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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때 백준열의 기억에 조진호란 인물에 대한 기억이 다행히 났다.
‘그러니까 조진호 전무가 백준경의 외삼촌이란 얘기로군.’
하지만 이전 삶의 내가 아는 한, 백준경에게 조진호란 외삼촌은 없었다.
‘그렇다는 건 백준경이 후계자로 정해지기 전에 어떻게 됐다는 건데....’
원래부터 있었던 외삼촌, 그것도 지금 보니 백준경을 완전히 이끌어 주고 있는 사람이 조진호 전무였다.
그런 존재 자체에 대해 후일 백준경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건....
‘죽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백준경이 없는 사람 취급했을 리 없었다.
“그렇군요. 일 잘 하시고 또 연락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언제든지 전화 주십시오.
말이 첩자지 그냥 대기업 월급 두 배로 받고 있는 김준호였다.
그는 말 그대로 지금 꿀 빨고 있는 데, 내가 이제 첩자 노릇 그만해도 된다고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티가 팍팍 났다.
뭐 첩자 같지도 않는 자에게 더 돈 줄 이유는 없었다.
해서 김 비서에게 김준호에 대한 수고비 지급을 끊으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와 통화를 끝냈다.
그 뒤 백준열의 기억 속에 조진호 전무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더 자세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조진호 전무가 지금까지 백준경의 모사나 지낭 역할을 해 온 거로군.”
백준경은 회장 자리에 오른 뒤 모든 걸 자신이 다 이룬 것처럼 떠들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의 외삼촌이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올린 것뿐이었다.
“조진호 전무는 몰랐겠지. 그가 죽고 나서 백준경이 그의 흔적을 싹 다 지워 버린 것을.”
이전 삶의 내가 조진호 전무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건, 백준경이 손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전의 내가 그렇게 까맣게 모를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백준열은 진짜 헛똑똑이네. 아니.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조진호 전무 같은 자가 백준경 옆에 있는데, 그걸 그냥 내버려 두다니 말이다.
그런 자는 조금이라도 일찍 제거하는 게, 그만큼 백준열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도 높아지는 데 말이다.
“백준호도 마찬가지고.”
결국 백승렬 회장의 뒤를 이어 삼명그룹 회장 자리에 앉는 사람이 다 갖는 거다.
그런데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백준열도 그렇고, 백준호도 백준경에게 하나 남은 외삼촌을 건드리는 걸 꺼려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백준경이 회장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 외삼촌인 조진호 전무가 그 길을 잘 닦아 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지.”
박인호만 해도 그렇다. 원래는 백준경을 위해 그 좋은 머리를 써야 했던 박인호였는데, 지금은 날 위해 그 머리를 쓰기로 다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럼 혹시 박인호도, 조진호 전무가 백준경을 위해 준비해 둔 인재가 아니었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거 이렇게 가만있을 일이 아니잖아?”
그런 안목을 가진 자라면, 내가 박인호 같은 인재를 데려 간 걸 이미 간파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 대해 본격적으로 견제에 들어가려 할 것이고. 그런 자가 나를 적대시한다는 건 사실 크나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조진호 전무의 성향이 침묵, 즉 사람을 죽이는 걸 선호한다면....자칫 내가 당장 제거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럴 수야 없지.”
야생의 법칙은 간단했다. 내가 잡아먹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잡아먹는다.
나는 조진호 전무에게 당하고 싶지 않아서라도, 그를 먼저 제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 * *
나는 아침에 김훈 대표에게 시킨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도 했고, 또 새로운 의뢰를 하기 위해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옆에 문대식은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뭔가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혼자서 떠들어 대도, 내 쪽으로는 고개 한 번 안 돌렸지.
어제까지만 해도 그냥 내 혼잣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 같더니, 실제로는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들리는 얘기를 안 들리는 걸로 부정한다고, 이미 들은 게 안 들은 게 되지는 않으니까.
=네. 대표님.
“어떻게 됐어요? 킬러 잡았어요?”
=네. 지금 잡아서 본부로 데려 가는 중입니다.
“러시아 킬러 맞던가요?”
=네. 맞습니다.
“심문할거죠?”
=알고 싶으신 거 있으십니까?
“뭐 김 대표가 알아서 그 러시아 킬러에게 물어보고 연락 주세요.”
=한데 심문 후 어떻게 하실 겁니까?
러시아 킬러가 할 짓이 없어서, 부산에서 갓 상경한 깡패나 죽였겠는가?
보나마나 자신의 목숨을 노렸을 거고, 거기 운 없이 있었던 이제동이 나대신 죽은 거다.
그러니 이제동과 나는 알지 못하는 여인, 나미혜라는 여자의 원혼이라도 달래려면 러시아 킬러의 목숨 정도는 제물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죽여야죠.”
=....
나의 그 단호한 말에 잠시 말이 없던 김훈 대표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실은 제가 잡은 러시아 킬러와 제가 아는 사입니다.
“네?”
=제가 러시아에 있을 때, 그쪽 세계에도 잠깐 몸을 담았는데 그때 알게 된 킬러입니다. 능력은 출중합니다. 여태 살아 있는 것만 봐도 여태 실수 같은 건 없었던 거 같고요.
나는 김훈 대표가 내게 뭔 말을 이렇게 길게 하나 싶었다.
=무엇보다 의리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돈을 주는 사람이 곧 고용주이니 대표님께서 거두셔서 곁에 두신다면, 꽤 쓸 만한 사냥개 노릇을 해 줄 거라 봅니다.
“사냥개요?”
그러고 보니 견신이 내게 잘 길들여, 내 일족으로 거둬들이라고 했던 투견들 중 하나가 죽었다.
이제 남은 투견들은 3명이고, 그 중 하나가 내게 러시아산 투견을 추천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디링! 러시아 킬러 세르게이는 투견이 맞습니다. 견신이 잘 길들여 당신의 일족으로 거둬들일 것을 견신이 강추 합니다. 세르게이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견신이 개지수 30포인트를 지급할 의향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 돌발 미션을 받아드리겠습니까? [Y/N]
오랜만에 견신이 직접 내 주는 돌발 미션이었다. 당연히 견신의 미션은 ‘예스’지.
“좋습니다. 일단 한 번 만나보고 결정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냥개로 쓸지, 아니면 잡을지.”
=네. 그럼 언제 보시겠습니까?
“시간 끌 거 있나요. 오늘 바로 보죠.”
=오늘이요?
“네. 이따 오후에 JYB엔터로 데려 오세요. 지하 주차장에서 잠깐 보도록 하죠.”
위험한 킬러를 대표실로 데려 오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 귀찮더라도 내가 잠깐 움직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그리고 새롭게 의뢰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삼명자동차에 조진호 전무라고 있습니다. 그 사람 빠른 시일 내, 제거해 주세요.”
=그렇게 하죠.
그렇게 막 통화를 끝내려는 데, 김훈 대표가 전화를 끊지 않고 혼잣말로 뭐라 더 말을 했고, 나의 예민한 귀는 그 말을 들었다.
=양태석이가 아직 말 안 했나? 최문식이를 응징하려는 걸....
띠띠띠띠띠띠....
끝에 말은 김훈 대표가 전화를 끊으면서 듣지 못했지만, 그 앞에 양태석과 최문식이란 이름은 확실히 들었다.
‘양태석이 나한테 뭘 말 안했다는 거지? 그리고 최문식은 또 누구고?’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기자 도저히 못 참고 나는 기어코 양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아직은 현직 국회의원이라서 그런지, 황충식의 집에 납치 신고를 받고 몰려 온 경찰들은 진심 열심히 일했다.
“인근 CCTV카메라 기록 다 챙겼지?”
“네. 과장님.”
“차량용 블랙박스도?”
“네. 다 챙겼습니다. 이제 경찰서로 가서 납치범을 특정하면 됩니다.”
“좋아. 너희들 먼저 가서 어떤 놈 소행인지 빨리 찾아 내.”
“과장님은요?”
“서장님과 여기 좀 더 있다가 갈게.”
“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형사들은 그들의 상관인 형사과장이 왜 여기 더 있으려는 지, 그 속이 훤히 다 들여다보였다.
저게 다 서장과 같이 국회의원에게 잘 보여서, 진급하는 데 도움을 받으려는 수작질이었다.
“주변에 CCTV카메라도 많아서 추적에 들어가면 곧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요. 그 추적 좀 빨리 해 주세요.”
“당연하죠. 최우선적으로 수사 할 것을 경찰서장인 저 도상국 총경이, 저희 경찰서 형사들에게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찰서장은 황충식에게 어떡하든 자신을 알리려 난리였다.
그때 형사과장까지 나타나서 황충식에게 아부를 해댔다.
황충식 입장에서는 이럴 시간에 자기 아들 좀 빨리 찾아주지 싶었지만, 그걸 일선 경찰들에게 티내지는 못했다.
대신 자신의 아들이 위치추적기가 숨겨진 신발을 신고 있단 사실을 형사과장에게 말했다.
“그래요? 진작 말씀하시지.”
그래서 아들의 신발에 숨겨져 있는 위치추적기를 경찰이 살폈고, 이내 그곳이 어딘지 바로 알아냈다.
“뭐? 한남오거리 우리들 은행 뒷골목? 알았어. 지금 즉시 형사들 그쪽으로 보내.”
황충식의 집에서 한남오거리까지는 차로 10여분 거리. 형사들이 즉시 출동했고 10여분 뒤에 바로 연락이 왔다.
“놈들이 납치에 쓴 차를 발견했어? 좋아. 즉시 감식 반 보낼게. 주변 CCTV확보하고 목격자들 찾아 봐.”
통화 후 형사과장이 기다리고 있는 황충식에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그 위치추적기를 놈들이 발견한 모양입니다. 길가에 버려져 있었고, 대신 그 근처에서 놈들이 아드님을 납치할 때 쓴, 검은 승용차를 발견했답니다. 거기서 단서가 나오면 그 놈들은 잡힌 거나 마찬가집니다.”
“하아. 놈들을 잡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아들을 구해 내는 게 급선무 아닙니까?”
“그, 그렇지요. 당연히 아드님부터 구해 낼 테니 염려 마십시오.”
염려 말라는 형사과장을 보고 있자니, 어째 멍청해 보이는 게 더 염려가 되는 황충식이었다. 그나저나 아들도 몰래 숨겨 놓은 위치추적기를, 납치범이 찾아냈다는 사실이 황충식을 더 께름칙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여기서 지금 급하고 아쉬운 사람은 자기뿐이었다.
하지만 급하다고 더 경찰들을 조를 수도 없었다. 그들도 나름 열심히 자기 일을 해주고 있었으니까.
* * *
짜악!
“으으윽!”
기절했던 황치국. 그는 뺨이 따끔거리고 화끈거리는 걸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짝!
그때 누가 황치국의 따귀를 사정없이 날렸다. 오히려 제대로 맞으니 소리는 작아지고 아픔은 더 컸다.
“으윽! 뭐야 씨발!”
황치국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하긴 자는 사람 뺨을 이렇게 무식하게 때리다니.
이건 너무 상식 밖의 행동 아닌가?
“나다. 좀만아.”
짝! 짝! 짝!
딱 적당한 아프기로 기분 나쁘게 황치국의 고개가 좌우로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자신에게 따귀를 마구 날려 대는 씨발 개새끼가 누군지 황치국이 쳐다봤다.
그랬더니 그를 납치한 그 대문밖에 무식하게 힘 센 바로 그 남자였다.
황치국도 90Kg에 육박하는 거구인데, 그런 그를 간단히 대문 밖으로 끌어내고, 또 차 안에 강제로 욱여넣기까지 했으니 그 힘은 대단했다.
“당, 당신 누구야?”
“그 새끼 사람 말을 못 알아듣네. 나라고 나.”
퍽! 퍽! 퍽! 퍽!
이번에는 힘 센 남자가 황치국의 뒤통수를 네 방 연속으로 때렸다.
“아악! 아파! 아프다고. 그만 좀 때려!”
황치국이 뒤통수를 맞다가 제대로 열불이 났는지 버럭 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건 그의 해선 안 될 실수였다.
“이 새끼가 말로하려니까 영 말을 안 듣네.”
그래서 그때부터 힘센 남자가 말이 아닌 구타를 시작했다.
퍽! 빠악! 빡! 퍼억!
“윽! 크윽! 큭! 크아아악!”
힘센 남자가 자신을 무슨 샌드백처럼 두들겨댔고, 마지막에 날아 온 주먹에 황치국은 보기 좋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분명 사지가 구속 된 상태는 아니었다. 근데 신기하게 팔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네 팔 다리가 이상하지? 그럴 거다. 손목과 발목의 힘줄이 끊어지는 것은, 단순히 손과 발을 못 쓰게 되는 것을 넘어, 팔과 다리의 움직임 자체가 심각하게 저하되는 결과를 낳거든. 팔과 다리의 움직임 상당 부분이 손목과 발목의 움직임에 따른 힘의 집중 및 방향성을 통해 좌우되는데, 이를 못 쓰게 되면 그 뒤로는 순수하게 팔꿈치와 어깨, 무릎과 허벅지만 갖고 팔다리를 움직여야 하니까, 정상적 상태보다 배로 힘이 든 거야.”
황치국은 눈앞에 힘센 남자가 하는 소리가 뭔 소린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힘줄을 끊었다는 소리는 알아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팔과 다리를 살폈다.
그랬더니 진짜 힘센 남자가 자신의 팔 다리 힘줄을 끊어 놨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황치국은 지금 멀쩡하지 않은가?
그건 바로 힘센 남자가 황치국의 팔 다리 힘줄을 끊고, 상처 봉합을 해 놓은 것이다.
얼기설기 누더기 옷에 바느질을 해 놓은 거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팔 다리에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 놈이 자신의 팔 다리 힘줄을 끊기 전에 강력하게 마취를 해 놓아서인 거 같았다.
“이 미친 새끼가....”
사이코패스 황치국의 눈깔이 확 돌아갔다. 이게 도대체 사람에게 할 짓이란 말인가?
하지만 힘센 남자는 그런 돌변한 황치국 따윈 신경도 쓰이지 않는 다는 듯 팔짱을 끼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사실 힘줄의 손상이 인대 손생 보다 치명적이긴 해. 아니다. 골절보다도 더 치명적이겠네. 왜냐하면 힘줄은 아주 튼튼하고 강한 고무줄을 연상하면 되는데, 고무줄이 끊어지거나 터지면 아무리 봉합한다 해도 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 거기다 힘줄은 근육과 결합되어 있어 대체할 수가 없거든. 그래서....”
“야이. 개 씹새끼야! 미친 개 소리 작작하고 빨리 날 병원으로 데려 가.”
황치국이 버럭 소리치면서 이를 악물고 어떻게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황치국의 생각과 달리 그의 몸이, 아니 팔 다리가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이미 너 죽고 나 죽자고 눈앞에 힘센 남자에게 달려들었어야 했다.
힘센 남자는 곧 죽일 듯 자신을 노려보는 황치국을 보고 이죽거리며 말했다.
“왜 옛날에 손목과 발목의 힘줄을 끊는 형벌은 드물었는지 알아?”
“....”
“아예 손모가자와 발모가지를 잘라 버리는 게 더 쉬웠거든.”
그 말을 하며 음흉 된 입 꼬리를 비죽 말아 올리는 힘 센 남자를 보고, 사이코 패스 황치국도 간담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쫙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