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27화 (12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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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래서 언제 오디션 보기로 했는데?”

“그야 내일 오전에 팀 회의에서 결정해야지.”

차은석은 그들 직원들 얘기를 계속 집중해서 들었다.

“고위 경찰 간부라? 그 고위라는 말이 붙으려면, 애 아빠가 경찰서장 정도는 되나 봐?”

“경무관이라던데?”

“뭐? 경무관이라고! 그거 군대로 치면 별, 스타나 마찬가지잖아?”

“그래선지 아까 부장님이 그 소개서를 보고....”

그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고, 그 직원들이 하던 말을 멈추고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하지만 차은석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않고, 바로 위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엘리베이터 안의 차은석은 좀 전 직원들이 탔던 5층을 버튼은 지그시 눌렀다.

여자의 촉이랄까? 아무래도 경무관 아버지를 뒀다는 그 연예인을 지망하는 아이가, 아무래도 그녀의 아픈 머리의 즉효약이 되어 줄 거 같았다.

마침 캐스팅 사업부에 마지막 남은 직원이 사무실을 나오려 하고 있었다.

“저기 잠깐....”

“네?”

“난 특수 1부문장 차은석이라고 하는데. 그쪽은?”

자기보다 한참 어려 보여서 차은석은 조심스럽게 말을 놓으며, 그 캐스팅 사업부 직원으로 보이는 여직원에게 물었다.

“저는 캐스팅 사업부 유미영 대리입니다만.”

“아아. 참고로 특수 부문장의 직급은 상무야.”

“네?”

“그러니까 내가 상무라고.”

상무 직위면 캐스팅 사업부의 부장보다 높다.

즉 차은석이 까라면 유미영 대리는 무조건 까야 한다는 얘기다.

“할 얘기가 있는데 안으로 들어갈까?”

“네. 상무님.”

차은석은 유미영 대리를 데리고, 캐스팅 사업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그녀에게 오늘 들어 온 신인 소개서를 다 가져 오라고 했다.

“여기 있네.”

뭐 오래 찾을 것도 없었다. 유미영 대리가 가져 온 서류 중에서, 제일 위에 정민수라는 아이의 소개서가 있었으니까.

“어머니 이름이 고미나, 아버지 이름은....정재욱!”

정민수란 아이의 아빠 이름이 정재욱임을 확인한 순간, 차은석의 얼굴이 활짝 폈다.

아무것도 없었던 차은석에게도, 이제 정재욱과 비벼 볼 만한 무기가 생겼다.

그 무기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지금부터 천천히 생각해 볼 일이었다.

“상무님. 저 시간이....”

“아아. 미안. 퇴근합시다.”

차은석은 원래 원본 소개서는 캐스팅 사업부에 두고, 자신은 복사 본을 챙겨 들고 캐스팅 사업부를 나섰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아닙니다. 상무님을 도울 수 있어 저도 좋았어요.”

“이건 택시비니까 받아요.”

“아니에요. 저 지하철 타고 다녀요.”

유미영 대리는 끝까지 차은석이 준 택시비를 거절했다. 그래서 차은석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 회사 근처에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까요?”

“정말요? 저야 좋죠. 저 혼자 살거든요.”

“나도 마찬가진데. 잘 됐네. 같이 식사하고 집에 갑시다.”

“좋죠.”

차은석은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젊은 여직원과 같이, JYB엔터 근처에 파스타 잘하는 집으로 가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 * *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고 JYB엔터를 나선 백준열과 달리, 양태석은 퇴근 한 시간 전에 먼저 JYB엔터를 나왔다.

“형님!”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태천파 조직원들. 그들이 주위 시선 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양태석 앞에 허리를 굽혔다.

“준호한테 가자.”

양태석은 대기 중인 차에 오르며, 운전석을 향해 바로 목적지를 말했다.

그 뒤 그는 바로 정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형님.

“어디냐?”

=사당동에 제 사무실인데요?

“지금 그리로 간다. 대명이하고는 연락 됐나?”

=네. 좀 전에 호텔에서 나와서, 자기 나와바리로 간다고 하던데요?

“차 돌려서 네 사무실로 오라고 해. 할 말이 있다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정준호와 통화 후, 생각할 게 좀 있는 지 양태석이 팔짱을 낀 체 눈을 감았다.

양태석을 태운 차는, 그대로 동작구 사당동의 남성역 근처, 10층짜리 건물 앞에 멈췄다.

양태석은 조직의 수하가 차 문을 열어주기 전에, 먼저 차문을 열고 내려서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 5층에 정준호의 태천파 조직 사무실이 있었는데, 간판 이름은 상당히 그럴싸했다.

“태석기획! 그 참....”

볼 때마다 양태석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상호였다.

하지만 저 이름도 오늘부로 끝이었다.

왜냐하면 백준열 대표로부터, 그들이 새로 세울 용역 회사 이름을 받아 왔으니 말이다.

“형님! 오셨습니까?”

사무실에 들어가자 청소 중이었던가? 정준호가 자기 밑에 수하들과 같이 있다 먼저 말했고, 뒤따라 그 수하들이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녀석들 인사 받을 여유까지는 없었던지 양태석이 말했다.

“네 방으로 가자.”

“네. 이쪽으로....”

그래도 자기 방은 먼저 치워 뒀는지, 정준호가 양태석의 태석기획 대표실로 안내했다.

양태석은 대표실에 들어가자, 알아서 상석 자리에 앉았고 정준호는 그의 오른 쪽 편 소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러자 양태석이 바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 정준호를 보고 말했다.

“준호야. 백 대표님이 허락하셨다.”

“잘 됐네요.”

“그래. 잘 됐지. 그리고 너 밖에 간판 떼.”

“네?”

“백 대표님한테 용역 회사 이름도 같이 받아왔다.”

근데 양태석의 그 말에 정준호가 불만인 듯 시무룩하니 대답했다.

“아네....”

“앞으로 우리가 키워갈 용역 회사이름은 ‘대붕기획’이다.”

“푸웃! 우웁....”

뭐가 웃긴지 정준호가 아주 입을 틀어막은 채, 얼굴이 시뻘게져서 연신 컥컥 거렸다.

“왜? 이름이 이상해?”

“크읍....후아아....이상하죠. 누가 요즘 회사 이름을 그렇게 지어요?”

“그래? 안 그래도 백 대표님이 그 이름은 이상할 수 있으니까, 영어로 뭐라고 하시며 그걸 쓰라고 하시긴 했어.”

“네?”

“대붕기획! 얼마나 멋지냐? 대붕(大鵬)은 상상의 큰 새잖아. 북극 바다의 곤(鯤)이란 큰 고기가 변신해서 되는 새로, 날개를 펴면 구름과 같고 태풍이 불어야 남극 바다 천지(天池)로 가는데, 물결을 3천 리나 튀게 하고 9만 리를 올라가며 6개월을 날아야 쉰다잖아. 이 얼마나 웅장하고 거룩한 새냐?”

“네에. 뭐....근데 백 대표님이 그 대붕을 영어로 뭐라고 하시던데요?”

“루크? 아니다. 아아. 로크(Roc)라고 했지 참.”

“로크요? 어디 보자. 용역회사가 영어로 서비스 컴퍼니(Service company)니까. 로크 S.C라고 하면 되겠네요.”

“어어. 맞아. 백 대표님이 로크 S.C라고 하면 될 걸랬어. 이야. 역시 준호 넌 똑똑해.”

“하하하하. 뭘요.”

정준호가 제일 좋아하는 칭찬이 똑똑하다는 거다.

그걸 아직 잊지 않고 있었던 양태석은, 정준호가 좋아서 손사래를 칠 때까지 계속 그를 칭찬해 주었다.

“아이. 참. 이제 그만 하십시오.”

“그래. 상호는 그렇게 정하고 대명이는?”

“오고 있습니다. 거리상으로 봐서 지금쯤 올 때가....”

그때 대표실 밖이 잠깐 시끌벅적해지더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저 왔습니다.”

대표실 밖에서 손대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네요.”

“들어 와.”

양태석이 크게 소리치자, 그 소리를 들은 손대명이 바로 문을 열고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 * *

정준호로부터 손대명이 점심을 시켜 놓고도, 호텔 방에서 룸빵 호스티스와 그 짓을 했다는 말에, 양태석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너 진짜 물개냐?”

“뭐요? 저 사람이거든요. 여자랑 한 번 하면 7번은 기본 아닙니까?”

양태석의 물음에 버럭 화를 내는 손대명. 그런 그에게 바로 태클 거는 정준호.

“누가 그래? 그게 기본이라고?”

“아닌가?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너니까 그러고 사는 거지. 나는 섹스도 일주일에 많아야 두 번한다.”

“뭐? 너 섹스리스냐?”

“하아. 너 섹스리스가 무슨 소린지는 알고 하는 말이야?”

“허얼. 나를 바보로 아나? 섹스. 빠구리, 리스! 빌려주는 데. 섹스리스. 섹스 빌려주는 거잖아?”

손대명의 기똥찬 대답에, 정준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양태석은 아리송한 얼굴로 손대명과 정준호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면 그렇지. 야이 무식한 놈아. 좀 전에 니가 말한 리스는 Lease고, 섹스리스(Sexless)할 때 리스는 Less, 뭐가 없다는 뜻의 접미사잖아.”

“에이 씨. 또 어려운 말 쓰네. 접미사는 또 뭐래?”

자신의 무식함이 탄로 날 때면, 성질을 부리는 손대명.

여기서 저 둘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자자. 그만. 대명이는 그만 앉고, 준호는 손님 왔는데 커피라도 내 와.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명이 너는?”

“저는 쌍화차로 마시겠습니다.”

“그냥 대추차 먹어.”

“쌍화차!”

“야이 씨....”

“대명아. 여기 쌍화차 없나보다. 그냥 대추차 먹어라.”

“네. 형님.”

그렇게 정준호를 차 타 오라며 억지로 대표실 밖으로 쫓아내고 나자, 사무실 안이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조용해졌다. 그러자 양태석이 바로 얘기에 들어갔다.

“대명아. 너희 사신대 말인데, 지금 1대와 2대로 나뉘어져 있다고 했지?”

“네. 엄기풍이라고, 2대를 꽉 잡고 있는 놈이 있는데. 만 만 한 놈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태 상대해 온 놈들 치고, 언제는 만 만 한 놈이 있었냐?”

“그건 또 그러네요. 왜요? 2대까지 다 필요합니까?”

“사신대야 온전하면 좋지. 엄기풍이 그놈만 따면 2대 흡수하는 건 네 손으로 가능한 거지?”

“가능이야 하죠. 문제는 그 엄기풍이 따기가 영....”

손대명이 이렇게 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만큼 엄기풍이란 놈이 보통 놈이 아니란 얘기였는데, 더불어 포섭도 어려운 반골 녀석이란 얘기였다.

얘기가 통할 놈 같아서면, 손대명이가 벌써 양태석에게 말했다. 엄기풍이도 같이 하자고 말이다.

“뭐 영 어려우면, 처리자 에이전시를 쓰도록 하지 뭐.”

“오오! 거기 드디어 우리도 써 보는 겁니까?”

처리자 에이전시 말이 나오자, 손대명이 급 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손대명은 모르고 있었다. 현재 한국 내에서 처리자 에이전시들이 가장 많이 죽이고 있는 자들이, 바로 조폭들이란 걸 말이다.

이용자, 즉 의뢰자는 주로 권력자와 재벌들이고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겠는가? 조폭들을 개처럼 부리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처리자 에이전시를 이용해서 조용히, 흔적도 없이 정리해 버린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 년 뒤에 처리자 에이전시가, 양태석도 그렇고 손대명도 조용히 처리해 버릴 수 있다, 뭐 그런 소리다.

손대명과 양태석이 대충 얘기를 끝났을 때, 정준호가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대추차를 들고 대표실로 돌아왔다.

“드십시오. 너는 처먹고.”

“야이씨....”

정준호는 들어오자마자 손대명에게 시비를 걸었다.

양태천은 이 견원지간인 둘과 한 공간에 더 있기 힘들다 싶었던지, 바로 다음 얘기로 넘어갔다.

“전경일이 끼고 돈 신구미파 있지?”

“네. 안 그래도 거기, 요즘 분위기 뒤숭숭 하던데요.”

“왜요? 그 새끼들 조져야 합니까?”

조직 운영과 관리는 정준호가 뛰어나지만, 역시 조폭으로서의 감은 손대명이 뛰어났다.

“어어. 백 대표님이 그러시더군. 뒤끝이 깨끗하지 못하면 언제고 꼭 뒤탈이 생긴다고 말이야.”

“뭐 알겠습니다. 거긴 저희 사신대로 쓸어버리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가능해?”

“당연하죠. 어느 선까지 조져 놓습니까?”

“보스와 그 밑에 대가리 몇은 확실히 조지고, 나머지 똘마니들은 흩어버려.”

“Yes!”

손대명의 입에서 저 Yes란 말이 나오고, 다음 날 실패 했단 말은 여태 들어 본 적이 없는 양태석이었다.

그래서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바로 정준호에게 오늘 접촉하기로 한 태천파 간부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그 사이 대추차 한 잔을 다 비운 손대명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형님 저는 일 처리하러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 해.”

손대명이 대표실을 나가고 30여분 뒤,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던 양태천과 정준호가 나란히 대표실을 나왔다.

“잘하면 이번 주 중에 터질 수 있어. 그러니 오늘 내일 사이 우리가 포섭해야 할 자들은 다 만나야 해.”

“걱정 마십시오. 오늘 대충 끝낼 생각이니까. 뭐 오늘 안 되는 인간들은 내일 접촉해보고요.”

그 말은 오늘 주요한 자들은 다 만날 예정이란 얘기였다.

내일 만날 자들이야 쭉정이란 얘기고. 한마디로 오늘이 중요했다.

그래선지 평소와 달리 양태석이 비장해보였다.

“가자.”

양태천은 정준호가 추천한 태천파에서 반드시 데려 나와야 할, 조직의 중간간부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오늘은 에이미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아마 한 빠구리 한 뒤에, 임연수의 집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사이 일정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고.

나는 내 소유의 신림동 원룸 건물 앞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내가 집, 그러니까 내 여자들과 같이 사는 퇴근해서 다시 안 나오는 집, 오늘의 경우는 임연수의 집에 들어가야만, 그들의 경호가 끝나기 때문에, 내 경호팀은 내가 신림동 원룸 건물의 내 집에서 나오기 전까지, 계속 그 주위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들이 뭘 할지는 어차피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내 경호팀의 실장은 문대식이고, 그가 경호팀의 실권자니까.

‘뭐 보나마나 저녁들 먹고 차 안에서 쉬겠지.’

그 생각을 하며 나는 내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평소라면 바로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갔을 집이지만, 지금은 안에 누가 있으니 내가 왔다는 걸 알리는 차원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게 맞았다.

딩동댕! 딩동댕! 딩동댕!

초인종 소리가 안에서 시끄럽게 울렸다. 그리곤 현관으로 달려오는 에이미의 발걸음 소리도 들리고. 그때 나는 잠깐 딴 생각 중이었다.

‘에이. 설마 저녁에도 삼계탕을 먹지는 않겠지.’

그 생각은 문이 열리면서 튀어나온 에이미를 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싹 지워졌다.

“마초맨!”

뭘 그리 보고 싶었다고 그녀가 격하게 날 끌어안더니, 선빵을 날렸다. 입술로 말이다.

“우웁....츠르릅....쩌업....쩝쩝....”

집 밖에서 에이미를 안은 채, 겁나 찐한 키스로 먼저 서로의 사랑을 확인 한 후,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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