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43화 (14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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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걸 아는 TVM의 백준기 대표가, 거수기인 편성국장을 내세워서 날 갈구고 있었던 것이고.

백준열 일 때나 해당 되는 얘기다.

나는 오히려 백승렬 회장 눈 밖에 나길 바라는 입장.

그러니 백준기가 아니라 백 회장의 형이나 동생들, 그러니까 내게 백부나 삼촌 되시는 분들도, 이제 막 대해도 별 상관없었다.

백준열의 기억에 그들이 그에게 뭘 잘 해 준 것은 쥐뿔도 없었으니까.

즉 인간적으로 그들에게, 내가 잘 해 줄 이유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김 비서에게 연락해서 TVM 편성국장와의 미팅은 취소하라고 해.”

“네? 하지만....”

김 비서가 미팅을 잡았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즉 그걸 내 마음대로 펑크 내 버린다는 건, 엄청난 후폭풍을 JYB엔터에서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는 소리였다.

그걸 알기에 문대식이 우려 섞인 얼굴로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내 결정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10시에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원장의 미팅도 30분 당기라고 해.”

인천 부두 가서 볼일 보고, 내친 김에 이제동과 나미혜의 원혼에 관한 미션 수행까지 어느 정도 하려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더 필요했다.

그때 내가 탄 차의 전면으로, 벌써 구기동 삼명家 본가 저택이 보였다.

순간 내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던 이제동과 나미혜에 대한 생각이 싹 지워졌다.

그만큼 저 곳 본가에서는 말 하나 행동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니 거기 들어가기 전에 마음가짐, 생각부터 싹 정리해야 했다.

“후우....”

길게 호흡을 하며, 나는 오늘 있을 본가에서의 아침 식사 자리에서, 백승렬 회장과 두 형들, 그리고 뻐꾸기 한 마리와 대면했을 때, 뭘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미리 머릿속으로 생각을 했다.

이건 백준열이 본가에 올 때 마다 하던, 공부로 치자면 예습 같은 거다.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있어서, 백준열은 그 동안 본가에서 큰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큰형과는 이제 협력 관계니 대 놓고 나를 까대지는 않을 거고, 작은 형은 미행까지 붙여서 나를 간 보고 있으니, 그쪽도 건수가 잡힐 때까지는 날 건드리지 않을 테고. 역시 뻐꾸기가 문젠가?’

뻐꾸기 문제를 백지연에게 직접적으로 해 버린 상황인지라, 이제 그녀와 나 사이는 건널 수 없는 강, 루비콘 강을 건넌 거나 진배없었다.

거기다 서지현 사모의 심기까지 제대로 건드려 놨으니, 앞으로 본가에서 지내는 게 더 힘들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빨리 이놈에 집구석과 손절해야지.’

그 생각을 하며 백승렬 회장을 머릿속에 떠올렸는데....어째 답답했다.

‘무슨 노망이라도 든 건가? 싫다니까 자꾸 들러붙고 말이야.’

백준열이 어떻게든 그에게 잘 보이려 할 때는 밀어내며 홀대 하더니, 이제 아예 내가 다 필요 없어서 부자지간의 연을 끊자고 달려드니까, 좋다고 막 퍼주는 백승렬 회장.

‘노망이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해까닥 된 건데....’

백준열의 기억도 지금의 나와 백승렬 회장 사이에서는, 딱히 도움이 될 만한 게 없었다.

그러니까 백 회장과는, 이대로 계속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언제 차가 멈췄고 또 문대식이 내려서 내 쪽 차문을 열었는지 모를 정도로, 나는 백 회장과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상당히 고심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어.”

나는 차에서 내렸고 삼명가 본가 저택의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막내 도련님.”

“최 집사.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나봐?”

“네?”

“얼굴이 평소보다 훨씬 밝아보여서.”

“그, 그래요? 별 다른 일 없는데....”

내 말에 괜히 머쓱해하며 손으로 자기 얼굴을 만지는 최 집사.

최집사의 정체에 대해서도 조만간 백 회장에게 밝혀야 할 거 같았다.

이미 알게 된 암 덩어리를 일부러 키울 필요는 없으니까.

“들어가자고.”

“네. 이쪽으로....”

나는 최 집사의 안내를 받으며 저택 현관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거실로 들어가며 최 집사에게 물었다.

“형들은?”

“아직 안 오셨습니다.”

“지연씨는?”

“네?”

“뭘 놀라고 그래? 최 집사도 알잖아?”

“....”

최 집사는 내 말에 어떡하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들었다.

하지만 최 집사가 그걸 알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바로 최 집사를 지나쳐서 곧장 거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최 집사 말대로 거실은 비어 있었다.

해서 발걸음을 주방 쪽으로 돌렸다. 그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내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김 비서다.

보나마나 오전 일정 취소 때문에 내게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거실 소파 쪽으로 걸어가며,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 * *

김 비서는 퇴근 하고도 몇 가지 일을 더 해야 했다.

그 중 하나가 내일 오전 스케줄을 짜는 거였고.

“방통위의 위원장과는 내일 꼭 만나셔야 해. 그리고 TVM의 경우도 대표님께서 기름 칠 한 번 해주실 때가 됐고.”

TVM의 경우 이번에 들어가는 드라마 한 편에, 예능 쪽으로 JYB엔터 소속 연예인들이 꽤 출연 대기 중이거나 출연 중에 있었다.

대표로 그쪽 실무 진들에게 사탕 정도는 쥐어줘야 했다. 그런데 그러려면 꼭 거쳐야 할 사람이 있었다.

“TVM 편성국장 편일수. 보나마나 대표님이 싫어하실 텐데.”

상대는 TVM의 대표인 백준기의 꼬붕으로 불리는 인물.

하지만 편일수를 거치지 않고 실무 진을 접촉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서 김 비서는 스케줄을 짜면서도 그 점을 우려해서, 최대한 점심시간에 가깝게 미팅을 잡았다.

백준열도 그렇고 편일수도 점심 식사 전에, 어째든 자기 할 말은 끝낼 테니 말이다.

“정민지에 대한 조사서는 그냥 내일 알려드리면 될 거고....”

그 외에도 백준열이 그녀에게 시킨 일은 많았다.

그 중 시급한 일만 먼저 처리하고 나서, 김 비서는 냉장고로 가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그리곤 소파에 가서 앉으며, 캔 맥주를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카아! 이 맛에 일하는 거지.”

요 며칠 김 비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편안했다.

그녀가 힘들 경우는 하나뿐이었다.

백준열이 그녀의 몸을 탐할 때. 그게 시도 때도 없다 보니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뭔 일이라도 있는지, 백준열이 회사에서 그녀와 빠구리를 요구하지 않았다.

식사는 걸러도 그 짓을 꼭 해 왔던 백준열이, 그러지 않으니 오히려 김 비서가 불안했다.

“혹시 나 말고 새로운 여자라도 생긴 건가?”

백준열에게는 여자가 많았다. 하지만 이틀 연속으로 같은 여자를 안는 건, 김 비서도 본 적이 없었다. 딱 한 여자, 바로 본인만 빼고 말이다.

만약 자기 말고 그런 여자가 백준열에게 생겼다면, 김 비서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 할 일이었다.

“제발....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여자에게는 미안했지만, 백준열의 노예 비서가 자기 말고, 또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매번 해왔던 김 비서였다.

그녀가 겪는 고초를 나눌 수 있다면, 그만큼 그녀도 견디기 수월할 테니 말이다.

“이상한 여자는 곤란한데....”

물론 혹 떼려다가 도로 혹을 붙일 수 있었다.

그 여자로 인해 백준열이 질겁이라도 하게 된다면, 김 비서를 어떡하든 더 오래 붙잡아 두려 할 테니 말이다.

그건 김 비서에게 있어서 그냥 죽으라는 소리와 같았다.

“그 여자가 누군지 알아내야 해.”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가 백준열의 뒤를 캘 수는 없었다.

“일단 며칠 더 두고 보자.”

그녀가 봤을 때 요즘 백준열은 바빴다.

그게 일적으로 바쁜 게 아니라서, 그녀가 해야 할 일도 그만큼 더 늘어 있었다.

김 비서에게 있어서 제일 편할 때가 백준열이 사업적으로 바쁠 때였다.

특히 투자나 부동산 쪽 사업에 집중할 때, 김 비서는 휴가나 마찬가지였다.

대신 박 비서가 죽어나겠지만, 그쪽으로 박 비서가 워낙 유능하니 김 비서가 신경 쓸 거 없었고.

“이제 자자.”

김 비서는 시간을 확인하고 침대로 향했다.

내일 출근해서 일하려면 충분히 자 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 김 비서.

피곤했던지 이내 잠이 들었고, 아침에 깨서 씻고 출근 준비를 할 때였다.

“네. 여보세요.”

문대식에게 전화가 와서 바로 받았다.

오늘은 목요일이고, 백준열이 아침부터 본가에 가는 날이었다.

그때 백준열은 문대식에게 오늘 오전 스케줄을 물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 전에 오늘 오전 일정을 문대식에게 문자로 보냈었다.

아마 그걸 백준열에게 얘기하자, 백준열이 무슨 피드백을 문대식에게 준 모양이었다.

그러니 문대식이 그녀에게 전화를 한 걸 테고.

=김 비서님. 대표님께서....

역시나 김 비서 생각대로였다. 하지만 문대식의 얘기를 쭉 듣던 그녀가 발끈했다.

“네? 그 스케줄을 취소해요? 왜요?”

=그, 그건 자도 잘....그리고 10시에 방통위 위원장 만나는 시간도 30분 앞으로 당겼으면 하신다고....

김 비서는 문대식과 통화 후, 자기가 짠 스케줄을 멋대로 취소하고, 조절하려는 백준열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백준열이 그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TVM 편성국장 편일수가 누군지 잘 아시잖습니까? 그를 만나지 않고 그쪽 실무 진과 접촉이 어려워요. 네. 네. 네? 하지만 그럴 경우 TVM에 저희 소속 연예인들이 불이익을 받게 될지도....네? 철, 철수요?”

백준열이 미쳤다. 연예 기획사에 있어서 방송국은 절대 갑이었다.

비록 공중파에서 종합편성 채널이긴 하지만 TVM을 상대로 JYB엔터에서 보이콧을 한다면, 다른 방송국에서 그걸 좋게 봐 줄 리 없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백준열은 TVM을 상대로 싸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여차하면 TVM에 삼명그룹 쪽 광고를 다 빼버리지 뭐.

“네?”

김 비서는 백준열의 그 말에 더 놀랐다. 여태 삼명그룹과 JYB엔터는 철저히 분리시켜 경영을 해 온 그가, TVM을 상대로 삼명그룹의 힘을 동원하겠다니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 김 비서도 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전화 한 거면 끊어. 나 밥 먹으로 가야 돼.

“네. 방통위 위원장님 만나는 건 제가 30분 앞당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

띠띠띠띠띠띠....

백준열은 전화를 끊었는데 김 비서는 그러지 못했다.

멍하니 자기 핸드폰을 귀에 대고 서서 생각에 잠겨 있는 김 비서.

지금껏 백준열의 비서로 그를 모셔 오면서, 요즘 같이 그의 생각이 도대체 뭔지 간파해 내지 못했을 때는 없었다.

백준열은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지만, 두 가지만 따지면 의외로 그 속내 파악이 쉬운 사람이었다.

그 첫 번째는 욕심이었고, 두 번째는 이기적이란 것.

근데 요즘은 그 두 가지를 따져도, 도통 백준열 대표의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아....출근해서 더 생각해 보자.”

일단 출근이 먼저였던 김 비서는 마저 준비가 끝나자, 집을 나서 출근길에 올랐다.

* * *

“아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백지연.

분명 간밤에 집에 귀가 할 때까지 멀쩡했었던 그녀였다. 기억도 잘 났고.

특히 집 앞에서 만난 고지영과의 인연은, 두통이 심한 그녀의 입가에 절로 미소를 머금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을 확인하고는 ‘후다닥’ 욕실로 뛰어 들어간 그녀는 급하게 세수만 하고, 가장 빨리 챙겨 입을 수 있는, 바지정장을 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런 그녀의 눈에 주방 앞에서 서 있는 최 집사가 보였다.

“아버지는요?”

그녀의 물음에 최 집사가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그걸 보고 안도에 한숨을 내 쉰 백지연이 주방 안에, 음식이 차려진 식탁 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그녀와 같이 백씨 성을 쓰는 남자 셋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제 아침과 달리 그녀의 등장에, 그 셋 중 하나가 먼저 그녀에게 인사말을 건네지 않았다.

바로 막내인 백준열이가 말이다.

백준열은 아예 백지연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있었다.

그걸 눈치 채지 못할 나머지 두 남자들이 아니었다.

“준열이. 너 지연이랑 싸웠냐?”

둘째 백준호가 백지연과 백준열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그때였다.

“준호야. 밥상 앞이다. 좀 조용히 해라.”

“네?”

백지연과 백준열에 관한 한, 백준호가 무슨 소리를 해도 절대 나서지 않는 게 백준경이었다. 하지만 오늘 백준경은 예전의 그 백준경이 아니었다.

“준열이랑 지연이랑 싸우던 말았던 그게 무슨 상관인데? 넌 그렇게 할 일이 없니?”

“혀, 형?”

“발정 난 개새끼도 아니고....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니....”

아주 대 놓고 백준호를 까대는 백준경. 그로 인해 백준호가 얼 타다 결국 백준열을 더 갈구지 못한 채 백승렬 회장을 맞았다.

“회장님 오십니다.”

최 집사의 말에 식탁에 앉아 있던 백준경과 백준호, 백지연과 백준열이 다들 몸을 일으켰다.

백승렬 회장은 늘 그렇듯 그를 맞기 위해 식탁에서 일어 선 자식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상석인 자기 자리에 가서 앉으며 늘 하던 말을 또 했다.

“앉아라.”

그 말에 자식들이 식탁에 다들 앉자, 숟가락을 들며 또 늘 하던 말을 똑같이 내뱉었다.

“먹자.”

그렇게 삼명家 백씨 성을 쓰는 사람들의 식사가 시작 됐다. 하지만 그 식사가 바로 중단 됐다.

“엄마?”

백씨 성을 쓰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나타 난 것이다.

그 사람의 정체는 바로 삼명家의 안주인인 서지현.

그녀를 보고 백준경과 백준호, 백준열 형제들이 다들 식탁에서 일어나려 했는데, 그걸 또 백 회장이 만류했다.

“그냥 앉아 밥 먹어.”

그리곤 들고 있던 숟가락을 도로 내려놓은 뒤, 백 회장이 몸을 돌려 서지현을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식사 중에?”

“할 말이 있어요.”

“할 말? 허어. 그 할 말은 식사 끝내고 해도....”

“식사 끝내고 언제요?”

“뭐?”

“여기 다들 바쁘잖아요? 당신만 해도 아침에 나한테 내 줄 시간 있어요?”

“....”

당연히 없었다. 식사 후 건강검진 받을 시간도 빠듯한데, 다 늙은 마누라와 뭔 얘기를 나눈단 말인가?

“거 봐요. 없잖아요. 너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 말을 하면서 서지현은, 세 아들들 중 유독 막내 백준열에게 계속해서 시선을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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