반면 속은 좀 쓰렸다.

그럴 것이 한 달 전 같이 오디션을 봤는데, 자기 아들 민수는 똑 떨어지고 효성이는 붙어서 그 연예기획사의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얼굴이며 키에서 민수에 미치지 못하는 효성이가 되고, 자기 아들이 왜 안 된 거냐며 당시 오디션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고미나였다.

그런데 그 효성이의 엄마가 왜 여기 와 있는지 고미나는 이해가 안 됐다.

“어. 효성이다.”

그때 민수가 고미나보다 먼저 효성이를 발견했다. 효성이 엄마에 이어 효성이까지 여기 있다는 건....

고미나가 효성이 엄마를 쳐다보다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효성이가 연습생이 되고 나서 알았는데....중소 연예기획사 연습생들은 다들 빅 4 대형 엔터사 연습생으로 들어가려고, 이런 식으로 지원을 한다더라고요. 그래서 뽑히면 기획사를 옮기는 거고 아니면 거기 연습생 생활을 계속 하는 거고요.”

한마디로 국내 최고라 불리는 4곳의 대형 엔터사의 연습생이 되려면, 이제는 중소연예기획사의 연습생 정도는 거쳐줘야 한다는 얘기다.

즉 중소연예기획사에서 기본기가 다져진 연습생들이 오디션에 참가를 하니, 그 수준이 그만큼 높아 질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러니 민수 같은 애들이 무슨 수로 빅 4 대형 엔터사에 연습생으로 뽑히겠는가? 그보다 훨씬 뛰어난 중소연예기획사에 속한 연습생들이 뽑히지.

안 그래도 높은 벽이 오늘 따라 더 높아 보이는 고미나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친구 만났다며 좋다고, 효성이 옆에 붙어서 실실 거리고 있는 아들 정민수를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오는 고미나였다.

* * *

JYB엔터 캐스팅 사업부 유미영 대리는, 오전에 있을 비정기 연습생 선발 오디션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이 비정기 연습생 선발 오디션은 매일 들어오는 연습생 지원서를, 캐스팅 사업부에서 살펴서 오디션을 열어도 될 거 같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실시하는 오디션이었다.

물론 일정 공고는 일주일 전에 하는데, 그 공고를 내자 한꺼번에 지원이 늘면서 오디션 규모도 커져 버렸다.

해서 평소라면 오전에 끝냈을 오디션이 오후까지 연장 되어 진행 될 예정이었다.

그 만큼 JYB엔터의 연습생이 되고 싶어 하는 지원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미영아!”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던 중 유미영 대리를 누가 불렀다.

그래서 돌아보니 어제 그녀와 같이 술을 마신 JYB엔터 특부 1부문장인 차은석이었다.

그녀의 직급은 무려 상무. 일개 대리인 그녀가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언니!”

하지만 어제 술자리에서 친해진 두 사람. 차은석은 유미영에게 자신을 언니라고 불러도 좋다고 허락을 했다.

JYB엔터의 임원을 언니라고 부를 수 있게 된 유미영 대리야 좋다고 했지만, 정말 직장에서 언니라고 불렀는데도 차은석은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바쁘지. 여기....”

차은석은 유미영을 위해서 테이크 아웃 한 커피를 가져왔다.

“고마워요. 안 그래도 못 말랐는데. 언니. 잠깐만요.”

유미영은 곧장 캐스팅 사업부의 부장에게 가더니 뭐라 얘기를 했다.

그러자 부장이 놀란 얼굴로 차은석 힐끗 쳐다보더니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가보라고 손짓까지 했다.

그 뒤 유미영이 쪼르르 차은석에게 다가와서 그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언니. 가요.”

그렇게 둘은 4층 컨벤션홀을 나와서, 근처에 휴식 공간으로 조성 되어 있는 테라스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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