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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근접 경호라 함은, 백준열 대표를 붙어 다니며 경호한다는 소리다.
현재 그게 가능한 경호팀 사람은, 경호팀장인 문대식이 유일했다.
그가 아니면 다른 경호팀원은 백준열 대표가 통 믿지 못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 근접 경호를 백 대표가 정민지에게 맡겼다?
‘백준열 대표님.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단 중요한 건 백준열 대표가, 아직 정민지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가능성은 있었다.
정민지를 백 대표에게서 빼낼 기회가 말이다.
‘적어도 내가 간곡히 부탁을 하면, 들어줄지 모르니....’
아무리 여자가 좋아도 백준열 대표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게 아닌가?
설령 야망 같은 거 말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앞으로 그의 수족이 되어 줄 자신의 부탁 정도는, 들어 줄 수 있다는 게 양태석의 판단이었다.
“왜요? 제가 백 대표님 근접 경호하는 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중요한 임무를, 백 대표님이 너에게 맡긴 게 좀 의아해서.”
“하긴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못할 것도 없지 않나요?”
확실히 정민지는 옛날에 비해 더 적극적이고 대담해져 있었다.
아마 처리자 에이전시에서 일하면서 생긴 자신감이겠지.
하지만 그곳은 정민지가 오래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일 특성상 희생은 불가피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 정민지가, 그 희생양이 될지 알 수 없었다.
당장 어제 오늘 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김훈 대표가 자신과 회사를 위해서, 정민지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백준열 대표에게 넘기지 않았나?
물론 그쪽에서야 파견 형식이라지만, 양태석은 알았다.
김훈 그 개새끼가 정민지를, 백준열이라는 위험한 존재가 살고 있는 굴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걸 말이다.
‘김훈....’
당연히 그런 김훈이 마음에 들 리 없는 양태석.
그는 바득 이를 갈며 언제고 기회가 오면, 김훈에게 이 빚을 톡톡히 갚아 주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때 정민지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누구 전화인지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문 팀장님. 네. 네.”
“전화 줘.”
아무래도 정민지가 변명하는 것보다, 자신이 얘기 하는 게 더 나았다.
그래서 양태석은 정민지의 손에 거의 뺐듯, 핸드폰을 가져가서는 전화를 받았다.
“문 팀장. 나 양태석이요.”
=저는 정민지 팀원과 통화 중이었는데요?
“미안하오. 근데 정민지 경호요원, 내가 좀 데리고 있다가 점심 먹여 그쪽으로 보내야겠소.”
=지금 저한테 통보하는 겁니까? 감히 운전기사 주제에?
역시 녹록찮은 문대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와 싸울 생각은 전혀 없었던 양태석.
그가 문대식의 약점을 바로 파고들었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고. 대표님께 말씀 드려 달라 이 말이었소만.”
=이이....
문대식은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일부 제한적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경호요원이었으니까.
경호요원은 경호대상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어야 한다.
그 말은 모든 걸 경호대상에게, 일일이 다 물어봐야 한다는 소리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양태석이 백준열 대표에게 그렇게 말해 달라고 한 이상, 문대식은 반드시 그걸 백준열 대표에게 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 제 멋대로 일을 처리했을 때, 그 모든 책임은 문대식이 져야했다.
양태석이 아는 한 FM인 문대식이, 그런 책임질 일을 할리 없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께 그렇게 말씀 드리고 나서,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죠.
문대식은 기분이 나빴던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양태석을 보고 쌍심지를 켜고 있던 정민지가 버럭 소리쳤다.
“형부! 제 전화를 그렇게 받으면 어떡해요!”
“괜찮아. 대표님은 그런 거 가지고, 쪼잔 하게 굴지 않으셔.”
“아니. 제 얘기는 그게 아니잖아요? 문 팀장님은 내 직속상산데, 그분을 그런 식으로 화나게 만들어 놓으면, 저보고 앞으로 직장 생활은 어떻게 하란 거예요!”
“그, 그야....”
정민지에게 오늘 자신이 백준열 대표에게 잘 말해서, 그녀를 아예 경호팀에서 빼버릴 거란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양태석.
그가 어버버 거리자, 정민지가 길게 한 숨을 내 쉬며 말했다.
“하아....그건 제가 어떻게 알아서 해 볼 테니까. 형부, 아니 양태석씨는 앞으로 제 일에 신경 꺼 주세요. 알았죠?”
“알았다. 그나저나 점심 뭐 먹을까? 네가 좋아하는 곱창전골 어때?”
“곱창전골이요?”
곱창전골이란 말에, 눈빛을 반짝 빛내는 정민지를 보고, 양태석은 괜히 가슴이 아렸다.
그럴 게 제 언니와 식성도 꼭 빼닮은 정민지였던 것.
‘민숙이가 곱창전골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는데....’
그리운 여인, 자기 목숨과도 같았던 여자였다.
그녀를 잃고 양태석은, 한동안 자신이 이 세상을 과연 더 살아야 하나 하는 자괴감과 상실감에 빠져서, 살아도 산 게 아닌 삶을 살았다.
그런 그를 구해 준 게, 바로 눈앞에 정민지였다.
하지만 정민지에게서, 정민숙이 느껴지면서 양태석은 모든 것을 정리해야 했다.
자기 때문에 정민지까지 불행하게 만들 수 없었던 것.
그래서 정민숙도, 정민지도 잊고 오로지 조직만 생각하며 여태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정민지를 만나니 ,또 다시 정민숙에 대한 그리움이 치밀어 올랐다.
‘정신 차려라. 양태석. 정민지는 정민숙이 아냐.’
그리고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정민숙을 위해서라도, 정민지가 백준열의 여자가 되는 건 무조건 막아야했다.
‘민지만큼은 보통 남자 만나서, 알콩달콩 잘 살아야 해. 그게 내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 있는 민숙이를 위해, 지금 해 줄 수 있는 나의 최선이 될 테니까.’
양태석은 그대로 차에 시동을 걸고, 정민숙이 가장 좋아했던 곱창전골 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서울에서도 맛집으로 늘 꼽히는 곳이었으니, 그 사이 망해서 문을 닫고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무작정 그 가게로 갔는데, 다행히 그곳은 여전히 곱창전골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양태석은 정민지를 먼저 내려서 줄을 서게 하고, 자신은 근처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곱창전골 가게로 향했다.
“형부! 여기....”
그 사이 정민지가 자리를 잡아 놓고 있었다.
앞서 왔었던 단체 손님들이 우르르 한 번에 다 빠지면서, 운 좋게 줄 선 그녀까지 자리가 났다나?
어째든 덕분에 빨리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점심시간 안에 식사를 하고 회사로 충분히 갈 수 있을 거 같았다.
“여기 곱창전골 2인분 하고 사리로 라면....”
그때 오싹한 기분이 든 양태석이 메뉴판에서 시선을 들자, 정민지가 살기등등한 눈으로 그를 째려보고 있었다.
“어어, 아니요. 곱창전골 3인분하고 사리로 우동과 라면을 같이 가져다주십시오. 계란말이도 하나 추가해 주시고.”
그렇게 주문하자 정민지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에서 살기를 거뒀다.
자기 먹을 걸로 곱창전골 2인분을 시키지 않으면, 불 같이 화를 내던 지 언니와, 어쩜 먹성까지 그리 똑 닮은 건지.
양태석은 갈증에 정민지가 따라 놓은, 물 컵에 차가운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그의 갈증은 쉬이 해소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의 눈앞에 정민지가 있는 한, 그의 이 갈증 또한 계속 될 거 같았다.
* * *
오전에 회사에 출근하고 얼마 안 돼서, 문대식에게 얘기는 들었다.
양태석이 정민지를 그냥 데려갔다고 말이다.
뭐 그 뒤로 점심 먹여서 들여보내겠다는 말은 덧붙였다.
그 이외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문대식은 하지 않았다.
딱 봐도 문대식의 얼굴에 불쾌감이 가득했다.
문대식은 아마도 내가 화를 내며, 양태석보고 당장 정민지를 데려오라고, 호통이라도 치길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양태석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싶었던 것.
평소 이런 일이 잦았다면 나도 기분 나쁘게 반응했을 거다. 하지만 과묵한 양태석은 여태 묵묵히 자기 일을 잘 해 왔다.
이 정도 일탈이나 개기는 것쯤은, 나로서도 너그러이 넘어가 줄 수 있는 문제였다.
“그래? 그럼 그러라고 해.”
“네?”
“나 바쁜 거 안보여? 내가 경호요원 하나 때문에, 일에 지장까지 받아야 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문대식이 물러가고 나서, 나는 오전 일에 완전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즐거운 점심시간. 그런데 어째 문대식 빼고 나머지 경호요원들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 이유가 금세 알 수 있었다.
나한테는 아시다시피 견신 시스템의 개 특성이 있었으니까.
그 중 *소리가 잘 들립니다.*를 사용하면 삼계탕집 안에 있는, 다른 경호요원들의 푸념을 다 엿들을 수 있었다.
그 중 요즘 쉬는 날 절대 안 먹는 음식 중 하나가, 삼계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서 나는 경호요원들이, 왜들 그러나 알 수 있게 됐다.
‘하긴 그들 팀장이, 삼계탕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하는 인간이니....’
아까 여기 삼계탕 집에 올 때, 문대식이 제 입으로 직접 한 소리였다.
내가 대충 삼계탕이 그렇게 맛있냐며 그를 부추기자, 거기 홀라당 넘어가서 문대식이 그렇게 말했다.
나와 좀 뒤에 온 박인호야, 삼계탕을 맛있게 먹었다.
삼계탕 마니아답게 여기 삼계탕 가게에서는, 제대로 된 삼계탕 맛을 냈다.
“잘 먹었습니다. 대표님.”
“자아. 마지막으로 인삼주로 입가심하시죠.”
나는 박인호와 인삼주가 든 술잔을 기울였다.
그 다음 삼계탕 집을 나서기 전에, 경호팀원들에게 말했다.
“올 때 보니 근처에 햄버거 가게가 있던데. 거기 햄버거 먹을 사람들은 지금 가서 먹고 와요.”
문대식은 몰라도 나는 안다.
여기 있는 경호팀원 중 절반 넘게, 자기 먹던 삼계탕을 반 이상 남겼다는 걸 말이다.
그들은 이번 주만 벌써 네 번째 삼계탕을 먹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삼계탕이 질릴 만 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말한 햄버거는, 그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식욕을 끓어오르게 만들 만한 음식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우르르, 절반 넘는 경호요원들이 햄버거 먹으러 가는 걸 보고, 문대식의 얼굴이 살벌하게 일그러졌다. 그런 그에게 내가 말했다.
“앞으로 삼계탕은 진심으로 먹고 싶어 하는 경호요원들만 데리고 가. 억지로 데려가지 좀 말고. 알았지?”
“네. 뭐....”
대답은 했지만 어째 문대식이 내 말을 따를 거 같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괜찮을지 모르겠다.
햄버거 하나 먹고, 저들이 괜히 문대식에게 갈굼이나 당하는 게 아닌지 말이다.
“우리는 근처 커피숍에 가서 마저 하던 얘기나 나누죠.”
“그러시죠.”
뭐 어쩌겠나? 나는 그들에게 기회를 줬고 그 기회를 잡은 건 경호요원들이다. 대신 그에 대한 모든 책임도 그걸 선택한 그들이 져야 하는 거고.
나는 더는 경호요원들에 신경을 끄고, 박인호에게 집중하며 커피숍에서 그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그와 나의 사이가 더 급격히 가까워지고 친해졌다.
* * *
점심을 먹고 나서 회사로 가는 중, 배운철은 어제 그와 만났던 황치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야?”
그런데 어제 그렇게 아쉬운 소릴 해 놓고, 그가 이렇게 막상 전화하니 황치국의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역시 간만 본 건가? 아니면 나를 옭아 엮기 위해 백 대표가 수작질을 부린 것이거나?”
그렇다면 둘 다 문제 될 게 없었다. 왜냐하면 그만큼 배운철이 조심했으니까.
어제 룸빵에서도 그렇고 2차로 호텔에 갈 때도, 배운철은 증거가 될 만한 걸 남기지 않으려 극도로 조심을 했다.
2차로 가는 호텔도 택시로 이동 중에, 임의로 바꾸고 말이다.
즉 배운철이 아니라고 배 째면, 황치국은 그가 배운철을 접대했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배운철이 황치국에 대해 기분 나빠하며, JYB엔터 본사에 다다랐을 때였다.
“얼라?”
황치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다는 건 배운철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는 얘기.
해서 배운철은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배 상무님. 전화하셨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급한 일이 좀 있어서, 배 상무님 전화를 재깍 받지 못했습니다.
“아뇨. 바쁘시면 그러실 수 있죠. 그보다 오늘 시간 되십니까?”
=오늘이요?
“왜요? 어렵습니까?”
=네. 집안에 좀 우환이 있어서요. 며칠 꼼짝달싹 못할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 우환이 뭔지 묻고 싶었지만, 아직 친한 사이도 아닌데 그걸 묻는 건 실례다 싶어 배운철은 참았다.
“그렇군요. 저는 어제 나눈 얘기에 긍정적인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상세한 얘기가 나누고 싶었는데 말이죠.”
=그래요?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배 상무님을 뵙고, 그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지금 제 처지가 그럴 상황이 못 됩니다. 대신 상무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겠다는, 그 의지를 보여주신다면, 저는 언제든 투자를 할 용의가 있습니다. 가령 오늘 중 사표를 쓰시고 JYB엔터를 나오셔서, 새로운 연예 기획사를 차리시겠다고 하시면, 당장 10억을 상무님 계좌에 넣어 드릴 수도 있고요.
“뭐, 뭐라고요?”
10억을 넣어 준다니? 이거 완전 미친놈이지 않은가?
하지만 자신이 그런 결의를 보여 준다면, 투자자로서 그 정도는 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배운철도 들긴 들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뭐 꼭 그렇게까지 하시라는 건 아닙니다.
“크험. 일단 그쪽의 뜻은 알아들었습니다. 좀 더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도록 하지요.”
=잠깐만. 이 전화번호 말고, 앞으로는 다른 번호를 알려 드릴 테니, 그쪽으로 연락 주십시오.
“왜요?”
=이 전화는 너무 많이 알려져서요. 그만큼 배 상무님은 특별하시니, 제가 언제든 받는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드리는 겁니다. 그 전화번호로 전화하시면, 제가 언제 어디 있던지 무조건 받거든요.
“알겠습니다. 그 번호 보내세요. 앞으로 그 번호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황치국과 통화를 끝내고 나자, 황치국이 문자로 새로운 전화번호를 보내왔다.
배운철은 아예 지금 번호를 지워버리고, 대신 그 번호를 입력 시켜서 저장해 버렸다.
황치국이 무조건 받는다는 전화번호가 있는데, 뭐 하러 다른 번호까지 저장해 놓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