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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뭐?”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견신 시스템에게 물었다.
“「개호구」스킬이 적용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자 견신 시스템이 그에 대한 대답을 데이터화해서, 내 머릿속에 주입시켜 주었다.
“아아! 그러니까 아까 내가 서지현 사모님에게 쓴 「개호구」 스킬이 방금 먹혀들었단 거로군.”
서지현 사모님이 무슨 개호구 짓을 했는지 나는 그것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게 뭔지 견신 시스템에서도 알려주지 않았고.
하지만 그 개호구 짓으로 인해서 내가 덕을 보게 된 것 만큼은 확실했다.
“「개호구」스킬, 이거 알고보니 진짜 꿀 빠는 스킬이었잖아?”
역스킬도 쓰기에 따라서 내게 분명 도움이 될 스킬이란 게 방금 밝혀졌다.
그때 견신 시스템이 상당히 추상적인 미션을 내게 냈다.
-원혼 허정호가 금괴를 남기고 죽는 걸 억울해 합니다. 그 금괴를 찾아서 당신이 잘 쓴다면 허정호의 최애 재능, 예술적 재능을 당신은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받아드리겠습니까?[Y/N]
원혼 채설아의 의뢰 이후 미션 수행 시 그 원혼의 재능을 내가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허정호가 누구야?”
그러자 견신 시스템이 허정호에 대한 정보를 내 머릿속에 주입시켜 주었다.
“뭐? 공방 사장인데....그 공방의 가마에서 사람 시체를 처리해서 수십억의 돈을 벌어? 가만....이 인간이거....”
알고 보니 오늘 내가 서울경찰청장에게 부탁해서, 경찰특공대를 보내 소탕하게 만든, 그 태일공방의 사장이 바로 허정구였다.
“허얼....”
예술의 불꽃을 돈 버는데 써먹으며,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판 파우스트 같은 인간이었다. 당연히 그런 인간의 재능 따윈 갖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허정구가 젊은 시절, 그가 보여줬던 천부적인 도예가로서의 재능은 솔직히 탐이 났다.
“미친....”
현대 도예 영역에서 독보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쟈크 코프만(Jacques Kaufmann)의 재림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허정구는 국내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정받던 도예가였다.
그런 그가 그만, 사고로 한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그의 몰락이 시작됐다.
“쯧쯧....”
그래도 그가 도예가로서 천재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학술적인 부분에서 도예가는 굳이 천재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외면받기 시작한 그는, 산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공방을 운영하며 늙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찾아 온 유혹. 시체 한 구 처리해 주고 그가 처음 만진 돈, 2백만 원!
그 돈으로 최신 핸드폰으로 바꾼 뒤, 그의 운명도 그때부터 바뀌었다.
“쯧쯧쯧. 그렇게 시체 처리로 번 200억에 달하는 금괴를, 인천의 두부 창고에 숨겨 놓고 죽었으니 원혼이 될 만 하기도 해.”
나는 허정구의 그 억울함을 풀어주기로 했다.
돈을 어떻게 써야 잘 쓰는 건지 좀 애매하긴 했지만, 그 부분 역시 쓰다보면 견신 시스템이 알려주지 않겠나? 어떻게 써야 잘 쓰는 건지 말이다.
“좋아. 받아드리지.”
내가 미션을 수용 의지를 내비치자, 시스템이 허정구의 원혼에게서 인천 부도 어떤 창고, 어디에 금괴를 숨겨 뒀는지, 그 위치를 알아내서 내게 알려주었다.
‘허정구의 예술적 재능이라....’
나는 그게 단지 도자기 잘 만드는 데, 국한 된 재능만은 아닐 거라고 봤다.
제대로 된 도자기 하나 만드는 데는, 그만큼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법.
이전 삶에서 나는 뭘 잘 그리고, 잘 만드는 데 젬병이었다.
그래서 그런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을 그렇게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예술적 재능을, 내가 곧 가지게 될 거란 사실에 살짝 흥분이 됐다.
허정구의 미션은 거저나 마찬가지였다.
내일 인천 부두로 가서, 어느 창고 안에 숨겨져 있는 금괴를 찾아내서, 챙겨 나오기만 하면 되니까.
이게 다른 사람에게는 까다로울 수 있었다.
200억에 달하는 금괴의 양이라면 보통 사람이 들고 다니기 어렵다. 특히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눈에 띨 수 있었고.
하지만 나는 아니다. 왜냐하면 내게는 물질 아이템으로 아공간을 쓸수 있는 ‘개톤백’이 있었으니 말이다.
“당신의 재능은 내가 잘 쓰도록 하지.”
내가 그 말을 막 내 뱉었을 때, 이 집 현관 쪽에서 누가 디지털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띠띠띠띠띠띠!
* * *
부산에서 아들의 수술이 잘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제동은 그제야 어깨에 올려 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졌다.
“이걸로 아빠 노릇은 한 셈인가?”
물론 이제 와서 내가 니 아빠라며, 아버지 노릇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세상에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란 게 있다.
자신 같은 싸움꾼, 깡패 아빠는, 아이에게 바로 그 있으나 마나한 존재일 뿐이었다.
해서 이제동은 이제는 부산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가 앞으로 모시기로 한 분도 서울에 계시고 말이다.
“뭐 서울 간다고?”
이제동은 가평에서 자신과 동업자라 볼 수 있는, 박칠석에게 먼저 서울에 가겠다고 했다.
“어.”
“내일 같이 가면 되지.”
“먼저 가고 싶다.”
“왜?”
박칠석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이제동을 쳐다봤지만, 언제나 독고다이로 살아 온 그는 아무래도 우르르 무리지어 움직이는, 조폭 생활이 영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뭐 그런 점을 굳이 박칠석에게 얘기해서, 이해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이제동은 그냥 똥고집을 피웠고, 그가 그러겠다는 데 박칠석도 더 말릴 명분도 없어서, 그냥 그러라고 했다.
그랬더니 짐 싸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이제동.
“저 새끼 저거, 설마 서울 가서 바로 사고치는 거 아니겠지?”
걱정이 된 박칠석은 결국 노파심에 양태석에게 연락까지 했다.
그리고 박칠석의 그 예상은 적중했다.
“이야....완전 바뀌었네.”
10년 전 이제동이 왔었던 서울과 지금의 서울은 완전 딴 세상이었다.
딱 봐도 촌놈 티를 팍팍 풍기는 이제동.
그런 그를 호구로 보고 그를 노리는 서울의 이리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제동은 한 마리 고독한 사자였다.
퍽! 퍽! 휘릭! 빠악!
“크아아악!”
이제동의 주먹질에다가 공중 이 회전 돌려 차기에, 양아치 셋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저, 저 새끼 뭐야?”
“완전 날아다니는 데?”
강남 한 복판의 술집에서 혼자 술 한 잔 마시고 있었는데, 이제동을 건드린 겁 없는 양아치들이 수난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동의 그 싸우는 모습은 너무 눈에 띠었고, 하필 거기 술 마시러 와 있떤 어느 조폭 조직원들의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싸움판이 더 커져 버렸다.
“이 씨발....저 새끼 조져!”
“와아아아!”
결국 성북구의 조폭 조직 신구미파와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17대 1의 수준을 넘어서, 거의 30대 1의 일대 다수의 싸움이 말이다.
* * *
신구미파의 보스, 이재석은 요즘 심기가 많이 불편했다.
그의 뒤를 봐주던 서울시의원과 결별을 한데다가, 서울에서 최고 조폭 조직으로 불리는 태천파와도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에.
언제 태천파에서 그들을 조지러 올지 모르니, 이재석으로서는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그래서 애들 기도 좀 살려주고 단합도 할 겸 녀석들을 데리고 강남에 가서 오랜 만에 술판이나 벌일까 했는데, 거기서 진짜 싸움꾼을 만났다.
“너 내 밑에 들어와라.”
당연히 그 놈이 탐난 이재석은 그 싸움꾼을 자기 조직에 영입하려 했다.
“좆까!”
그랬더니 그 새끼가 겁도 없이 이재석을 도발하는 게 아닌가?
순간 이재석은 저 놈이 왜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지 알 거 같았다.
“너 독고다이 하는 놈이구나?”
저 먼 옛날에는 혼자 잘났다고 설치고 다니는 주먹이 있었다.
낭만주먹 운운하던 그 시절에 말이다.
“이래서 드라마가 사람 다 버려 놓는다니까.”
7-8년 전인가? 57.1%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야인들 시대’에서 시라소니의 활약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시라소니, 주먹으로 동양의 주먹 세계를 평정했던, 신의주 출신 협객 이성순의 별명이다.
그는 20대인 1930년대부터 ‘시라소니’라는 별명으로 조선은 물론, 중국까지 주먹 싸움으로 평정한다.
그 결과 그의 이름인 이성순보다 시라소니가 더 많이 알려지게 되는데, 그의 특징은 마치 야생의 고독한 스라소니처럼 외로이 싸우고 사는 것이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가 1983년 별세한 그를, 다시 세상으로 이끈 것은 협객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가 바로 ‘야인들 시대’였고, 드라마 이후 간혹 저 놈처럼 독고다이로 설치는 겁 없는 놈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실제 시라소니가 아닌 한, 다구리 앞에 장사는 없었다.
그게 작금 조폭계의 현실이었다.
퍽! 퍼퍽! 빠악!
“크아아악!”
신구미파 조직원은 30여명으로, 그 중 다섯이 병원 신세를 져야 할 만큼 독고다이하는 놈에게 크게 다치자, 신구미파 조직원들도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서 꺼내지 말아야 할 것까지 꺼내고 말았다.
착!
바로 신구미파 조직원 중 하나가 잭나이프의 칼날을 빼내서 이제동을 겨눈 것이다.
“지금 연장 쓰자는 거가?”
칼을 본 순간 이제동의 눈빛부터가 싹 바뀌면서 입에서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칼을 쓰면 혼자서 30-40명 쯤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닌 이제동이다.
한 마디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었다.
이제동이 사악하게 웃으며 뒤춤에 늘 숨겨서 지니고 다니던, 자신의 군용칼을 꺼냈다.
그걸 보고 신구미파의 보스인 이재석을 비롯한 조직원들은, 갑자기 오싹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 * *
그로부터 30분 뒤.
“으아아악....”
“피, 피가 안 멈춰.”
“....사, 살려줘....엄마....”
칼을 든 이제동이 설치고 난 뒤, 술집 안은 그야말로 피로 바닥이 질퍽대고, 주변은 온통 피칠 갑으로 변해 있었다.
“이 씨발....오, 오 지마.”
30명도 넘는 조직원들이 다 쓰러져 있고, 이제 술 집안에 멀쩡한 사람은 이제동과 신구미파 보스인 이재석 뿐이었다.
이재석의 눈에 이제동은 악귀 그 자체였다. 어떻게 사람이 혼자서 30명도 넘는 사람을 칼로 찌르고 벨 수 있단 말인가?
이대로라면 저 새끼 하나에 신구미파가 아작 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까지 당하면 신구미파가 완전 박살난 셈이었다.
이재석도 이제동처럼 군용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제동의 군용 칼처럼 피 범벅은 아니었다. 오히려 칼날이 번뜩일 정도로, 그의 군용칼은 깨끗했다. 그것만 봐도 누가 더 강한지 바로 티가 났다.
“그러게 왜 칼을 꺼내게 내버려뒀어? 적당히 하고 끝낼 줄도 알아야지.”
마치 훈계하듯 이재석에게 말하던 이제동. 그도 자신이 지금 뭔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빨리 튀어야 한다는 생각 중이었다.
그래서 눈앞의 조폭 두목의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빨리 여길 빠져 나가려 했다. 근데 또 다른 조폭들이 나타났다.
“와아....”
“뭐꼬 이게....”
“씨발 완전 아작을 내 놨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대뜸 이제동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제동이요?”
“어어? 뭐야. 나를 알아?”
“맞나 보네. 여긴 우리가 정리할 테니 빨리 가시오.”
“뭐?”
“경찰하고 만나고 싶은 가 보네?”
당연히 이제동도 경찰을 만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파앗!
이제동은 술집 출입구가 아닌 신구미파 보스인 이재석을 덮쳤다.
서걱!
“크아아아악!”
그리곤 자신의 군용 칼로 정확히 이재석의 왼 다리 아킬레스건을 잘랐다. 그 사이 이재석도 나름 저항을 했지만 이제동의 날랜 움직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신속히 술집을 빠져나가는 이제동을 위해, 출입구 근처에 모여 있던 조폭들이 길을 열었다.
그 길을 통해 술집 밖으로 나간 이제동이 사라지고 나자, 이 일대를 관리하는 태천파 중간 보스가 수하들에게 외쳤다.
“뭣들 넋 놓고 있어? 빨리 정리들 하지 않고.”
그 사이 앰뷸런스들이 도착했고, 거기에 신구미파 조직원들이 실려 인근 병원으로 후송 되었다.
그들 사이에 끼어 구급차에 실리던 신구미파 보스 이재석에게, 태천파 중간 보스가 다가가서 말했다.
“입 잘 놀려라.”
그게 무슨 소리겠는가? 이 일을 덮으라는 소리였다. 아니면....
곧 그에게 태천파의 사신대가 찾아갈 테고, 그도 대한민국에서 매해 수천 명씩 발생하는 실종 처리 된 사람들 중 한 명이 되겠지.
* * *
하필 오늘 동창회를 할 게 뭐란 말인가?
오늘은 그이가 집에 오는 날이다. 일주일에 딱 하루.
임연수는 자신의 소속사 대표인, 백준열과 부부지연으로 같이 살았다.
둘 사이는 좋았고 마치 신혼부부 같았다.
아나운서 출신답게 임연수는 똑똑했고, 그런 그녀와 자칭 천재 백준열은 대화가 잘 됐다.
임연수가 느끼기에 백준열은 자기중심적이긴 하지만, 이지적이고 섬세하며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녀는 그가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지, 그걸 알기에 그가 하는 모든 행동들도 다 이해가 됐다.
그렇다보니 그 앞에서 늘 진심이었고, 그게 백준열에게도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그녀와 같이 있을 때 그는 가끔 풀어진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임연수는 그런 백준열이 더 사랑스러웠다.
“많이 늦었네.”
동창회가 끝났을 때, 이미 시간은 11시였다.
동창회에 술이 빠질 수 없으니 아예 차를 집에 두고 온 임연수. 그녀는 콜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30분. 황급히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실과 주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임연수의 시선은 당연히 거실 쪽으로 향했다.
백준열이 이 집에서 가장 편하다고 한 자리. 바로 거실에 있는 1인 소파였다.
그 자리에 백준열이 푹 파묻히듯 앉아 있었다.
“저 왔어요.”
임연수가 활짝 핀 복사꽃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자, 그가 갑자기 한손을 들어 그녀가 더 이상 자기 쪽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저지했다.
임연수는 그의 손짓에 멈춰서며, 왜 저러지 하며 의아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때 백준열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곧장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그녀와 지척지간에서, 그녀와 마주보고 선 체 말했다.
“진짜 머리 작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