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24화 (12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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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렇게 나를 향해 절을 하고 나서 몸을 일으킨 두 사람.

그 중 남편 정영석이 대표로, 내게 자신들이 왜 절을 했는지 얘기했다.

“앞에 제가 인사드린 것은 저를 채용해 주셔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고, 뒤에 저희 두 사람이 대표님께 큰 절을 올린 것은, 제 아내를 살려주셔서 감사드린다는....크흐흑....대표님.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 제가 JYB엔터에서 뼈를 묻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꼭 갚겠습니다.”

정영석 촬영감독.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울 수 있는 이 남자.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미래에 하종미 배우가 죽고 나서, 그가 보인 그 진정성에 사람들이 그렇게 감동하고, 가슴 아파 한 걸 테지. 이전 삶의 나도, 정영석에게 격려의 멘트를 남긴 게 생각났다.

“이이는, 왜 또 울고 그래? 나하고 안 울기로 약속 했잖아?”

“미, 미안. 안 울려고 했는데....”

참 보기 좋은 부부다. 백준열 주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저들 부부를 보고 있자니 퇴근시간을 넘겨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김 비서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부러운 눈으로 금슬 좋은 저 부부를 넋 놓고 쳐다봤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하더니 내게 물었다.

“차 내어 올까요?”

“....”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 비서가 알아서 저들 부부 사이로 끼어들어서, 그들이 무슨 차를 마실지 물었고, 그로인해서 대표실 분위기도 다시 바뀌었다.

감동이 가득해 가슴이 먹먹하던 곳에서, 훈훈한 가족 같은 분위기의 실내 공간으로 말이다.

하종미와 정영석 부부는 내게 거듭 고마움을 표했고, 나는 하종미가 하루 빨리 치료를 받아, 완쾌해서 좋은 연기자가 되어주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겸양을 좀 떨었다.

그렇게 10여분의 기분 좋은 티타임이 있고, 우리는 헤어지는 시간을 가졌다.

“자주 봅시다.”

“정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앞으로 현장에서 일하게 될, 정영석 촬영감독과 내가 만날 일이 얼마나 있으려나 모르지만, 그와 같이 좋은 사람과는 언제든 만나, 술 한 잔 하고 싶은 게 내 진심이었다.

“김명석 배우님과 최수현 배우님과는 자주 만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저도 불러 주시면, 시간이 되는한 그 술자리에 꼭 끼고 싶네요.”

“네. 저희끼리 만날 때, 꼭 대표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정영석은 그게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 술자리에 나를 불러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렇게 그들 부부를 대표실 밖까지 배웅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자 시간이 퇴근 시간을 훌쩍 넘어 있었다.

이제 나도 이만 퇴근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확인하니 에이미 패럿이다.

“이런....”

오늘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 한 건 나였다.

그런데 그 사실을 그만 깜빡 잊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받기 전, 에이미의 부재중 전화 횟수를 확인했는데, 벌써 10통 넘게 내게 전화를 한 상태였다.

하필 오늘 나를 귀찮게 하는 전화가 많이 걸려 온 덕분에, 에이미의 전화도 덩달아 받지 못한 것이다.

“화가 많이 나 있겠네.”

그나마 지금이라도 받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계속 울려 대는 내 핸드폰의 전화를 받았다.

“어어. 에이미.”

=마초맨! 왜 이렇게 전화 안 받아?

예상대로 버럭 화부터 내는 에이미. 하지만 그 화난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계속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는 게 아닌지, 걱정 꽤나 한 모양이었다.

* * *

신림동 고시촌의 원룸 건물은, 월요일에 바로 매물로 내놨다.

그랬더니 달려 든 업자만 수십 곳이 넘었다.

원래 이정도 뜨거운 반응을 보일 곳이 아니었다.

해서 알아보니 몇 가지 호재가 있어, 그곳 주변으로 집값이 꽤 상승해 있었다.

그걸 감안하지 않고 내 놓은, 내 건물 값은 주변에서 볼 때 헐값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파리들이 들끓었던 것이고.

이래서 세상이 녹록찮다는 거다. 특히 부동산의 경우는 더.

그 경쟁은 서울 집값 상승과 함께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눈뜨고 코 베이는 곳이, 요즘 서울 부동산 세계였다.

“이것들이 날 호구로 봤다는 거네?”

그래서 나는 매물을 바로 거뒀다. 그랬더니 아주 대 놓고 항의하는 업자들이 있었고, 개중에 조폭을 낀 부동산 업자는, 대 놓고 협박까지 해댔다.

“이래서 주먹들이 필요한 거지.”

괜히 법보다 주먹이 빠르단 말이 나온 게 아니다.

놈들도 그걸 알기에 설쳐댈 수 있었던 것이고.

하지만 주먹도 같은 주먹이 아니다.

더 센 주먹이 그보다 못한 주먹 보다 윗줄에 있었다.

양태석에게 얘기하자 태천파가 나섰고, 그제야 조폭 낀 부동산 업자들도 조용해졌다.

그 다음 날 나는 건물 값을 올려서 매물로 내놨다.

그러자 더는 파리들이 끓지는 않았다.

그래도 첫날 바로 5-6곳에서 연락이 올 정도로, 내 원룸 건물을 탐내는 업자들이 있었다.

백준열은 꽤 유능한 부동산 브로커들을 알고 있었다.

그 중 하나를 불러서, 그들 업자들 사이에 줄타기 좀 하라고 했더니, 원래 내가 처음 내 놓은 건물 값, 35억보다 7억을 더 플러스 시켜 놨다.

“42억이라....”

그냥 팔까하다가 뭔가 촉이 왔다. 왠지 거기 한 번 더 들러 봐야겠다는, 거기다가 수요일에 나는 에이미를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그래서 그때 신림동 원룸 건물에 가서, 에이미도 만나고 그곳도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했다.

한데 그 수요일이 워낙 스펙터클하고 다이내믹한 일이 많이 생기는 바람에, 에이미와 만나기로 한 것도 까먹었다.

뭐 결과적으로 에이미가 나한테 전화를 하면서, 그녀도 만나고 내친김에 매물로 내 놓은 그 원룸 건물도, 다시 한 번 보려 지금 신림동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퇴근해서 그나마 백준열과 사이좋은 연인 관계인 임연수를 보는 건, 늦은 밤으로 미뤘다.

그녀에게 좀 늦을 거 같다고 연락하려했는데, 그녀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동창회가 있어서 늦을 거 같다나? 나보고 피곤하면 먼저 자라고까지 해서, 나도 그럼 늦게 들어가겠다고 하자, 그러라고 쿨하게 통화를 끝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다른 여자들과 달리, 임연수를 대하는 게 편하긴 했다.

오늘 첫날이라서 나를 수행하려는 정민지는, 그냥 먼저 퇴근하라고 했다.

양태석이 왜 그리 정민지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는 알아야겠기에 퇴근하기 직전인, 김 비서에게 그 일을 맡겼다.

내가 아는 한 뒷조사만큼 김 비서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에이미와는 내 원룸 건물에 내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보아하니 에이미가 그 집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았다.

생각 같아선 그 집을 에이미 명의로 해주고, 내 여자로 거기 주저앉히고 싶었다.

하지만 에이미는 그러기에는 아까운 여자였고, 나도 그녀를 키워 볼 생각이 있었기에 그 생각은 잠시 접었다.

* * *

퇴근이 지체 되면서 출퇴근 시간에 제대로 걸려 버린 탓에, 신림동까지 가는 길이 족족 막혔다. 그래서 에이미에게 약속 시간 보다 좀 늦을 거 같다고 전화를 해야 했다.

=괜찮아. 서울 막히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근데 전화 받는 에이미 주위에 소리들이 어째 심상찮다.

‘보글보글? 이건 찌개 끓는 소리고, 어쭈? 칼질도 제법 잘하네?’

보아하니 먼저 내 집에 간 에이미가, 나를 위해서 음식을 준비 중인 모양이었다.

“에이미. 너 혹시 요리해?”

=어? 그거 어떻게 알아?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는 거 같아서.”

=된장찌개 끓이고 잡채 만들고 있어.

“와아. 맛있겠다.”

=기대해도 좋아. 에이미. 된장찌개랑 잡채 환상적으로 잘 만든다.

사실 누가 날 위해 요리를 해 주는 건 진짜 오랜만이었다.

그냥 내 여자가 해줘도 감동 받았을 텐데, 그 여자가 외국인이라면....

그 감동이 배가 됐다. 해서 나는 실제 맛이 없더라도, 에이미가 직접 만든 된장찌개와 잡채만큼은 맛있게 먹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에이미와 통화를 끝내고 나서, 나는 그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미래를 생각했다.

이미 QH엔터테인먼트 소속의 5인조 아이돌 걸 그룹 ‘해피걸스’는 데뷔를 한 상태고, 왕성한 활동 중이었다.

“이제 곧 멤버 한 명이 크게 다쳐, 부득의하게 탈퇴를 하게 되겠지.”

QH엔터테인먼트에서는 그 멤버 대타를 급히 찾을 것이고, 그때 QH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눈에 띤 게 에이미였다.

하지만 나 때문에 에이미의 운명이 바뀌었다.

그 몹쓸 경비한테 강간당했을 그녀를 내가 구해서, 사실상 내 여자로 만들어 버렸으니.

때문에 에이미가 ‘해피걸스’의 외국인 멤버 하이디가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 캐릭터와, 그 끼는 이대로 버리기 아까웠다.

“이번에 JYB엔터에서 새로 런칭 할, 새 걸 그룹이 '미스M'였던가?”

원래 올해 중순에 데뷔하기로 계획 되어 있는, JYB엔터가 MP4에 이어 다국적 걸 그룹으로 키우기 위해, 그 동안 심혈을 기울여 키워 온 멤버 4명.

바로 리웨이, 주미, 슈잉, 미나.

“오오....”

그래도 대표로 나름 신경 쓴다고, 그들 멤버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 백준열.

이 걸 그룹은 특히 멤버 중 두 명이 중국인이었다.

처음부터 아시아 전체를 염두에 두고 계획되었고, 실제 중국 활동도 활발하게 했었던 걸 그룹이었다.

“멤버들이 다들 춤을 잘 췄지.”

미스M은 음원 성적 외에도, 퍼포먼스와 댄스 부문에서는 어느 걸 그룹도 따라올 수 없는, 실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긴 6년 동안 미국과 대한민국을 오가며, 댄스를 주구장창 트레이닝 받은 미나나, 중국에서 무용과 출신에 체조까지 잘하는 리웨이와 슈잉. 그리고 어릴 때부터 댄스동아리에서 춤의 끼와 소질을 보여준 막내 주미까지, 그런 그녀들이 합쳐지니 춤 실력이 뛰어나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미스M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메인 보컬의 부재였다.

“4명 모두 보컬담당이고, 공식적인 메인보컬은 없으며, 타이틀곡마다 돌아가면서 후렴과 고음파트를 소화해 냈지.”

물론 미스M 멤버 4명 모두 퍼포먼스를 하면서, 안정적인 라이브를 소화하는 게 가능했다.

그랬기에 데뷔곡 ‘나쁜 년, 착한 놈’으로 데뷔 21일 만에 지상파 인기순위 1위를 차지했으며, 멜롱 차트 1위 석권, 그 해 연간 1위와 가수 최단기간에 대상을 받으며, 역대 급 임팩트를 남긴 걸 그룹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멤버들 사이에서 도드라지는 보컬 멤버가 있다면, 단지 퍼포먼스 걸 그룹이 아닌 실력파 걸 그룹의 이미지로 부각이 되어 지겠지.”

나는 미스M의 멤버로, 에이미를 넣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이때부터 하기 시작했다.

* * *

양태석은 백준열 대표와 만나고 나서, 비교적 밝은 얼굴로 대표실을 나왔다.

그런 그를 보고 정민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혹시나 자기 때문에 양태석이 곤란해지는 건, 죽어도 싫은 그녀였으니까.

“정민지 요원? 문 팀장님과 같이 대표실에 들어가 보세요.”

그때 김 비서가 까칠하게 말했고, 정민지와 문대식이 대표실에 같이 들어가는 걸 보고나서야, 양태석도 발걸음을 돌렸다.

일종에 출근 첫날 대표와 대면식인 셈인데, 양태석이 김훈 대표와 얘기만 잘 된다면 내일부터 여기 올 필요가 없는 정민지였다.

양태석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 간 다음, 자신이 모는 대표 차에 탔다.

그리고 처리자 에이전시의 김훈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생각대로 백준열 대표는, 양태석의 부탁을 무시하지 못했다.

대신 그걸 김훈 대표에게 떠넘겼다.

어째든 정민지를 백준열 대표에게 떠넘긴 건 김훈이었으니까.

김훈 대표를 설득하는 건 자신 있었던 양태석.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참 얄궂은 게, 쉬울 거 같았던 게 오히려 어려워 질 때가 있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뭐?”

=네가 무슨 생각인지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정민지를, 너희 대표 옆에 붙인 건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다. 그 이점을 포기하려면 네가 그만한 것을 내게 내 놓아야 하는데, 지금 너에게는 그만큼 내가 원하는 게 없어.

“뭐, 뭐라고?”

=그 때문에 전화 한 거라면, 너와 더 나눌 얘기는 없다.

김훈 대표가 딱 잘라 말했다. 그건 더 이상 양태석이 뭐라고 해도, 그의 결정이 바뀌지 않을 거란 사실상 통보였다.

그런 그에게 양태석도 딱히 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 잘 알았다. 네가 원하는 걸 갖추면, 그때 다시 연락하지.”

양태석도 김훈 대표가 원하는 게 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만약 양태석이 태천파 2인자가 아닌 1인자였다면, 과연 김훈 대표가 이런 식으로 그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했을까?

결국 자신의 주제, 즉 자신의 현 위치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양태석은, 김훈 대표와의 통화를 끝낸 뒤에, 이를 꽉 깨물었다.

“오늘 이 수모는 결코 잊지 않겠다. 김훈.”

안 그래도 김훈에 대해, 여러모로 쌓인 게 많아지고 있었던 양태석이었다.

하지만 오늘 일로 인해, 김훈과 양태석의 사이가 완전 틀어져 버렸다.

사람 사이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근데 김훈이 하필 양태석의 그 건드리지 말아야 할 그것, 양태석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때 양태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지 확인 후 그 전화를 받는 양태석.

“어어. 칠석아.”

가평군의 조폭 두목 박칠석의 전화였다.

=내일 드디어 서울 간다.

“잘 됐네. 근데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거냐?”

=내가 애냐. 이런 걸로 전화하게. 딴 게 아니라 싸움꾼 하나 먼저 보냈거든.

“싸움꾼?”

=이재동이라고, 칼 잘 쓰고 날렵한 놈이 있어. 대표님이 거둔 녀석으로 서울에 볼 일이 있다기에 먼저 보냈는데 혹시나 해서. 사고 치지 말라고 말해두긴 했는데, 사람일이란 게 또 모르잖아. 노파심이긴 한데....네가 미리 손 좀 써 놓으면 안심이 될 거 같아서.

양태석은 박칠석의 다른 말보다, 아무래도 대표님이 거뒀다는 말이 신경 쓰였다.

“뭐 하루사이 뭔 일이 있으려고. 알았다. 태천파에 얘기는 해 두지.”

=고맙다. 그럼 내일 서울 가서 또 연락할게.

“그래. 내일 한잔 하자.”

=좋지.

그렇게 박칠석과 통화 후, 양태석은 자신의 오른팔인 정준호에게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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