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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113화 (11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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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내가 JYB엔터 본사 건물에 들어섰을 때, 시간은 10시를 훌쩍 넘어 10시 30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엘리베이터를 막 타려는데,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는 내가 아는 번호보다,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더 많이 걸려오고 있었다.

한데 그 전화들 모두 내가 꼭 받았어야 할 전화들이었다.

뭐 그래서 이번도 그냥 받았다.

“네. 백준열입니다.”

그래도 예의를 갖춰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저 중앙지검에 나재석 검사입니다.

나재석 검사라면, 반부패부의 검사였다.

김 비서에게 내가 전경일의 뒤를 캐라는, 청탁을 넣으라고 했었던 바로 그.

“네. 검사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불쑥 연락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부탁은 저희 쪽에서 해 놓고 격조했죠. 조만간 자리 한번 마련하려 했는데....그나저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검사님이, 오전부터 무슨 일로 전화하셨을까요?”

어제 청탁 했는데 이렇게 빨리, 무슨 볼일로 전화를 했냐는 말을, 내가 우회해서 얘기하자 나재석 검사가, 바로 대답을 해 주었다.

=실은 어제 부탁하신 일 때문에, 좀 전 부장검사실에 불려 갔었습니다.

“그래요?”

반부패부의 부장검사가 누군지 모르지만, 내가 개입 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별 말 없어야 맞았다.

왜냐하면 그 부장검사에게 분기마다 쑤셔주는 돈만 3천만 원이었다.

그걸 받아 처먹고 뭔 소리를 한다면, 그런 인간은 더 이상 부장검사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이 없었다.

단박에 부패한 검사로 몰아, 검찰 조직에서 내 쫓아버리는 건 내게 일도 아니었다.

=부장님께 대표님 얘기를 했더니, 뭐든 힘닿는 데까지 협조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아무 문제없지 않나?

왜 나 검사가 이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내가 통 이해가 되지 않아 할 때였다.

=그런데 저희 부장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삼명 호텔일은 진짜 그렇게 처리해도 되는지 말입니다.

“삼명 호텔이요?”

=네. 최근 저희 쪽으로 제보가 하나 들어왔거든요. 삼명 호텔의 대표가 ,정치 자금을 만들기 위해서 회사 돈을 유용하고 있다고요.

“누나가 횡령을 했다고요?”

내가 깜짝 놀라하자, 나 검사가 도리어 의아해 하며 말했다.

=대표님은 모르셨습니까?

“네. 뭐....”

그러면서 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 사이 나 검사가 계속 이어서 말을 했다.

=부장님 말씀에 따르면 그 제보가 워낙 자세하고, 또 근거까지 있어서 저희 쪽에서도 조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하셨거든요. 정말로 조사해도 되는 겁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냐고? 삼명그룹에 물어보면 될 것을 말이다.

딱 봐도 반부패부의 부장검사가, 내게 뭔가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제스처에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칫 내 의견이 삼명그룹의 공식입장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따라서 이런 일은 삼명그룹 측과 상의하고, 같이 공동 대응해야 맞았다.

그렇게 결론이 나자, 나는 바로 내 입장을 나 검사에게 설명했다.

“그 문제는 제가 따로 삼명그룹 본사에 물어보고, 대답을 해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말이 그쪽에, 충분히 와전 될 수 있는 노릇이니까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부장님께 그렇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전경일 의원은 오늘부터 본격적인 내사에 들어갑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네. 그 좋은 소식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중앙지검 반부패부의 나재석 검사와 통화를 끝냈다.

하지만 나 검사가 내게 좋은 소식을 전할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기소할 대상인 전경일이, 오늘내일 사이 사라져 버릴 테니 말이다.

* * *

나재석 검사와 통화하는 사이, 나는 어느 새 내 방, JYB엔터 대표실에 들어와 있었다.

책상 위에 USB가 놓여 있었고,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그 USB를 내 노트북에 꽂고 김훈 대표의 명함을 꺼내서, 거기 적힌 메일주소로, USB 안에 전경일에 대한 인적 사항이 들어 있는 파일을 전송시켰다.

그러자 바로 김훈 대표로부터 즉각 답문자가 날아왔다.

[잘 받았습니다. 가급적 빨리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훈 대표의 문자를 확인하고, 이제 대표로 나의 오늘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서 업무에 들어가려는 데, 또 전화가 걸려왔다.

“박 비서?”

근데 블랙머니의 박 비서다.

투자 쪽으로 중요한 일이 아니면, 내게 잘 연락을 하지 않는 박 비서다.

게다가 지금 블랙머니는, 체질 개선 중에 있었다. 딱히 내가 관여 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전화를 했다는 건, 투자 쪽에 무슨 큰 문제가 생겼다는 걸 의미했다.

해서 나도 살짝 긴장한 체 그 전화를 받았다.

“어어. 왜?”

=대표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뭐가?”

=삼명그룹에서....대표님 앞으로 삼명전자 주식 10.5%를 증여 형식으로 넘겼습니다. 보아하니 세금문제까지 다 처리까지 한 거 같은데....

“뭐?”

백승렬 회장이 나에게 삼명전자 주식을 주기로 한 건 맞다.

하지만 그 비율이 왜 7%가 아니라 10.5%라는 말인가? 뭔가 잘못 됐다.

하지만 백승렬 회장이나 삼명그룹이 주식가지고, 나하고 장난 칠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좆 됐다.’

아마 지금쯤 내 두 형들과 누나가....

“가만,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백지연이 나한테 전화해서, 뜬금없이 화를 내고 협박까지 하며 개지랄을 뜬 이유가, 아무래도 이것 때문인 거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뻐꾸기 운운 해 놨으니....

“에이 씨. 뭐 어차피 알게 될 거....”

거기다가 백지연은 애초 백준열의 경쟁 상대도 아니었다. 진짜는 내 위에 두 형들이지.

지이이잉! 지이이잉!

내 예상대로 박 비서와 통화를 끝내고 나자, 바로 내 두 형 중 하나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백준호. 이 새끼도 양반은 못 되겠네.”

나는 당연히 성격급한 백준호가 나한테 먼저 전화를 걸 거라 여겼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왜요?”

=뭐 왜요? 너 이 새끼....

뚜뚜뚜뚜뚜....

나는 백준호가 내 욕을 하기 전에, 먼저 전하를 끊어 버렸다.

그러자 다시 전화가 걸려왔는데, 내가 그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가 날아왔다.

[욕 안할 테니 받아라. 아니면 당장 너희 회사로 쳐들어가 주지.]

백준호가 또 한다면 하는 인간인지라, 나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

“네.”

=어떻게 된 거야?

“뭐가요?”

=삼명전자 주식 말이다. 왜 7%가 10.5%가 됐냔 말이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아버지한테 물어보세요.”

=이 개....하아....그러니까 넌 가만히 있었는데, 아버지가 너한테 덤으로 3.5%의 삼명전자 주식을 더 얹어 줬다는 거냐?

“네.”

=너 이 새....하아....알아보고 아니면 내 손에 죽는다?

“맞으면요?”

=뭐?

“맞으면 반대로 내가 형을 죽이면 되나?”

=....

내 그 말이 백준호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한 동안 말이 없던 백준호가, 그냥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새끼가 가만히 있으니, 내가 가마니로 보였던 거지.”

백준열이 위에 두 형들에게 기죽어 살아 온 건 맞았다.

아마도 그게 트라우마처럼, 그의 마음에 자리 잡았겠지.

그런 트라우마는 고치려 한다고 해서 고쳐지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백준열도 그 부분을 많이 힘들어했고.

하지만 그의 몸에 내가 빙의해 버림으로 해서, 그런 트라우마도 백준열과 정신과 같이 없어져 버렸다.

물론 그 트라우마의 여파가 습관처럼 몸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내가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했다.

아마 장남인 백준경에게도, 오늘 중에 연락이 오긴 할 거다.

하지만 자기 와이프 문제로 골치가 아픈 그는, 늘 그래왔듯이 또 자기 할 말만 빨리하고, 내가 뭐라 말하기 전에 통화를 끝내 버릴 테지.

“형수라....”

뭐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생각이 날까 해서 머릿속에 백준경의 와이프, 즉 내 첫째 형수를 떠올려 봤다. 그랬더니....생각이 났다.

“허얼....”

첫째 형수는 색끼가 장난 아니었다.

나와도 분명히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그게 영 시원찮았던지, 형수가 나를 다시 찾지는 않았다.

나보다는 둘째 형이 더 실하다면서, 그쪽과는 제법 많이 빠구리를 친 것으로....

“어쭈?”

그러고 보니 둘째 형과 형수의 동영상을 내가 가지고 있었네?

백준열 이 새끼, 준비성 하나는 철저했다.

한데 첫째 형수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멋있는 여자였다.

성격도 화통하고 뒤끝도 없고 말이다.

단지 첫째형과 사이에 자식들이 있다 보니, 그 자식에게 삼명그룹을 물려주고자 하는 욕망은 있었던 모양이었다.

실제로 첫째형의 편에서, 기어코 삼명그룹 회장 부인이 된 걸 보면 말이다.

하긴 재벌가에서 태어나서, 그 정도 야심도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 * *

아침에 평소처럼, 제 시간에 출근한 삼명 호텔 CEO 백지연.

하지만 늘 자신의 일에 의욕적이었던, 그녀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고, 근심 많고 히스테릭한 30대 노처녀가 거기 있었다.

“하아....”

대표실 안의 창가에서 밖을 하염없이 쳐다보던, 그녀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이러는 건, 바로 어제 외갓집을 갔다가 본가에 들러서, 최 집사와 만난 뒤부터 시작됐다.

외할아버지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몰라도, 엄마인 서지현의 상태가 너무 나빠 제대로 물어보지를 못했다.

그래서 삼명家의 일이라면 누구보다 잘 아는, 최 집사를 찾아가서 그에게 물었다.

그녀의 남동생인 백준열이 그녀에게 한 말을 말이다.

“뻐꾸기가 이제 둥지를 떠날 때가 된 거 같다라.....허어. 이거 참....”

딱 봐도 최 집사는 그 이유를 아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 이유를 말하는 걸 꺼려했다.

“아가씨. 죄송합니다. 제 입으로 차마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곤 정중히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이어 원론적인, 하나 마나한 소릴 내뱉었다.

“정히 궁금하시다면, 회장님이나 사모님께 직접 여쭤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럴 거 같으면 뭐 하러 그녀가 최 집사를 찾아왔겠나?

바로 아버지한테 물어보러 안방에 들어갔지.

백지연도 최 집사의 고집은 익히 알았다.

아니라고 하면 절대 아닌 게 최 집사였다. 그런 고집스러움 때문에, 아버지도 최 집사를 30년 넘게 신뢰해 온 것이고.

여기서 그녀가 더 칭얼거린다고 해서 알려 줄 최 집사가 아니었다.

결국 건진 거 하나 없이, 자신의 집으로 가던 백지연.

그녀는 무심결에 뻐꾸기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랬더니 거기에 뻐꾸기가, 다른 둥지에 알을 낳는다는 걸 알게 됐다.

실제 동영상까지 있어서 봤는데, 그걸 보는 동안 백지연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그, 그러니까 내가 뻐꾸기라면....이제 둥지를 떠날 때가 된 거 같다는 말은....”

그녀도 아버지인 백승렬 회장이, 왜 자신에게 그리 냉정한지 쭉 생각해 보며 살아왔다.

그리고 한 10년 전부터 합리적인 의심을 해 봤었다.

자신이 혹시 백승렬 회장의 친자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그리고 최근에는, 실제 백승렬 회장과 자신의 친자확인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가졌었다.

그렇지 않고야 백승렬 회장이, 여태 자신에게 자기보유 주식을 1주도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무서웠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어쩌나 하고.

그런데 아무래도 이제는, 그걸 자신 손으로 확인해야 할 때가 온 거 같았다.

삐이이익!

=네. 대표님.

백지연이 인터폰을 누르자, 그녀의 비서가 즉시 대답했다.

“저번에 내가 준 거 있지? 왜 친자 확인 하는 거 말이야.”

=네. 그 샘플이라면 제가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거 그 연구실에 보내. 몇 시간이면 알 수 있다고 했지?”

=안 바쁘면 5시간에서 6시간 정도 걸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는 알 수 있겠네?”

=네. 그렇게 조치 취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결재 서류 가지고 들어 와. 일 하자고.”

백지연은 오히려 그런 결정을 내리고 나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백지연의 친자 확인은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아버지, 또 하나는 엄마와 각각 친자 확인을 하게 될 것이다.

둘 다 맞을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 맞는다면, 그게 더 골치였다. 이건 사생아도 아니고 불륜아이지 않은가?

“하아....”

다시 그녀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 노트 후 그녀의 비서가 서류 카터를 밀고 들어왔다.

그녀가 처리해야 할 서류가 원체 많다보니, 비서가 손으로 들고 다니지 못해, 이렇게 카터를 밀고 다녀야 했다.

그 정도로 백지연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삼명 호텔을 위해 일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 호텔 오너가의 핏줄이 아니란 게 밝혀지면, 그렇게 일할 이유 역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부끄러워서 더는 얼굴을 들고 한국에서 살 수 없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위에 두 언니들이 왜 외국에 나가서 국내로 들어오지 않으려 하는지, 그게 좀 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잘 이해가 됐다.

‘설마 언니들 역시....’

하지만 백준열은 그녀 위에 누나들까지 뻐꾸기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삼명家의 뻐꾸기는, 그녀 하나일 공산이 가장 컸다.

척! 척! 척!

그때 그녀의 책상 위에 그녀가 살펴야 할 결재 서류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상념에서 깬 백지연은, 오늘 중 그녀가 처리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흐를 것이고, 퇴근 할 때 쯤 되면, 친자 확인 결과도 나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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