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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힘줄이 잘리면 무엇보다 빠른 치료가 필요했다.
끊어진 힘줄을 오래 방치하면, 해당 신체조직의 근육이 굳어가기 시작해, 나중 가면 결국 손을 제대로 못 쓰고 절름발이가 되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발목을 끊는 형벌에 대해 동서양에 걸쳐 일부 찾아볼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아킬레스건을 끊는 형벌은 월형, 무릎의 무릎 뼈를 제거하는 형벌은 빈형이라고 했고, 서양에서는 오금의 햄스트링을 절단하는 햄스트링잉(hamstringing)이란 형벌이 존재했다.
“성경에 보면 소나 말을 상대로 힘줄 끊는 행위가 자행한 내용이 언급되는데, 소나 말이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군사용으로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지.”
황치국도 더는 힘센 남자, 그가 봤을 때 미친 인간이, 하는 말에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가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저 미친 인간은 자기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린 작자 같았던 것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후삼국시대에 그런 일이 있었지. 후백제의 장군 공직이 고려에 투항하자, 견훤은 그의 두 아들 직달, 금서, 그리고 그의 딸의 다리 힘줄을 불에 지져 끊어 버렸는데, 이 때 후유증으로 직달은 사망했다지.”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 얘기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지, 황치국은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됐다. 그때였다.
“크윽!”
갑자기 그의 팔과 다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마취효과가 다되어 가선지 고통이 느껴지지 시작한 것이다 .
“아파? 쯧쯧. 그럼 시간 이 다 됐네.”
“시, 시간?”
“어어. 너 죽을 시간.”
“뭐, 뭐?”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죽음은 끝, 종료를 의미하기 때문에.
갑자기 자기 앞에 닥친 죽음이 황치국을 멍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게 된다.
“그러게 왜 그랬어?”
“뭐?”
“김 비서님 말이야.”
미친 인간에게서 김 비서란 말을 듣는 순간, 황치국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개새끼 백준열이 자신을 살려 둘리 없었으니까.
“씨발....”
이렇게 죽을 줄 알았겠나? 아직 그가 살 인생이, 그가 살아 온 인생보다 3-4배는 더 남았다.
당연히 그 삶에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저 좀 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요. 100억? 200억? 말만하세요.”
“뭐 1조 정도 준다면 생각해 볼게. 단 현금으로 지금 당장 줘야 해.”
그냥 죽이겠다는 소리였다. 황치국도 그 정도는 안다. 현금으로 1조를 당장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말이다.
* * *
손대명이, 납치한 황치국을 데려 간 아지트에서, 그는 황치국의 몸을 손 봤다.
그의 팔 다리에 강력한 마취제를 투입하고, 팔 다리 힘줄을 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상처 봉합을 한 것.
그 뒤 손대명은 황치국의 처리를 두고, 그의 보스인 양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황치국이 어떻게 할까요?”
그 물음에 양태석도 바로 대답을 내 놓지 못했다. 어째든 황치국을 잡으라고 한 건, 그가 아닌 백준열 대표였으니 말이다.
거기다 지금 양태석은 최문식을 쫓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백준열 대표에게 물어보고 얘기해 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뭐 어떻게 할지야 뻔하지.”
자기 여자를 건드린 개쌍노무 새끼를 살려 줄 백준열 대표가 아니었다.
그걸 직감하고 있었던 손대명은 그냥 이렇게 기다리니, 아예 죽인 뒤 황치국의 시신을 처리할 장소로 움직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 태일공방으로 시신 처리를 해 온 곳으로 말이다.
거기서 손대명은 양태석에게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강력한 마취제의 효과 속에 계속 의식을 잃고 있었던 황치국이 깨어났다.
그런 황치국에게 자신의 지식을 마음껏 뽐내던 손대명.
그가 황치국이 마취가 풀려 아파하는 걸 보고, 다시 팔 다리에 마취제를 주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지이이잉!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고 확인하니, 양태석이 짧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바로 메시지를 확인하니 그 내용은 간단했다.
[죽여]
그래서 손대명은 황치국에게 그의 죽음을 얘기했고, 그는 살아보려 거금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세상에 때가 덜 탄 낭만 조폭 손대명에게, 이때까지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팔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황치국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거기다 죽은 황치국의 시신 처리도, 여기서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잘 가라. 부디 다음 생에서는 사람답게 살아라.”
황치국이 들어가 있는 전기 가마를 쳐다보며 그렇게 주절거린 손대명은, 양태석에게 답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남은 뒤처리는 부하들에게 맡기고, 유유히 태일공방을 빠져 나갔다.
“오늘은 좀 마셔야겠네.”
물론 여자가 빠질 수는 없었다. 손대명은 술 보다 여자를 더 좋아하니까.
그저께 그와 밤을 보냈던 미숙인가 하는 룸빵 호스티스가 생각난 황치국이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삼성동 포스코 사거리에 에로스 룸빵으로 가자.”
“네. 형님.”
손대명을 태운 차가 빠르게 강남 방면으로 질주했다.
* * *
인천 연안부두 선착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최문식이었다.
“배 편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선착장의 주차장, 최문식이 차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의 비서 역할을 몇 년째 수행해 오고 있었던 수하 녀석이, 먼저 차에서 내려서 선착장으로 향하는 걸 멀뚱히 지켜보고 있던 최문식.
그가 운전석에 있는 수하에게 물었다.
“여기서 여객터미널이 가깝지?”
“네. 바로 저기 있잖습니까?”
운전석의 수하가 바로 차창을 내리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인천연안 여객터미널이 있었다.
걸어서 3-4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너 차 트렁크에 있는 가방 두 개, 지금 들고 저기 여객터미널 안 물품 보관소에 넣고 와라.”
“지금 말입니까?”
“그래. 빨리 가.”
조폭 생활만 30년이었다. 최문식은 자신의 촉을 믿는 편이었다.
그런 그의 촉이, 지금 그의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가방 두 개를, 이대로 차에 싣고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해서 최문식은 그 두 가방을 운전석의 수하에게 맡겨서, 여객터미널 안의 물품보관소에 급한 대로 맡겨 놓기로 한 것이다.
어째든 지금 이 상황에서 거기가, 그의 차 트렁크보다 몇 십 배는 안전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최문식의 지시에 운전석의 수하가 차 트렁크를 열고, 가방 두 개를 챙겨 들고서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그걸 지켜보며 담배를 입에 문 최문식.
그가 그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담배꽁초를 차창 밖으로 날릴 때, 여객터미널 쪽에서 운전석의 수하가 허겁지겁 뛰어오는 게 보였다.
“가방 잘 맡겼지?”
“네. 여기 보관증이요.”
최문식은 수하에게서 보관증을 건네받아서 보관증 번호를 외우고, 그 보관증을 구겨서 차창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때 배편을 알아보러 갔던 수하가 돌아와서 말했다.
“중국 가는 밀항선은 확실히 잡았습니다.”
“출발 시간은 여전히 1시고?”
“네.”
최문식은 가급적 빨리 여길 뜨고 싶었다. 뭔지 모를 불안감이 계속 그를 옭죄어 왔기 때문에.
근데 배편 알아보러 갔다 돌아 온 수하가 차에 타자 어째 그 불안감이 가중 되었다.
“경호야. 너 내 밑에 얼마나 있었지?”
“올해로 10년쨉니다. 근데 왜....”
“너무 오래 있은 거 같아서.”
“네?”
최문식도 조폭 세계의 비정함과 배신이 난무하는 걸 몸소 체득해 가며 이 자리까지 왔다.
사람 하나 그 의중을 떠 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내가 너한테 뭘 못해줬니?”
“....”
최문식의 그 말에 바로 대답을 못하는 수하 이경호.
놈도 사람인지라 감성을 건드리는 최문식의 말에 낚였다.
“씨발. 진짜 배신했구나?”
그때였다. 검은 승용차 3대가 주차장에 최문식이 타고 있는 차를 에워쌌다.
피슝!
“컥!”
그리고 우르르 그 차들에서 내린 자들 중 하나가, 최문식이 탄 차의 운전석 문식파 조직원이 권총을 꺼내는 걸 보고서 먼저 총을 쐈다.
차창을 뚫은 그 총알에 머리를 맞은 운전석의 그 수하는 즉사했는데, 그 옆에 앉아 있던 이경호는 꿈쩍도 앉고,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 그 뒤쪽 최문식이 그런 이경호를 보고 말했다.
“우리 애들 보낸 것도 너냐?”
최문식에게는 중화기로 무장한 수하들이 항시 그를 경호하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인천부두에 도착하고 보니, 그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당연히 최문식은 그 수하들을 찾았다. 그때 이경호가 말했다.
차에 기름이 떨어져서 넣고 따라 오기로 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기름을 한 시간이나 넣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여태 그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진작 의심을 했었어야 했다.
“어째 불안 하더니....”
그 불안함의 이유가 자신을 지켜 줄 수하들이 주위에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최문식은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건 다 눈앞에 이경호 때문이었다. 10년이나 그의 곁에서 수족처럼 굴어 온 이경호였다.
그런 그의 말을, 최문식은 믿어도 너무 믿었던 것이다.
달칵!
차문이 열리고 권총이 최문식을 겨눴다.
“내려!”
최문식은 굳은 얼굴로 시선을 여전히 앞쪽에 앉은 이경호에게서 떼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하아. 좆도 말 안 듣네. 야! 끌어 내.”
잠시 후 강제로 차안에서 끌려 나온 최문식.
그런 그 앞에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 승용차 뒷좌석의 차창이 내려가며, 그 차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문식이형. 결국 이렇게 보네?”
“태석이 왔구나? 오랜만이다.”
“왜 그랬어?”
“실수다. 술 먹고 한 소린데 그 러시아 킬러 새끼가....하아. 아니다. 죽여라.”
구차하게 변명해 봐야 살려 줄 것도 아니고. 최문식은 그 말 후 입을 다물었다.
그때였다. 차 안의 양태석이 차창 밖으로 뭔가를 내 밀었다.
피슝!
그건 소음기 달린 권총이었고, 거기서 불꽃이 이는 걸 최문식은 봤다.
동시에 가슴에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시선을 밑으로 내린 최문식은, 피로 물든 그의 가슴을 봤다.
털썩!
그와 동시에 고목나무 쓰러지듯 옆으로 꼬꾸라진 최문식. 그의 귀에 냉철한 양태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우고....돈 가방....”
역시 돈 가방을 차 트렁크에 두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었다.
거기까지가 최문식이 살아생전 마지막 한 생각이었다.
* * *
그래도 10년을 곁에서 모셔 온 최문식이었다.
그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이경호의 기분은 지금 엉망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최문식이 그에게 했던 말이 자꾸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너한테 뭘 못해줬니?
하긴 최문식은 이경호에게 잘 해줬다.
그래서 이경호도 이제 최문식의 사람이 되려했다.
그가 태천파에 반기를 들고 조직원의 수를 늘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경호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 여겼다.
최문식과 같이 새로운 전국구 조직을 일궈 내는데 한 몫 하면, 그도 단숨에 중간 보스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한데 최문식은 그러지 못하고 결국 꽁무니를 뺐다. 중국으로 밀항하겠다는 최문식의 결정에 이경호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 그에게 가졌던 모든 기대도 버렸다. 그래서 최문식 몰래 양태석의 오른팔이자, 지금의 자신을 최문식의 조직에 심은 정준호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그러자 정준호가 크게 기뻐하며 이경호를 반겼고, 자연스럽게 이경호는 최문식이 지금 어디에 있고, 뭘 하려 하는지 전부 정준호에게 얘기했다.
그러자 정준호가 이경호에게 기회를 주었다.
자기가 얘기해도 되지만 이경호가 직접 양태석에게 얘기하게 함으로 해서, 이경호의 이름을 양태석이 기억할 수 있게 말이다.
그 뒤 양태석과 통화하면서, 이경호는 최문식의 주변에 중화기를 소지한 문식파 조직원들에게, 최문식의 지시라며 이런 저런 일들을 시켰다.
그 일을 하러 이동 중에 문식파 조직원들을 태운 차들이 딴 길로 하나씩 빠져나가면서, 어느 새 최문식을 태운 차만이 인천부두의 선착장 주차장에 도착했고, 그때 이경호가 배편을 알아보러 간다며 시간을 끌었다.
그 사이 들이 닥친 양태석과 태천파 조직원들에 의해서 최문식은 잡혔고, 양태석이 직접 자기 손으로 최문식을 죽였다.
그 뒤 이경호에 의해 최문식에게서 이탈한 중화기를 소지한 문식파 조직원들이, 그들을 잡기 위해서 함정을 파 놓고 숨어 대기 중이던, 태천파 조직원들에게 속속 잡히거나 제거 당했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해져 왔다.
“네 덕분에 피해 없이 잘 정리 할 수 있었다. 내일부터 내 밑에서 일해라.”
“네. 형님.”
이경호는 최문식을 팔아먹고 양태석에게 제대로 인정을 받았다.
정준호의 말에 따르면 새로 개편 될 양태석의 조직에서, 중간 보스가 될 것이 확실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최문식 밑에서 되려 했던 그 중간보스의 자리를, 어째든 꿰차게 된 이경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한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분명 차 안에 있었는데....”
최문식이 자기 집에서 들고 나온 돈 가방 2개가 차 트렁크에 있었는데, 그게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제가 차에 있을 때까지는 확실히 트렁크에 있었습니다. 배편 알아보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차에서 내렸는데 그럼 그때....”
“야! 근처 CCTV 살펴!”
주차장에는 CCTV카메라가 몇 군데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 주차장은 공영으로 인천시설공단의 허락 없이는 볼 수 없다는 게 주차장 관리소 입장이었다.
해서 양태석은 주변에 차량 중 블랙박스가 설치 된 차량들의 차주를 불러내서 살핀 결과 이경호의 말 대로였다.
이경호가 차에서 내리고 얼마 되지 않아, 차에서 내린 운전석의 조직원이 트렁크에서 가방 두 개를 챙겨서 어디로 가는 게 보였다.
“저놈 어디 있어?”
“그게....총을 꺼내는 바람에....쏴 죽였습니다.”
“아아....”
양태석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운전석의 조직원만 살아 있었어도, 최문식의 돈 가방을 어디다 뒀는지 바로 알 수 있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