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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삼명가 본가 저택을 나서며 내 입이 저절로 투덜거렸다.
“아침 먹은 게 다 얹힐 뻔 했네.”
만약 내가 어제 경일건설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는가?
삼명건설이라는 독뚜꺼비를 받아 자칫 골로 갈 뻔했다.
지금 나는 백준경과 백준호와 싸울 수 있는 체급이 아니었다.
물론 돈으로 붙는다면 내가 이기겠지만, 나는 인적 인프라가 너무 부족했다.
둘이 작정하고 날 죽이려 들면, 못 죽일 것도 없단 소리다.
한데 삼명家의 늙은 능구렁이가 자꾸만, 날 백준경과 백준호가 있는 독사 굴로 밀어 넣고 있었다.
무슨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런가 싶을 지경이다.
“진짜 미치겠네. 싫다는 데 왜 자꾸....”
내가 답답해하며 대문을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문대식과 내 경호팀이 바쁘게 움직였다.
아마 내가 나오기 전까지 열심히 노가리 까고 있었겠지.
“어떻게 됐어?”
내가 차에 타기 전 문대식에게 묻자 그가 바로 대답했다.
“방통위 위원장과 9시 30분에 미팅 잡았습니다.”
“좋아.”
나는 흡족해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9시 5분.
내가 손목시계를 보자, 옆에 문대식이 바로 말했다.
“지금 출발하셔야 합니다.”
아마도 약속 장소까지 차로 20분 이상 걸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차에 탑승했다. 이내 나를 실은 차가 출발했고, 이동 중 김 비서가 보낸 정민지 경호팀원에 대한 뒷조사 파일을 메시지로 받았다.
하지만 딱히 당장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보다 오늘 오전에 내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만으로도, 이미 골머리가 아팠으니까.
대신 내가 챙겨야 할 일 하나가 생각났다. 나는 핸드폰에서 우리 회사 M&A팀의 채수민 팀장의 연락처를 찾아서, 그녀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내가 어제 말한 MS엔터 주식 3.5% 양도 받는 거 말인데.”
=안 그래도 삼명자동차 본사로 바로 갈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어어. 그렇게 해. 거기 가면 이동철 본부장이라고....”
나는 오늘 아침 식사 전에, 나 다음으로 빨리 본가를 찾은 백준경과, 어제 얘기를 끝낸 MS엔터 주식 3.5%를 내가 넘겨받는 데 대한 세부적인 얘기를 다 끝냈다.
아마 미리 얘기를 해 두지 않았다면, 백 회장 때문에 제대로 열 받은 백준경이 순순히 그 주식을 내 놓지 않으려 했겠지.
아미 지금 두 형은 내 욕을 엄청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백준경은 백준호에 이어서 나까지, 자기 경쟁자로 급부상한 지금의 상황이 상당히 탐탁지 않을 것이고.
뭐 그래도 이미 약속한 MS엔터 주식 3.5%는 내 줄 것이다.
채수민 팀장에게 백준경 쪽 실무자를 알려준 뒤, 통화를 끝낸 내게 처리자 에이전시의 김훈 대표의 전화가 바로 걸려왔다. 나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말씀하신 특급 호텔의 로열스위트룸에서 남녀 시신을 확보했습니다.
“네? 남녀요?”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신원은....남자는 35세로 이름은 이제동. 전과 있는 깡패고, 여자는 20세로 이름이....나미혜....울산에서 상경해서....
“잠깐! 여자 이름이 뭐라고요?”
=나미혜입니다. 혹시 아시는....
“아뇨. 모르는 여잡니다. 계속 얘기 하시죠.”
=네. 둘 다 직접적인 사인은 총격 때문입니다. 남자는 허벅지와 옆구리, 그리고 가슴에 순차적으로 총을 맞고 즉사했고. 여자는 이마에 한 방, 원 샷 원 킬로 죽었습니다. 이건 뭐 볼 것도 없이 전문 킬러의 소행입니다.
“전문 킬러요?”
=네. 총알이 러시아제인걸로 봐서 러시아 쪽 킬러 같습니다.
“그 킬러 찾을 수 있습니까?”
=호텔 측의 도움만 받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그건 내가 해결해 주도록 할 테니 그 킬러 찾으세요. 아니 잡아 오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김훈 대표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측에 전화를 걸었다.
삼명家의 자제인 내가, 호텔 측의 협조를 받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 * *
나미혜는 설마 이제동이 문까지 걸어 잠글 줄 몰랐다.
“쳇....”
이런 특급 호텔을, 그것도 로열스위트룸을 쓸 정도면 이제동이 말한, 그 아는 사람은 분명 엄청나게 대단한, 최상류층 사람이었다.
그런 최상류층 사람을 아는 이제동이 나미혜는 관심이 생겼다.
더불어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여겼다.
“이대로 인생 끝나나 했는데....역시 죽으란 법은 없네.”
자신이 인신매매조직에 자기 몸을 저당 잡혔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미혜는 절망해서 이번 삶을 체념할까 까지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런 조직은 결코 순순히 그녀를 놔 줄 리가 없었으니까.
아마 그녀가 죽기 전까지 그녀를 쥐어 짜 낼 테지. 마른 오징어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면서 말이다.
나미혜가 이런 악질 조직에 대해 잘 아는 건, 그녀 아버지가 강력계 형사였었기 때문이었다.
“아빠....”
만약 그녀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나미혜도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연예인을 꿈꾸던 끼 많은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아빠가 조폭들의 손에 순직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엄마가 딴 아저씨랑 재혼을 하셨다.
나미혜에게 새 아빠가 생긴 것이다. 새 아빠는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셨고 그녀에게도 잘해 주었다. 좋으신 분이셨지만 나미혜는 그 새 아빠가 싫었다. 그래서 삐뚤어졌고 결국 집을 나왔다.
그 뒤 알게 되었다. 집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말이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을 때 그녀는 이미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었다.
그녀 아빠라면 그 지경이 된 그녀를 구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 아빠는 하늘나라에 있지 이 세상에는 없었다.
“와아. 진짜 넓다”
나미혜가 살았던 집보다 10배, 아니 20배는 넓어 보이는 호텔의 스위트룸의 매력에 푹 빠진 그녀는 한 시간 넘게, 구석구석 다 구경한 후 널따란 월풀 욕조에 거품 목욕을 즐겼다.
“룰루루루....”
새벽이지만 너무 좋아서 잠도 오지 않았다. 목욕 후 가운을 걸치고 냉장고에 들어 있던 샴페인을 딴 나미혜는, 음악을 틀어 놓고 와인 잔에 따른 샴페인을 들고 춤을 췄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이런 호사를 다시 누려 보겠나?
나미혜는 비록 한숨도 자지 못하더라도, 이곳 로열스위트룸의 럭셔리함을 다 느껴 볼 생각이었다.
철컥!
그때였다. 호텔 방에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응?”
나미혜는 그 소리가 들린 현관 쪽으로 그저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피슝!
그때 시커먼 복장의 외국 남자 한 명이, 나미혜의 눈앞에 등장하더니 그녀를 향해 겨누고 있던 권총을 쐈다. 순간 나미혜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그녀의 몸이 허물어졌다.
털썩!
그녀의 몸은 잔 떨림이 있었지만, 의식은 완전히 사라졌다.
하긴 총알이 이마를 뚫고 뇌를 관통했는데, 의식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이겠지.
* * *
세르게이 폴로친. 그는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온 킬러다.
고아인 그는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출신이었다.
스페츠나츠는 개개인을 철저히 완벽한 살인기계가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엄청난 고도의 훈련을 시키는 걸로 유명한 러시아 특수부대다.
이들은 테러리스트나 러시아의 마피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집단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스페츠나츠가 수행하는 대부분의 작전은, 인질의 구출보다는 적을 제압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때문에 그들의 작전 성공 여하를 적을 제압했다는 관점에서만 판단하기 때문에 항상 희생이 컸다.
세르게이 역시 그런 작전에 다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거기서 강제 퇴역 당했다.
할 줄 아는 게 사람 죽이는 것뿐이었던 세르게이는, 자연스럽게 킬러 조직으로 흘러 들어갔고 킬러가 됐다.
그런 그를 한국에 초대한 건 태천파라는 조직이었다.
러시아에서 너무 얼굴이 알려진 세르게이는, 안 그래도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한국에서 그를 불러줬고, 가족이 없는 혼자인 그는 미련 없이 러시아를 떠났다.
하지만 그 태천파라는 조직의 보스가, 그를 부른 건 아니었다.
자신을 미스터 최라고 부르라고 한 그 자는, 마약을 다뤘고 장기매매에 무기밀매를 하는 거 같았다.
한데 자기 주위에 항상 총기를 소지한 부하들을 두었다.
그러면서 누구에게 계속 보고를 하는 걸 보면, 조직 내 2-3인자 정도 되어 보였다.
하지만 최근 주위에 조폭들의 수가 늘어나는 게, 아무래도 미스터 최가 자기 조직의 보스 자리를 노리는 거 같았다.
“뭐? 경찰특공대가....태일공방이 털어? 하아. 씨발. 그래서 배후가 누구야? 서울경찰청장? 야 이 씹 새끼야. 귀에 좆 박았냐? 사람 말을 못 알아 처먹어. 그 서울경찰청장을 움직이게 한 높으신 분이 누구냐고. 뭐? JYB엔터 대표 백준열이? 씨발좆도. 그 새끼 삼명家 막내잖아?”
미스터 최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대낮부터 대취한 그가 세르게이에게 말했다.
“세르게이 너. 사람 잘 죽이지? JYB엔터 대표 백준열이, 그 새끼 없애버려. 가. 빨리 가.”
술김에 한 말이었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바로 움직였다.
“JYB엔터 대표 백준열?”
근데 그 백준열이를 찾는 건 너무 쉬웠다. 태천파에서 이용하는 흥신소에 물어보니, 그의 행적을 생각보다 쉽게 알 수 있었다.
태천파에서 쭉 그를 주시해 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흥신소 사장이 세르게이에게 농담 삼아 말했다.
“그 녀석 보려면 내일 아침 일찍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한식당에서 기다려 보던가. 아마 술 한 잔 했으면 거기서 볼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세르게이는 아예 저녁에,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방을 잡았다.
거기서 자고 아침에 백준열이 이곳 한식당에 나타나면, 그를 제거하려고 말이다.
한데 새벽 1시쯤에 백준열이 왔단다. 그걸 세르게이가 어떻게 알았냐고?
그야 여기 호텔 프런트의 직원이 알려주었다.
흥신소 사장처럼 여기 호텔 프런트 직원들도 백준열 대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세르게이가 그를 보고 싶어 한다고 하자, 그의 행적을 알아서 그에게 소상히 알려주었던 것.
세르게이는 그 동안 많은 암살을 해 왔지만, 그가 노리는 타깃의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킬러인 그에게 친절하게 군것은 처음이었다.
세르게이는 아주 편하게 권총에 소음기를 착용시키고, 타깃인 백준열이 있는 로열스위트룸으로 향했다.
킬러라면 이런 호텔 방문 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간단히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웬 가운 걸친 여자가 그를 빤히 쳐다봤다.
세르게이는 즉시 그 여자 이마에 총탄을 박아주었다.
여자가 쓰러지며 소리가 일었지만, 그 여자가 틀어 놓은 음악 소리 때문에, 타깃이 그 소리를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세르게이는 기척을 내지 않고, 조용히 스위트룸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방문이 잠겨 있는 방을 발견했다.
그 방문에 조용히 귀를 갖다 대고 있자, 방안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세르게이가 입매를 비틀었다.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쉬웠다. 조용히 방문 따고 들어가서, 총으로 자고 있는 타깃을 쏴죽이고, 유유히 이 호텔을 빠져나가면 상황 종료다.
달칵!
철제인 현관문과 달리 나무문인 방문 따는 건 쉬워도 너무 쉬웠다.
간단히 잠긴 문을 열고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간 세르게이.
그의 눈에 남자 한 명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세르게이는 총구를 그 남자에게 겨눈 채 천천히 침대로 다가갔다.
그렇게 침대와 거리가 얼추 1미터까지 가까워 졌을 때 ,세르게이는 자고 있는 남자의 가슴에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피슝!
그때였다. 침대에 누워 있던 남자가 갑자기 침대 밑으로 몸을 굴렸다.
그로 인해 남자의 가슴에 박혔어야 할 총알이, 침대 시트와 매트리스에 구멍을 냈다.
깜짝 놀란 세르게이. 하지만 킬러답게 바로 총구를 침대에서 구른 남자를 향해 내렸는데....
팍! 피슝!
세르게이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좀 더 빨리 남자의 발차기기 세르게이의 권총을 건드렸다.
만약 세르게이가 권총에 소음기를 달지 않았다면, 그 남자의 발차기는 권총을 건드리지 못했을 것이다.
여하튼 남자의 발차기에 세르게이의 권총 방향이 틀어지면서 총알이 벽면에 박혔다.
하지만 거리가 있어 강한 발차기를 가하지 못한 탓에, 세르게이는 여전히 손에 권총을 쥐고 있었다.
파앗!
그때 세르게이의 권총을 기어코 발로 건드렸던 그 남자가, 거의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몸을 일으켜서, 세르게이를 향해 덤벼들었다.
만약 상대가 세르게이가 아닌 다른 킬러였다면, 반격을 허락했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세르게이는 노련했고, 이럴 때 가만있는 건 멍청한 짓이란 걸 잘 알았다.
파팟!
상대가 덤벼들 때 세르게이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로인해 둘 사이의 거리가 벌어졌고, 그 간격만큼 세르게이는 시간을 벌었다.
또 세르게이는 총구를 일부러 높이 들지 않았다.
그걸 드는 사이에도 시간이 흐른다는 걸 세르게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간이면 상대가 세르게이를 덮칠 수 있었다.
피슝!
“크윽!”
그래서 세르게이가 쏜 총알은 상대의 급소에 맞추지 못했다.
하지만 허벅지를 맞췄고, 그 맞은 순간 사람은 몸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건 사람인 이상 누구나 똑같았다.
피슝!
그 움츠릴 사이 세르게이의 총구가 좀 더 위로 올라왔고 발사 됐다.
그 총알은 이번에 상대 옆구리를 꿰뚫었다.
“크으으윽!”
상대의 신음소리가 더 길어졌다. 그러며 상대가 그에게 덤벼드는 대신 몸을 빼려한다.
하지만 그 뺄 시간에 세르게이의 총구가 이번에는 정확히 상대의 가슴을 겨눴다.
피슝!
“컥!”
상대로부터 비명이나 신음소리가 아닌 단말마가 울렸다.
세르게이도 총알이 상대의 가슴 한 복판을 꿰뚫는 걸 봤다.
‘끝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