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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저년 괜찮네.”
오늘도 김희준은 백화점 명품관에서, 온몸에 덕지덕지 명품을 휘감은 된장녀 하나를 찍고는, 그녀를 꼬시기 위해서 움직였다.
얼굴에 허영 끼와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어디가 허린지 비록 알 수 없지만 저런 년일수록 꼬시기 쉽고, 또 돈 털기도 수월했다.
김희준은 처음 무슨 말로 저년의 환심을 살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명품 코너로 들어가는 된장녀를 향해 큰 걸음으로 걸었다.
턱!
그때 웬 정장남이 튀어나와 김희준이 부딪쳤다.
김희준은 그야말로 허우대는 멀쩡했다.
185센티의 큰 키에 훈훈한 얼굴. 거기다가 매일 관리를 하고 있어 몸매도 좋았다.
그래서 항상 당당했다. 겉모습만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다고, 스스로도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뭐야?”
그런데 자기가 실수로 부딪쳐 놓고 되레 인상을 쓰는 정장남이, 오랜만에 김희준을 열 받게 만들었다.
그럴 것이 말이 정장남이지, 김희준에 비해 정말이지 볼품없는 작자였으니까.
키는 170센티도 안 되어 보였고, 얼굴도 사각턱에 매부리코, 칙칙하고 검은 입술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을 유발 시켰다. 거기다 볼록 튀어 나온 배는 또 어떻고.
“왜? 매운탕 속 우럭 대가리야?”
김희준은 지금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시의적절한 말을 눈앞에 땅딸보 똥배 남에게 말했다.
“뭐, 뭐시라? 우럭 대가리? 와아. 이 싹퉁머리 없는 새끼 좀 보소?”
그때였다. 갑자기 녀석과 같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그 중 한 남자가 우럭 대가리에게 물었고, 김희준은 그 순간 좆 됐다 싶었다. 딱 봐도 정장 차림의 남자들은 조폭들이었다.
그런 조폭들이 형님으로 부르는 저 우럭 대가리의 정체는 그럼 뭘까?
‘씨발. 건드려도 왜 하필 조폭 두목을 건드린 거야!’
“어이.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 내가 하도 기가차서 그런데, 좀 전에 나보고 한 소리를 우리 아그들 앞에서도 해봐. 빨리 해 보랑깨!”
“아하하하하. 무슨 말씀이신지 잘....혹시 저 아십니까?”
“아따 이 새끼보소. 지금 내 앞에서 쇼를 하네. 야들아. 이 새끼 잡아.”
“네. 형님.”
순식간에 조폭들에 포위 된 김희준.
“왜, 왜들 이러십니까? 여, 여기는 백화점입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보안 요원들 옵니다. 아니면 경찰이 오던지.”
김희준은 나름 자기 살길을 생각해서 조폭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김희준의 그런 협박이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김희준이 우럭 대가리라고 했던, 조폭두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안 요원이든 경찰이든, 우리들 보다 빠르것서? 안 그러냐?”
우럭 대가리의 그 말에 그 옆에 조폭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형님. 야아들아. 뭐하노? 빨리 잡아라.”
그렇게 조폭들에게 잡혀 꼼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김희준.
그런 그를 조폭들이 데리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이거 놔. 놓으라....컥!”
김희준도 기회를 봐서 저항을 했다. 엘리베이터 타기 전에 사람들이 좀 보이자, 거기서 저항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조폭들이 사정없이 그를 두들겨 팼다. 그런데 그들이 패는 게 김희준의 생각과는 완전 달랐다.
조폭들이 때리면 그걸 본 주위 사람들이, 핸드폰 카메라로 그 맞는 장면을 동영상 촬영하고, 또 다른 사람은 경찰에 신고를 해야 했다.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주위 사람들 중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는 사람은커녕, 다들 조폭들 피해서 내빼기 급급했다.
그럴 것이 조폭들 중 몇 명만 김희준을 두들겨 패고, 나머지는 두 눈을 부라리고 주위 사람들을 쏘아봤다.
마치 핸드폰만 꺼내 봐라, 가만 안 두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 매서운 눈길에 겁먹은 주위 사람들은, 감히 김희준에게 도움의 손길은커녕 도망치기 바빴다. 역시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랐다.
* * *
김희준은 얻어터진 후, 순순히 조폭들에 끌려 지하주차장까지 제 발로 걸어서 움직였다.
그가 더 이상 저항을 포기한 건, 조폭 중 하나가 사시미 칼을 꺼낸 걸 보고서였다.
“한 번만 더 떠들어 봐라. 이걸로 그 주둥이를 썰어내 버릴 테니까.”
사람은 입술 좀 떼어낸다고 해서 죽진 않는다. 하지만 김희준처럼 얼굴로 먹고 사는 사람에게 입술이 없다는 건, 그냥 죽으란 소리와 같았다.
무엇보다 그 조폭의 살벌한 얼굴이 말해주고 있었다.
김희준이 자기 말 안 들으면, 진짜로 그의 입술을 썰어버릴 거라고 말이다.
해서 김희준은 살기 위해서 더는 조폭들에게 저항하는 것을 포기했다.
“타!”
지하 주차장에 대기 중인 승합차 문이 열렸다.
그런데 그 안에 딱 한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그 차림이 전혀 조폭스럽지 않고, 그냥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업사원이나 회사 다니는 샐러리맨 같았다.
김희준은 자신이 타면 당연히 조폭들도 승합차에 우르르 탈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럼 수고들 해.”
승합차 안에 그 샐러리맨이 장난치듯 조폭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걸 보고서, 김희준은 자기 눈앞에 저 샐러리맨이, 보통 인간은 아니란 것쯤은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 자가 진짜 악마란 사실 까지는 몰랐다.
“자아. 발 좀 볼까?”
그자가 왜 자신의 신발과 양말을 벗기는지, 그 후 자신의 서류가방에서 왜 망치를 꺼내는지, 당연히 김희준은 몰랐다.
콰직!
“끄아아아악!”
하지만 곧 그 망치가 자신의 엄지발가락을 짓뭉개 놓자, 그제야 김희준은 알게 됐다.
인간 중에도 악마가 있다는 걸 말이다.
“으허허헝....제, 제발....으흐흐흑....하지 마세요.”
김희준은 울고불고 애원했다. 하지만 그 악마는 김희준의 양쪽 엄지와 검지 발가락을 망치로 짓이겨 놓고, 그의 양손 중지와 약지마저 아작 내 놓고서야 망치를 치웠다.
그리곤 서류 가방에서 마취주사를 꺼내서, 친히 김희준의 발과 손에 주사를 놔주었다.
그 뒤 그가 하는 말이 김희준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네가 할 일을 알려 주마. 그걸 해 내면 더 이상 망가지는 발가락과 손가락은 없을 거다. 하지만 실패하면....”
그 악마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걸 보는 순간 김희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럼 이제부터 네가 뭘 해야 할지 알려주도록 하마. 너 황치국이라고 알지?”
“치국이요? 잘 알죠. 제 친군데....”
“그 놈 내일 오후에 집밖으로 불러내라.”
“네?”
“왜? 어려워?”
그렇게 말하며 악마가 다시 치워 놓은 망치를 찾자, 김희준이 다급히 외쳤다.
“아뇨! 아뇨! 하나도 안 어렵습니다. 그 새끼 불러내는 거야 저한테는 일도 아니죠.”
“그래? 그럼 전화 해.”
그 악마가 김희준에게, 김희준 본인 핸드폰을 건넸고 김희준은 그 핸드폰에 저장 되어 있던 황치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황치국이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PC방에 있나 보네요. 자리에 핸드폰 놔두고 잠시 화장실 간 모양입니다.”
그 말에 악마가 씨익 웃더니 황치국의 왼다리를 잡으며 말했다.
“황치국이 지금 집에 있다.”
“안 돼! 하, 하지 마!”
콰직!
“끄아아아악!”
자신의 왼발 중지 발가락이 뭉개지는 걸 보고, 김희준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하지만 기절하고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 김희준은 깨고 싶지 않은 정신을 되찾았다.
악마가 암모니아 흡입 제를 그의 코에 갖다 대서, 기어코 기절한 그를 깨운 것이다.
마취가 되어 있어 고통은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김희준의 눈에 멀쩡한 발가락과 손가락이 이제 몇 개 안 보였다.
* * *
황치국은 그와 제일 코드가 잘 맞아서, 요즘도 가끔 만나고 있는 친구 김희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새끼가 뭔 일로....”
하지만 오늘 나갈 수 없는 처지의 그는, 아예 김희준의 전화를 씹었다. 그랬더니 얼마 안가서 녀석에게서 문자가 왔다.
[치국아. 내 전화 좀 받아. 꼭 할 말이 있어서 그러니까.]
“할 말?”
그게 뭔지 궁금했고 그래서 황치국은 다시 걸려 온 김희준의 전화를 받았다.
“할 말이 뭐냐?”
=그, 그게....너 내일 시간 있어?
“없는데.”
=아니. 시간이 왜 없어? 너 참 연예기획사에 다닐 거라며?
“그 동안 잘 다녔지. 근데 어제 관 뒀다. 씨발 좆 같아서.”
=그러니까 날 만나야지. 내가 잘 아는 연예기획사가 있으니 거기 너 넣어 줄게.
“괜찮아. 이제 회사 다니기도 귀찮다. 그 말 하려고 지금 나한테 전화 한 거야?”
=당연히 아니지. 괜찮은 게 들어와서 말이지.
“괜찮은 거?”
황치국은 김희준이 말한 괜찮을 거란 게, 바로 마약을 일컫는 말임을 잘 알았다.
=어. 너도 들어는 봤을 거야. 고농축 액상 대마, 대마 카트리지라고 말이야.
“헉! 그건 아무나 못 구하는 거잖아?”
=새끼. 알고 있네. 그거 해외 나가 있는 재벌 3세들 아니면 구경도 못하는 거야. 그래서 ‘G, P, S’로 불리고 있지.
“나도 알아. Global, Price&Post, Social media를 줄인 말이잖아.”
최근 해외유학 나간 재벌 3세들은 너무 쉽게 마약을 접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주로 고가의 액상 대마를 선호하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판매책, 공급책과 연락을 취하며 단속망을 교묘히 피해나가고 있었다.
이런 수법이 이제는 일반인에까지 퍼질 기미를 보이고 있었던 것.
마약을 하고 있었던 황치국은 이런 쪽 정보에 밝았다 .
=야. 나도 엊그제 액상 대마를 맞아 봤는데 죽이더라.
“그, 그래?”
=당연하지. 그거 대마 환각 성분을 농축한 거잖아. 너도 들어는 봤지? 미국 워싱턴, 오레곤, 콜로라도 등 10개 주(州)에서 작년부터, 대마가 오락용으로 합법화 된 거 말이야. 그 뒤부터 대마가 투약이 편한 액상 전자담배나 쿠키와 젤리 같은 형태로, 2차 가공돼 유통되고 있는데 그걸 이 형님이 구했다는 거 아니냐.
“그, 그걸 지금 가지고 있다고? 너 지금 어디야?”
황치국은 김희준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장 그를 만날 용의가 있었다.
=워워. 진정해. 내일 점심 때 너희 집 앞에 갈 테니까, 그때 잠깐 나와서 받아가.
“돈은 얼마나 준비 해?”
=너 '액상 대마'가 유럽에서 재배된 최고급 대마로 만들어 고가(高價)라는 건 알지?
“알아. 1g당 시가 15만 원 정도한다며?”
=새끼. 모르는 게 없네. 맞아. 한 달 치 필 거 가져 갈 테니까 천만 원 준비해.
“야! 한 달 치가 뭐야? 석 달 치는 줘야지.”
=거래 원투 데이 하냐? 한 번 해 보고 늘려야지. 나야 널 믿지만 내 공급 책은 널 뭘 믿고?
“알았어. 대신 내일 좀 빨리 와.”
=빨리?
“점심 때는 무슨 그 전에....아침에 오라고.”
=알았어. 봐서 최대한 일찍, 뭐 오전 중에 가도록 해 볼게.
황치국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 액상대마를 피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후에 온다는 김희준을 오전에 오게 만들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따라 놓은 양주잔을 단숨에 비웠다.
“크으으....”
그러자 잠시 뒤 머리가 빙 돌았고, 히죽 거리던 황치국은 취해서 소파에 옆으로 꼬꾸라졌다.
* * *
김희준이 황치국을 내일 오후가 아닌 오전에 집 밖으로 불러내기로 하자, 악마가 기뻐하며 엄지를 세워 보였다.
“좋았어.”
악마는 김희준의 손과 발에 마취주사를 다시 놔 주고, 좀 전 황치국에게 언급했었던 그 액상 대마 카트리지를, 전자담배에 끼워 김희준의 입에 물려주었다.
“그거 좀 빨다가 잠 오면 자. 배고프면 말하고.”
“네. 고맙습니다.”
김희준은 허겁지겁 담배를 피웠고, 이내 고통에 쩔어 있던 얼굴이 환희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흡족하게 웃던 악마가 김희준을 두고, 잠깐 승합차에서 내려서 어딘가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승합차 운전석에서 한 사람이 내리더니 그를 보고 말했다.
“성욱아. 들어보니 얼추 다 된 거 같던데?”
“안 그래도 좀 전에 의뢰인한테 연락 했어요. 내일 오전에 황치국이 집 밖으로 불러 낼 수 있을 거 같다고.”
“뭐 빨리 끝내면 좋지. 내일 일 끝내면 미국 갈 거지?”
“네 뭐.... 안 그래도 액상대마도 다 떨어졌고. 또 애들도 보고 싶기도 하고.”
“마누라 보고 싶은 건 왜 빼?”
“그건 당연한 거잖아요.”
“이번에 가면 한 달 쯤 있다가 오자.”
“그래도 됩니까?”
“규호네 애도 이번에 미국 유학 가야 할 거 같다네. 너처럼 미국 현지에 살 집도 구하고, 학교 별 학사일정도 따지고 하다보면, 한 달 금방 지나간다.”
“형님은 좋겠습니다. 재현이 이번에 하버드 졸업하잖습니까?”
“하아. 졸업하면 뭐하냐? 직장 구하면 살 집 장만해 줘야하는 데, 그 돈은 또 어디서 구하고?”
“이일 열심히 하면 되죠.”
“그래. 열심히 하면 되겠지.”
김희준에게는 악마인 사람도 알고 보니, 자식의 유학을 위해 자신은 국내에 남아있고, 자식과 아내를 해외에 보낸 뒤, 자신은 돈을 벌어 해외로 보내는 기러기 아빠였다.
그의 이름은 바로 이성욱.
대한민국 최대 로펌 ‘월드’의 대표인 이상범이 단골로 이용 중인, 처리자 에이전시에 속한 3명의 처리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얘기 중에 이성욱만 기러기 아빠가 아닌 거 같았다.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같은 처리자 소속의 유지태도, 이미 오래 전부터 기러기 아빠였고, 그 동료 전규호도 이제 막 기러기 아빠가 되려 하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일이란, 처리자로서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악역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업業 이었다.
말이 좋아 처리자지, 자신들이 인간 백정이란 걸 두 사람 다 알았다.
하지만 그들도 살기 위해서 이일을 하고 있었고, 실패란 곧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잃는 다는 걸 알기에, 절대 방심하지 않고 신중하게 이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규호는 언제 온답니까?”
“10분 전에 저 앞 여고 맞은편에 있는 X도날드 드라이브스루라고 했었으니까. 얼추 올 때가 됐는데?”
그때였다. 그들 승합차가 서 있는 곳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