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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119화 (11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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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밤을 샌 여파는 확실히 있었다. 경찰서를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자신이 사는 원룸으로 향한 김 비서.

“손님. 다 왔습니다.”

근데 분명 안 자려고 했다. 하지만 언제 잠이 들었는지 택시에서 깜빡 잠이 든 그녀.

택시 기사분의 말에 깨서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렸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다행히 쓰러질 지경은 아니었고, 이내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자신의 원룸으로 들어갔고, 바로 씻었다.

그 뒤 시간을 확인하니, 점심 먹는 걸 포기하면 얼추 2시간을 잘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알람을 맞춰 놓고, 침대에 쓰러졌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 김 비서.

그래도 2시간이나마 잤더니, 한결 머리가 개운했다.

이미 샤워는 한 상태라 대충 세수만 하고, 옷을 챙겨 입은 김 비서는 출근을 했다.

회사에 도착하니 벌써 1시가 다 됐다.

그녀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고, 대표 비서실에 들어서자 세 사람이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그녀를 보고 거의 동시에 말했다.

“김 비서님. 식사 하셨어요?”

“김 비서님. 뭐 드셨어요?”

“김 비서님. 안녕하세요?”

김 비서는 양태석과 문대식에게는 대충 아무거나 먹었다고 하고, 처음 보는 여자 경호요원에게는 그녀가 누군지 물었다. 그러자 정민지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앞으로 대표님의 근접 경호를 맡은 정민지라고 합니다.”

“아네. 정민지 요원님이시군요.”

그런데 정민지를 보는 김 비서의 눈길에 살짝 불만이 엿보였다.

거기다 평소 그녀라면 절대 하지 않는 말까지 내 뱉었다.

“근데 정민지 요원은, 경호요원이라기 보다는 저희 회사 연예인 같으시네요.”

“네?”

김 비서의 그 말에 정작 놀란 건 당사자인 정민지라기 보다, 그녀 양쪽에 서 있던 양태석과 문대식 같았다.

둘 다 두 눈을 한껏 부릅뜨고 김 비서를 빤히 쳐다봤다.

마치 그들 앞에 있는 김 비서가 그들이 아는, 그 김 비서가 맞냐는 듯 말이다.

김 비서가 질투하는 건, 여태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양태석과 문대식이었다.

특히 미국에서 김 비서와 같이 살았던 문대식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지 자기 손으로 자기 허벅지를 꼬집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김 비서가 인터폰을 눌렀다.

삐이이이이!

=어. 출근했네?

그러자 그녀의 인터폰과 연결 된 대표실의 인터폰에서, 백준열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대표님 근접 경호 하러 정민지 요원이 여기 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누가 들어도 말에 뼈가 있었다. 하지만 미련 곰탱이 같은 대표는 그걸 못 느낀 걸까?

=문 팀장도 거기 있지?

“네.”

=같이 들여보내. 그리고 차는 뭘 마실지 그 두 사람에게 미리 물어보고, 나는 아메리카노 진하게 한 잔 타다 줘.

“네.”

백준열 대표의 말에 짧게 끊어서 대답하는 김 비서.

딱 봐도 기분 나빠 보였다. 하지만 대표실의 백준열 대표야 김 비서의 얼굴을 못 보니, 그 사실을 알 리가 있나.

“들었죠? 무슨 차 타 드릴까요?”

김 비서가 문 팀장과 정민지를 번갈아 쳐다보며 영혼 없이 물었다.

그때 양태석이 그들 사이로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김 비서님. 문 팀장과 정민지 요원이 대표실에 들어가기 전에, 제가 먼저 대표실에 좀 들어가면 안 될까요?”

“네?”

갑작스런 양태석의 개입에 어리둥절해진 김 비서.

그녀는 그 이유를 물으려다가, 그냥 다시 대표실 인터폰을 눌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양태석이라서 말이다.

=왜?

“양 기사님이 대표님을 급히 뵈었으면 하시네요.”

=양 기사가? 으음. 들여보내.

인터폰에서 나온 백준열 대표의 허락에, 양태석이 먼저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를 문대식은 의아한 눈으로, 정민지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던 김 비서가, 조용히 비서실 옆 부속실로 들어갔다.

김 비서는 백준열 대표가 달라는 진한 아메리카노를 커피머신으로 내리면서, 평소 양태석이 좋아하던 콜라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그 뒤 두 개의 유리 클라스에 얼음을 가득 넣고, 한 잔은 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다른 한잔은 차가운 콜라를 채워서, 그 두 잔을 양손 쟁반에 올린 뒤, 들고 부속실을 나섰다.

똑똑똑!

그 뒤 대표실 앞에서 노크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대표실에서는 양태석이 백준열에게 뭔가를 열심히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김 비서가 나타나자, 하던 얘기를 잠시 멈췄다.

“차 가져 왔습니다.”

김 비서는 사무적으로 백준열 대표는 쳐다보지도 않고, 쟁반 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백준열이 앉은 상석 소파 앞쪽 테이블에 놓고, 그 다음 차가운 콜라를 양태석이 앉은 자리 바로 앞 테이블에 내려놨다.

“잘 마시겠습니다.”

안 그래도 갈증이 난 듯 양태석이, 시원하게 콜라를 마셨다.

그 사이 백준열 대표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고.

근데 그 뒤에 백준열 대표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김 비서를 욱하게 만들었다.

“안 나가?”

“네?”

“빨리 나가. 너 때문에 얘기가 끊겼잖아?”

“이이....”

졸지에 훼방꾼이 된 김 비서가 두 볼을 부풀리며 홱 돌아서서 대표실을 나서자, 정작 양태석이 안절부절 못하며 백준열 대표에게 말했다.

“대, 대표님. 김 비서님한테 왜 그러십니까?”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러나 몰라.”

백준열 대표의 그 말에 김 비서가 움찔했다.

하지만 걷던 걸음을 계속 해 대표실을 나가는 김 비서.

* * *

양태석의 갑작스런 만남 요청을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가 이렇게 대 놓고 나와 할 말이 있다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양태석처럼 입이 무거운 자가 할 말이 뭔지 벌써 궁금했는데, 인터폰에 들여보내라고 하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양태석이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와요.”

양태석에게는 존대를 했다가, 반말을 했다가, 그때그때 말을 달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문대식처럼 편하게 말을 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거 같았다.

성큼성큼 걸어와서, 내가 앉은 상석 소파 오른 편에 앉는 양태석.

그런 그에게 바로 물었다. 우리 사이가, 뭐 눈치보고 재고 따지며 말할 사이는 아니라서 말이다.

“그래. 할 말이 뭔데요?”

양태석도 나름 생각은 해 온 듯, 내가 말하라고 하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실은....”

양태석은 출처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곧 검경이 태천파를 칠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내게 털어놨다.

“혹시 대표님도 아셨습니까?”

나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하지만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삼명그룹도 그렇고, 다른 쪽에서도 요즘 태천파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거든요. 왜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잖습니까?”

“그렇군요.”

“그래서 양 기사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설마 나와 한 약속을 깨겠다고, 지금 찾아 온건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움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도움?”

“네. 실은....”

양태천이 이번에는 태천파가 붕괴되기 전에, 자신을 따르는 수하들을 거두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

“왜요? 태천파 후속 조직이라도 되려고요?”

“아닙니다. 썩은 물은 과감히 버려야죠. 저는 그 조직을 대표님께 넘길까 합니다.”

“에? 지금 저보고 조폭 두목이 되라는 겁니까?”

“살인 청부업자들도 합법적으로 법인을 세우고, 에이전시를 차리는 세상이지 않습니까? 저희도 그런 합법적인 용역회사를 만들면 됩니다.”

“합법적 용역회사라....나쁘지 않군요. 추진하세요.”

“네?”

양태천은 내가 이렇게 빨리, 자신의 뜻을 받아드려 줄 거라 생각지 못한 듯 했다.

그래서 어리둥절해 했는데, 그런 그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용역회사 만드는데, 사람과 돈이 필요하다는 거 아닙니까? 내가 김 비서한테 얘기 해 놓을 테니, 그녀의 도움을 받아서 그 합법적인 용역 회사 만들어 보세요.”

내가 양태천이 하고자 하는 일에 김 비서를 이렇게 선뜻 내 준다는 건,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겠다는 뜻이 내포 되어 있었다.

그걸 알기에 감격한 양태천이 벌떡 일어나서, 나에게 거듭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반드시 쓸 만한 용역회사로 키워 보이겠습니다.”

“네. 알았으니 그만 앉으세요. 목 아프니까.”

안 그래도 거구인 양태천이 바로 옆에서 허리를 숙였다 폈다하니, 고개도 고개지만 그 위화감이 장난 아니었다.

그렇게 양태천을 진정 시켜 다시 앉힌 뒤, 양태천이 구상 중인 합법적 용역 회사의 청사진에 대해 듣고 있을 때였다.

김 비서가 마실 걸 챙겨서 대표실에 들어왔다. 근데 아무리 봐도 평소의 김 비서가 아니다.

‘김 비서에게도 이런 면이 있구나.’

하지만 역시 직장에서 김 비서는 냉철하고, 이지적인 내 비서여야 했다.

여성스러운 김 비서를 백준열이 원했다면, 다른 그의 여자들처럼 집 한 채 사주고, 거기 들여앉혔겠지.

해서 대표실을 나서는 그녀에게 넌지시 알려주었다. 원래 그녀로 돌아가라고 말이다.

영리한 김 비서는 다행히 바로 내 말을 알아들은 거 같았다.

* * *

백준열 대표로부터 평소 안하던 짓을 한다는 말을 듣고 난 뒤, 김 비서는 깨달았다.

‘미, 미쳤어. 내가 지금 무슨....’

백준열의 노예가 되고 나서, 여자이기를 완전히 포기했던 그녀였다.

그랬는데 지금 잠깐 그녀가 보인 모습은, 누가 봐도 질투하는 여자의 모습이 아니던가?

‘내가 질투라니!’

그건 보통의, 여느 여자들이나 할 수 있는 사치스런 감정이었다.

그녀처럼 인생을 적당 잡힌 여자는, 그저 하루하루를 치열한 생존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니 언감생심 평범한 여자의 삶은 동경해서도, 꿈꿔서도 안 됐다.

그래서 대표실을 나온 김 비서는 사람이 싹 변해 있었다.

오늘 이상했던 김 비서에서, 어제의 그, 평소의 일적으로 만큼은 유능한 김 비서로 말이다.

“대표님 얘기가 좀 길어지고 있네요. 두 분 좀 더 기다리셔야겠어요.”

이미 말하는 톤에서 그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래서 문대식은 속으로 안도해 하면서, 동시에 또 걱정스런 눈으로, 들고 있던 쟁반을 부속실에 도로 갖다 놓고 비서 자리에 도로 앉는 김 비서를, 한 동안 계속 지켜봤다.

근데 그 모습이 정민지에게는, 문대식 팀장이 김 비서를 좋아하는 것으로 비쳐진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네.’

뜬금없이 마음속으로 문대식 팀장과 김 비서를 연결해 주고, 또 응원해 주고 있는 정민지였다.

그때 갑자기 김 비서의 인터폰이 울렸다.

“네. 대표님.”

=김 비서. 메일 보내놨는데, 한 번 보고 특수 1부문장 좀 불러.

“알겠습니다.”

대답 후 김 비서가 자기 컴퓨터를 툭탁거리며 뭘 찾아보는 듯하더니,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여기 대표실인데요. 차은석 부문장님 부탁드립니다. 네. 부문장님. 지금 제가 부문장님께 메일 하나 보낼 겁니다. 그거 좀 보시고 대표실로 바로 올라와 주십시오. 네. 아아....직접 그 메일을 보시는 게, 저와 얘기하는 것 보다 더 이해가 빠를 것 같네요. 네. 네.”

통화를 끝낸 순간까지, 김 비서의 찌푸린 얼굴은 쉬이 펴지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요?”

그런 그녀에게 문대식이 물었다. 그러자 김 비서가 되레 그를 보고 물었다.

“문 팀장님. 송명철 요원 있잖아요?”

“네. 우리 송 부팀장이 왜요?”

“오늘 일하시나요?”

“네. 오전에 쉬고 오후에는 근무 중일 겁니다. 한데 왜요?”

“그분 좀 지금 바로 대표실로 올라오라고 해 주실래요?”

“네. 뭐 그러죠.”

문대식은 김 비서가 왜 그러는지 궁금했지만, 일단 그녀가 요구하는 대로 들어주었다.

그렇게 5분쯤 뒤, 송명철 부팀장과 차은석이 함께 대표 비서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차은석과 얘기해서 사정을 알게 된 듯, 송명철이 김 비서에게 말했다.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하기로 하셨답니까?”

“그게 차 부문장님의 의견을 들으시겠다고만 하셨어요.”

그러자 비서실 안의 모든 시선이 차은석에게 향했다.

“저는....”

차은석은 잠시 고뇌에 찬 얼굴을 하고 있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이건 제가 어쩔 수 있는 범주를 넘어 선 거 같아요. 해서....대표님의 결정에 따르겠어요.”

차은석의 결정을 듣고, 김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대표실에 인터폰을 눌렀다.

=어!

“대표님. 차부문장님께서는, 대표님의 결정을 따르겠답니다.”

=으음! 알았어!

그 대답 후 몇 초 되지 않아, 대표실 안에서 양태석이 나왔다.

그는 문대식과 정민지를 보고 말했다.

“그쪽은 좀 더 기다려야겠어.”

그리곤 시선을 다시 차은석과 송명철 요원 쪽으로 돌리며, 그들을 보고 말했다.

“차부문장님과 송 부 팀장님. 대표님께서 먼저 들어오랍니다.”

그 말을 하고서 양태석은 자기 볼 일은 다 봤다는 듯, 그대로 대표 비서실을 통과해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 사이 차은석과 송명철은 나란히 대표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가까이 와요.”

그런 두 사람을 백준열 대표가 손짓하며, 자기가 앉은 응접 소파가 있는 쪽으로 불렀다.

“앉아요. 뭐 좀 마실래요?”

“아뇨. 됐습니다. 그 보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신가요?”

막상 백준열에게 맡긴다고는 했지만, 그가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할지 막상 차은석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 말에 백준열이 웃으며 말했다.

“뭘 어떻게 처리해요? 그들이 하려는 짓만큼, 그대로 되돌려 주면 되죠. 뭐 이왕이면 이자도 듬뿍 얹어서.”

“네?”

“혹시 최근 종영한 ‘무뢰한 놈’이란 영화 봤어요?”

“아, 아뇨!”

“전 봤습니다.”

“거기 주인공이 상명하복 조직인 경찰 조직 내에서, 후배로 거침없이 상사를 무릎 꿇리게 해, 관객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죠.”

“네. 그 부분 생각납니다.”

영화를 봤다던 송명철이 흥분해서 대답했다.

마치 그 장면이 눈앞에 떠오르기라도 한 듯 말이다. 그리고 백준열이 말하기 전에, 송명철이 먼저 말했다.

“'당한만큼 갚아준다', '배로 갚아준다'며 주인공이 악의 세력을 향해 뿜어낸, 그 맹렬한 대사와 눈빛이 정말이지 백미였죠.”

그 말에 백준열이 자기 할 말을 송명철이 대신 했다며, 차은석을 향해 ‘피식’ 웃고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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