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26화 (12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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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JYB엔터의 배운철 상무.

평소 그라면 지금 이 시간에 회사 근처에 있는 단골 전용 BAR에서, 고상하게 혼술을 하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는, 초라하게 그가 사는 동네 꼬치구이 프렌차이즈 점에서, 생맥주 500CC를 시켜 놓고 노가리를 안주 삼아 한잔 중이었다.

그가 단골 전용 BAR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제 더 이상 회사 법인카드를 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오늘 잘렸거든.

누가 그랬던가? 당신은 하루아침에 잘릴 수 있다고.

모 항공 부사장의 그 폭언이, 그에게 이렇게 현실로 닥쳐 올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허어....”

그나마 퇴직금은 건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JYB엔터에서 그 동안 쌓아 온 인맥은 제대로 아작이나 버렸다.

“쳇....”

어쩔 수 없었다. 침몰하는 배에 다 같이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무엇보다 그들을 책임 질수도 없는 마당에, 그들을 구해 낸들 무슨 소용이겠나?

괜히 구해주고 욕먹을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구해주지 않고 욕먹기로 한 건데, 그 파장이 어째 만만찮을 거 같았다.

“에이 씨....”

그 생각에 열이 치밀어 오른 배운철은 벌컥벌컥 맥주잔을 비웠다.

“여기 한 잔 더요.”

그리곤 500CC 생맥주 한잔을 더 시킨 뒤 핸드폰을 꺼냈다.

“내가 회사 관두면, 바로 사업 자금 10억을 내 계좌로 꽂아주겠다고 했겠다?”

물론 황치국의 그 말을 100% 믿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말은 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이왕지사 회사를 관둔 마당에 말이다.

배운철은 황치국의 바뀐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진짜 통화 연결 음이 세 번을 넘기지 않고, 황치국의 그의 전화를 받았다.

=네. 배 상무님.

“진짜 제 전화를 재깍 받으시네요?”

=하하하하.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한데 이 시간에 어쩐 일로?

황치국도 JYB엔터에 다녔다고, 거기 퇴근 시간은 잘 알고 있었다.

“오늘 하신 말씀 중에 제가 회사 관두면, 바로 사업 지원금으로 10억을 제 계좌로 보내 주시겠다고 하신 거, 생각나십니까?”

=당연히 나죠. 제 입으로 한 말인데.

“만약 제가 오늘 회사에 사표를 냈다면, 그 돈 지금 넣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황치국이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배운철이 될 대로 되라 싶어 그냥 뱉었다.

“저 오는 사표 썼습니다.”

=....

황치국은 많이 놀란 듯,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배운철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술김에, 아니 홧김에, 더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덜컥 내지른 거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한 짓은 잘한 짓이었다.

=제가 잘 믿기지 않아서....알아보고 연락 드려도 될까요?

“네. 뭐 그러시던 지요.”

그렇게 황치국이 전화를 끊고, 배운철은 막 나온 차가운 500CC 생맥주를 한 잔을 쭉 들이켰다.

“카아....좋다.”

내 돈 내고 내가 마시니, 싸구려 생맥주도 맛이 확연히 달랐다.

배운철이 생맥주 한 잔을 다 마시고, 노가리 안주도 얼추 다 먹어 갈 때 쯤, 황치국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에.”

배운철은 느긋하게 그 전화를 받았다. 반대로 황치국은 목소리부터 흥분해 한껏 들떠 있었다.

=진짜 관두셨더군요.

“그럼 장난으로 회사 사표 내는 사람도 있습니까?”

=하하하하. 약속을 지키셨으니, 이제 제가 약속을 지킬 차례네요. 계좌번호 불러 보십시오.

황치국의 말에 배운철은 그냥 술김에 자기 계좌번호를 술술 불러줬다.

=지금 바로 10억 쏘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배운철이 잠깐 화장실 다녀 온 사이, 그의 핸드폰에 황치국의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10억 보냈습니다. 초기 사업자금으로 쓰시고, 회사 차려지거든 저한테 연락 주십시오.]

그 문자를 보고 배운철은 자기 계좌를 확인했다.

“어라? 진짜 돈 들어왔네. 어디보자. 일, 십, 백....천만, 억, 십억?”

배운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듭 자기 계좌에 들어 온 거액 10억을 확인한 배운철이 외쳤다.

“심봤다!”

* * *

하루 종일 집에만 갇혀 있으니 황치국은 미칠 지경이었다.

“으아아아. 씨발....”

하지만 개새끼 백준열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그의 광기도 이내 시들해졌다.

황치국이 아무리 사이코패스라도 목숨은 하나였다.

오히려 이런 유의 인격 장애자들이 더 자기 목숨에 집착하는 법이다.

“하아. 미치겠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 모양이면 앞으로 며칠을 어떻게 더 버틸지, 황치국은 걱정이었다.

아버지 말에 따르면, 적어도 며칠은 이렇게 얌전히 집에만 쳐 박혀 있어야 한다는 데 말이다.

가급적 빨리 아버지가 조치를 취해 보겠다고 했으니, 일단 그 말을 듣고 집에만 붙어 있어야 했다.

황치국은 평소 보지 않았던 영화도 유료 결제해서 보고, 또 술도 한 잔 마셨다.

생각 같아서는 마약도 하고 싶었는데, 그걸 구하려면 그가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해서 그것까지는 못하고, 집에서 홀짝홀짝 술이나 마시고 있었는데 그에게 계속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에는 무시했는데, 이게 또 심심하다보니 누구한테 걸려 온 전화인지 정도는 살피게 됐다.

그러다 앞서 받지 않은 전화 중에, 배운철 상무에게 걸려 온 전화가 있었다.

“배 상무가 왜? 어? 설마?”

황치국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즉시 배운철 상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와 통화해 보니 그의 생각이 맞았다.

배 상무가 어제 룸빵에서 한, 자신의 제안을 생각보다 진지하게 받아드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10억 사업자금으로 회유하며, 황치국은 그의 바뀐 핸드폰 번호를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 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황치국도 저녁으로 뭘 먹나 고민하고 있을 때, 또 배 상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진짜 사표 쓰셨다고요?”

황치국은 배 상무가 이렇게 빨리 그의 회유에 넘어갈 줄 몰랐다.

그래서 일단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또 그가 정말로 JYB엔터를 관뒀는지 확인 하기 위해서, 일단 그와의 통화를 끊었다.

그 뒤 황치국이 이런 사태에 대비해서, JYB엔터에 심어 둔 직원에게 연락을 해 봤더니, 정말로 배 상무가 회사를 그만뒀다는 것이다.

“하하하하.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오는 구나.”

누구에게나 인생에 3번은 찾아온다는 기회, 그 기회 중 한 번이 드디어 황치국에게도 찾아 온 것이다.

“씨발. 백준열만 성공하란 법 있어? 나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그 누구보다 연예계에 관심이 많았던 황치국.

그는 자신의 롤 모델인 백준열 만큼이나, 그쪽에서 성공 신화를 써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드디어 그 성공으로 가는 길로, 그를 이끌어 줄 인재가 그의 품으로 날아 든 것이다.

“좋아. 바로 쏴 주겠어.”

황치국은 그 스스로 자기 품에 날아 든 인재를 지키기 위해서, 서슴없이 그 인재의 계좌로 10억을 쏴 주었다.

비록 황치국은 집 밖으로 못 나가는 처지지만, 그 동안 배 상무가 회사를 차리고 그 기반을 다져 놓는다면, 이건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

“흐흐흐흐. 나도 드디어 엔터테인먼트 사장이다. 백준열과 같은 급이란 말씀. 크하하하하.”

사이코패스인 황치국은 사람들이 안 먹어도 배부르단 말을 여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어떻게 안 먹고도 배가 부를 수가 있단 말인가?

한데 지금은 그 말이 이해가 됐다.

진짜로 아직 저녁도 먹지 않았는데, 황치국은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 * *

고미라는 남편과 통화 후 길게 한 숨을 내 쉬었다.

“하아아....”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 거, 하고 싶은 거 하게 하며 살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0.1도 이해 못하는 남편이란 작자에게, 그녀는 이제는 더 이상 화도 나지 않았다.

오늘로 그녀가 아들과 찾아 온 연예 기획사만 20곳.

그 중 한 곳도 자신의 아들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내 놓지 않고 있었다.

분명 고미라가 봤을 때, 자기 아들인 정민수는 재능이 있었다.

얼굴도 잘 생겼고, 아직 성장 중이지만 키도 중2치고는 큰 편이었고.

“대체 뭐가 문제란 건지.”

요즘은 예전과 달리 연예 기획사에서 자체적으로, 스카우터들을 운용하지 않았다.

그냥 있어도 재능과 외모가 출중한 인재들이, 알아서 연예 기획사를 찾아오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연예 기획사는 소수에 불과했다.

흔히 말하는 국내 빅 4의 엔테테인먼트사와, 적어도 인기 아이돌 그룹이나 유명 배우를 데리고 있는 중견급 연예 기획사들.

그 외의 중소 연예 기획사에는, 자체적으로 정기적인 신인 발굴 오디션을 실시해, 소위 ‘길거리 캐스팅’이라 불리는, 연예 기획사의 개별적 캐스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었다.

고미나는 그런 중소 연예 기획사들을 전전하며, 자신의 아들을 캐스팅 해 주길 바랐지만 이게 쉽지 않았다.

“엄마. 나 진짜 연예인 못하는 거야?”

“아냐. 엄마가 널 크게 키워 줄, 소속사를 꼭 찾아 줄게.”

고미나는 도저히 안 되면, 자신이 직접 연예 기획사를 차리는 쪽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아들 정민수였다.

처음에는 자신 있어 하더니, 요즘 들어 애가 부쩍 위축 됐다.

그럴 것이 찾는 연예 기획사들 마다, 안 좋은 소리만 해 대니 말이다.

“엄마! 우리 JYB엔터에 소개서 넣었어?”

“JYB엔터?”

“MP4 소속사. 거기 요즘 제일 핫 하잖아?”

“그래? 잠깐만....”

고미나는 자신의 매니저 수첩을 살폈다. 그랬더니 다른 빅 4엔터테인먼트에는, 다 민수의 소개서를 넣었는데 JYB엔터만 빼먹었다.

“민수야. 미안. 엄마가 정신이 없어서 JYB엔터만 소개서를 못 넣었네.”

“빨리 넣어. 나 거기 느낌이 온단 말이야.”

다른 빅 4 엔터테인먼트에 소개서 넣고, 또 오디션 볼 때도 이랬다. 느낌이 온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래도 큰 회사답게,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모를 불러서는 아주 대놓고, 거리낌 없이 얘기했다.

당신 아이는 이쪽과 맞지 않다고 말이다. 재능이 없다고.

고미나는 그런 얘기를 또 듣고 싶지 않았다.

JYB엔터라고 뭐가 다를까? 보는 눈이야 거기서 거길 텐데 말이다.

해서 빅 4와 중견 기획사를 돌아 본 이후, 고미나는 일부러 중소 연예 기획사를 찾아갔다.

지금은 재능을 인정받지 못해서 비록 작은 데에서 시작하지만, 점차 재능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큰 곳으로 옮겨 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중소 연예 기획사에서도, 아들을 받아주지 않으니 갑갑할 따름이었다.

“빨리! 빨리!”

그것도 모르고 재촉하는 아들에게 고미나는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가자. 가.”

고미나는 아들과 같이 차에 타서 내비게이션에 JYB엔터를 찍었다. 그리곤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대로 운전을 했고 10여분도 안 돼, JYB엔터 본사 사옥에 도착했다.

“넌 여기 있어. 엄마가 소개서만 건네고 올 테니까.”

고미나는 차에 아들을 두고 JYB엔터 본사 사옥에 들어가서, 안내데스크에 아들의 소개서를 건네고 다시 차로 돌아왔다.

“엄마. 나 배고파.”

“그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렇게 그들 모자가 떠나고 고미나가 건넨 소개서는, 곧장 JYB엔터의 캐스팅 사업부로 보내졌다.

* * *

JYB엔터에서 새로 생겨 난 특수 부문의 우두머리, 실권자가 된 차은석.

말이 특수 부문이지 따져 보면 JYB엔터의 새로 영입한 연예인들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부서였다.

신인개발부터 시작해서 기획, 매니지먼트에 홍보까지 다 하려면, 그녀 몸이 하나로는 부족한 곳이었다.

물론 백준열 대표가 쓸 만한 인재들을 대거 지원해 주었기에, 일을 해 나가는 거 자체는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백준열 대표가 영입해서, 특부 부문에 맡긴 연예인들이 성공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랬기에 차은석은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일적인 스트레스 말고 또 다른 극강의 스트레스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친....”

재수가 없으려니 오재수를 만나더니, 그 오재수가 울트라급 대재앙을 불러왔다.

바로 정재욱에게 자신이 뭘 하며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 알려 준 것이다.

자신이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아는 이상, 가만있을 정재욱이 아니었다.

듣기로 그녀 때문에 인생 꼬였다며, 찾으면 가만 안 둘 거란 얘기를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는 정재욱이다.

그렇게 자기가 하고 다닌 말이 있기에, 더더욱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둘리가 없는 정재욱 때문에,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차은석의 머리가 더 아파왔다.

“다들 퇴근하세요.”

자리에 잡아둔다고 일이 잘 되는 건 아니다.

차라리 제때 퇴근 시키고, 다음 날 집중해서 일을 하는 게 능률적인 면에서는 더 나았다.

그걸 알기에 차은석은, 오늘 특부 부문에 처음 배치 받은 직원들을 먼저 집으로 보냈다.

회식은 내일 하기로 하고 말이다.

차은석도 회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회식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새로운 부서로 배치 받아서, 서로 잘 모르는 직원들끼리 빨리 친해지는 데에는, 회식만한 자리도 없었으니까.

그런 회식도 내일로 미룬 건, 지금 차은석이 회식할 기분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재욱과 오재수의 일을 백준열 대표에게 일임하긴 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그래도 살아 있으니 숨을 쉬어야 하듯, 뚫린 입이니 먹어야 살지 않겠나?

꼬르르르! 꼬르르륵!

안 그래도 아까부터 배가 난리였다. 어서 음식을 넣으라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차은석.

“그래. 먹자.”

차은석은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와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그때 먼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직원들의 얘기가 자연스럽게 그녀 귀에 들려왔다.

“....데 그 소개서에 아빠가 고위 경찰간부라고 쓰여 있더라고.”

“그래? 요즘도 자기 소개서에 부모 직업 써야 해?”

“아니지. 그 애가 일부러 쓴 거지.”

“아아....”

고위 경찰 간부란 말에, 차은석은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을 한 직원의 사원증을 봤다.

그랬더니 그 직원이 속해 있는 부서가 캐스팅 사업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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