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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백준열 대표와 경호팀원들이 JYB엔터 사옥을 먼저 나가고, 그때까지 배 상무와 그 일행은 엘리베이터 앞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왜냐? 배운철 상무가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그대로 서 있었으니까.
덕분에 백 대표에게 쓸데없는 소릴 내 뱉었던, 평소 사람이 좀 경솔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김 대리.
그에게 일행들의 따가운 시선이 집중 됐다.
김 대리로 이런 쪽으로는 또 민감하지 한껏 몸을 움츠린 체, 계속 사람들 눈치 보기 급급했다. 그때 배 상무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으으음. 이거 느낌이 좋지 않은데....”
그가 입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그 옆의 총무부장이 말했다.
“상무님. 여기 계속 서 계실 겁니까?”
“아아. 이런....내가 딴 생각 좀 하느라. 미안들 하이. 가세. 다들 식사해야지.”
배운철 상무는 여태까지 기껏 있는 폼 다 잡아놓고, 또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 좋게 웃으며 앞장섰다.
그때 배 상무가 자기 옆에 따라 붙은, 총무부장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좀 전에 대표 앞에서 입을 나불거린 새끼 말이야.”
“김 대리요?”
“그 새끼 앞으로 내 앞에 안 보이게 해.”
김 대리가 배 상무 눈 밖에 난 것이다.
“네. 상무님. 그렇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대답 후 슬쩍 배 상무 옆에서 이탈한 총무부장. 그가 김 대리에게 말했다.
“김 대리. 잠깐만.”
총무부장이 부르자 멋모르고 그에게 촐랑거리며 다가간 김 대리.
“네. 부장님.”
“자네 내 자리에 가면 결재서류가 있을 거야. 그거 좀 파쇄기에 넣고 와.”
“네? 지, 지금 말입니까?”
“왜? 싫어?”
“아, 아뇨. 바로 가겠습니다.”
김 대리가 돌아서서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갈 때까지, 총무부장은 그들이 어디 가서 뭘 먹을 테니 그쪽으로 오란 말을 일체 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겠는가?
넌 그냥 식사 자리에 오지 말란 소리였다.
서류 파쇄는 그저 핑계일 뿐. 김 대리는 자신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는 걸 깨닫고, 바로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때였다.
“김 대리님?”
아까 백준열 대표와 같이 있었던 경호팀원 중 한 명이, 어느 새 그 옆에 다가와서 먼저 아는 척을 해왔다.
“네. 무, 무슨 일이신지?”
“보아하니 배 상무 파에서 나가리 된 거 같은 데....”
“나, 나가리라뇨? 무슨....”
“저들 곧 다 잘립니다.”
“네?”
경호팀원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자, 김 대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 대리님도 원래는....”
경호팀원이 살벌하게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걸 보고 김 대리는 절로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런 그에게 경호팀원이, 은근한 얼굴로 실실 쪼개듯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후. 근데 살 길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살길이 있단 소리에 김 대리가 바로 반응을 했다.
“뭐, 뭡니까? 그 살길이?”
“그야 저들 비리를 내게 넘기는 거죠.”
“비, 비리요?”
“뭐든 좋습니다. 저들을 자를 수 있는 근거 될 만한 거 아무거나 가져 오세요. 그럼 대표님이 당신 하나 살려주시지 않겠습니까?”
경호팀원의 입에서 대표라는 말이 언급 되었다.
그 말은 백준열 대표가 이일을 주관하고 있다는 얘기.
그렇다면 배 상무와 그 일파가 갈려 나가는 건, 진짜로 시간문제였다.
“지, 지금요?”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요? 대표님 주위에 사람은 많습니다. 그들 역시 지금 움직이고 있을 테고. 공이라는 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세워야 더 높게 평가 받는 거, 김 대리님도 아시잖습니까?”
“그, 그렇기는 한데....”
“왜요? 저들을 배신하는 거 같아 꺼림칙합니까?”
“....”
경호팀원은 자신의 말에 김 대리가 말이 없자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하. 이봐요. 좀 전에 당신을 내 친 자들입니다. 의리도 봐 가면서 지키는 겁니다.”
경호팀원의 그 말에 김 대리가 작심한 듯 말했다.
“비리 증거 챙겨서 어디로 가면 됩니까?”
“어디긴요. 대표실이지.”
그렇게 잠시 뒤 비장한 얼굴의 김 대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그 경호팀원이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팀장님. 시키신 대로 하니까, 진짜 비리 증거 챙겨서 대표실에 가겠다는데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끝까지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누군가와 통화를 끝낸 경호팀원. 그가 실실 웃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예에....나는 오늘 삼계탕 안 먹어도 된다.”
* * *
눈치라면 이미 9단을 넘어 10단에 다다른 배운철.
그는 아까 백준열 대표가 자신을 의심스럽게 쳐다 본 게, 계속 머릿속에 남아 맴돌았다.
“상무님. 여기 전골 괜찮지요?”
“어? 어어. 맛있어.”
자기 앞의 앞 접시에 수북이 쌓인 고기들. 이게 바로 그가 직장을 다니는 이유였다.
JYB엔터의 상무.
그 자리에서 특유의 친화력으로, 회사 임원들을 다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인 뒤, 막후에서 실권을 휘두를 때의 그 묘한 성취감, 혹은 승리감은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가 없다.
JYB엔터에서 그렇게 되기까지, 배운철의 숨은 노력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백준열 대표가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라서 말이다.
하지만 결국 백 대표도 조직 하부로 내려가자,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일 처리를 했고, 배운철은 그 하부 조직에 단단히 자기 뿌리를 내리면서, JYB엔터를 밑에서부터 장악해서 위로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하부 조직이라는 게, 결속력은 있어도 실권은 없었다.
결국 모든 결정은 저 위에 백 대표와 임원들이 하는 거니 말이다.
대신 그에 대한 책임도 그들이 져야 했다.
그래서 그 동안 백 대표에게 수시로 잘려 나간 임원들을 가리켜, 직원들은 ‘파리’라고 했었다. 그들의 운명이 ‘파리 목숨’ 같다고 말이다.
근데 따지고 보면 배운철도 그 임원 중 한 명이었고, 그 동안 그가 저지른 과오 하나라도.
지금 표면적으로 드러나면, 오늘이라도 당장 그의 목이 뎅강 잘릴 수밖에 없었다.
“쯧쯧쯧....”
그 동안 조심하면서 잘 버텨 왔는데, 아무래도 이번은 어려울 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차게 된 배운철.
그런 그가 어제 황치국과의 만남을, 머릿속에 상기 시켰다.
‘이렇게 된 이상 JYB엔터에 오래 있기는 틀렸고 그렇다면....’
용대가리가 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용 몸통 쯤 되면 만족하고 살려 했는데, 이제는 용꼬리도 어려운 상황.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뱀 대가리라도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황치국 같은 돈 많은 애송이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었다.
배운철은 수북이 쌓인 고기 쪽으로 젓가락을 가져가며, 오늘 중으로 황치국을 한 번 더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하나 씩 챙겨 든 배운철 상무 일파가, JYB엔터 본사로 돌아왔을 때였다.
“와아. 진짜 발령 났네.”
“특수 부문? 그건 또 뭐야?”
“뭐긴. 대표님이 새로 키우려는 드림 팀이잖아? 특수 1부문장이 누군지 보면 몰라?”
“차은석? 차 팀장님 잘린 거 아니었어?”
“잘리긴. 특수 부문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하셨다. 그 외에 특수 부문 팀에 면모를 봐.”
“어어. 그러고 보니 다들....”
“그래. 각 부서의 에이스들만 쏙쏙 빼내서, 특수 부문 팀에 모아놨잖아.”
“그러네. 진짜.”
1층 JYB엔터 본사 입구 로비 벽보에, 새로운 인사명령의 공문이 붙어 있었다.
배운철 상무와 그 일파가 그쪽으로 가자, 거기 있는 일반 사원들이 움찔하며 길을 텄다.
“으음....”
배운철 상무는 어제 백준열 대표가 한 말 그대로, 차은석이 자신과 같은 직급의 상무로 승진한 걸 보고, 벌레 씹은 얼굴로 변했다.
거기다가 특수 부문 팀에, 현재 JYB엔터에서 일 좀 한다는 인재들을 다 모아 놓은 걸 보고, 더욱 심기가 불편해졌다.
저들을 다 빼내면, 정작 JYB엔터의 일은 누가 한단 말인가?
배운철 상무도 지금 그가 거느리고 다니는 녀석들이, 전부 쭉정이들이란 걸 잘 알았다.
실제적으로 일 하는 녀석들은 이 쭉정이들을 잘 활용하면, 알아서들 일을 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회사는 굴러가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일하는 녀석들을, 싹 다 빼내 버린다면 그건 얘기가 달랐다.
쭉정이들로는 회사 제대로 굴러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건 배운철이 아니라 다른 임원들도 아는 바였다.
고로 다른 임원들 역시, 이번 인사조치에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잘 됐다. 그들을 뒤에서 잘 부추기면....’
임원들을 내세워서 백준열 대표를 압박할 수 있었다.
그 압박의 결과 백준열 대표가 칼춤을 춘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잘려 나갈 임원들은, 배 상무가 앞으로 내세운 자들일 뿐, 자기는 아닐 테니 말이다.
“흐흐흐흐....”
인사 공문을 보고 뭐가 그리 좋은지, 갑자기 웃기 시작한 배 상무를 보고, 그의 일파 직원들은 다들 입 꼬리가 올라갔다.
배 상무가 그들을 쭉정이라 여기고 있듯이, 그들 역시 배 상무가 능구렁이란 걸 잘 알았다. 그 능구렁이가 웃고 있다는 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거고, 여태 그의 꿍꿍이가 잘 못 됐거나 실패한 적이 없다는 걸, 그의 일파 직원들이 다들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배 상무 일파 중 유독 한 사람만은,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바로 경영기획지원팀의 박영수 과장,
그는 오늘 자신이 경영기획지원팀의 팀장이 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사 공문에,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의 이름이 없자 침울해져 있었다.
근데 늘 그의 껌딱지처럼 따라 다니던, 조하나 대리는 어디 갔는지 오늘 보이지 않았다.
한데 일행 중 누구 하나 그녀가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고, 짚거나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 *
원래 박인호는 호텔에서 부모님과 헤어져서 움직이기로 했었다. 하지만....
“안 되겠습니다. 저도 같이 가야겠어요.”
“네?”
하지만 부모님만 먼저 집으로 보내는 게, 영 내키지 않은 박인호. 그가 고집을 부렸다.
해서 백준열의 경호팀은, 즉시 그 사실을 그들의 팀장인 문대식에게 알렸고, 문대식은 백준열에게 직보를 했다.
그러자 백준열이 박인호가 원하는 대로 해 주라고 했다.
그래서 박인호는 부모님들과 같이, 그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었던 본가로 갈 수 있었다.
“오늘은 가게 열지 말고 쉬세요. 저도 퇴근하는 대로 바로 집으로 올 테니까요.”
“그래. 그러마.”
“알았으니 어서 출근해라.”
부모님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좀 더 박인호에게 의지하게 된 거 같았다.
자기 고집 때문에 사실상 오전에 출근하는 게 물 건너가게 됐지만, 일이란 게 시간으로 하는 게 아니다.
능률로 하는 거고 실력으로 증명하는 거지.
박인호는 남들이 3-4시간 필요로 하는 일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처리해 내는 능력자였다.
그걸 알기에 좀 늦게 출근한다고 해도, 일적으로 부담 같은 건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JYB엔터로 가는 중에,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그때 백준열 경호팀에 연락이 왔다.
“지금 신라삼계탕으로 오라고요? 알겠습니다.”
신라삼계탕은 경호팀원들도 잘 아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팀장인 문대식이, 그들을 거기에 하도 많이 데려가서 말이다.
그 정도로 문대식은 삼계탕을 좋아했는데,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그곳에서 해결해야 할 모양이었다.
“삼계탕 좋아하십니까?”
박인호는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경호팀원 중 한 명의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뭐. 삼계탕 좋아합니다.”
서민에게 있어 몸보신에 그만한 음식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어째 다른 경호팀원들 표정은, 어제 씹었던 껌을 도로 씹는 얼굴이었다.
하긴 이번 달만 해도 다들 두 번씩은 삼계탕을 먹었으니 그럴 만 했다.
그게 뭐 많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저번 달도 있었다.
매달 3-4번 씩 삼계탕을 ‘쭈욱’ 먹다보면,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10분 뒤 목적지인 신라 삼계탕에 도착했고, 박인호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경호팀장인 문대식이 직접 그를 맞았다.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가게 안은 검은 정장 남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벌써 식사들 중이었다.
방금 자신과 같이 들어 온 경호팀원들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삼계탕이 나오는 걸 보니, 미리 주문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박인호는 문대식과 같이 가게 안쪽 룸으로 향했다.
그 룸 안에는 백준열 대표가 먼저 식사 중이었고, 그 옆에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삼계탕이 그 주인을 기다리며, 모락모락 연기를 피어올리고 있었다.
“백준열입니다.”
“박인호입니다.”
그 전에 백준열 대표와 박인호가 먼저 인사를 나눴다.
“앉으세요.”
백준열 대표는 박인호와 악수 후, 바로 자기 옆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박인호는 자기 예상대로 그가 찍은 삼계탕이, 자기가 먹을 삼계탕임을 알고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빨리 나오는 삼계탕은 처음입니다.”
그 말에 백준열 대표가 따라 웃으며 말했다.
“저도 와보고 놀랐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나오는 삼계탕은 저도 처음이라 서요.”
그 말을 하면서 자신의 경호팀장을 쳐다보는 백준열 대표. 그러자 문대식이 한마디 했다.
“제가 여기 워낙 단골이라서....”
백준열 대표는 그 말에 ‘푸훗’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자기 옆에 박인호를 보고 말했다.
“식사 하면서 얘기 나누죠.”
“네. 그러시죠.”
그렇게 두 사람은 삼계탕을 먹으면서, 가벼운 얘기부터 시작해서, 점차 업무 전반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백준열은 왜 박인호를 10년 뒤에, 사람들이 경영 천재라 불렀는지 바로 이해가 됐다.
그는 회사 경영을 효율적으로 할 줄 알았다.
남들은 몇 단계를 거쳐야 할 수 있는 걸, 한 두 단계로 끝내 버릴 수 있다고 했다.
아마 박인호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한 건, 100% 그렇게 될 공산이 컸다.
그랬기에 백준열이 많이 놀란 것이고.
박인호 역시 자신의 말을 척척 알아듣는 백준열을 놀랍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여태껏 그가 만나왔던 상사들은, 다들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면서 꼭 아는 척은 다 했었다.
하지만 백준열을 그 말을 알아들었을 뿐 아니라,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당연히 박인호는 그 해답을 얘기했고, 백준호는 흡족해 하며 오늘 당장, 그에게 JYB엔터의 대표 업무를 몽땅 다 인수인계 하겠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