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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이힉!”
이제 남은 건 아까부터 계속 이제동을 향해 맞지도 않을 발차기를 해 대든, 조폭 녀석뿐이었다.
녀석은 이제동에 의해 동료 둘이 맥없이 쓰러지는 걸 보고, 잔뜩 겁먹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녀석에게 이제동은 지체 없이 몸을 날렸고, 녀석은 그런 이제동을 보고 이번에는 발차기가 아닌 주먹을 날렸다.
하긴 바짝 붙어오는 이제동을 발로 찰 여유가 녀석에게는 없었지만. 이제동은 고개를 숙여 가볍게 녀석의 주먹을 흘리고, 그의 턱을 향해 어퍼컷을 날렸다.
쩌억!
제대로 주먹에 걸리는 느낌이 났고, 둔탁한 소리가 동시에 일었다.
역시나 카운터펀치가 확실히 녀석의 주걱턱에 꽂히면서, 눈에 흰자위만 가득한 조폭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더니, 이내 모로 힘없이 쓰러졌다.
“꺄아아악!”
그때 놈들의 모텔 방 안에서 속옷 차림의 여자가 힐끗 고개를 내밀었다가, 쓰러져 있는 세 조폭들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제동은 그 소리에 질겁했다. 그에게는 조폭 셋을 처리하는 거 보다,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는 여자가 더 무서웠다.
“시끄럿!”
이제동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에 여자가 움찔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큰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여기서 이제동이 한 소리 더하면 엉엉 울 거 같은 여자의 얼굴에,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다가 여자에게 지시를 내렸다.
“옷 입고 나와. 빨리.”
카운터에 있는 모텔 관계자가 CCTV를 봤다면, 경찰에 신고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얼마 안 있어 경찰이 여기 올 거고, 전과자인 그가 아무리 무죄를 주장해도 경찰은 그를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이대로 혼자 튈까 하다가 여자를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이제동이 아이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 저 여자를 구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태어난 사실도 몰랐지만 자신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제동은 부성애를 느꼈다.
그러니까 저 여자에게도 아버지가 있을 텐데, 그 아버지가 이런 참담한 딸의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 아마 피를 토하지 않을까?
“젠장....”
요즘 따라 이런 식으로 생각이 많아진 이제동. 그는 그게 불만스러웠지만 그의 지시대로 옷을 챙겨 입고 모텔 방을 나오는 여자를 보고 나니, 빨리 여길 빠져 나가야 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따라 와.”
이제동은 그 여자를 데리고 모텔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고 나자, 경찰차가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리며 그들이 방금 나온 모텔로 가는 게 보였다.
“휴우....”
그걸 보고 이제동이 한숨을 내 쉴 때 그 여자가 빤히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저씨 무슨 죄졌어요?”
“뭐?”
“좀 전에 경찰차보고 한숨 내 쉬었잖아요?”
“그럼 사람을 패 놓고 튀는 마당에, 경찰차 보고 한숨을 내쉬지 웃으며 손이라도 흔들까?”
“누가 손 흔들래요? 이상한 아저씨네.”
“너 몇 살이야?”
“20살이요.”
“....”
“에이. 만으로 19살이니까 어른 맞다고요.”
이제동이 말이 없었던 건 여자가 보기보다 나이를 어리게 말해서였다.
그가 보기에 눈앞의 여자는 20대 중반이상의 나이로 보였으니까. 한데 20살이라니 좀 놀랐는데 여자의 진짜 나이는 19살이란다.
“학교는?”
“벌써 때려치웠죠.”
“그 놈들은 뭔데? 설마 성매매?”
“그건 아니고. 그걸 시키기 위해서 저를 길들이겠다고, 거기 데려 간 거예요.”
“뭐, 뭘해?”
그러니까 여자 말에 따르면 양구파는 일종의 인신매매조직으로, 가출한 여자나 빚을 진 여자를 잡아다가, 길들인다는 면목으로 조직원들이 먼저 돌림 빵을 놓게 한 후, 술집에 팔아넘기는 진짜 악질적인 놈들이었다.
그 놈들은 그뿐 아니라 통나무 조직에다가, 마약까지 손대고 있다고 여자는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는데?”
“그 새끼들이 그렇게 얘기했으니까 알죠.”
“저기로 가자.”
여자와 무작정 걷다보니 눈앞에 화려한 건물이 보였다.
그걸 보니까 이제동은 저기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여지에게 얘기했더니 그 여자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보며 말했다.
“네? 저기는 특급 호텔이잖아요?”
“그래서 뭐?”
“아저씨 돈 많아요?”
돈은 없다. 하지만 그가 모실 분은 돈이 아주 많았다.
“저기 들어가려면 선불 내야 해?”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럼 가자.”
이제동이 앞장섰고 여자는 무작정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 * *
여자 이름은 나미혜였고 울산에서 살았는데, 고2때 학교 중퇴하고 서울로 상경했단다.
그녀와 같은 처지의 여자들과 한 일 년 지냈는데, 그 여자 중 하나가 배신 때리고 자신과 그녀 친구를 지금의 양구파에 팔아먹었다고 했다.
“그 씨발 년 잡히면 가만 안 둬요.”
“그런 년이 너한테 잡히겠냐? 이 넓은 서울 바닥에서?”
“뭐 그렇긴 하죠. 하지만 또 모르잖아요. 서울도 결국 사람 사는 데니까.”
“그래. 그년 꼭 만나라.”
나미혜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특급호텔 앞까지 어떻게 오긴 왔다. 하지만 특급 호텔에 괜히 특급이 붙는 게 아니었다.
현재 이제동과 나미혜의 꼬락서니로는 특급호텔에 방을 잡는 건 둘째 치고 출입도 어려워 보였다. 입구를 호텔직원들이 지키고 서 있는 게 말이다.
“진짜 저기 가려고요?”
나미혜가 한심한 얼굴로 이제동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이제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못 들어갈 것도 없지.”
하지만 이제동은 곧장 특급 호텔 입구로 걸어가는 게 아니라,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
“뭐해요?”
그런 그를 보고 나미혜가 묻자 그가 시큰둥하니 대답했다.
“저기 들어가려면 누구의 도움이 좀 필요할 거 같아서.”
이제동이 막 그 말을 끝냈을 때였다.
지이이잉!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문자의 답신을 확인한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가자.”
“네?”
이제동은 곧장 특급 호텔 입구로 향했고 당연히 그의 겉만 보고 호텔 직원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이제동이 그 직원에게 말했다.
“여기 VVIP이신 백준열 대표님께서 불러서 왔는데?”
“아아. 그러십니까? 들어가십시오.”
이제동의 입에서 백준열의 이름이 거론 되자, 그 직원은 삽시간에 얼굴빛을 바꿨다. 그렇게 호텔 입구를 통과한 이제동과 나미혜.
이제동은 그대로 호텔 로비를 통과해서 프런트로 향했고, 그런 그의 꽁무니를 나미혜가 졸졸 뒤따라 움직였다.
“뭘 도와드릴까요?”
이번에는 프런트 직원이 이제동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제동이 앞서 입구에서처럼 말했다.
“여기 VVIP이신 백준열 대표님께서 불러서 왔는데?”
“네? 하지만 백 대표님께서는, 오늘 여기 방을 잡으시지 않으셨는데....”
그때였다. 옆에서 전화를 받던 직원이 황급히 말했다.
“백 대표님 좀 전에 체크인 하셨어.”
“아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손님 분에게 그 방 키 내 드려요.”
“알겠습니다.”
프런트 직원이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더니, 결국 이제동에게 방키를 내 주었다.
이제동은 그 방키를 챙겨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특급 호텔에서도 VVIP들만 이용할 수 있다는 로열스위트룸에 들어갔다.
“우와아아....”
나미혜는 입이 떡 벌어졌다. 이제동도 로열스위트룸의 호화로운 모습에 많이 놀라했는데, 그때 나미혜가 그에게 착 달라붙으며 말했다.
“아저씨. 나 앞으로 아저씨 여자 할래요.”
“뭐?”
“왜 싫어요? 저 정도면 아저씨한테 과분하다고요.”
“하아....”
나미혜의 말이 하도 기가차서, 이제동은 그녀와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스위트 룸 안에 방 중 하나를 선택해서, 그 방에 들어가며 아예 방문을 잠가버렸다.
쾅! 쾅!
“문 열어요.”
나미혜는 잠깐 이제동을 귀찮게 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이제동은 각 방마다 욕실과 화장실이 딸려 있는 것도 놀랐고 또 그 럭셔리함에 감탄했다.
그는 욕실에서 씻고 가운을 입은 체 침대에 누웠는데, 모텔 침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침대 위에서 몇 번 뒹굴다가, 잠시 눈을 감았는데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 * *
소시오패스 변호사 이주혁. 그는 백준열 대표로부터 황치국을 집 밖으로 끌어내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오늘 오후 일정과 내일 오전 일정을 전부 취소했다.
그랬더니 바로 한국 최대 로펌인 ‘월드’의 대표이자, 그의 아버지인 이상범에게서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이냐?
“내일까지 해야 할 일이 생겨서요.”
=그 일이란 게 백준열 대표와 관계 된 일이냐?
이상범 대표는 이주혁이 백 대표 때문에, 오전에 강남경찰서에 간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특별히 신경 써서 처리해 주거라.
“네?”
평소의 이상범 대표는 백준열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무엇보다 그가 삼명家의 막내이기 때문에, 삼명그룹 회장 자리와 거리가 먼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한데 그 입장이 어째 바뀐 거 같았다.
=어제 들어 온 삼명 본사 쪽 소식에 따르면 막내가 삼명그룹 회장 자리를 꿰찰 거 같다는 구나.
그럼 그렇지. 일에 관한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이상범 대표가, 아무 이유도 없이 백준열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라고 할 리 없었다.
“백준열이는 후계자랑 거리가 멀다면서요?”
=크음. 세상일이란 게 어디 내 뜻대로 된 다더냐? 삼명家에서 백준열의 비중이 커진 건 확실하니 당분간 신경 쓰도록 해라. 로펌에서도 적극 돕도록 하마.
“알겠어요.”
이주혁은 속으로 잘 됐다 싶었다. 이번 일에 로펌의 도움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면, 황치국 그 미친 똘아이 새끼를, 집 밖으로 끌어내는 게 더 수월해 질 테니 말이다.
부친과 통화를 끝낸 뒤 이주혁은, 황치국에 대한 좀 더 디테일한 정보를 직접 살펴봤다.
“어디보자. 음....몰래 마약을 하고 있었군. 사이코패스? 하아....술 마시면 개가 되고....여자는 수시로 갈아치우고....”
이런 상세한 정보는 이주혁이 따로 그가 잘 아는 정보망을 통해서 구해 낸 것이었다.
“이 새끼 밖으로 끌어내려면....역시 약 밖에 없겠는데....”
하지만 황치국은 마약은 해도 아직 중독까지는 아니었다. 때문에 마약 없이도 며칠 버티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이주혁은 황치국의 마약 구입 루트를 살폈다. 놀랍게도 이주혁이 이용하는 정보조직은 그런 거까지 다 파악해 놓았다.
“이러니 이용료가 비싼 거지.”
상대에 대해 아는 만큼 이쪽이 이길 확률은 높아진다. 그렇기에 이주혁은 황치국에 대해 더 치밀하게 살피고 놈의 성향을 파악하려 최대한 집중했다.
그 결과 황치국에게 몰래 마약을 공급하고 있는, 그 친구 김희준만 잘 이용하면 황치국을 집밖으로 나오게 하는 건 쉬울 거 같았다.
물론 그 김희준이란 놈을 설득하는 일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하지만 이주혁에게는 황치국에 이어서 김희준에 대한 정보 역시 있었다.
“어디보자....이 새끼는....완전 개새끼네.”
김희준에 대한 이주혁의 평가는 박하다 못해, 어쩐지 악의까지 느껴졌다.
“그래도 그렇지. 자기 여자 친구를 인신매매조직에 넘기는 건....치밀하고 영악한 놈이라 상대하기 쉽지 않겠어. 그렇다면....”
이주혁은 이런 유의 영리한 악당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 잘 알았다.
“아버지 도움을 좀 받아야겠네.”
이주혁은 지체 없이, 자기가 다니는 로펌의 대표인 자기 아버지 이상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그 사람들 좀 쓸게요.”
=그 사람들이라니?
“왜 그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 주는 자들 있잖아요?”
=....
잠시 말이 없던 이상범 대표.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죽이는 건 안 된다.
“걱정 마세요. 쓰레기 같은 놈을 잠깐 내가 필요한 도구처럼 써 먹어야 해서, 그들이 필요한 거뿐입니다.”
=그렇다면 그쪽과 연결해 주마.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다.
“네. 뭐....”
‘한 번이 두 번 되는 거고 두 번이 쭉 되는 거지 무슨....’
이주혁의 속내까지 모르는 이상범 대표. 그는 좀 있다가 그쪽에게 전화를 걸어 올 거라고 말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10분 쯤 뒤 이주혁의 핸드폰이 울렸고 이주현은 그 전화를 바로 받았다.
“네. 여보세요.”
=이주혁씨?
“그렇습니다만.”
=저희 쪽에 원하는 게 있다고 하던데?
이주혁은 전화를 받자마자 전화를 건 사람이, 부친이 일을 맡기면 잘 처리해 주는 그 사람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핸드폰을 통해 들리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변조 된 목소리였기 때문에.
“사람 하나 납치해서 잠깐 말 잘 듣는 개로 만들어 주면 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말 잘 듣는 개라....말을 참 재미있게 하시는 고객이시군. 으음. 가능은 합니다.
“그럼 당장 시작해 주십시오.”
=급한 일인가 보군요?
“네. 내일 그 말 잘 듣는 개가 당장 필요해서요.”
=이런....정말 시간이 얼마 없군요. 그 자의 신상 정보를, 지금 내가 불러 주는 메일로 보내 주십시오.
이주혁은 그쪽에서 불러주는 메일 주소를 잘 기억한 뒤, 통화를 끝내자마자 바로 김희준의 신상 정보를 그쪽으로 바로 보냈다. 그러자 그쪽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답 문자를 보내왔다.
[내일 정오에 그 말 잘 듣는 개를 만나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문자를 확인한 이주혁이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넣고 오늘 처리하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로펌 사무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