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38화 (13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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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녀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연애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일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30살의 초반의 나이에, 대기업 임원도 아니고 계열사 대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물론 아버지가 앉혀 준 자리였다. 재벌가에서 태어나지 않고서야 그 나이에 계열사 대표 자리에 오르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지금도 자부할 수 있었다. 삼명 호텔 대표로 늘 자기 몫을 다해 왔다고 말이다.

“하아....”

근데 왜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오는 걸까?

엄마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경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엄마인 서지현은 항상 말해 왔다. 삼명家의 적통은 너뿐이라고. 그러니 네가 삼명그룹의 다음 대 회장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랬는데....알고 보니 자신이 뻐꾸기란다.

“호호호호....”

그냥 웃음이 났다. 그 웃음소리를 들은 듯, 옆자리에 젊은 남자들이 힐긋거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여기는 멤버십으로 예약제로 운영 되는 최고급 술집이었다. 술값만 수천만 원이 나오는.

고로 저 젊은 남자들도 예사 집안 자제들은 아니라는 얘기.

하지만 서지현이 보기에 저들은 젖비린내 나는, 돈과 권력을 가진 집안의 철없는 애송이들에 불과했다.

“안녕하세요? 와아. 술 잘 마시네.”

그 애송이들 중 하나가 서지현 앞에 앉으며 뻘소릴 늘어놨다.

하긴 서지현이 앉아 있는 자리에 빈 양주병이 3병이나 됐다.

아까부터 그녀 혼자 그 술을 마셔 온 걸 애송이들도 다 봤다.

여자 혼자 무식하게 양주 3병을 까고 있으니, 놈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저는 대명그룹 셋짼데. 그쪽은 뭐하시는 분이세요?”

“대명그룹?”

“네. 뭐 제가 재벌가 자제답지 않게, 소탈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그런 그룹이 있어?”

“네?”

“내가 알기로 국내 50대 대기업 중에, 대명그룹이란 데는 없는데?”

“뭐, 뭐....순위는 비록 82위지만 그래도 우리 대명그룹은....”

“잠깐. 나는 재계 서열 10위 밖의 가문 사람과는, 여태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어서....”

“뭐, 뭐? 이런 씨발 년을 봤나? 누가 들으면 네년이 삼명家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음. 맞아. 나 삼명家 사람이야.”

“....”

갑자기 조용해져서 고개를 드니, 분명 그녀 앞에 앉아 있었던 놈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바로 옆자리에서, 그 놈이 같이 온 일행을 억지로 일으켜서, 도망치려는 우스꽝스런 모습이 백지연의 눈에 포착됐다.

“동작 그만!”

백지연이 일갈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소리에 놀란 옆 자리의 젊은 남자들. 그들이 일제히 황당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 볼 때였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백지연의 이어진 다음 말에, 그들은 다들 너무 놀라 입이 쩍 벌어졌으니까.

“거기서 한 걸음만 더 움직여 봐. 패가망신당하는 수 있다.”

패가망신(敗家亡身)! 말 그대로, 집안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망하게 한다는 뜻으로, 개인의 잘못이 가족에게까지 미쳐 집안을 망가뜨린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진짜 좆 된단 소리다.

그런 험악하다 못해 살벌한 소릴 막 내뱉을 수 있는 저 여자의 존재 자체가, 젊은 남자들을 두렵다 못해 공포에 몰아넣은 것이다.

“니, 니가 뭔데 우릴 패가망신 시킬 수 있단 거야?”

간혹 너무 무서우면, 미쳐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녀석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녀석이 젊은 남자들 사이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 남자의 말에 백지연이 코웃음을 치며, 좀 전 자신 앞에서 깝죽거리다 내 뺀 젊은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저 새끼한테 물어 봐.”

백지연의 말에 젊은 남자들의 시선이 백지연이 가리킨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그 남자가 창백해진 얼굴로, 친구들에게 자신도 백지연에게 들은 그 사실을 얘기했다.

“저년, 아니 저분 삼명家 사람이래.”

“뭐? 삼명家? 그 삼명그룹?”

“그, 그게 진짜야?”

순식간에 젊은 남자들의 발에 불똥이 튀었다.

화들짝 놀란 그들이 감히 백지연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할 때였다.

백지연이 그들에게 그녀가 원하는 바를 말했다.

“다들 무릎 꿇어!”

그 뒤 그 멤버십 예약제로만 운영 된다는 최고급 술집은, 회개와 용서의 장소로 돌변했다.

무릎 꿇은 채, 백지연으로부터 1시간 넘게 잔소리를 들은 젊은 남자들.

“꺼져!”

백지연의 그 말에 젊은 남자들은 절뚝거리면서도, 진짜 빠르게 술집 밖으로 튀었다.

“호호호호....”

그걸 보고 배를 잡고 웃던 백지연.

하지만 그 웃음 끝에, 그녀의 두 눈에서는 두 줄기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통쾌하게 사람들을 짓누를 수 있는, 이 권위가 어디서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맞다. 다 그녀가 삼명그룹 회장인 백승렬의 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란 게 밝혀진 이상, 그녀가 당연히 누릴 수 있었던 그 모든 기득권 역시 이제 내려놔야 만 했다.

그 사실이 너무 서글프고 가슴 아파서, 백지연은 지금 하염없이 눈물이 났던 것이다.

* * *

서울로 상경하자마자, 제대로 사고를 친 이제동.

“에이 씨....좀 참을 걸.”

후회는 언제나 이렇게 한발 씩 늦었다. 그의 삶이 후회의 점철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동은 내일 또 후회할 짓을 할 것이다. 그게 사람이고 이제동이었다.

지이이잉!

진동모드로 맞춰 둔 핸드폰이 울렸다. 이제동은 바로 확인을 했는데, 문자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뭐지?”

팝업 광고는 아니었다. 바로 확인한 이제동. 그의 눈이 번뜩였다.

“오오. 내가 서울 온 걸 아신 건가?”

이제동이 모시기로 한 그분에게서 온 문자였다.

[서울 온 걸 환영하고, 내일 오후 1시까지 JYB엔터 본사 사옥으로 오도록 해.]

JYB엔터 본사 사옥이 어딘지 모르지만, 그거야 택시타서 가자고 하면 갈 테고.

이제동은 내일 그분을 뵙기 전까지는, 더 이상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겠다 싶어서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마침 눈에 들어오는 모텔이 하나 있었다.

그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또 울렸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이번에는 문자 메시지가 아니라 누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 하지만 왠지 받아야 할 전화 같아서, 이제동은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제동씨?

“그런데요?”

=나 태천파의 양태석이요.

주로 지방에서 활동했지만, 이제동도 서울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는 전국구 조폭조직인 태천파는 알았다.

거기 보스가 양태천이고 2인자가, 그 보스 동생인 양태석이란 것도.

“우와. 높으신 분이 전화하셨네?”

뭐 상대가 그 유명한 태천파 2인자인 양태석이라고 해서, 기죽을 이제동은 아니었지만.

=사고 쳤다고 들었다.

양태석은 굳이 이제동에게 더 말을 높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제동도 양태석이 자신에게 말을 놓는 게 더 속편했고. 그래야 자기도 말을 깔 테니까.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거니까. 뭐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고.”

=백 대표님께 알리지는 않았다. 대신 좀 자중해 줬으면 하는데?

양태석이 지금 이제동에게 전화한 용건이 바로 나왔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지금 모텔 들어가니까 염려 붙들어 매.”

=조만간 보자.

그렇게 양태석과 통화를 끝낸 이제동. 그는 양태석에게서 뭔가 묵직한 느낌을 받았다.

“역시 전국구 조직의 2인자답네.”

그러면서 양태석과의 만남이 기대대는 이제동.

그는 모텔에 들어가기 전 근처 편의점에 들러서 필요한 것을 구입했다.

당연히 그 필요한 것의 90%는 술이었고 10%가 안주였다.

그렇게 양손 무겁게 술과 안주를 채운, 검은 비닐봉지를 든 이제동은 모텔로 들어갔다.

“어라?”

그런데 그 모텔은 이제동이 말로만 들었던 그 무인 모텔이었다.

물론 거기 상주하는 직원은 있었다. 그 직원의 도움으로 방을 잡은 이제동은 먼저 씻고 술판을 벌였다.

그런데 옆방에서 자꾸 자극적인 소리가 그의 귀를 거슬리게 만들었다.

모텔이니 그 짓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어야지. 한 시간 넘게 질러대는 남녀의 신음소리는,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참자. 참아.”

이제동은 더는 사고를 쳐선 안 된다며 끓어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그래서 일부러 TV소리를 높였고. 한데 그게 또 옆방의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야! TV소리 안 줄여? 너만 사냐!

말 잘했다. 여기가 자기들만 사는 곳은 아니지.

이제동이 질겅질겅 씹던 오징어 다리를 그대로 물고, 모텔 방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그의 주위로 비어 있는 소주 다섯 병과 맥주 다섯 병이 나 뒹굴고 있었다.

* * *

비록 술에 취했지만 싸움꾼 이제동이었다.

모텔 옆방에 남녀 한 쌍을 상대하는 걸 주저할 그가 아니었다.

쾅! 쾅!

“야! 나와!”

이제동이 발로 옆방 문을 걷어차며 소리치자, 안에서 온갖 욕설이 다 튀어나오더니 잠시 뒤 문이 열렸다.

“어?”

그런데 그 방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남녀 한 쌍이 보이지 않고, 남자 셋에 여자 하나가 보였다. 이게 뭔 소리이겠나? 남자 셋이서 여자 하나를....

이제동도 나쁜 놈이다. 전과도 있었고.

하지만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게, 양아치 새끼들이 힘없는 사람 괴롭히는 거다. 특히 여자와 아이를.

근데 지금 그 앞에 팬티 차림의 세 양아치들.

그들을 이제동이 왜 양아치라고 단정 지었는가 하면, 세 놈 다 몸에 문신을 하고 있어서였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그 문신이 위협으로 다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동은 아니었다.

그 문신을 이제동은 양아치들의 전유물로 여겼기 때문에.

“뭐야?”

“하아! 씨발! 지금 옆방에서 온 거야?”

“와아! 이 아저씨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양아치들은 딱 봐도 눈에 봬는 게 없어 보였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녀석들로 이제동이 보기에, 딱 조폭이 되기 직전의 양아치 새끼들이었다. 아니면 갓 조폭 새끼들이 된 놈들이던지.

조폭 하니까 생각이 났다. 아까 그가 조져 놓은 30여명의 조폭들이 말이다.

‘하아. 사고 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뒤늦게 또 후회하는 이제동. 그런 이제동의 주저함이 양아치들에게는, 그가 겁먹은 것처럼 비쳐졌다.

양아치 습성이란 게 그렇다. 강자에는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잔인한....

“저 씨발 새끼 잡아.”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잘 됐다.”

순식간에 옆방에서 팬티 차림의 세 양아치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제동은 버릇 상 그들과 거리를 벌렸다. 그게 또 놈들에게는 이제동이 겁먹고, 몸을 빼는 것으로 비쳐졌다.

“잡아!”

그래서 겁도 없이 둘이 이제동을 향해 달려들면서, 그의 팔과 상의를 잡아챘다.

일단 젊고 체구들이 좋아선지 힘들은 있었다.

하지만 싸움이란 건 힘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그 힘을 역이용하는 거지.

이제동은 놈들이 당기자 힘을 빼고 끌려갔다.

그러면서 놈들과 자연스럽게 지근거리에 이르자, 먼저 이마로 한 놈의 얼굴을 찍었다.

빡!

“아악!”

제대로 코를 찍힌 한 놈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 이제동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녀석의 안면에 잽을 날렸다.

퍽!

역시나 코에 주먹을 맞은 녀석이, 잡고 있던 이제동의 팔을 놓고 물러났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이제동의 임기응변에 양아치 둘이 당하면서, 기세 좋게 모텔 방을 나온 팬티 차림의 양아치 셋이 어리바리 해졌다.

특히 이제동에게 당한 둘은 코를 잡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이제동이 약 올리듯 말했다.

“살살 때렸는데 엄살은. 하여튼 요즘 양아치 새끼들은 근성이나 참을성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그 말에 양아치 셋이 다들 격분해서 소리쳤다.

“뭐? 양아치!”

“이 좆밥새끼가....”

“우린 양구파 조직원들이다. 양아치 따위랑 비교하지 마.”

그 중에 조직원이란 말에 이제동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냐하면 또 조폭들을 건드렸으니 말이다.

근데 또 그 모습이 세 조폭들에게, 이제동이 자신들의 진짜 정체를 알고 쫄은 것처럼 비쳐졌다.

“너 좆 된 줄 알아.”

“감히 양구파를 건드리고, 네가 무사할 성 싶으냐?”

“뭐 그 전에 우리 손에 죽어나겠지만. 야! 쳐!”

세 조폭이 다시 기세등등해져서 이제동에게 달려들었다.

‘쳐!’라고 나머지 두 조폭 동료를 부추긴, 그 조폭이 맨 앞에서 이제동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라이트 훅이었는데 동작이 너무 컸다. 이제동은 슬쩍 고개를 뒤로 빼서 그 주먹을 피했다.

그러자 바로 레프트 훅이 날아왔다. 복싱을 한 녀석 같았다.

연타 공격이 제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동은 그것 역시 슬쩍 피했다.

그러자 왼쪽에서 앞차기가 날아왔다.

다른 조폭 녀석인데 이번에는 태권도를 한 녀석 같았다.

다리가 쭉 뻗어서 제법 힘차게 날아왔다. 하지만 그걸 순순히 맞아 줄 이제동이 아니었다.

그는 날아오는 발을 손으로 툭 쳐서 옆으로 보냈다.

그 사이 정면에 조폭 녀석이 재차 주먹을 휘둘렀는데, 동료 조폭들을 믿어선지 동작이 너무 컸다.

이제동은 상체를 숙이고 곧장 그녀석의 품을 파고들었다 .

퍽! 퍽!

그리곤 녀석의 배에 한방, 이어서 그 한 방에 고개가 숙여진, 녀석의 턱에 어퍼컷 한방이 연이어 터졌다. 맞는 순간 녀석의 눈이 돌아갔다.

털썩!

그렇게 한 녀석을 쓰러트린 뒤, 이제동은 다시 그의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발차기를 피하고, 동시에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려 파고드는 조폭을 향해 무릎 차기를 가했다.

콰직!

그 무릎차기에 제대 조폭 한 놈의 턱이 걸렸다.

턱뼈가 아작 나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리며, 아래쪽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으어어어억!”

그러면서 턱의 충격이 대뇌에도 강하게 전달 된 듯, 그 조폭이 박살 난 턱을 손으로 잡은 채 벌러덩 뒤로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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