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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두 사람은 그 오토바이에 탄 사람이 누군 줄 안다는 듯, 그냥 하던 얘기를 마저 이어서 나눴다.
“저기 왔네.”
“실수 없이 잘 처리한 거 맞겠죠?”
“맞겠지. 독 쓰는 건데. 대한민국에 저 놈보다 독 잘 쓰는 놈도 없잖아?”
“뭐 그렇긴 하지만....”
그때 오토바이에서 내린 사람이 쓰고 있던 헬멧을 벗고, 제법 큰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두 사람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에이 씨. 불갈비 버거 언제 단종 된 거야!”
진심 화를 내는 전규호를 보고, 이성욱이 말했다.
“저번에 디럭스 슈림프 버거 없어졌다고, 지랄을 떨더니 이번엔 불갈비 버거냐?”
“야. 넌 난리라는 말두고 지랄이 뭐냐? 사관학교 나왔다는 녀석이 말이야.”
“거기서 사관학교는 왜 나와?”
“아. 맞다. 너 거기 다니다 잘렸지 참.”
“저 새끼가....”
발끈하는 이성욱을 유지태가 말리며 말했다.
“성욱아. 넌 지태 농담에 매번 그렇게 휘둘리냐?”
“저 새끼가 아픈 데를 콕콕 찌르잖아요.”
“그래도 너 좋아하는 불고기 더블 버거 사왔잖니.”
“어?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거기서 냄새 폴폴 나는 데 뭐.”
“하여튼 형 코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전규호는 이성욱이 화를 내던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들고 있던 헬멧을 한쪽에 놓고 커다란 비닐봉지를 연 다음, 그 안에서 따끈한 햄버거와 콜라를 꺼내서, 제일 먼저 이성욱에게 건넸다.
“옜다. 불고기 더블 버거. 형은 골드에거 치즈버거죠? 여기....”
“잘 먹으마.”
유지태는 전규호가 건네는 햄버거와 콜라를 받으며, 그 옆에서 그보다 먼저 불고기 더블 버거와 콜라를 받아 들고 있는, 이성욱을 보고 말했다.
“너도 잘 먹겠다고 하고 그냥 먹어.”
“크음. 잘 먹을게.”
“그래. 많이 먹어. 그리고 오늘 귀찮은 일 한다고 고생 많았다.”
그 말을 하며 전규호가 승합차 안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하긴 그냥 사람 죽이는 게 편하지, 사람을 고문해서 원하는 걸 얻어 내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다.
보통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스트레스 엄청 받는 일이란 건, 다른 두 사람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알면 됐다. 뭐 다 끝났지만.”
이성욱의 다 끝났다는 말에 전규호가 힐끗 유지태를 쳐다봤다.
이성욱의 말이 맞냐고 말이다.
유지태는 햄버거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보고 전규호가 웃으며 말했다.
“잘 됐네. 그럼 내일 오후에는, 얼추 정리가 되겠군.”
“아니. 오전에.”
“뭐?”
“오전에 의뢰를 끝낼 수 있다고.”
“정말?”
“그래. 그러니까 내일 저녁 편, 비행기 알아 봐도 돼.”
하루라도 빨리 미국에 갈 수 있다는 이성욱의 말에, 전규호의 입이 귀에 걸렸다.
하긴 40대 중후반의 나이 때 남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자식들 공부였으니까.
* * *
이주혁은 평소보다 2시간 늦게 로펌을 나섰다.
지금 맡은 일을 생각하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하지만 습관이 무서웠다.
그가 처리해야 할 서류가 자기 책상에 쌓여 있는 꼴을 못 보는 이주혁.
그는 기어코 오늘 그가 했어야 할 일을 다 처리하거나, 내일 오전에 다 처리가 되게끔 다 마무리를 짓고 나서야, 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12시가 넘었군.”
그러니 하루가 지났다는 소리다. 내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시간이 긴박하게 흘러 갈 것이니, 이주혁도 지금 쉬어주어야 했다.
그래서 딴 데로 새지 않고, 곧장 자신이 독립해서 살고 있는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띠로링!
그때 문자메시지가 들어왔고, 확인한 그의 입매가 비틀어졌다.
“후후. 생각보다 더 유능한 자들이네.”
아버지가 벌써 10년 째 이용 중이라는 처리자 에이전시.
인원은 셋뿐이지만 그 한 명, 한 명이 스페셜하다더니 진짜로 일을 잘했다.
내일 점심시간 이후 황치국이 녀석의 집에서 나오게 만들겠다더니, 그 시간을 단축했다.
“오전이라....”
오전에 황치국이를 집밖으로 나오게 만든다면, 이주혁으로서도 내일 하루 일정에 한결 여유가 생긴다.
“아버지가 좋아하시겠네.”
이주혁은 재빨리 수고했다는 식의 격려 답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자신의 내일 일정을 머릿속으로 조율했다. 그러면서 백준열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을 했다.
“황치국을 잡아서 뭘 할 생각인 거지?”
이주혁은 다른 사람이 뭘 하든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백준열이 하는 일에 관심이 생긴 건, 바로 그녀 때문이었다.
김 비서를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백준열을 넘거나, 아니면 그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김 비서를 자기에게 넘기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재벌 3세에다가 귀신같은 투자 능력으로, 이미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백준열을 넘기는, 일개 변호사인 그로서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능력으로 그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에게는 노예나 마찬가지인 김 비서를 양도 받는 방법이, 지금으로서 이주혁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한데 그의 촉이 자꾸 이게 최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뭔가 있었다. 그렇게 하면 한결 수월하게, 그가 원하는 걸 손에 쥘 수 있는....
“그런데 그게 뭔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게 억지로 생각한다고 생각 날 거 같았으면 벌써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에, 이주혁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뭔지 생각 날 때까지 말이다.
집으로 간 이주혁은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소시오패스도 사람이다. 먹고 자야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야오오옹~ 이야아아옹~
길고양이가 울었다. 순간 벌떡 침대에서 일어난 이주혁.
그가 혼자 사는 원룸의 싱크대 쪽으로 걸어가더니, 거기 칼꽂이에서 식칼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집을 나갔고 얼마 후 돌아 온 이주혁이, 싱크대에 물을 틀고 식칼을 씻었다.
이주혁은 식칼에 묻은 핏물을 깨끗하게 씻어 낸 후, 그 식칼을 칼꽂이에 도로 꽂고 나서 침대로 향했다.
더 이상 길고양이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위가 조용해진 것에 만족해하며, 이주혁이 비릿하게 웃는 얼굴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
간밤에 숙면을 취한 이주혁. 그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출근을 했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출근하자마자, 부친인 로펌 대표 이상범이 전화를 해왔다.
“네. 아버지.”
=어떻게 되어 가느냐?
“잘 되고 있습니다.”
=그렇군. 끝나면 연락해라.
“네.”
부친인 이상범은 늘 이랬다. 그에게는 과정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결과. 그 결과만 놓고 사람을 판단했다. 부친과 통화 후 시간을 확인한 이주혁.
“벌써 이렇게 됐나?”
출근해서 일 좀 하다 보니 벌써 10시 30분이었다.
처리자 쪽에서 오늘 아침에 보내 온 문자 메시지에 따르면, 11시에 황치국의 집 앞에서 놈과 접선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은 이미 백준열 측에 전해 놓은 상황. 처리자 쪽에서 할 일은 황치국이 집 밖으로 나오는 거 까지였다.
그 다음은 백준열 측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30분 남았군.”
전문가들인 그들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만, 그래도 11시가 다가오자 살짝 긴장이 되는 이주혁.
하지만 그에게는 시간 때울 소일거리가 많았다.
그의 법적 견해를 요구하는 다양한 법률상담부터 시작해서, 재판 때 쓸 공소장 작성까지, 그가 신경 써서 할 일은 많았다.
“일하자.”
일하다보면 시간은 가고 그가 시킨 일도 다 처리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남은 일에 집중하는 이주혁.
지이이잉!
업무 중이라 진동으로 해 둔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그가 기다리던 바로 처리자 쪽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잘 처리 됐습니다. 의뢰비는 3시까지는 넣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았어.”
일처리가 잘 됐다니 당연히 그 수고비는 줘야지.
이주혁은 확인하고 자실 것도 없이, 바로 처리자가 알려 준 계좌로 의뢰비를 지급했다.
그 뒤 부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끝냈습니다.”
=수고했다. 이번 달부터 시니어 변호사니까 그런 줄 알아라.
부친은 결과가 좋으면 이렇게 바로 달콤한 보상을 해주었다. 비록 어쏘(소속 변호사)지만 그래도 시니어 어쏘보다야 주니어 어쏘가 더 낫다.
로펌에는 크게 구성원 변호사(파트너 변호사), 시니어 변호사, 주니어 변호사로 나뉘는데, 시니어 변호사와 주니어 변호사는 통틀어 어쏘라고 했다.
이주혁은 시니어 변호사가 된 기념을 누구랑 같이 하고 싶었다.
그 누구는 바로 백준열의 비서인 김 비서고. 그래서 JYB엔터 대표실로 전화를 걸었다.
그럼 대표 비서인 그녀가 재깍 그의 전화를 받을 테니까.
=네. JYB엔터 대표 비서실 김 비서입니다.
그녀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울리자 그걸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이주혁이었다.
하지만 김 비서와 통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김 비서가 지금 대표실에 백준열이 없으니, 그에게 직접 전화를 하라고 하고는 먼저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이다.
“쌀쌀 맞은 것도 매력적이란 말이야.”
그녀가 뭘 하든 다 마음에 드는 이주혁이었다.
* * *
이성욱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김희준에게 말했다.
“이제 곧 끝난다. 병원 가서 치료 받아야지?”
“네....”
김희준은 대답을 하며 한껏 몸을 웅크린 체 이성욱의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이 마치 고양이 앞에 쥐 같았다. 하긴 김희준에게 이성욱은 악마 일뿐이었으니까.
그 악마가 시키는 대로 지금 김희준은 말하고 행동 하고 있었다.
“다 와간다.”
그때 운전석에서 유지태가 말했다. 그러자 이성욱이 김희준에게 그의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전화 해.”
이성욱으로부터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받은 김희준은, 곧장 친구 황치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왔어?
“다와 간다. 나와라.”
=알았어.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김희준이 자기 핸드폰을 다시 이성욱에게 넘기며 그를 보고 말했다.
“액상 대마 한 대 더 피우면 안 될까요?”
“왜?”
“긴장이 돼서....”
“긴장은 무슨, 차 안에서 얼굴만 비추면 되는 데. 뭐 그래. 마지막이니까 한 대 빨아라.”
이성욱은 휴대하고 있던 액상 대마 카트리지를 꺼내서, 기존 액상 전자담배 바이퍼(흡입기)에 끼워서 김희준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김희준은 신난 얼굴로 그 액상대마를 받아 피웠다.
“아아....”
그리곤 마약 중독자의 영혼이 빠져 나간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 주었다.
그때 운전석의 유지태가 이성욱에게 물었다.
“액상으로 피우는 게 말아 피는 대마초보다, 수십에서 수백 배 효과가 강력하다던데 사실이냐?”
“네. 정확한 보고서는 없지만, 농도에 따라 환각성은 일반 대마초보다 훨씬 세죠.”
이성욱은 이어서 액상으로 피우면 대마의 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원할 때 훨씬 강력한 각성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뒤 이성욱은 김희준이 들고 있던 액상 대마를 도로 뺐으며 말했다.
“이건 네가 황치국이를 집밖으로 불러내고 나면 주마.”
그 말에 김희준이 액상 대마를 더 피우고 싶어 몸이 달아서 말했다.
“치국이 나오면 그거 바로 주는 겁니다?”
“그럼.”
대답과 함께 이성욱이 자기 손에 들려 있던 김희준의 핸드폰을 그에게 슥 내밀었다.
그 사이 그들을 태운 승합차가 황치국의 집 앞에 도착했다.
“꼴깍!”
혼자 거하게 마른 침을 삼킨 김희준. 그가 이성욱에게서 받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다시 황치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안 나와 있어?”
=우리 집 앞 승합차에 있냐?
“그래.”
=내려서 대문으로 와.
황치국의 예상밖의 반응에 이성욱이 김희준에게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든 그들은 황치국을 집 밖으로 끌어내기만 하면 됐다.
“알았어. 내릴 테니까 너도 대문이나 열어.”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승합차 문이 열렸다.
그때 승합차 안의 이성욱이 김희준에게 말했다.
“무조건 황치국 만 밖으로 끌어 내. 그러면 네 할 일은 다 한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어떻게 모르겠는가? 그 때문에 아작 난 그의 발가락과 손가락이 몇 갠데.
강력한 마취제와 액상대마의 각성 효과가 아니었다면, 지금 김희준이 이렇게 움직이는 거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 봐.”
김희준을 차에서 내려서 황치국의 집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김희준의 눈에 황치국 대문에 착 달라붙어 있는, 힘깨나 쓰게 생긴 남자 한 명이 보였다.
딱 봐도 김희준이 황치국을 대문 밖으로 불러내면 황치국을 잡을 사람이었다.
김희준은 가급적 그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게,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린 채 대문으로 걸어갔고, 거기 다다르자 대문 안에서 황치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액상 대마는?”
의심 많은 황치국. 대문 안에서 먼저 물건부터 확인하겠다는 거다.
이럴 줄 알았기에, 김희준은 좀 전 자신이 빨았던 것과 같은 액상 카트리지를, 호주머니 속에서 꺼내 대문 안에 황치국에게 보여 주었다.
철컥! 끼이이익!
그러자 대문이 열렸다. 이어 대문 안에서 손이 나왔다.
“줘!”
황치국의 손이었다. 김희준이 가지고 있는 액상 카트리지를 달란 거다.
“어허. 이거 왜 이러실까? 돈....”
휙! 척!
김희준이 돈 얘기를 꺼내자마자, 대문 안에서 날아온 돈 가방이 그의 품에 안겼다.
김희준은 형식적으로 그 돈 가방에 돈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고는, 액상 카트리지를 황치국에게 내밀었다.
대문 안 황치국이 떨리는 손으로, 막 그 액상 카트리지를 잡으려 할 때였다.
척!
대문 옆에 붙어 있던 남자가, 잽싸게 황치국의 손목을 팔뚝을 잡아서 대문 밖으로 끌어냈다. 당황한 황치국이 뭐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가자.”
그때 김희준의 뒤에서 이성욱의 외침이 들려왔고, 김희준은 바로 몸을 돌려 대기 중인 승합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승합차 문이 바로 닫히고.
꽝! 부우우웅!
승합차는 풀 악셀을 밟으며 순식간에, 그곳을 빠져나가서는 이내 그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